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38화 (138/1,329)

제9화 긴장과 흥분 (1)

김지훈이 집중을 외치며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배를 열고 아뻬를 확인하던 이준영 과장이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충수 돌기가 주변 조직과 떡처럼 뭉쳐 있었다.

충수 돌기염은 세 가지로 구분한다.

급성 충수염은 터지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시간이 지나 충수 돌기 끝에 구멍이 난 경우를 천공성 급성 충수염이라 한다. 주변 조직에 들러붙기 시작해 수술이 조금은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천공이 된 곳으로 장내 세균과 소량의 변이 새어 나와 고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충수 돌기 주변 농양이라 하며, 때에 따라서는 대단히 수술하기가 어렵다.

주변 조직은 물론 장과도 심하게 유착되는 경우가 많고, 세균과 변 때문에 수술 후 감염에도 무척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아뻬가 터져 농양까지 형성했다.

수술 시야에 맹장과 떡처럼 뭉친 조직들만 보였다.

피부 절개를 더 해 수술 시야를 넓힌다고 해도 결코 간단하게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시간도 없는데 큰일이네. 그런데 아뻬가 어디에 있는지도 구분이 안 되는데, 이건 어떻게 제거하지?’

김지훈이 초조한 기색으로 수술 부위를 보다 깜짝 놀랐다.

이준영 과장이 아뻬가 뭉쳐져 있는 조직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것이다.

아뻬 수술은 기본적으로 깨끗한 수술이 아니었다. 터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손상된 부위를 통해 세균이 포함된 염증성 삼출액이 흘러나오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절개 창 및 주변부 감염을 막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수술 부위를 헤집고 있었다.

고여 있던 고름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터져 나왔다.

손가락을 따라 절개 창에까지 고름이 묻었다.

김지훈이 급히 석션(suction:흡입)을 해 고름을 제거했다.

조직에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고름은 거즈로 닦아 냈다.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아뻬 확인해 봐.”

“예?”

반문하던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의 엄한 눈길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넣었다.

“둥글고 딱딱하게 만져지는 게 아뻬의 시작 부분이다. 그 옆으로 부들부들하게 느껴지는 조직이 동맥이 지나가는 장간막이야. 확실하게 느껴.”

인상까지 쓰며 집중한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이 남았다. 꼭 기구를 놔두고 손가락을 이용해야 하는 것일까? 책에 이런 방법을 써도 된다는 구절은 없었다.

“과장님, 이런 경우 이 방법밖에 없습니까? 책에는…….”

“책에 쓰여 있는 게 기본이고, 정석이지. 하지만 농양이 발생한 경우에는 이게 최선이야. 기구를 사용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조직이 너무 약하면 도리어 위험해. 수술 시야가 좁다고 배를 더 열면 감염 부위만 더 커져.”

교과서에는 쓰여 있지 않은 수많은 경험을 쌓은 외과 의사만이 가진 산지식이었다.

“외과 의사에게는 경험이 교과서만큼 중요해. 아뻬 제거하자.”

손가락으로 뭉친 조직을 분리한 덕인지 수술이 한결 쉬워졌다. 물론 김지훈에겐 또 다른 악몽이었다.

조직이 너무 물러 끊어질 것 같았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아뻬를 촉감으로 느끼며 타이를 해야 했다. 동맥을 포함한 조직을 자르고 묶을 때는 식은땀까지 났다.

“살살, 살살. 아뻬 받고 죽은 사람 있어.”

이준영 과장도 전에 없이 신중하게 수술에 임했다.

마침내 아뻬가 포함된 조직이 제거됐다.

주먹 반만 한 덩어리를 보며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부위를 깨끗이 닦고, 배 속에는 물론 피부에까지 심지를 박았다. 이준영 과장이 끝까지 수술을 했다.

김지훈에게는 처음인 경우이기도 했지만,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케이스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다행히 환자도 잘 깨어났다.

이준영 과장이 나가다 말고 간호사에게 고름이 잔뜩 묻은 거즈를 달라고 했다.

