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과장님, 배우러 왔다니까요 (3)
환자가 올 때까지 새카맣게 탄 김지훈이 수술을 준비하면서도 계속 수술 과정을 반복했다. 열심히 손을 놀리며 대비했지만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취과의 사인과 동시에 수술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복부를 열 때까지 타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김지훈이 집도의와 손을 맞춘다는 말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묘한 눈으로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복부 위치에 따라 여는 방법이 다른데 꽤 잘 따라오네. 자식, 노력을 많이 한 티가 나. 그러고 보면 이놈하고 수술을 하면 왠지 편하단 말이야.’
희한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근 10년 동안 수술을 보조해 온 미스터 최가 더 편해야 했다. 온전하게 퍼스트의 역할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세월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불과 3개월만 퍼스트를 세웠던 김지훈과의 수술이 훨씬 편하게 느껴진 것이다.
지지직!
전기 소작기가 조직을 자를 때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복벽을 열고 간을 제치자 검붉은 색으로 부어오른 담낭이 보였다. 이때까지도 이준영 과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지훈은 더욱 바짝 긴장을 했다.
담낭은 간 밑에 바짝 붙어 있고, 담도와 연결돼 있다. 간과 담도는 상당히 중요한 구조물이기에 무척 신중한 손길이 필요했다. 더구나 담석으로 인해 염증까지 발생한 상태라 주변 조직들까지 흐물거렸다.
‘염증이 너무 심하네. 이번 수술은 가르친다고 태워 봐야 손만 어지러워진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꽤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일단 잘 따라오게 해서 퍼스트를 어떻게 서야 하는지 경험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어.’
이준영 과장은 김지훈이 담낭 절제술에서는 두 번째 퍼스트를 선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가르치는 것도 중요했지만, 환자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심해.”
이준영 과장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을 했다. 더구나 막힘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과감했던 손이 유난히 신중했다. 긴장이 배가된 김지훈은 정신을 집중했다.
끊임없이 과정을 되새기며 이준영 과장의 손을 따라 퍼스트를 섰다. 퉁퉁 부어오른 담낭이 절제됐다. 이준영 과장이 조심스럽게 수술 부위가 제대로 지혈됐는지 꼼꼼히 살폈다. 담도에 손상은 없는지도 수차례 확인한 후 장갑을 벗었다.
“드레인(심지) 박고 마무리해.”
마취과 과장과 인턴이 크게 놀랐다. 어떤 집도의도 1년차에게 마무리를 맡기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연히 마취 시간만 길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한 마취과 과장이 항변하는 것처럼 물었다.
“과장님, 지금 마무리를 맡기시는 겁니까?”
“오 과장,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집도의의 결정을 마취과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닙니다, 과장님.”
마취과 과장이 말꼬리를 흐리며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곧 김지훈이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고 말았다. 1년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했다.
“정말 별일이네.”
무심코 중얼거리던 마취과 과장이 서둘러 환자를 깨웠다. 어느새 심지를 박고 벌써 배를 닫고 있었다. 김지훈이 이렇게 빨리 마무리할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탓에 수술이 끝난 지 한참 후에야 환자가 눈을 떴다.
“수고하셨습니다.”
환자를 옮기며 웃고 있는 김지훈을 본 마취과 과장은 또다시 고개를 젓고 말았다.
회복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던 김지훈이 코를 만지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준영 과장의 침묵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수술 내내 태우질 않으시네. 왜지? 조금이라도 잘못 섰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설마 내가 그 정도로 퍼스트를 잘 섰나? 정말 그런 걸까?’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자신의 손을 보며 활짝 웃었다.
담낭 절제술에서는 이제 두 번째 퍼스트를 섰을 뿐인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흥분과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손까지 떨렸다. 기분이 완전히 들뜬 김지훈이 콧노래를 부르며 병동으로 올라갔다.
“간호사, 외과 복증 환자 사진 나왔어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기분이 되게 좋아 보이시네요.”
“그럴 일이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간호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
초음파에서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복부 CT가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한참 동안 CT를 보던 김지훈이 사진을 챙기고는 방사선과 과장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어! 김지훈 선생 왔어? 오래간만이야.”
낯익은 얼굴에 방사선과 과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대충 말을 들었는지 판독을 하는 내내 웃었다.
“초음파하고 CT를 종합해 보면 아뻬는 확실히 아닌데, 그 옆에서 염증 소견이 꽤 심하게 보여. 위치가 회장(소장 말단부)이니까 십중팔구 게실염이겠지? 하지만 다른 질환을 배제할 수는 없어.”
방사선과 과장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떤 검사도 소장의 병변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는 없었다. 5미터가 넘는 길이에 꾸불꾸불 겹쳐 있기 때문에 병변이 가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소장에서 발생하는 질환 자체가 극히 드물어 진단을 유추하기가 그만큼 용이하기도 했다.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을 찾았다.
“선생님, 방사선과에서 게실염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게실염? 그럼 딱 하나네. 뭐야?”
게실(diverticulum)은 장벽의 일부분이 늘어나 기다란 주머니를 형성한 병변을 말한다. 대장에는 흔히 발생하지만 소장에서는 거의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Meckel’s diverticulum(메켈스 게실).
회장 말단부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내부에 궤양이 발생해 염증성 병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심한 경우 천공이 발생해 아뻬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며 복막염까지 유발할 수 있었다.
“메켈스 게실이 의심됩니다.”
“어떻게 해야 돼?”
