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학회는 못 가도 (1)
아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고 들어가려던 찰나,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윤서연이 빤히 보고 있었다.
“지훈아, 누구랑 통화했어?”
“으응, 친구랑.”
말꼬리를 흐리는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 윤서연이 커피 한잔하자고 했다. 묘하게도 고경아랑 통화를 한 직후라는 사실이 김지훈의 발목을 잡았다.
캔 커피를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다.
음성의 일부터 시작해서, 궁금한 것투성이인지 윤서연이 입을 멈추지 않았다. 나름 성의 있게 대답하던 김지훈이 내심 한숨을 쉬었다.
‘훈철이 형, 이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양다리 아닌가요?’
시간이 더 흘러 수습 불가가 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1년차로서 해야 할 일도 벅차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했다. 특히 여자 문제는 더욱 난감한 일이었다.
“서연아, 미안하다. 환자 때문에 올라가 봐야겠어. 나중에 오프 받으면 밥 한번 같이 먹자.”
입원 환자를 봐야 한다며 병동으로 올라가는 김지훈을 보던 윤서연도 한숨만 내쉬었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윤서연이 해바라기처럼 한 사람만 보고 있었다.
‘오프 받으면 밥이나 먹자고? 좋지. 하지만 평일에는 오프를 받아도 10시가 넘을 텐데, 언제 먹어? 박경일 과장님이 주말 오프는 주실까?’
설혹 누군가에게 끌린다고 해도 연애할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이 외과 1년차였다. 하필이면 윤서연은 그런 외과 1년차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병동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고 책을 펼쳤다.
다음 주에 아주 중요한 수술이 2개 있었다.
Stomac or Gastric cancer(위암).
Colon cancer(대장암).
암은 의사들에게 보람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안기는 질환이었다. 일반 외과에서도 가장 큰 수술 중 하나로 고도의 기술을 요했다. 따라서 기본 병태 생리부터 수술 방법까지 반드시 숙지해야 했다.
더구나 구미는 대구에 있는 큰 병원에 밀려 암 수술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수요일과 목요일에 위암과 대장암 수술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김지훈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전공의가 된 이후 처음으로 암 수술에 들어가는 것이다.
‘인턴 때도 서울에서 외과를 돌면서 일주일에 서너 개씩 암 수술에 들어갔는데 전공의가 돼서는 처음이네. 기가 찬다. 후우! 하긴, 동기들하고 똑같이 돌았으면 수술은 해 보기는커녕 퍼스트도 제대로 서지 못했겠지.’
한 발을 내밀면 다른 발은 뒤처지는 것이 세상일이었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책에 집중했다.
암 수술인 만큼 분명 케이스 발표를 하게 될 것이다.
수술이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데다 본 적도 별로 없어 수술 전 나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소한 수술 과정은 알아 두어야 하나라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피곤 때문에 아주 재밌을 일을 해도 졸릴 판이었다.
손가락으로 줄을 그어 가며 책을 읽던 김지훈이 채 한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눈을 껌벅거렸다. 알파벳이 춤을 추고 있었다.
허벅지를 꼬집고 찬물에 세수를 해도 책만 보면 졸음이 몰려왔다. 마침 응급실에서 연락이 와 환자를 보면서 조금은 잠이 깼다. 김지훈이 투덜거렸다.
“으휴! 아무리 필드 체질이라고 해도 이러면 안 되지. 최소한 리포트 작성은 미리 해 놔야 다음 주를 또 넘길 거 아니냐. 양도 많은데 죽겠네.”
게다가 환자도 장간막 임파선염이 의심됐다. 아뻬와 혼동하기 쉬운 질환이어서 인턴들로서는 아뻬를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만 한숨만 나왔다. 인턴 때문이 아니었다.
노티를 받고 내려온 주말 당직인 최철한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100일 당직이 연장되는 바람에 일반 외과 환자가 아니어도 내려와야 하는 탓이었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서로를 보다 각자 갈 길을 갔다.
