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55화 (155/1,329)

제5화 같은 시간이라도 의미는 다 다르다 (1)

면회 시간이 끝나면 주스를 하나 꼭 쥐어 주며 팔을 붙잡고 울었다.

“할머니, 이러다 할머니까지 쓰러지세요. 면회 시간이 아닐 때 쉬셔야 합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내가 옆에 있어야 눈을 떴을 때 바로 달려오죠. 우리 선희가 이 할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할머니의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 제가 꼭 살리겠습니다.’

눈에 핏발이 서고,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김지훈은 밤마다 최선희의 곁을 지켰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조그만 소리만 나면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그러나 최선희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피로 속에서도 김지훈은 수술실에서 이를 악물어 가며 수술을 보려고 애썼다. 등에 찬물을 뿌렸고, 그래도 졸리면 얼음을 부었다.

‘암 덩어리를 제거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도 언젠가는 이런 경우를 당하겠지.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 해.’

일반 외과 1년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지만, 최선희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휴가를 갔던 유석재가 돌아오고, 최철한이 휴가를 갔다.

오자마자 시뻘게진 눈으로 중환자실에서 킵(keep)을 하고 있는 김지훈을 보고는 등을 떠밀었다.

“오늘은 내가 볼 테니까, 가서 쉬어.”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러다 쓰러져, 인마. 이젠 스스로 100일 당직을 서냐? 가서 씻고 내가 깨울 때까지 자. 자식이, 정말 말 안 들을래? 빨리 올라가.”

유석재가 성질까지 냈다. 김지훈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주무르며 숙소로 올라갔다. 유석재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진 김지훈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숙면을 취했다.

응급 수술이 하나 떴다. 피로가 풀릴 시간이 아니었지만 수술실에 들어오는 김지훈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수술이라면 눈에 불을 켜는구나.’

응급 수술 환자만 아니었다면 깨울 마음이 없던 유석재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지만 최선희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김지훈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면회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려야 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록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패혈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데 회복될 기미는 없고, 이러다 문제 생기는 거 아냐?’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최선희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상태를 살핀 김지훈이 급히 혈액 검사를 내보냈다. 매일처럼 몇 번이고 혈액을 뽑아 최선희의 양팔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쇄골하 정맥에 도관을 삽입했지만 수액과 항생제 투여 경로이기 때문에 혈액을 채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팔을 보던 김지훈이 간호사가 내민 결과지를 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백혈구 수치가 정상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손과 발은 물론 전신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간당간당하게 유지되던 혈압이 점점 떨어졌다. 호흡마저 불규칙해졌는지 인공호흡기에서 연거푸 경고음이 울렸다.

패혈증의 마지막 단계였다.

최선희를 지탱했던 마지막 불꽃이 꺼져 가고 있었다.

김지훈의 노력과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패혈증을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급히 노티를 하고, 내과 과장에게도 연락을 했다. 최선희의 상태와 검사 결과를 확인한 내과 과장이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라는 말을 했다.

무릎에 힘을 풀렸다.

박경일 과장이 보호자를 찾았다.

중환자실에 들어온 할머니의 눈에서 두려움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후우! 할머니, 손녀분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주저앉았다. 엉엉 통곡을 하며 최선희의 손을 놓지 못했다. 무거운 안색으로 할머니를 달래던 박경일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만 악물었다.

‘의사라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다 알 수는 없잖아. 할머니, 과장님, 전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남은 김지훈은 최선을 다했다. 오늘 내로 마쳐야 할 일이 잔뜩 밀렸지만 최선희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지금은 한순간에 최선희의 상태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유석재가 12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 중환자실을 찾았다.

“지훈아, 이제 올라가 일해.”

“선생님.”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해. 네가 보아야 할 환자가 이 환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알고 있었다. 이미 인턴 때 환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변상훈 과장에게 배웠다. 그것도 같은 중환자실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은비를 볼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김지훈이 주치의였고, 수술까지 들어간 환자였다.

그런 탓인지 결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 최선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유석재가 한숨을 쉬며 김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신도 똑같은 경험이 있었고, 정말 힘들었었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 내야 할 일이었다. 의사는 항상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김지훈 스스로 받아들여야 했다. 인턴 때하고는 입장 자체가 달랐다.

‘지훈아, 주치의가 돼서 자신이 맡은 환자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긴 해.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도 무수히 죽는 환자를 볼 텐데, 계속 이럴 수는 없잖아.’

잠시 김지훈을 바라보던 유석재는 고개를 흔들며 돌아섰다.

그 순간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이이이!

최선희의 혈압이 잡히질 않았다.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숨을 불어넣던 인공호흡기마저 삑삑거리기 시작했다.

“간호사, 빨리 에피네프린 준비해요.”

다급하게 간호사를 부른 김지훈이 정신없이 최선희의 가슴을 압박했다. 강하게 압박할 때마다 모니터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그러나 심장은 돌아오질 않았다.

