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좌절? 안타까움? (3)
검사 결과가 나왔다.
백혈구 수치가 20,000이 넘었다. 염증이 굉장히 심하다는 의미였지만 김지훈은 도리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상의 3배가 넘긴 해도 아직 환자의 면역력이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원인만 제거하면 당장은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대장암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가능성이 없겠지?’
김지훈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김진호가 윤서연과 함께 있었다.
“환자 상태는?”
“내원 당시와 비슷합니다. 소변량은 유지되는데 혈압은 아직도 90에 60 정도로 낮습니다.”
“올라오는 동안 바이탈 최대한 잡아.”
“예, 선생님.”
그때 최철한이 응급실로 내려와 검사 결과와 사진을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곧 박경일 과장에게 연락을 한 후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할머니, 지금 대장이 막혀서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환자분의 상태가 안 좋아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할머니가 잘 알아듣지를 못했다.
“혹시 친척분들은 안 계신가요?”
“없어요. 우리 단둘이라니까.”
최철한이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령의 보호자에게 환자가 수술 중 사망할 수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 수술 중에 환자가 사망할 수 있어요. 그거 알고 수술에 동의하셔야 합니다.”
막 응급실로 다시 내려온 김지훈이 착잡한 표정으로 최철한의 옆에 섰다. 몇 번이나 큰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할머니가 말을 알아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해서 어쩌나. 부모 죽고 나 먹여 살린다고 학교 졸업하자마자 일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늙은 날 먼저 데려가야지. 저렇게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몹쓸 병에 걸려.”
할머니가 주저앉아 바닥을 치며 울었다.
최철한이 보호자 동의를 받으라는 눈짓을 하고는 유석재와 함께 수술실로 올라갔다.
입술을 꽉 깨문 김지훈이 할머니를 달래며 억지로 일으켰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탓인지 일어서지를 못했다.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수술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 지금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손녀분이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힘드시더라도 우릴 믿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수술만 하면 우리 손녀 살 수 있나?”
할머니의 절박한 눈을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의사를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녀가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은 결코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최악의 경우를 반드시 알려야 했다.
과실이 없다고 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의료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다못해 아뻬 수술이라고 해도 사망을 언급해야 했다. 수술에 문제가 없어도 마취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 해도 설명하지 않았으면 책임을 져야 했다. 누구도 사고가 나는 것을 바라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하기 힘든 말을 다시 해야 했다.
희망적인 말보다는 사망과 위험에 대해서 강조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고, 보호자는 이를 알아야 했다.
수술 중 사망! 수술 후 사망! 패혈증!
손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할머니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눈물범벅이 된 할머니가 김지훈의 손을 꼭 잡으며 동의서에 지장을 찍었다.
혈압이 낮아 마취부터 쉽지 않았다.
수액을 최대한 투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혈압 상승제까지 썼다. 간신히 혈압을 올린 후 마취가 시작됐다.
“윤서연, 소변 잘 나와?”
“예. 잘 나와요, 선생님.”
“수술 시작되면 바로 비지에이 내보내고, 소변량은 10분마다 체크해.”
김진호와 윤서연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간신히 마취가 이루어지고 곧 수술이 시작됐다.
상황이 심각해 인턴은 들어오지도 못했다.
박경일 과장이 집도를 하고, 최철한이 퍼스트를 섰다.
복벽이 열리자마자 부풀대로 부푼 대장이 배 밖으로 삐져나왔다. 예상대로 대장 벽이 종이처럼 얇아져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찢어질 것 같았다.
“대장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 가스하고 내용물부터 제거할 거니까, 석션 준비해. 새어 나온 변이 주변에 묻지 않도록 주의하고.”
대장에 1센티미터 정도 칼집을 냈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가스가 확 퍼졌다.
최철한이 재빨리 칼집 사이로 석션기를 집어넣었다.
대장에 찼던 가스와 내용물이 끊임없이 빨려 나왔다.
갈수록 고약한 냄새가 더 심해졌고, 물처럼 변한 변이 석션통을 가득 채웠다. 엄청난 양의 가스와 내용물을 제거했지만 아직도 대장은 부풀어 있었다.
20분이 넘도록 석션을 하고 나서야 배 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쭈글쭈글해진 대장을 한편으로 밀며 매스(mass:덩어리)가 있는 부위로 의심되는 S 결장을 찾았다.
상행 결장에 이어 평행 결장을 확인했다.
대장 주행 방향을 따라 하행 결장을 확인하는 순간 모두 얼어붙었다. 자유롭게 움직여야 할 S 자 모양의 S 결장이 한 덩어리가 된 채 주변 조직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박경일 과장이 조심스럽게 덩어리로 변한 S 결장과 주변을 만졌다.
“속에 매스(mass)가 있어. 여기서 막힌 거야.”
“과장님, 캔서(cancer:암)일 가능성이 높죠.”
“이런 상황을 암 말고 뭐가 만들 수 있겠어? 19살인데 이게 무슨 일이냐. 일찍이라도 오지.”
박경일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S 결장에 발생한 암 덩어리가 주변 조직을 직접적으로 침범한 것이다. 대장에 영양을 공급하는 임파선들이 콩알처럼 커져 있었다. 임파선 전이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김지훈도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19살인데 대장암이라니. 휴우! 이 정도면 3기까지 진행됐다는 말인데, 예후가 너무 안 좋은 경우잖아. 미치겠네.’
