제10화 천안이 지옥이라고? (3)
인턴 때 일반 외과를 돈 동기들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다른 말은 못하고 야야 소리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가끔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그 소리가 나는 순간 난리가 난다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3년차에게 들으니 농담처럼 흘릴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선생님, 야야 소리가 나면 정말 초상이 나는 겁니까?”
3년차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음성하고 구미만 돌았어도 그렇지, 이 자식 이거 아주 맹탕이었네. 그 소리가 나면 걸린 놈은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말이야, 더 무서운 일은 따로 있어. 넌 과장님이 무서워, 아니면 치프(chief:각 파트의 최고 연차)가 무서워.”
물어보나마나 한 말이었다. 1년차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과장을 포함한 스태프들이 아니라 전공의 선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1년차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치프들이 단연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당연히 치프인 3년차 선생님들이시죠.”
“그치? 우리가 제일 무섭지? 그러니까 야야 소리 안 나게 조심해. 과장님이 바로 치프들을 집합시키거든. 우리가 깨지면 1년차는?”
당연히 죽음이었다. 듣기만 해도 살벌한 말이었다. 허허, 웃어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는 송재덕 과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이상하게 온몸이 오싹해졌다.
너무 안 어울리기 때문이었을까?
“그럼 수술실에서 졸 때 말고 또 어떨 때 화를 내시나요?”
“환자 제대로 못 봤을 때나 수술을 지지리 못할 때도 화를 내셨다는 소리도 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결정타는 환자에 대한 거짓말이야.”
“환자에 대한 거짓말이라니요?”
“왜 그럴 때 있잖아. 예를 들어 반드시 해야 할 검사를 깜빡 빠뜨렸어. 그런데 과장님한테 딱 걸린 거야. 그땐 변명이고 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야 해. 괜히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말했다가 걸리면 얄짤 없다. 그리고 배 닫을 때 느리면 야야까지는 아니어도 눈빛은 분명히 안 좋아지신다는 것도 잊지 마.”
아닌 게 아니라, 3년차의 손이 보통 바쁜 것이 아니었다.
한두 바늘 남았을 때 송재덕 과장이 쓰윽 들어왔다.
“허허! 거의 다 끝났네. 그래그래, 천천히 해, 천천히. 근데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예, 김지훈입니다.”
“그래, 김지훈. 김지훈이었구나. 열심히 해.”
같은 말을 반복해서 그렇지, 넉넉한 웃음에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정말 영락없이 친근하기만 한 동네 아저씨였다.
김지훈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수술실을 나가는 송재덕 과장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선생님, 천천히 하시라네요.”
“지훈아, 절대 저 말에 속으면 안 돼. 그 소리에 넘어가면 그냥 골로 가는 거야. 너도 앞으로 과장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는 게 좋을 거다.”
3년차가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수술이 끝난 후,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바이탈이 흔들린 여느 환자들처럼 하루 동안 집중 치료를 한 후 병실로 옮길 예정이었다. 더구나 주말이었다. 필요한 오더를 낸 김지훈이 잠시 환자를 살피다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아침 7시였다. 일요일 아침은 전공의 회진만 있었지만 그래도 9시면 회진을 돌았다. 부리나케 병동으로 뛰어 올라간 김지훈이 드레싱을 시작했다.
드레싱을 끝낸 후 잠시 시간이 남아 중환자실에 들러 수술 환자의 드레싱을 확인했다. 거즈에 묻은 삼출액이 아주 미약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출혈이 없다는 말이었다. 바이탈과 소변량까지 확인한 후 병동으로 올라갔다.
막 병동에 올라간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발소리를 죽인 채 냅다 내달렸다. 송재덕 과장이 최철한과 유석재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예정에도 없던 과장 회진이었다.
병원에 나온 김에 회진을 도는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옆에 서자 넉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허허! 너, 김지훈이지. 김지훈 맞지?”
도대체 이름을 몇 번이나 묻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예, 과장님.”
“그래. 지훈아, 회진 돌자.”
수술은 엄청나게 빨리하던 송재덕 과장이 회진은 의외로 천천히 돌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몇몇 중요한 환자만 보고는 최철한에게 물었다.
