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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42화 (142/1,329)

제10화 스승과 제자란 무엇일까? (2)

복부 통증이 심했고, 촉진을 할 때마다 잔뜩 힘을 주어 배가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졌다. 흉부 사진상 프리 에어는 보이지 않았지만, 복막염을 시사하는 강력한 징후였다.

소장이 파열된 경우 빠져나오는 공기가 극히 적어 프리 에어가 뜨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런 환자에게는 다친 경위와 진찰 소견 및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

보호자에게 복막염의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했다.

“일단 과장님께서 다시 한 번 보셔야 하고, 복부 CT까지 나오면 확실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복막염이면 준비가 되는 대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지만, 9시나 돼야 수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이 다른 손상을 입었거나 혈압이 불안정해지면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준비는 하겠습니다.”

이것저것 궁금한 사항에 대해 설명을 들은 보호자가 동의를 했다. 인턴들이 필요한 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도진아, 니들은 다음 주에 끝나지?”

“예. 우리도 다음 텀이 구미인 건 아시죠?”

“저번에 말했잖아, 인마. 과장님들 힘드시지 않게 인수인계 철저히 해.”

서도진의 어깨를 툭 친 김지훈이 병동으로 올라갔다.

여느 때와 똑같은 일과였지만 드레싱과 회진을 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어졌다. 환자들에게 일일이 떠난다는 인사를 하고, 혹시 몰라 주의할 점을 설명했다.

병동 간호사들에게도 미리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들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준영 과장이 올라왔다.

별다른 기색은 없었고, 회진 후 응급실의 환자를 노티 하자 평소와 똑같이 반응했다. 뚜벅뚜벅 응급실로 가 환자를 보고 보호자에게 설명을 한 후 한마디만 던졌다.

“수술 준비해.”

그게 도리어 어제 식사 자리에서 보았던 모습과 겹치며 김지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신나서 수술실에 들어갔을 김지훈이 답답한 표정만 지었다.

‘과장님과의 마지막 수술이네. 후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답답해 죽겠네.’

수술실에 들어온 이준영 과장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김지훈에게 물었다.

“김지훈, 이제 아뻬 정도는 쉽게 할 수 있겠지?”

김지훈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럴 수 있을까?

몇 번을 생각해도 아니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과장님.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수술인 것 같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실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자만하지 말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똑같은 수술은 없었다. 환자에 따라서, 또는 아뻬의 진행 정도에 따라 주의해야 할 것이 달랐고, 그만큼 어려웠다.

이준영 과장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다 못해 눈빛까지 부드러워졌다. 김지훈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3개월간 이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어떻게 수술을 할지 물었다.

마지막 날이었지만 김지훈은 결코 태만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대답을 했다.

‘어? 마지막 날이라 복막염 수술인데도 안 태우시는 건가? 아까부터 왜 이렇게 부드러우시지.’

응급실이 바쁜지 오늘따라 환자가 늦게 올라왔다.

시간이 남자 이준영 과장이 갑자기 아뻬와 탈장 수술에 관한 것까지 묻기 시작했다. 수술 방법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칙과 주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

마치 그간 배운 것을 총 정리하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자칫 놓칠 뻔한 기억들을 되살리며 이준영 과장과 주고받은 말들을 뇌리에 깊숙이 박았다.

‘끝까지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과장님.’

거의 질문과 대답이 끝났을 때쯤 환자가 올라왔다.

이준영 과장이 수술 준비를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온 안호석에게 조용히 뭔가를 설명했다. 수술대에 환자를 옮긴 김지훈이 손을 씻으러 나가자 이준영 과장이 이미 손을 소독하고 있었다.

미리 수술 준비를 해야 하는 까닭에 김지훈의 마음이 급해졌다. 손 소독은 5분 이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먼저 비누로 팔꿈치까지 깨끗이 씻은 후, 소독 용액을 묻힌 솔로 박박 닦는 시간만 5분이었다.

시계를 보며 열심히 손을 소독한 김지훈이 부랴부랴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막 수술 가운을 입은 이준영 과장이 퍼스트 자리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어시스트를 서야 할 안호석이 들어오지 않았다.

김지훈이 수술 가운을 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마취를 진행하던 김진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해? 빨리 입고 시작하자.”

무뚝뚝한 목소리로 재촉한 이준영 과장이 가슴 앞에 손을 모으고 김지훈을 기다렸다.

‘이제 1년차를 시작했지만, 결코 자만할 놈이 아니라는 것을 난 확신한다. 김지훈, 넌 이런 수술을 할 자격이 있어. 솔직히 그럴 능력도 어느 정도는 갖췄다. 내가 네게 마지막으로 가르칠 것은 자신감이야. 해 봐, 넌 할 수 있어.’

눈을 마주친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이 환자 앞에 섰다. 마이너 수술이 아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환자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점점 마음이 차분해졌다.

‘긴장하지 말고, 배운 대로만 하자.’

“감사합니다, 과장님.”

처음으로 이준영 과장과 수술 준비를 함께 시작했다.

환자의 복부를 소독하고 깨끗한 천으로 온몸을 덮었다.

김진호의 사인과 함께 수술이 시작됐다.

규칙적인 모니터 소리와 인공호흡기가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만 들렸다.

어시스트는 2명으로 충분하다는 것처럼, 이준영 과장이 퍼스트와 세컨드가 할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태도까지 변했다.

“그렇지. 장을 봉합할 때는 반드시 점막을 확인하고 놓치지 말아야 해. 장막(장의 가장 바깥쪽 조직)을 봉합할 때는 살짝 겉만 뜬다는 느낌으로 하면 돼.”

