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과장님, 배우러 왔다니까요 (2)
김지훈이 검사를 확인하다 말고 환자와 보호자를 다시 만났다.
“탈장 수술을 하면서 만일 장이 죽었다면 자를 수도 있다는 말씀 들으셨죠?”
“예, 선생님. 아버님 나이가 많으신데 괜찮겠습니까?”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수술부터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탈장 수술에서는 코 줄까지 끼우지는 않는데, 아버님 같은 경우는 장을 절제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혹시 힘들어 하시더라도 절대 코 줄이나 소변 줄을 만지지 못하게 해 주세요.”
그 밖의 주의할 점을 단단히 당부한 후 마취과 과장에게 노티를 했다. 누군지 몰라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이준영 과장이 전화를 뺏었다.
“오 과장, 나 이준영인데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김지훈 선생이 노티를 할 거야. 그렇게 알고 부탁해.”
전화를 끊은 이준영 과장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수술실에 있겠다는 의미였다.
“마취과에서 연락 오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응급실을 나갔다.
수술 오더를 내고 환자를 살피던 김지훈의 안색이 확 변했다. 부리나케 당직실로 들어갔다.
‘탈장에 소장 절제 수술까지? 으아! 첫 수술부터 신나게 타겠다. 따로따로 와야지, 하필이면 왜 겹쳐 가지고.’
정신없이 가방을 뒤져 책을 꺼낸 김지훈이 머리를 박았다.
깨알처럼 기술된 수술 방법이 어지럽게 뇌리를 스쳤다.
소장 절제는 구미에서 꽤 경험했지만 퍼스트를 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음성에 있었을 때 한두 차례 서 본 것이 다였다. 더구나 아뻬로도 살벌하게 태우는 능력을 가진 이준영 과장이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수술 준비를 끝마친 환자를 확인하고 수술실로 올라갔다.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자마자 손짓을 했다.
“장을 절제한다고 생각하고 말해 봐.”
김지훈이 심호흡을 하고 피부 절개부터 시작했다.
여지없었다. 그나마 피부 절개를 통과한 것이 다행이었다.
“장이 빠져나와 있는데 탈장부터 수술을 해? 그게 가능해?”
김지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수술 시야가 나오질 않아 불가능합니다.”
“다시.”
다시 피부를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구미에서 본 것과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상기하며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준영 과장의 눈빛이 점점 사나워졌다.
두 달 만이어서 그런지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구미에서 두 달 동안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까지 나왔을 때는 화가 나기보단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몇 번을 반복한 끝에 간신히 소장 절제 부분을 통과했다.
얼마나 심하게 탔는지 환자가 올라왔다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김지훈을 노려보며 돌아선 이준영 과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보니 구미에서도 잊지 않고 계속한 것이 틀림없어. 김지훈,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수술실로 들어가자 미스터 최가 반갑게 맞이했다.
“김지훈 선생님, 잘 지내셨죠? 그런데 수술까지 들어오시고, 갑자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럴 일이 있어요. 미스터 최도 잘 지내셨죠?”
“그럼요.”
“마취과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반가워요.”
마취과 과장은 꽤 궁금해하는 얼굴이었지만 이준영 과장이 들어오자 입을 꾹 다물었다. 둘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곧 수술에 임했다. 간만에 서는 퍼스트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장 절제까지 할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하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경험도 좋지만 환자를 위해서라도 제발 장은 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부를 열 때까지 이준영 과장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제법 손이 잘 맞았고, 지적할 부분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탈장 구멍을 빠져나온 소장이 드러났다. 나직한 한숨이 터졌다. 20센티미터가 넘는 장이 까맣게 변해 있었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살릴 수 있는 시간이 지난 지 오래였다.
“김지훈, 정신 바짝 차려.”
이준영 과장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절제가 시작됐다.
김지훈의 손을 주시하던 이준영 과장이 눈빛을 굳혔다.
‘언뜻 보면 1년차답지 않은 실력이지만 역시 미숙한 부분이 많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잡아 주자. 일주일이 너무 짧긴 하지만 케이스만 있다면 분명 성과를 보겠지. 내가 가르치는 놈이 바로 김지훈이니까.’
수술에 들어온 인턴이 떨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주먹만 안 들었을 뿐 이준영 과장이 사정없이 김지훈에게 몽둥이질을 하고 있었다.
“1년차 된 지 5개월이나 된 놈이 이게 뭐야?”
“소장으로 들어가는 동맥은 아주 세밀하다는 거 몰라? 하나라도 엉뚱한 동맥을 잡으면 멀쩡한 소장까지 죽어.”
“소장을 연결할 때 타이는 과감하게 하라고 했지.”
그냥 주저앉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은근히 이준영 과장을 무서워했던 마취과 과장이 천장만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 저 인간 저럴 줄 알았어. 아주 사람을 죽이는구나. 근데 화이트도 아니고 쟤는 뭐야? 하는 거 봐서는 전공의 같은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하여튼 기가 팍 꺾이겠어.’
마취과 과장의 생각과는 달리 김지훈의 표정이 이상했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타면서도 눈빛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박경일 과장님 수술 때 퍼스트를 서는 것과는 확실히 뭔가 달라.’
그렇게 혼이 나는데도 이상하게 퍼스트를 서는 것이 너무 편안했다. 이준영 과장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고비를 넘고 있었다. 살벌한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물 흐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눈 몇 번 깜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소장이 절제되고 새로 이어 주는 과정까지 끝났다. 휙휙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의 과정이 마무리됐다.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그래, 이거였어. 어떻게 수술을 이렇게 하시지? 정말 배우고 싶다. 일주일! 좋아, 누가 죽나 보자.’