다시 병동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필사적으로 책과 씨름을 하다 결국 성질을 내며 열 몇 장을 한꺼번에 넘겼다. 역시 기초 생리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그나마 수술 과정을 읽으면서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졌다.
변함없이 힘든 한 주가 지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됐다.
월요일 오후 회진이 끝나고 지친 기색으로 박경일 과장이 내려가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활짝 웃고 말았다. 최소한 티는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소리까지 입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
“김지훈, 이번 주 금, 토, 일이 학회라는데 왜 웃어? 일이 없는 게 그렇게 좋아?”
“아닙니다, 과장님.”
“이거 참! 철한아, 석재야, 금요일은 그냥 정상 근무할까?”
“우리야 뭐, 상관없습니다, 과장님.”
최철한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일반 외과 춘계 학회!
전국에 산재한 일반 외과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였다. 매년 5월에 주로 서울에서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다소 늦은 시기에 경주에서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됐다.
그간 서울 병원이 미리 참가 준비를 하고, 천안과 구미 교수들은 행사 당일에 올라갔다. 하지만 올해는 경주에서 열리는 까닭에 구미가 모든 준비를 해야 했다. 그 탓에 금요일은 정규 수술까지 잡지 않은 것이다.
김지훈으로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기회였다.
그야말로 월, 화, 수, 목, 일, 일, 일이라는 천금 같은 주가 되는 것이다. 정말 웬만큼 피곤하지 않았으면 환호성까지 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박경일 과장의 매서운 눈초리에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바닥만 바라보았다.
“자식이, 100일 당직 좀 연장했다고 꾀만 부릴 생각을 하네. 금요일쯤 케이스가 있으면 수술을 주려고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윽! 이럴 수가. 설마 아니시겠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김지훈에겐 비수였다.
씨익 웃음을 던진 박경일 과장이 헛기침을 했다.
“학회는 나하고 석재가 참석하고, 철한이는 당직 서. 외래로 오는 환자들에게 말 잘하고.”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
당직을 서라는 말에 최철한이 도리어 좋아했다. 감당할 수 있는 응급 수술이 뜨면 노티만 하고 직접 수술을 할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김지훈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입이 더 벌어졌다.
2박 3일간 퍼스트를 설 기회가 온 것이다.
‘제발 주중에는 오지 말고 그때 많이 와라. 최철한 선생님하고 신나게 수술해 보자. 파이팅!’
웬일인지 피곤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어떤 희망이든 그래서 좋은 모양이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목요일에 예정됐던 대장암 환자 수술 수요일에 하자. 금요일부터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목요일에 하긴 좀 찜찜해. 그리고 내일 케이스 리포트는 위암이다.”
최철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큰 수술은 응급이기 전에는 휴일 전날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할 인력이 부족하면 그처럼 큰일도 없었다.
박경일 과장이 내려가자 유석재가 김지훈을 툭 쳤다.
“말씀 들었지? 스케줄 미리 챙기고, 리포트 작성 확실히 해. 목요일 리포트는 대장암이 확실하니까 시간 될 때 미리 책 좀 읽고.”
“예, 선생님.”
갑자기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언제 다 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좀 더 해 놓을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었다.
당연히 화요일 리포트 발표를 하며 사정없이 탔다. 준비해야 할 분량이 워낙 많은 데다 수술을 제대로 본 적도 없어 질문에 거의 답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1년차들이 알 만한 건 하나도 묻지 않았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발표를 끝낸 김지훈이 수술실로 향하다 말고 갑자기 씨익 웃었다. 인턴 때 암 수술에 들어가는 것과 지금은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아직 하루가 남았지만 기대감으로 가슴까지 부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첫 번째 암 수술에 들어갔다.
김지훈이 기를 쓰고 수술을 보려 애썼다. 하지만 세컨드 어시스트의 비애만 절실하게 확인했다. 수술이 크고 중요하기에 시야 확보가 정말 중요했다.
