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51화 (151/1,329)

제3화 기쁨 (2)

잠시 후, 다음 환자가 올라왔다.

젊고 말라 1년차들에 주는 첫 수술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김지훈이 환자를 옮기며 중얼거렸다.

방금 전 수술 때문에 더욱 정신을 집중해 수술 계획과 과정을 그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맹장을 잘랐다. 아뻬도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박경일 과장과 유석재가 이미 손을 닦고 있었다. 부랴부랴 수술대에 환자를 옮기고 손을 소독하던 김지훈이 입을 내밀었다. 박경일 과장과 유석재가 들어오니 퍼스트는 물 건너갔다.

‘금식 시간만 아니었으면 연달아 퍼스트를 서는 건데 아깝다. 그래도 대장 봉합에서 퍼스트를 선 게 어디야. 역시 난 필드 체질이야. 운때까지도 필드가 딱 맞네.’

나름 즐거운 기분에 씨익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간 김지훈이 멈칫했다. 박경일 과장이 퍼스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유석재가?

어라? 세컨드 자리에 서서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김지훈, 빨리빨리 움직여.”

“예, 과장님.”

재빨리 수술 가운을 입고 박경일 과장을 보았다.

‘정말 수술을 주시는 걸까?’

박경일 과장이 손가락으로 집도의 자리를 가리켰다.

정말 기대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순간 엄청난 감동과 흥분이 몰려왔다.

여러 번 했던 수술이었지만 음성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정식 트레이닝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첫 수술을 받는 것이다. 어쩌면 동기들 중 신현수 다음으로 수술을 받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열심히 했고, 인정도 받았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긴장감도 상당했다. 마음속의 멘토인 이혁민 교수까지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시작해.”

“김진호 선생님,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진호의 여유로운 눈빛과 목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유일하게 음성 생활을 아는 선배 의사였다.

하던 대로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해졌다.

‘배운 대로만 하자. 트레이닝이 불가능하다고 한 음성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보여 줄 때야.’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환자의 우하 복부를 평행으로 3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어? 첫 수술인데 고작 이 정도 열고 하겠다는 거야?’

1년차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절개 창을 크게 넣었다. 그래야 수술을 하기 편하고 실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경일 과장이 입을 벙긋거리다 말고 고개를 흔들었다.

욕심을 내다 된통 고생해 보는 것 역시 배움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눈가를 좁히며 김지훈을 보았다.

이준영 과장에게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평범한 놈이라는 것처럼 별다른 칭찬도 하지 않았다. 고생이 심하고, 둘만 있다고 해서 수술을 줄 사람도 아니었다.

이준영 과장이 수술을 주게 된 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 상처를 극복했다면 도리어 수술을 함부로 줄 선생님이 아니다. 뭔가 있어. 신현수나 손일석도 김지훈만큼 열심히 하는 놈들인데 둘 중 하나를 대신 보냈다면 과연 이준영 선생님이 수술을 줬을까?’

수술은 일종의 도제 방식처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가르쳐 준 사람의 방식에 영향을 받게 된다. 물론 성격이나 수술에 임하는 자세에 따라 다르지만, 흔적은 남기 마련이었다.

김지훈이 수술하는 모습을 보면 이유를 알지도 몰랐다.

고작 3센티미터를 열었지만 김지훈은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다.

곧 배를 열고 맹장을 확인한 후 쥐꼬리처럼 달린 아뻬를 찾았다. 신중한 손길로 기구를 이용해 동맥을 분리해 낸 김지훈이 과감하게 동맥을 잡았다.

“타이 하겠습니다, 과장님.”

박경일 과장이 타이를 하자 김지훈이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한 후 동맥을 잘랐다. 퍼스트가 누구건 간에 집도의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첫 수술을 받은 1년차가 100프로 빼먹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라, 처음 하는 놈이 타이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까지 해? 정말 뜻밖이네.’

아뻬 시작 부분을 확인한 김지훈이 적당한 위치를 가늠한 후 기구로 입구를 잡았다. 김지훈의 손을 따라 기구에 달린 톱니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따르륵!

“타이 하겠습니다, 과장님.”

타이를 하는 박경일 과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좁은 시야에도 불구하고 경험도 없다는 김지훈의 손이 막히질 않았다. 과감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신중해야 할 때는 신중하게 수술을 해 나가고 있었다.

뛰어난 후배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도저히 처음 수술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설사 여러 번 했다고 해도 이렇게 깔끔한 솜씨를 보일 수도 없었다. 어느 면에서는 2년차인 유석재보다 더 잘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배를 닫을 때까지 꾹 참아야 했다.

드디어 아뻬를 제거하고 마무리에 들어갔다. 인턴 때부터 수처는 인정받았던 김지훈이었다.

쓱쓱쓱!

빠르게 복벽을 봉합하고 어느새 피부를 닫기 시작했다. 감염 방지에 충실하면서도 확실히 빨랐다. 김지훈이 마지막 피부 봉합을 끝냈다. 다들 너무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술실이 조용하기만 했다.

‘이건 1년차의 솜씨가 아니잖아. 게다가 석재에게 수술을 주었을 때보다 퍼스트를 서기가 더 편하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한 박경일 과장이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김지훈, 너 음성에서 수술해 봤지. 몇 번 해 본 놈 솜씨가 아닌데, 솔직히 말해 봐.”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하겠지?’