“김지훈, 냄새 맡아 봐.”

얼떨결에 코를 갔다 댄 김지훈이 인상을 썼다.

피비린내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고약하고 역한 냄새가 났다.

“심지를 통해서건, 상처에서건 이 냄새가 나면 장내 세균 감염이야. 단순히 상처가 곪았을 수도 있지만, 수술 부위가 터졌을 수도 있어. 잘 기억해.”

이준영 과장이 오늘따라 정말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김지훈에게는 기회였다.

“예, 과장님. 그런데 아뻬가 터졌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 전형적인 아뻬라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이야.”

다시 무뚝뚝해졌다.

입맛을 다시며 환자를 회복실로 옮긴 김지훈이 히죽히죽 웃다 말고 고개를 흔들었다.

‘경험이라! 기회만 되면 과장님이 가진 지식을 그냥 쪽 빨아먹고 만다. 오늘 정말 많은 걸 배웠어. 그때의 느낌이 터진 아뻬의 느낌이란 말이지? 그것만은 아닐 텐데.’

고민도 잠시, 환자를 병실로 옮겨야 했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김지훈의 숙소였던 방으로 환자를 옮겼다. 잠시 후, 이준영 과장까지 올라와 환자와 병실을 살폈다.

“이 환자에게 특히 주의할 점 뭐야?”

좀처럼 듣기 힘든 이준영 과장의 질문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을 해야 했다.

“육체적인 기형 때문에 폐 기능에 유의해야 합니다. 더구나 전신 상태까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소변량이나 바이탈은 물론 열이 나는지도 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열이 나는지 잘 봐. 폐렴이나 수술 부위에 염증이 발생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어.”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뻬 수술을 하고 사망을 거론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환자가 여러 면에서 너무 약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환자 한 명에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영훈 엄마에게 물었다.

“영훈 어머니, 간병은 누가 하시죠?”

“일단 낮에는 제가 계속 있을 거고요. 밤에는 돌아가면서 간병을 하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그럼 환자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연락을 하셔야 합니다. 밤이 늦었다고 그냥 지켜보시면 안 된다는 거 다른 분들께도 꼭 말씀해 주세요.”

영훈 엄마가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여전히 응급실은 환자들로 붐볐다.

많은 환자들이 입원을 하고 퇴원을 했다.

수술이 없는 날보다는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일은 쌓이고, 시간도 모자란데 사랑원 환자의 회복이 순조롭지 못했다. 수술 후 3일이 지난 날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스 아웃(gas out:방귀)은 됐지만 빵빵한 배가 꺼지지 않아 물도 시작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밤이면 더욱 통증이 심해지는지 자주 소리를 질렀다. 김지훈이 그때마다 달려가 환자를 살피며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한참을 봐야 배가 아픈 건지, 아니면 상처가 아픈 건지 구분할 수 있어 몇 배로 더 힘이 들었다. 각기 치료제가 달랐기 때문에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꼬박 2주가 지나서야 수술 이후의 치료를 종결할 수 있었다. 환자가 외과에서 내과로 다시 돌아가는 날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마치 2주 동안 중환자실에 환자가 있었던 것 같았다.

연신 고맙다는 사랑원 원장과 영훈 엄마에게 인사를 한 후 숙소로 들어갔다. 텅 빈 침대와 아직도 코끝을 자극하는 환자의 냄새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잘 회복돼서 내과로 갔기에 망정이지 안 좋아졌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긴장이 풀어지자 온몸을 짓누르는 피곤이 몰려왔다.

김지훈이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맨 처음에는 그렇게도 역겨웠던 냄새가 이젠 익숙했다.

창문을 살짝 연 김지훈이 잠시 눈을 붙였다.

얼마 후, 살며시 문이 열렸다.

이준영 과장이 슬쩍 열린 문 사이로 김지훈을 보고는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간호사들이 전화를 집어 들자 손을 들어 막고는 차트를 보았다.

어느 틈엔가 입원 환자가 40명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중 20명 정도는 대개 입원과 퇴원의 간격이 무척 짧은 환자들이었다.