“오늘 수술한 환자는 어때?”
수술 당직이 아니었던 최철한이 알 리가 없었다.
당황한 유석재가 김지훈에게 노티를 하라는 눈짓을 했다.
‘지훈아, 네가 수술 들어갔지? 빨리 대답해.’
둘 다 심각한 안색이었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하며 마지막으로 확인한 환자의 상태를 보고했다.
“예. 바이탈은 안정적이고, 소변은 시간당 50시시 이상 나오고 있습니다. 마지막 드레싱을 했을 때 출혈은 없었습니다.”
“그래? 심장은 빨리 안 뛰었어?”
“회진 도시기 전까지는 분당 80회 정도 체크됐었습니다. 호흡은 분당 15회 전후였고, 체온은 37.2도였습니다.”
내친김에 마지막 바이탈 수치를 모두 노티 했다.
송재덕 과장이 힐끗 김지훈을 보며 중환자실로 향했다.
환자를 보며 이것저것 체크한 후 바이탈이 기록된 간호사 일지를 보았다. 김지훈이 한 노티는 정확했다. 아주 흡족하게 일했던 신현수도 구체적인 바이탈 수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차트를 뒤적거리던 송재덕 과장이 중얼거렸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는 괜찮았나?”
“산소 포화도 98프로였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또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음! 그래, 김지훈. 네가 김지훈이구나.”
김지훈이 확실하게 대답을 한 이유가 있었다.
누구도 모든 환자들의 바이탈과 검사 결과를 외울 수는 없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 이번 환자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혈복강으로 응급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아무리 신경을 써도 지나침이 없는 환자였다. 더구나 그간 중환자실 환자의 바이탈과 중요 검사 결과는 확실하게 기억하는 습관을 들였다. 혼자 근무한 탓에 나름 불안함을 없애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송재덕 과장이 중환자실에서 나가다 말고 김지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정말 어색할 정도로 웃음이 많았다.
“김지훈, 네가 김지훈이었구나.”
왜 자꾸 이름을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표정을 보아서는 기분이 좋은 것이 틀림없었다.
설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송재덕 과장과의 첫 수술과 회진이 끝났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지훈, 너 어떻게 알았어?”
“예? 무슨 말씀이세요?”
“과장님 앞으로 입원한 중환자실 환자는 바이탈하고 검사 결과를 몽땅 외워야 한다는 거 말이야. 야! 주말에 갑자기 회진을 도실 줄 누가 알았어. 네가 대답을 못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다.”
‘어? 그런 게 있었나?’
김지훈이 슬며시 인계장을 꺼냈다.
중환자실 환자 바이탈 잘 볼 것. 화 많이 내심.
해석하기 나름이었지만, 화를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습관적으로 바이탈을 확인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현수가 인계를 잘해 준 덕입니다.”
유석재가 김지훈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 다행이네. 최철한 선생님, 처음 봤는데 과장님은 지훈이가 꽤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에요.”
“그러게, 도대체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시는 거야? 얘가 어떻게 일하는지 들으셨나 봐.”
“하여간 재수도 좋고, 열심히 일하는 덕도 톡톡히 봐요. 지훈아, 그렇다고 방심하지 마라. 그러다 야야 소리 들을 일 만들면 우리 다 줄초상난다. 확실히 해.”
최철한도 야야라는 말을 하며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예, 선생님.”
병동에 홀로 남은 김지훈은 입맛을 다시다 말고 인계장을 다시 펼쳤다. 화라는 글자에 바짝 집중했다. 송재덕 과장의 넉넉한 모습과 선배들의 태도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문득 야야라는 말이 정말 두렵게 느껴지고 있었다.
웃음과 이름, 그리고 야야라는 말이 머릿속에 콱 박혔다.
잠시 한가했던 시간이 지나고 응급실에서 콜이 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병동과 응급실을 오갔다.
복막염 환자와 심한 장 폐쇄 환자가 와 두 건의 수술이 벌어졌다. 신현수가 어제보다는 조금은 피로가 풀린 모습으로 수술을 들어갔다.