“현재 증상으로 볼 때, 천공이 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수술을 해서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훈의 대답에 이준영 과장이 복부 CT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툭 한마디 던졌다.
“보호자하고 환자한테 설명하고, 수술 준비해.”
“예, 선생님.”
진료실을 나오는 김지훈의 입이 쫙 찢어졌다. 담낭 절제술에 이어 드물게 보이는 질환까지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음성에 오길 정말 잘했다. 선생님도 이젠 안 태우실 것 같은데, 이 기회에 확실하게 집중해서 배우자. 가만? 수술을 어떻게 하지?’
부리나케 병동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수술 준비를 하라는 오더를 내고 곧바로 책을 뒤졌다. 일단 수술 과정을 한번 머리에 박고 수술 스케줄을 냈다.
‘그동안 마이너 수술만 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1년차 왔다고 환영식을 하나?’
마취과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일이 많아지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김지훈이 슬쩍 마취과 과장의 얼굴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어째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취만 걸어 준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김진호 선생님 같은 분이 없긴 없네.’
마취과 과장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운 김지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제 월요일 오후인데 벌써 세 번째 수술이 뜬 것이다. 김지훈이 떠난 이후 음성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환자를 만나는 것도 운때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최선을 다했지만 아뻬나 탈장 같은 마이너 수술을 주로 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나도 배는 멀쩡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설마 김지훈이 환자를 몰고 다니는 것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턴 때부터 어디를 가든 환자가 많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젠 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갖고 수술에 임했던 김지훈이 입술만 씹었다. 수술 과정을 말할 때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수술 중에 이럴 줄은 몰랐다.
이준영 과장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메켈스 게실을 찾은 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게실은 터져 있었고, 소장 일부분까지 염증이 심해 보였다.
“게실만 제거해, 아니면 소장까지 잘라야 해.”
암 수술이 아닌 이상 최소한의 손상만 가하는 것이 수술의 원칙이었다. 소장의 색깔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자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게실만 제거…….”
“뭐?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뭐야?”
“예, 소장도 괜찮아 보이고, 손상을 최소화…….”
이준영 과장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마치 2명이 서서 1명은 수술을 하고, 1명은 김지훈을 태우는 것 같았다.
“김지훈, 어디를 보고 소장이 멀쩡하다는 거야?”
100프로 틀렸다는 말이었다. 이미 이준영 과장은 소장을 자를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김지훈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답을 하지 못했다.
“정말 몰라? 소장에 들어가는 동맥은 폼으로 있어? 봐, 이 부분이 죽어서 혈액 공급이 안 되잖아. 이걸 어떻게 살려? 판단 잘못하면 배 다시 열게 돼. 알았어?”
“예, 선생님.”
‘소장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하지만, 혈액 공급을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구나. 책에 빤히 쓰여 있는 걸 왜 수술실에서는 기억하지 못할까?’
답답한 노릇이었다.
곧 메켈스 게실을 포함해 소장을 일부 절제했다.
불과 하루 만에 똑같은 수술을 했지만 살벌하게 탔다.
‘어후! 아까하고는 백팔십도 달라지셨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야? 같은 수술을 바로 이어서 하는데 똑같이 혼나고 있으니 나도 한심하네. 뭘 놓친 걸까?’
수술 내내 고민하던 김지훈은 마무리를 하라는 소리에 급히 입을 열었다.
“과장님, 오전에 한 수술과 지금의 수술에서 제가 퍼스트를 다르게 선 겁니까?”
“왜? 뭐가 궁금한데?”
“아니요. 오전에는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지금은 예전과 똑같으셔서요.”
아직도 어렵긴 했지만 김지훈도 이젠 제법 할 말을 했다. 아마도 이준영 과장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르긴 뭐가 달라? 똑같지.”
“그런데 왜 오전에는…….”
구구절절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든 문제였다.
이준영 과장이 눈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네가 퍼스트를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수술하는 사람의 부담이 달라져. 제대로 못 서거나 불안하면 집도의가 그만큼 집중을 해야겠지. 담낭을 절제할 때 내가 어느 쪽이었겠어? 그렇다고 네가 잘해서 수술 중에 말을 하는 것도 아니야. 확실히 알고 있어.”
정말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다. 대단한 착각을 했던 것이다. 담낭을 절제할 때 말이 없었던 것은 퍼스트의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의 얼굴이 벌게졌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었구나. 멍청한 놈. 후우! 하지만 실망할 일이 아니야. 그래서 음성에 온 거잖아.’
무슨 이유인지 이준영 과장이 묵묵히 서 있었다.
마무리를 하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고는 힘차게 외쳤다. 이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제야 이준영 과장이 수술실에서 나갔다.
‘멘탈 하나는 정말 강해. 정신력이 약한 외과 의사는 급박한 상황에 대처를 하기 힘들지. 김지훈, 넌 천생 외과 의사다.’
김지훈이 온 이후로 불과 이틀도 안 됐지만 웃을 일이 정말 많아졌다.
단 1분 1초라도 허비할 수 없었다.
오후 일과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올라온 김지훈이 수술을 떠올리며 책과 씨름을 했다. 오매불망 환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밤,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28세 남자 환자입니다. 어제 시작된 우하 복부 통증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아뻬가 의심됩니다. 검사는…….)
“그래, 알았어. 내려갈게.”
인턴이 노티를 끝마치기도 전에 김지훈이 응급실로 내달렸다. 시간상 마취과 과장이 마취를 해 줄지 애매모호했기 때문이었다. 수술을 할 때의 표정으로 봐서는 조금만 늦어도 내일 하자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