일단 배는 열었고, 암 덩어리가 대장을 꽉 막은 상태였다.
최선의 수술 방법은 암을 포함한 장을 절제하고 인공 항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장이 시작 부분부터 너무 크게 늘어나고 약해져 남은 대장과 이어 준다고 해도 붙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일단 잘라 보자.”
박경일 과장이 돌덩이처럼 변한 덩어리를 보며 제거를 시도했다. 암을 포함해 S 결장을 제거하려면 대장과 주변 조직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대장끼리 서로 딱 달라붙어 환부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염증이 심해 조금만 건드려도 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패혈증으로 인해 잘 멈추지도 않았다. 계속 지혈을 하며 접근했지만 시간만 흐를 뿐 진척이 없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암을 제거하려던 박경일 과장이 갑자기 손을 멈췄다. 최철한이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압박을 가했다.
“후우! 동맥하고도 붙었네.”
“과장님, 이 이상 진행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박경일 과장이 김진호를 보았다.
“김진호 선생님, 바이탈은 어때요?”
“간신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 한 시간 이상 마취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암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나 더 걸릴지 몰랐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마취는 한 시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고, 환자에게는 이미 패혈증까지 발생했다. 무리하게 시도한다면 외과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Table Death(수술 중 사망)!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한 판단이 필요했다.
박경일 과장이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인공 항문 만들고 끝내자.”
수술 기구를 잡고 있는 김지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colostomy(콜로스토미:인공 항문 형성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이었다.
암 덩어리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배를 닫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변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게 해야 패혈증을 막고 2차 수술이라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기약이 없었다. 지금 환자의 상태로는 화학(항암) 치료를 버틸 수가 없었다.
암 덩어리의 크기를 줄여 수술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서는 방사선 치료까지 필요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환자는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까?
김지훈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과장님, 나중에라도 제거할 방법이 있습니까?”
박경일 과장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방사선 치료를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전에 환자부터 살려야 해. 패혈증에서 벗어나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으면 방사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지. 다른 방법은 없어. 철한아, 시작하자.”
김지훈은 답답한 표정만 지었다.
인공 항문은 소장에서 먼 부위에 하는 것이 좋았다.
최소한 평행 결장 부위에 만들어야 했지만, 장벽이 너무 약해져 불가능했다. 결국 상행 결장이 시작되는 부위를 이용해야 했다.
우하 복부에 새로운 절개 창을 만들었다. 그 부위로 상행 결장을 끄집어낸 후 대장 벽을 일부 절개했다. 대장과 피부를 봉합해 연결하는 것으로 수술이 끝났다.
무거운 공기만이 흘렀다.
그 와중에도 인공 항문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던 김지훈이 한숨을 쉬었다. 왠지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탓이었다.
김지훈은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삐! 삐! 삐! 삐!
바이탈을 체크하는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하지만 심장만 제대로 뛸 뿐 최선희의 전신 상태가 좋지 않아 아직 기도에 삽입한 관을 빼지도 못했다.
수술과 마취에서 회복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패혈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세 종류의 항생제를 투입하고, 바이탈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혈압이 떨어지면 투여되는 수액량을 늘리고, 그래도 부족하면 혈압 상승제까지 썼다. 반면 소변이 안 나오면 혈압을 떨어뜨리는 이뇨제를 써야 했다.
수시로 내과 과장을 찾아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필요한 치료를 추가로 시행했다. 최선희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지만 김지훈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환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모든 일과는 전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최선희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인공호흡기까지 달았다. 최대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그만큼 의사들의 손이 절실했다.
낮에는 최철한까지 나서서 시간이 나는 대로 신경을 썼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유석재가 휴가를 간 것이 너무 아쉬웠다. 특히 환자에게 가장 취약한 시간인 밤이 문제였다.
김지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중환자실 킵(keep)이 시작됐다.
문득 인턴 때 흉부외과를 돌며 만났던 은비 생각이 났다.
물에 빠져 생명이 경각에 달렸었지만 기적처럼 건강하게 걸어 나갔다. 아니, 기적이 아니었다. 사람의 놀라운 생명력과 의사의 노력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김지훈은 그렇게 확신했다.
‘분명히 패혈증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음 치료는 둘째 치고 일단 살려야 한다.’
날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경고음만 울리면 환자를 살폈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했다. 필요하다면 밤중에도 과장들에게 전화를 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최선희의 의식은 여전히 흐렸고, 바이탈조차 안정되지 않았다.
패혈증의 사망률은 최소한 40프로였다.
배 속에는 암 덩어리가 그대로 있었고, 인공 항문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체된 장 내용물은 끊임없이 최선희의 몸속으로 세균과 독소를 뿌려 대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환자를 놓칠까 봐 초조하기만 했다.
‘암을 제거하지 못한 게 원인일까? 만일 수술실에서 암을 제거했다면 지금쯤이면 돌아왔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최선희의 할머니를 볼 때마다 미안하기만 했다.
“선희야, 할미 왔어. 눈 좀 떠 봐. 선생님, 우리 새끼 좀 꼭 살려 주세요. 이대로 가기에는 너무 불쌍해서 안 됩니다. 선생님, 우리 불쌍한 새끼 좀.”
눈물을 흘리며 행여 도움이라도 될까 쉬지 않고 손과 발을 주무르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