‘부럽다. 이왕이면 어제 오지. 그래도 이렇게 수술이 뜨면 기회는 무진장하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자자.’
틈이 날 때마다 잠을 자며 근무를 서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응급실 환자 한 명을 보고 병동으로 올라가던 김지훈이 무심코 중환자실에 들렀다. 환자의 상태는 상당히 안정적이었지만 중환자실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심지를 타고 나온 삼출물로 푹 젖은 거즈를 다시 갈아 준 김지훈은 간호 기록을 확인했다. 그때 나지막하지만 몹시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선생님, 과장님이요, 과장님.”
당직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전화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다닥 달려간 김지훈이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지?’
“예, 과장님. 김지훈입니다.”
(응, 김지훈이구나. 환자 어때?)
방금 전에 본 기록이었다.
김지훈이 바이탈과 소변량까지 바로 보고를 했다.
(피는 안 나오지?)
“예. 방금 전에 드레싱을 했는데 깨끗합니다.”
(음! 그래, 김지훈. 수고해, 수고. 너 김지훈이지?)
“예, 과장님. 김지훈입니다.”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허허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잔뜩 긴장했던 김지훈은 맥이 탁 풀린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설마 바이탈 물어보시려고 이 밤에 전화를 하신 거야?’
송재덕 과장의 속을 누가 알까?
참 특이한 말투라는 생각이 든 김지훈이 실실 웃으며 숙소로 올라갔다. 신현수와 정갑수가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누구는 힘들어서일 테지만 누구는 그 반대일 것이다.
김지훈이 신현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밤늦게 중환자실에 직접 전화를 하실 정도면 킵(keep)을 해야 한단 말이잖아. 이 정도면 정말 힘든 파트인데 3개월을 돌면서 칭찬을 받았다 이거지. 최소한 현수한테 뒤지지 않아야 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데, 정말 만만치 않네.’
신현수가 어떻게 일을 했을지 대충 감이 왔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던 김지훈의 눈꺼풀이 스르르 닫혔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콜이 왔다. 어기적어기적 힘든 발걸음을 옮기며 밤새 환자를 보았다.
역시 지옥이라는 별명답게 누울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지난 6개월 동안 이렇게 살아왔다. 전과 다를 바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술 당직이 아니면 응급 수술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도리어 아쉽기만 했다. 그 덕에 몸은 도리어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기와 함께 일하는 게 이렇게 힘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정갑수와 관련되면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긴 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부산한 하루가 시작됐다.
드레싱을 마치고 회진 준비를 하던 김지훈이 긴장된 기색을 보이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송재덕 과장을 포함한 6명의 스태프.
연차당 3명씩 모두 9명의 전공의.
회진 안내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인턴 2명.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
스테이션이 의료진들로 가득 찼다.
나직한 목소리로 환자에 대한 대화를 나눈 스태프들이 회진을 시작할 때마다 전공의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인턴 때 그렇게 부러워했던 전공의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그 속에 김지훈이 있는 것이다.
스테이션을 가득 채운 활기가 사방으로 흘러넘쳤다.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었다.
송재덕 과장이 회진을 시작했다.
병실 앞으로 달려간 인턴이 재빨리 문을 열고 대기했다.
김지훈이 송재덕 과장의 옆에 바싹 붙고, 최철한과 유석재가 그 뒤를 따랐다.
“이 환자 열났어, 안 났어?”
“오늘 아침에는 열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백혈구 수치는?”
“7,800으로 약간 증가돼 있지만, 어제보단 감소했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은근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1년차가 주치의라지만 검사 수치까지 외우긴 어려운 일이었다.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는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수술 후 열이 나는 환자에 대해 이것저것 물은 송재덕 과장이 흡족한 웃음을 터뜨리며 회진을 이어 갔다. 마지막으로 오늘 수술할 환자들에 대해 몇 가지 더 질문한 후 회진을 모두 끝냈다.
“허허! 김지훈, 수술 준비하자. 준비해.”
“예, 과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수술실로 향하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주말에 이어 오늘도 출발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