당연히 세컨드와 써드는 본연의 임무인 끌개에 전념해야 했다. 머리를 내밀며 수술을 보려할 때마다 박경일 과장이 소리를 질렀다.
“김지훈, 똑바로 끌어. 머리 치우고. 방해돼.”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무려 9시간이 넘게 걸려 2개의 수술이 끝났다. 점심도 못 먹고 수술에 참여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수술 후 더욱 긴장해야 했다.
암 수술 후 오더는 물론 수술 기록 작성까지 모든 것이 처음인 까닭이었다.
‘수술은 제대로 못 봤지만, 오더라도 확실하게 알자.’
김지훈에게 수술 후 오더를 불러 주던 유석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것 아닌 것까지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지훈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 너 오늘은 정말 시간 없다. 과장님이 내일 케이스 발표로 준 대장암은 언제 준비하려고 그래? 분량이 적지 않잖아.”
김지훈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두 수술 모두 처음이었기에 보다 정확하게 배워야 했다.
“선생님, 제가 암 수술에 들어간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서울에서 가져온 기록을 봐도 되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 직접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처음이었어?”
유석재가 입가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3개월이면 서울이나 천안은 말할 것도 없고, 구미에서도 암 수술을 제법 많이 볼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처음 본다니 할 말이 없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이혁민 선생님이 이런 문제를 간과하실 분이 아닌데 왜 금경태 과장님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으셨을까?’
누구나 불평하고 실망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지훈은 이마에 주름살까지 만들며 환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왠지 마음이 짠해진 유석재가 김지훈이 궁금해하는 것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했다.
“오더는 내가 말한 대로 내면 되고, 어떤 환자든 수술 후 첫날이 가장 중요하잖아. 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부위가 크니까 더 신경을 써야 해. 오늘 밤 잘 봐라.”
그날 밤, 김지훈은 보호자가 놀랄 정도로 환자에게 신경을 썼다. 수시로 환자를 살피며 드레싱을 확인하고 바이탈은 물론 소변량까지도 일일이 체크했다.
덕분에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리포트 작성을 끝냈다.
‘아우! 졸려 죽겠다. 숙소에서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곰곰이 고민하던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5시 반에 깨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의국 내 탁자 위에 누웠다. 두꺼운 통유리의 차가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새벽이 되면 유리가 전하는 찬 기운에 눈을 뜨기 쉬울 것이다.
이른 아침, 간호사의 목소리에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등짝이 얼음처럼 차가워 온몸이 더 뻐근했다.
그래도 늦지 않게 일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는 리포트 때문에 박경일 과장에게 타고, 저녁에는 수술 기록지 때문에 최철한에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혼이 났다.
“다시 써. 이게 뭐야? 글자 그대로 베끼는 게 수술 기록이야? 이 환자 S 결장을 수술했는데 평행 결장이 왜 나와?”
어이없는 일이었다. 비몽사몽간에 서울에서 가져온 수술 기록지를 참조하다 중간에 엉뚱한 부위를 적은 것이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하루 종일 신나게 깨지고 늦은 저녁을 먹으로 갔다.
구미든 어디든 좋은 점 중 하나가 외부 식사를 자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 때문에 정규 일과가 끝나고 나면 때를 놓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병원 앞 김치찌개집에서 밥을 먹었다.
김지훈이 밥을 먹다 말고 머리를 긁적였다.
‘하루 종일 혼났는데 이놈의 밥은 왜 이렇게 맛있냐. 배 속에 밥벌레가 들었나?’
이럴 때는 눈치도 좀 봐야 하는데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최철한이 피식 웃으며 자신 앞에 있던 계란 프라이를 김지훈의 밥공기 위에 얹었다.
“많이 먹어.”
최철한이 왜 모를까?
가장 긴장하는 100일 당직 중에도 무수하게 실수를 하는 것이 1년차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수하거나 틀렸을 때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었다. 김지훈이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씨펄! 난 혼나도 싸.’
갑자기 얼마 전에 먹었던 삼겹살과 탕수육이 생각났다.
선배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