그만큼 같은 시간 내에 작성해야 하는 서류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무척이나 싫어했다.

나머지 환자들이 바로 그런 환자들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입원과 수술 기록지를 보았다.

거의 지적을 하지 않았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모든 환자들을 충실하게 보고 있었다. 힘에 부쳐 못하는 적은 있어도 김지훈이 꾀를 부린 적은 없었다.

‘사랑원 환자 같은 경우에는 2주 동안 똑같은 자세로 대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제 1년차여서 환자들을 구분하지 않은 걸까? 나도 그랬었나?’

차별할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랑원 환자 같은 경우는 의사들의 진을 모두 빼고도 남았다.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맡아야 하는 냄새와 괴성도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루 이틀은 성의를 다할 수 있지만, 2주나 한결같이 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비록 음성에 있지만 내심 내과 과장을 최고라고 인정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준영 과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김지훈을 볼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강해지고 있었다.

‘내 판단이 맞을까? 이 정도 봤으면 한고비를 넘겨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턱을 괴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과장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과장님, 응급실에 아뻬가 의심되는 환자가 있습니다.”

“아뻬가 또 왔어?”

환자도 파도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

한동안 수술할 환자들을 보기 힘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올 때가 있었다.

응급실로 향하던 이준영 과장이 피식 웃었다.

김지훈은 아직도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지 않는 때가 많았다. 결코 자신보다 늦게 환자 앞에 서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지금 김지훈을 내 잣대로 보며 겁을 먹은 거야?’

하나하나 살펴보면 사소할지도 모르고 당연한 일들이었지만, 이준영 과장에게는 의외로 크게 다가왔다.

함께 아뻬 환자를 보던 김지훈도 웃고 있었다.

결국 기회를 틈타 천공된 아뻬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알아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증상 지속 시간과 병력으로 유추한 것이다. 물론 그런 요소들을 종합해 판단하는 것은 역시 경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토요일부터 시작해 일요일까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연이어 단체 교통사고 환자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유난히도 환자가 많았다. 응급실 당직인 서도진뿐만 아니라 병동 당직이었던 안호석까지 환자를 봐야 했다. 그런데 오프를 갔던 서도훈이 3시간이나 늦게 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도떼기시장 같았던 응급실이 다소 한가해진 후에야 김지훈이 서도훈을 불렀다.

“왜 늦었어?”

“죄송합니다.”

“난 이유를 물었어.”

서도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화를 참던 김지훈이 머리를 감싸 쥐고는 인상만 썼다. 아무리 친했던 후배라 해도 확실하게 해야 했다.

“너 학생이야, 인턴이야.”

“인턴입니다.”

“그런데 넌 동기들 생각도 안 해? 너는 3시간 늦었을 뿐이지만, 도진이나 호석이에게는 죽어 나가는 시간이야. 환자가 있건 없건 우린 제 시간에 병원에 와야 하고, 환자를 봐야 해. 너 때문에 손이 달려 환자를 잃을 수도 있어. 이 자식아, 왜 늦었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김지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인지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왜 늦었냐고 묻잖아?”

서도훈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집에서 잠을 자다 버스를 늦게 탔습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누구 한 명 잠이 부족한 사람은 없었다. 오프 가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지만, 잠을 자다 늦게 왔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뭐, 버스를 늦게 타? 네가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누군 잘 줄 몰라서 이 지랄을 하는 줄 알아. 의사는 환자한테나 동료들한테 신뢰를 잃으면 끝이야, 인마.”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늦겠습니다.”

서도훈이 고개를 푹 숙였지만, 화가 가라앉지 않은 김지훈이 더 소리를 질렀다. 당직실 밖에까지 목소리가 새어 나갈 정도였다. 20분이 지나도록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밖에서 듣고 있던 서도진과 안호석이 들어왔다.

“니들은 뭐야?”

“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니들이 왜 죄송해?”

김지훈의 목소리까지 떨리자 서도진이 안색을 굳혔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우린 동기들입니다.”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김지훈이 의자에 기대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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