피부를 열 때부터 시작해 장을 봉합하고 다시 복벽을 닫을 때까지 모든 과정을 일일이 설명했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김지훈이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집중하자. 지금 말씀하시는 것들은 모두 기억해야 해.’

이준영 과장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수술이 끝났다. 이제야 김지훈이 크게 숨을 쉬었다.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과 함께 직접 환자를 이동 침대에 옮겼다. 회복실까지 와 김지훈이 오더를 내는 것을 보며 환자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네가 수술했으니까 보호자에게도 설명해.”

김지훈이 설명하는 동안에도 이준영 과장이 함께했다.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나고 단둘이 남았다.

“김지훈, 너 차 없지?”

“예.”

“여기서는 직접 가는 버스가 없으니까 청주까지 데려다주마. 일 마치고 1시까지 주차장으로 와.”

“아닙니다, 과장님. 괜찮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대답도 하지 않고 외래로 내려갔다.

멍하니 뒷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1년차 주제에 아뻬와 탈장도 부족해 복막염 수술까지 했다.

마지막 수술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타지 않았다.

신이 나 펄쩍펄쩍 뛰어야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이준영 과장의 마음이 가슴속 깊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제게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나직한 숨을 내쉰 김지훈이 떠날 준비를 했다.

빼놓은 일이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환자들에 대한 오더도 월요일 것까지 미리 다 냈다.

숙소에서 짐을 챙긴 후, 병동 간호사들과 인사를 했다.

수술실에 들러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전했다.

인사할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원장은 물론 내과 과장과 최치수 과장에게 들른 후 응급실 간호사들과 작별을 고했다.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본 얼굴들이었다. 몇몇 간호사들은 눈가를 붉히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이준영 과장의 방에 들렀다.

이미 1시가 다 돼 퇴근을 한 후였다.

김지훈이 진료실 탁자 위에 선물을 올려놓았다.

잠시 이준영 과장의 손때가 묻은 청진기를 보던 김지훈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준영 과장이 손짓을 했다.

마음은 무거운데 유난히도 날이 맑았다.

말없이 운전만 하던 이준영 과장이 입을 열었다.

“김지훈, 의사에게 가장 큰 적이 뭔 줄 알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항상 말했듯이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하는 거야. 자만하게 되면 환자는 우스워 보이고, 동료들도 무시하게 되지. 그러다 어떤 실수를 하는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환자를 죽여.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반드시 살려야 할 사람이 있어. 그런 환자를 놓치면 의사로서 살기 힘들어진다.”

의사와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김지훈 역시 불과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죽음을 보아 왔다. 생사의 경계에 선 사람은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을 수 있었다.

이미 몇 번 그런 경험을 했다.

“구미에서 그런 환자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위궤양에서 출혈을 한 환자였는데, 방심하다 놓칠 뻔했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의사라면, 특히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최악의 결과가 초래돼도 결국에는 극복해 낼 것이다. 하지만 자만으로 인한 결과는 결코 그런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법이었다.

“예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까불다가 한번 추락하기 시작하니까 정신을 못 차리더구나. 수술을 한 환자가 어이없게 죽었거든. 명색이 외과 의산데 수술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수술 후 환자가 죽었다니, 누구 얘길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귀를 기울였다.

“참 오랫동안 고생을 했는데, 결국 벗어나질 못하고 포기를 하더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자만의 대가야.”

“그분은 지금도 안 좋으신가요?”

“글쎄, 정말 운이 좋다면 다시 일어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법이야.”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의사가 된 이후로 환자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무엇인지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불가항력적이라고 해도 부담을 이기기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실수로 환자를 잃는다면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분에게 운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환자는 다시 살리지 못하겠지만,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나요? 그 대가를 충분히 치렀고, 자만을 버렸다면 만회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런 분이 환자에게 더 정성을 기울일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말을 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머리를 긁적였다.

보이지도 않는 대선배 앞에서 이제 막 전공의가 된 애송이 의사가 주제넘은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뭐가?”

“제가 이제 1년차라는 걸 깜빡했습니다.”

‘의사가 된 햇수는 중요하지 않아. 너랑 나랑 비교해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해. 그래서 내게도 그런 운이 찾아왔을지도 모르지.’

이준영 과장이 웃었다. 김지훈은 절대 자만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확신으로 변했다. 김지훈도 웃는 모습을 보며 혹시 이준영 과장의 과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분이 뭔가 사연이 있지 않고서는 10년 동안 음성에 계셨을 리가 없지. 내 생각이 맞다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후우! 말씀대로 자만하지 말자.’

어느새 청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표를 끊고 정류장으로 갈 때까지 이준영 과장이 함께했다.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했다.

“과장님,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휴가 받으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휴가 때 안 놀면 언제 놀려고. 전문의 되고 나서 시간 나면 놀러 와.”

구미행 버스가 왔다.

김지훈이 아쉬운 눈으로 인사를 하자 이준영 과장이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종이 가방을 건넸다.

“그동안 수고했다. 선물이야.”

“예? 과장님, 저 이런 거 안 주셔도 됩니다. 도리어 제가 드려야 하는데.”

“받아, 넌 받아도 돼. 구미 가서 푹 쉬고, 일 열심히 해.”

억지로 종이 가방을 건넨 이준영 과장이 힐끗 김지훈을 보고는 돌아섰다. 김지훈도 이준영 과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음성에 올 때는 이럴 줄 몰랐는데, 과장님 같은 분을 만나다니 난 정말 운이 좋은 놈이야.’

버스에 오른 김지훈이 종이 가방을 열었다.

딱 만년필이나 볼펜 케이스로 보이는 것이 2개가 들어 있었다. 기분 좋게 포장을 뜯은 김지훈이 환하게 웃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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