잠깐 난감한 기분이 들었던 김지훈이 있는 그대로 말하려는 순간 이혁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니 왜 이렇게 수술을 잘해? 내가 이준영 선생님을 조금은 안다. 니가 음성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 들었는데, 수술을 해 본 적이 없잖아. 퍼스트를 열심히 선 덕을 보는 거야?”

이준영 과장 때문에 이혁민 교수가 본의 아니게 또 거짓말을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실제로 이혁민 교수도 크게 놀란 기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의 수술 실력은 이혁민 교수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물론 중간중간 1년차가 보일 수밖에 없는 미숙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몇 번의 경험이 더해지면 쉽게 사라질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혁민 교수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주름이 잡힌 눈가에서 묘한 흥분까지 보였다.

수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타고난 재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손이 느린 의사는 아무리 수술을 많이 해도 끝까지 느린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그런 면에서 김지훈은 어느 정도 재능을 타고나긴 했다. 그러나 이혁민 교수는 재능이 아니라 수술하는 손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이준영 과장이 왜 수술을 주었는지 알았다.

‘이준영 선생님! 수술을 주신 이유가 바로 이거였습니까? 김지훈에게서 선생님의 모습을 본 겁니까?’

함께 수련을 받으며 이준영 과장이 수술하는 모습을 숱하게 보아 왔다. 자신이 섬세하고 부드럽게 수술을 한다면, 이준영 과장은 과감하면서도 완급을 조절할 줄 알았다.

각자의 특성이고, 미묘한 차이였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다.

느린 것 같으면서도 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술이 끝나 있어 꽤 놀라곤 했었다. 어떤 수술도 함께하다 보면 부담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준영 과장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당시 교수들도 최고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분명 타고난 재능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무척이나 부러워하며 항상 배우려 애를 썼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김지훈의 손에서 이준영 과장의 손을 본 것이다.

이혁민 교수가 내심 나직한 탄식을 터뜨렸다.

한때였지만 이준영 과장의 자신감은 전공의 때부터 끝이 없었다. 그것이 화근이 돼 결국 10년의 세월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수술을 하며 비슷한 모습을 보인 김지훈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자만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 제대로 키워야 할 인재를 본 것이다.

굳은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던 이혁민 교수가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주먹을 꽉 쥔 채 수술 후의 흥분을 꾹 참고 있었다. 1년차라면 당연히 보일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김지훈에게서 이준영 과장의 마음이 엿보였다.

‘정말 잘 가르쳐 주셨다.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씻은 것이 아니었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음성에 계셔서는 안 된다. 우리 과와 김지훈을 위해서라도 나오셔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금경태 과장의 전횡을 막을 수도 있어.’

드디어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한 발 한 발 전진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가슴이 조금은 뚫렸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한 이혁민 교수가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생각에 잠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차 싶었는지 안색을 바꾸며 김지훈에게 다시 물었다.

내심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도 알고 싶었다.

“김지훈, 왜 대답이 없어?”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만 말똥말똥 떴다. 대답을 하긴 해야 했다. 그런데 이혁민 교수가 잘못 알았거나 착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영 과장까지 언급을 했다.

‘이혁민 선생님이 이준영 선생님을 이미 알고 계셨네. 그럼 서로 연락을 하셨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계실 텐데, 왜 모르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지?’

사실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놈의 술이 원수였다. 입국식 때 분명히 들었건만, 하필이면 필름이 끊겨 기억을 하지 못한 것이다.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혁민 교수를 보았다.

그때 이상하게도 이혁민 교수의 눈빛에서 이준영 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입을 꾹 다물라고 했다. 성급한 생각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수술을 해 봤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김지훈이 입을 열었다.

“이준영 선생님께 배운 대로 했습니다.”

“어떻게 배웠는데?”

다들 궁금한지 일제히 귀를 기울였다. 김지훈이 의외일 정도로 수술을 잘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르쳐야 할 사람도, 배워야 할 사람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 전에 미리 여러 경우를 생각한 다음, 어떻게 수술을 할지 계획부터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획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전 과정을 머릿속으로 반복하라고 하셨는데, 그 덕에 쉽게 한 것 같습니다.”

박경일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쭉 그래 왔어?”

“예. 음성에서부터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의 위암하고 대장암 수술은 아니구요.”

“왜?”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이번에 암 수술을 처음 봤습니다. 수술 과정을 잘 모르는 데다, 솔직히 책도 다 읽지 못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암 수술을 본 것이 처음이라는 말에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중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었지만, 미안한 일이었다. 특히 이혁민 교수로서는 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최철한이 슬쩍 박경일 과장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럼 너 바로 전에 한 수술에서는 어떤 생각을 한 거야?”

“아뻬는 자주 봐서, 터진 경우와 농양이 생겼을 때까지의 수술 방법을 머릿속으로 그려 봤습니다.”

“대장 봉합은?”

김지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복막염 수술을 볼 때 나름대로 생각을 해 봤고, 겸사겸사 책을 찾아보긴 했습니다.”

다들 묘한 소리를 냈다.

무작정 보고 경함하는 것과 미리 준비하는 것은 큰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100일 당직이 연장됐다. 그 힘든 와중에도 수술 전에 항상 나름의 준비를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박경일 과장이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그렇게까지 하다니, 힘들지도 않아?”

김지훈이 머리만 긁었다. 습관적으로 해 온 일일 뿐이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어색해지자 이혁민 교수가 박수를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박 과장, 이러면 김지훈이 집도식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해야죠, 선생님.”

“나도 끼워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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