이준영 과장의 수술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 흥분될 줄은 몰랐다. 박경일 과장의 수술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누가 잘한다, 못한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판단을 할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준영 과장에게 수술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첫 수술이라 그런지 예전과는 달리 마무리를 맡기지 않았다. 마지막 봉합사를 자를 때까지 이준영 과장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던 김지훈이 힘차게 외쳤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마취과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상한 놈이 하나 나타난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김지훈이 환자와 함께 병동으로 올라갔다.
이미 김지훈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간호사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김지훈 선생님, 반가워요. 휴가라면서 여긴 왜 오셨어요?”
“의료 봉사 왔잖아요. 다들 잘 지냈죠?”
“선생님이 가셔서 잘 못 지냈어요. 그런데 수술까지 들어가시고, 정말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김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차트를 모았다. 능숙하게 환자들을 파악한 후 드레싱 카를 잡았다.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쫓아 나왔다. 시간이 제법 늦어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드레싱을 했다. 싫은 기색을 보이는 환자는 없었다.
“간호사, 혹시 내일 수술 잡힌 환자 있어요?”
“예. 담석으로 수술 예정인 환자가 있어요.”
“아! 그 환자가 내일 수술해요?”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아닌 밤중의 횡재였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방금 전 수술한 환자에 대한 기록은 물론 일반 외과 환자들에 대한 드레싱 기록까지 작성했다.
‘귀찮다고 이것저것 빼고 나면 배울 것도 그만큼 적어지겠지. 그래도 음성에 온 이유가 있으니까 우리 과 환자만 신경 쓰자. 아 참! 흉부 도관 박은 환자도 있었지.’
마음이 편한 탓인지 김지훈의 손에는 여유가 넘쳤다.
빠르게 차팅을 마친 후 응급실에서 짐을 챙겨 인턴 숙소로 올라갔다. 물론 인턴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인턴들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고맙다. 그리고 우리 과 환자 오면 바로 나한테 노티 해. 다른 과 환자도 보기 어렵다 싶으면 연락하고.”
샤워를 하고 나자 정신이 맑아졌다. 상쾌한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내일 수술을 준비했다. 평소 책만 보면 그렇게 졸음이 왔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눈이 말똥말똥했다.
담낭 절제술은 퍼스트를 서기 만만한 수술이 아니었다. 주변에 위험한 구조물이 많은 데다 서로 바짝 근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슬슬 다가오는 긴장에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응급실에서 콜이 왔지만 발딱 일어섰다. 환자를 보고 난 후에도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정신적 긴장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새삼 느꼈다.
“우리 과의 문제는 없어. 교통사고로 인한 복부 둔상이라고 해도 반사통이 없으면 배제해도 돼. 하지만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CT 찍어야 한다.”
“예, 선생님.”
탈장 환자 때 팍팍 인상을 썼던 김지훈이 마음씨 좋은 선배로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음성 근무도 아닌 김지훈이 나타나자마자 쓴소리를 한 탓에 내심 인상까지 쓰며 입을 내밀었던 인턴들이었다.
하지만 갑갑했던 문제들이 수월하게 해결되고, 설명까지 들으면서 선배 의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있었다. 인턴들이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를 노티 하기 시작했다.
의사에게 믿음직한 선배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애송이 의사들에겐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새벽 6시에 잠에서 깬 김지훈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선택과 집중!
휴가는 단 일주일이었다. 기회가 닿는 한 최대한 배워야했다. 일반 외과 환자가 아닌 환자들에게까지 모든 힘을 쏟을 수는 없었다.
차팅만 빼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린 김지훈이 주먹을 흔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가자! 시작이다.’
김지훈이 힘차게 두 번째 음성에서의 첫 일과를 시작했다.
하루 일과는 병원인 이상 어느 곳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시간적인 여유가 더 있을 뿐이었다.
드레싱을 한 후 회진을 돌았다. 회진이 끝난 후 슬쩍 차트를 본 이준영 과장이 피식 웃고 말았다. 100일 당직 때와 똑같이 꼼꼼하게 차팅이 돼 있었다.
‘나도 전공의 때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은 정말 이해가 안 될 정도네. 하긴, 병원으로 휴가를 오는 놈이니.’
지금도 여전히 김지훈은 계단을 이용했다.
후다닥 뛰어 내려가는 모습에서 김지훈의 열정이 느껴졌다.
수술실에 들어온 김지훈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담석증 수술은 담낭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구미에서 세컨드 어시스트는 여러 번 서 봤지만, 퍼스트는 이준영 과장과 딱 한 번 서 봤을 뿐이었다. 지금도 수술 과정이 생생하게 떠올랐지만 그때 새카맣게 탄 기억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후! 담낭을 잡을 때 이쪽에서 이렇게 들어가야 하나? 죽겠네.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지?”
김지훈이 수술 과정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마구 쳤다. 이준영 과장이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바랐지만 기대일 뿐이었다. 환자가 채 내려오기도 전에 수술실로 와 김지훈을 불렀다.
“시작해.”
김지훈이 침착하게 수술 과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100프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중요 과정에 들어가자 길가에 널린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듯 턱턱 막혔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고, 예외는 없었다. 지적을 받을 때마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마취과 과장이 수술실로 향하다 말고 우두커니 서서 김지훈과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미스터 최에게 대충 김지훈에 대해 듣고 난 후에는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하는 거야? 이젠 수술도 하기 전에 사람을 잡네. 이준영 과장, 정말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그리고 저놈은 1년차에 휴가라면서 저러고 싶을까? 일에 미친놈이야. 아니면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거야?’
시간만 나면 잠자기 바쁜 일반 외과 1년차가 휴가까지 반납한 꼴이었다. 더구나 스스로 자청해 혼까지 나고 있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의사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