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40화 (140/1,329)

제9화 긴장과 흥분 (3)

어어어? 이게 무슨 일이지?

수술실 밖에서 함께 손을 소독한 이준영 과장이 수술 가운을 입고는 퍼스트 자리에 섰다.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무뚝뚝한 말 한 마디뿐이었다.

“수술해.”

마취를 하던 김진호 역시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기술적인 난이도 면에서는 비슷했지만, 아뻬와 탈장 수술은 기본적인 의미와 범주가 달랐다.

아뻬는 비정상으로 변한 조직을 떼어 내는 수술이다. 충수 돌기 자체가 우리 몸에는 필요 없는 장기였기에 비가역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비장 절제술 또한 이런 범주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비장을 보존하는 것이 훨씬 더 좋겠지만, 제거한다고 해도 몇몇 경우를 빼고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복원 수술은 달랐다.

궤양 천공의 경우 수술을 통해 정상적인 위를 만들어 주듯 탈장 역시 제거가 아니라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수술이었다.

물론 수술의 크고 작음이나 생명과의 직결 여부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난이도의 척도다. 하지만 기능을 회복시키는 수술은 조직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또 다른 의미의 난이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뻬와 탈장 수술은 술기의 난이도 자체는 비슷했지만, 1년차에게 탈장 수술을 주는 교수는 없었다.

김지훈도 이런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뻬와는 의미가 다른 수술인데, 정말 내가 해도 될까?’

수술을 해도 된다는 판단은 김지훈이 아니라 이준영 과장의 몫이었다. 솔직히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준영 과장과 눈을 마주친 채 잠시 망설이던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물고 집도의 자리에 섰다.

‘복벽 강화를 위해서는 탈장이 발생한 부위 주변에서 강한 근육과 근막을 찾아 2개를 하나처럼 단단히 묶어 주는 것이 핵심이다.’

수술을 하는 내내 수술의 목적과 핵심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항이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김진호 선생님,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세요.”

김진호가 목을 빼며 수술을 지켜보았다.

‘과장님이 지훈이를 얼마나 신뢰하시기에 탈장을 다 주시지? 후우! 내가 다 긴장되네. 잘할 수 있을까?’

수술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지훈이 12번 메스로 환자의 좌측 서혜부를 절개했다.

시작은 아뻬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핵심적인 수술 부위가 드러나자 김지훈의 손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 구조를 책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더구나 서혜부 쪽을 구성하는 근육들이 상당히 많았다. 해부학적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근육을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간신히 복벽을 강화하기 위해서 묶어 줘야 할 근육과 근막을 찾긴 했다. 하지만 서로 연결해야 할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머뭇거리자 이준영 과장이 조용히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연결해야 할 자리로 김지훈의 손을 인도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근육 밑으로 굵고 단단한 근육이 확연하게 만져졌다.

‘여기였구나. 탈장 수술 부위는 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느껴야 하는 거였어.’

긴장을 풀기 위해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근육 내로 바늘을 찔렀다. 이준영 과장이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손을 들어 막고는 다시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둥근 바늘 끝의 각도를 거의 수직으로 세워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근육을 뜨게 했다. 근막과 묶어 줄 근육량이 적으면 복벽을 확실하게 강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여긴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은근히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김지훈이 손을 넣어 근육을 다시 만졌다. 바늘이 통과한 길을 따라 적정한 근육량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수술 전 입으로 수없이 반복했던 핵심적인 사항이었다.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근육과 근막에 10여 바늘을 떴다.

따로 떨어져 있던 2개의 조직을 고환 동맥이 통과하는 부위 근처까지 바짝 연결했다. 손을 다시 넣어 만졌다.

상당한 강도와 함께 강한 탄력이 느껴졌다.

이준영 과장도 손으로 수술 부위를 만진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마지막으로 고환 동맥이 지나가는 부위의 폭을 확인해야 했다.

여유 공간이 지나치게 좁으면 동맥이 눌려 고환이 죽을 수 있었다. 반대로 허용 한도를 넘으면 공간을 따라 탈장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었다. 책에는 1센티미터 이내라고만 적혀 있었다.

육안으로 볼 때 동맥 주변의 여유는 그보다 없었다.

혹시 좁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폭이 좁은지, 넓은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의 불안을 알았는지 새끼손가락을 가리켰다. 연이는 어려움에 고민하던 김지훈이 단박에 의미를 알았다.

빡빡하게 느껴졌지만, 새끼손가락이 고환 동맥이 만들어 낸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긴장의 연속이었다.

온몸에서 슬금슬금 땀이 배어 나왔다.

김지훈이 긴장을 풀지 않고 수술을 마무리했다.

규칙적인 모니터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렸다.

무사히 환자가 깨어나는 것으로 수술이 모두 끝났다.

김지훈이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수술 과정을 되짚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뻬도 그렇고, 이번 수술에서도 이준영 과장은 한마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나마 수술 경험이 있는 아뻬도 아니고, 기능 회복이 관건이 탈장 수술이었다.

‘말로 하면 훨씬 편할 텐데, 과장님은 왜 한마디도 하시지 않는 걸까?’

잠시 의문을 가졌던 김지훈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과정이 너무도 선명했다.

말로 듣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몸으로 느낀 덕에 머릿속에 확연하게 남은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김지훈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이준영 과장의 손에서 전해진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무식할 정도로 크고 두꺼운 손이었지만, 더없이 부드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준영 과장의 마음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태울 때는 사정없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즐겁고 기분 좋은 느낌이라기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신뢰와 따뜻한 마음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벅찬 일이었다.