삐이이이이이!

낮고 일정한 경고음과 함께 모니터에 평평한 한 줄기의 선이 그려졌다. 김지훈이 고함을 질렀다.

“간호사, 전기 충격기 준비해요.”

근무 중이었던 모든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삐이이이익!

“모두 뒤로 물러나. 슛!”

최선희의 몸이 활처럼 꺾였다 힘없이 떨어졌다.

‘제발 돌아와. 이대로 가면 안 돼.’

이를 악문 김지훈이 필사적으로 심폐 소생술을 하며 전기 충격을 가했다. 3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던 김지훈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누군가가 막아섰다. 유석재였다.

“지훈아, 그만해.”

“선생님, 그만하라니요?”

“환자 이미 사망했어.”

멍하니 유석재를 보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를 감싸 쥐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박경일 과장이 왔다.

“보호자 불러. 밖에서 먼저 설명할 거니까, 그 이후에 들어오시게 해.”

연락을 받은 최선희의 할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호자 대기실을 나오고 있었다. 박경일 과장을 비롯해 김지훈까지 보이자 돌처럼 몸이 굳었다.

“할머니.”

박경일 과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최선희의 곁을 지켰던 김지훈만 보았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작고 야윈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할머니의 몸을 안은 김지훈이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할머니가 눈을 떴다.

멍한 눈으로 김지훈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선생님, 내 새끼 고생 많이 안 했죠?”

“예, 할머니.”

“좋은 곳에 갔겠죠?”

“예, 할머니.”

“미안한데, 나 부축 좀 해 줘요. 내 새끼 얼굴은 봐야지.”

눈가가 벌게진 할머니를 부축하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지 멍한 얼굴로 최선희의 얼굴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할머니가 조용히 일어났다.

“내 새끼, 조금만 기다려. 할미가 곧 가마. 저세상에서는 편히 웃으며 행복하게 살자꾸나.”

중환자실을 나온 할머니가 김지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제야 통곡을 했다. 김지훈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간호사들이 억장이 무너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하얀 천으로 최선희의 몸을 덮었다. 숱한 죽음을 보아 온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눈가도 붉어졌다.

이렇게 가기에는 너무 어렸다.

김지훈은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에 좀처럼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 새벽이 돼서야 간신히 해야 할 일은 끝마쳤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리만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간 많은 죽음을 보아 왔지만 이번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 서울 응급실에서 첫 환자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박경일 과장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 하루 종일 허둥대는 김지훈을 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유석재가 오더를 내다 말고 가만히 김지훈을 보며 말했다.

“지훈아, 다음 주 휴가인 건 알지? 사흘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참고 휴가 가서 푹 쉬고 와.”

휴가! 1년 만에 맞는 휴가였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이었다. 간간이 휴가 생각이 났지만 최선희를 앞에 두고 휴가를 챙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을 잊고 푹 쉬고 싶었다.

‘그래,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잖아. 이런 마음으로는 다른 환자들에게까지 문제를 만들겠어. 다 잊고, 푹 쉬다 오자.’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웃었다.

며칠 만에 보는 웃음에 유석재도 함께 웃었다.

“예.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원래 가는 휴간데 챙겨 주기는. 휴가 때 뭐 할 거야?”

물끄러미 차트를 보던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계획이 없네요.”

“그럼 빨리 짜. 1년에 한 번이다. 병원 일 때문에 그 시간을 못 즐기면 스트레스 받아서 의사 생활 못해. 깨끗이 머리부터 비워.”

환자의 죽음을 빨리 잊으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야 했다. 유석재의 말처럼 지난 일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으로 환자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일과를 모두 마친 김지훈이 커피 한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무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시원한 물가가 생각났다.

‘바다를 갈까. 그나저나 누구랑 가지? 시간을 내서라도 경아 씨에게 전화를 해 볼걸. 혹시 시간이 있으려나?’

한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김지훈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는 별을 보았다. 문득 최선희가 다시 생각났다.

최선희의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한 사람의 죽음을 쉽게 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환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의사들을 믿고 자신의 목숨을 맡길 것이다.

최선희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이 정말 단 1프로도 없었을까?

김지훈의 고민이 깊어졌다.

‘처음에 암을 제거했다면 혹시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워낙 상태가 안 좋았고, 너무 늦게 와 그러긴 힘들었겠지.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다시는, 다시는!’

불가능한 수술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실력이 모자라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결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론은 책을 통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수술은 가르쳐 줄 스승과 경험이 모두 있어야만 했다.

자신의 손으로는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수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갑자기 가슴에서 배워야 한다는 열망이 들끓었다.

‘휴가? 내년에 가자. 단 일주일이라도 더 배울 수 있다면 이깟 휴가쯤은 포기할 수 있어.’

휴가를 포기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단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지훈은 부리나케 원무과로 달려갔다. 주저하고 망설이다가는 휴가의 달콤함에 마음을 빼앗길지 몰랐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괜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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