등 뒤에서 이준영 과장의 기척이 느껴졌다.

수술실에서 막 나가고 있었다.

김지훈이 힘차게 외쳤다.

“과장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힐끗 눈길만 준 이준영 과장이 문을 열다 말고 빙그레 웃고 말았다.

“입 꾹 다물겠습니다.”

‘웃긴 놈. 그 말도 하지 말아야지.’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고 있었다.

마침 막 수술을 마치고 나온 김대성이 김진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훈이가 탈장 수술을 받았다구요? 그 수술은 2년차들도 꽤 뛰어나지 않으면 안 주잖아요.”

“그렇지. 나도 1년차들이 탈장 수술하는 건 한 번도 못 봤어. 과장님이 지훈이를 엄청 아끼시는 모양이야.”

“아낀다고 주나요? 자식, 손재주가 좀 있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은가 보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장님이 지훈이를 완전히 믿는단 소리예요.”

정형외과 수련을 4년이나 받은 김대성이었다. 어느 교수든 단순히 재주만을 보고 수술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김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훈이 정도면 믿고도 남지. 음성에 올 때는 어떻게 하나 걱정됐는데, 도리어 복이었네. 역시 열심히 하는 놈들은 어딜 가든 인정을 받는 모양이야.”

“열심히요? 저놈 일하는 거 보면 그 정도가 아니에요. 체력도 강하지만, 일반 외과에 완전히 미치지 않고서는 저럴 수가 없어요. 자식, 우리 과나 하지. 내가 그냥 확…….”

“확 뭐?”

김대성이 입맛을 다셨다.

“흐이구! 부럽다는 거죠. 밑에 지훈이 같은 놈 하나 있으면 일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잘 아시잖아요.”

“그건 그래.”

김진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셨다.

김지훈의 컨디션이 극과 극을 달렸다.

마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 환자들이 늘어났다.

응급실과 외래에서는 물론 내과에서도 툭하면 환자들을 보냈다. 원하던 대로 일반 외과 환자들이 마구 늘어났지만, 그럴수록 김지훈의 눈은 감겨만 갔다. 새벽이면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숙소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져야 했다.

극도로 피곤이 몰려올 때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시라도 한가할 때면 무조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딱 한 번만이라도 푹 자고 싶다.’

피곤이 몰려올 때마다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극적으로 컨디션이 돌아오는 시간이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수술을 주는 날이었다.

믿을 수가 없게도, 아뻬와 탈장이 잡히는 대로 모두 김지훈에게 수술을 주었다. 여전히 수술 전에 계획을 말하며 새카맣게 탔지만, 그때만은 기운이 펄펄 났다.

끈적하게 들러붙은 채 온몸을 짓누르던 피곤도 사라지고, 정신은 마음껏 자고 일어난 것처럼 맑아졌다.

오늘도 아뻬 수술을 받고 올라온 김지훈이 까만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동안 받은 환자의 성별과 나이를 비롯해 진단명과 수술명이 모두 적혀 있었다.

‘역시 난 필드 체질이야. 이럴 때는 피곤이 뭔지도 기억이 안 난다니까. 야! 이게 몇 개야. 아뻬가 6개에 탈장이 2개네. 앞으로 몇 개나 더 할 수 있을까?’

김지훈이 달력을 보다 꿀꺽 침을 삼켰다.

이제 일주일 후면 음성에서의 근무도 끝이었다.

수술이 주는 달콤함과 흥분에 휩싸여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김지훈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동안 3개월마다 순환 근무를 해 왔다.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언젠가는 또다시 볼 수 있기에 아쉬움 속에서도 즐겁게 다음 근무지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음성은 아니었다. 다신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과장님!’

음성 병원도 그립겠지만, 이준영 과장은 정말 보고 싶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1년차 초반에는 생각도 하지 못할 수술까지 받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차라리 구미 대신 3개월을 더 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 틈엔가 김지훈의 가슴속에 이준영 과장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것이다. 무뚝뚝함 속에 숨은 정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후우! 정말 가고 싶지 않다. 내가 가면 과장님은 누구와 함께 일을 하시지?’

답답하고 심란한 마음으로 오후 근무를 했다.

저녁 회진을 올라온 이준영 과장이 자꾸 김지훈을 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얼굴이 어둡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낼 날도 며칠 안 남아서 가뜩이나 심란한데, 이 자식은 또 왜 이래? 무슨 일이 있었나?’

결국 회진이 끝나고 내려가던 이준영 과장이 입을 열고 말았다. 그냥 지나치려고 해도 신경이 쓰여 어쩔 수가 없었다.

“김지훈, 너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안 좋은 일 있으면 말해 봐.”

김지훈의 안색이 더 무거워졌다.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였지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환자나, 일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 정도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별일 없습니다, 과장님.”

잠시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이 혀를 차며 외래로 내려갔다. 정이 없어도 문제지만, 깊어도 탈이었다. 얼굴을 본 지 불과 3개월도 안 됐는데 이런 마음이 들 줄은 몰랐다.

‘언젠가는 다들 떠나기 마련인데 꽤 서운하네. 이젠 나도 나이가 먹긴 먹은 모양이야.’

오늘따라 유난히 밤이 어둡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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