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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37화 (137/1,329)

제8화 외과 의사에게 경험이란… (2)

입국식까지 거쳤으니 이젠 정식으로 일반 외과 의국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김지훈이 일과를 시작할 때마다 파이팅을 외쳤다.

1년차들 중 열심히 일하지 않은 동기는 없었다.

음성 병원은 리포트든 뭐든 간에 이론 교육을 받을 여건이 갖춰진 병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움에는 이론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끝도 없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이준영 과장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떤 수술을 들어가든 까맣게 탔다. 아직도 지적받을 것이 이렇게 많은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수술을 들어갈 때마다 점점 즐거워졌다.

‘집중하자, 집중. 난 할 수 있다.’

손과 손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고자 했던 수술이 무난히 끝나고, 환자들이 웃으며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꼈다.

이준영 과장도 김지훈을 보면 흡족하기만 했다.

첫 수술을 받고 나면 누구나 욕심을 내기 마련이었다. 한 번 더 하고 싶어 안달이 나 퍼스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어시스트를 서며 혼까지 나면 백이면 백 어디에선가는 짜증을 내며 불평을 했다.

그런데 김지훈은 달랐다.

더욱 수술에 집중하고, 사소한 지적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제는 아뻬나 탈장 수술 정도로는 혼내고 싶어도 혼을 낼 구석이 거의 없었다.

무섭도록 수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한고비를 넘기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을 텐데, 내 욕심이지. 저놈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의사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은 자만이었다.

이준영 과장 자신도 그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 대가는 10년이라는 세월이었다.

김지훈은 다를까?

이미 한 번 준 수술인데 또 못 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때가 너무 일렀다. 두 번, 세 번 수술을 하다 보면 이제 1년차를 시작했기에 김지훈이라고 해도 자만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자만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더 이상 수술을 주는 것은 금물이었다. 경험이 일천한 김지훈은 시간이라는 인내를 통해서만 자만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뛰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텐데.’

상념에 빠졌던 이준영 과장이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한동안 뜸했던 응급 수술이 떴다.

궤양 천공에 의한 복막염이었다.

김지훈과 이준영 과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수술실에 들어섰다. 김지훈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고, 이준영 과장은 하나라도 더 가르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은 결코 자만하지 않았지만, 이준영 과장은 이를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틈이 김지훈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똑바로 못해? 너, 지금 몇 번째 수술인데 이 모양이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을 타이(tie:실매듭) 할 때 그 따위로 하면 찢어진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염증 심한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과장님.”

이준영 과장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김지훈을 보며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김진호가 혀를 내두르는 것을 보니 아직은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주가 지났다.

김지훈이 음성에 온 지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내과에서 컨설트(consult:환자 의뢰)가 왔다.

아침 회진을 돈 후 먼저 환자를 보기 위해 병실로 들어선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병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악취가 났다.

환자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6인실 정도의 병실에 10명이 입원해 있었다.

침대도 아닌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몸이 뒤틀린 환자.

멍한 표정으로 헤헤, 웃고 있는 환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만 보고 있는 환자.

김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간호사를 보았다.

“정신 지체가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랑원에서 온 환자들이에요.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바닥에 눕힐 수밖에 없어요.”

이런 병실과 환자들이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두 달이 지나도록 못 봤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 환자들을 돌보고 있던 간병인들이 바지춤에 손을 닦으며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어머! 선생님이시네요?”

오지랖 넓은, 아니 정이 많은 아주머니였다.

“어? 아주머니는 영훈이 어머니?”

“세상에, 제 아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으셨어요?”

김지훈이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여러 번 봤잖아요. 그런데 가족분이 입원해 있으세요?”

“아니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자원봉사 하러 와요. 환자 보러 오셨죠? 냄새가 조금 심해도 참아 주세요. 평소에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어서. 한다고는 하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시구나. 괜찮습니다. 환자는 어디 있죠?”

하루 종일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도 있는데 얼굴을 찌푸린 게 미안했다. 그래도 참기 힘든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냄새를 꾹 참으며 환자를 찾았다.

마흔 살의 여자 환자였다.

심하게 몸을 비틀고, 협조가 되질 않아 진찰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런 환자들을 매일 보고, 내과 과장님도 대단하시네. 아뻬라는 건 또 어떻게 의심하셨을까?’

말이 통하질 않아 얼굴을 보며 복부 촉진을 해야 했다.

아픈 부위를 누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우하 복부의 압통과 반사통으로 보아 전형적인 아뻬(충수 돌기염)였다.

“어때요?”

“맹장염이 의심되네요. 과장님께서 한 번 더 보셔야 하지만,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이요? 큰일 났네.”

영훈이 엄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세요?”

“여기 환자들이 보시다시피 이래서 아픈 걸 참질 못해요. 전에 수술 받았던 환자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울더라구요. 한 사람이면 괜찮겠는데, 누가 울면 다들 따라서 울어요.”

영훈 엄마가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서 결국 옆 병실 환자들까지 잠을 자지 못했어요. 거기다 바닥에 누워 있어야 하니까, 수술한 환자는 간병하기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래도 수술을 안 하면 죽는 병이에요. 꼭 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긴 해야겠지만, 수술 후가 걱정이네요. 일인실이라도 쓰면 좀 나은데 그럴 돈도 없고, 사랑원 원장님이라고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김지훈이라고 뾰족한 답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아뻬가 확실한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 먼저였다.

노티를 받은 이준영 과장이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색을 하지 않은 건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꼼꼼하게 환자를 살폈다.

‘과장님도 대단하시네. 나만 얼굴을 찌그렸나 보네.’

환자들에게 더욱 미안했고, 이준영 과장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 것 같았다.

김지훈이 묵묵히 뒤에 서서 결정을 기다렸다.

이준영 과장이 영훈 엄마를 보았다.

“간병인 되시죠?”

“예.”

“맹장염이 진행된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이미 터졌을 가능성이 높아서 빨리 수술해야 하니까,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해 주세요. 김지훈 선생, 일단 수술 준비해.”

‘전형적인 아뻬인 줄 알았는데, 터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래서 복부 촉진상 더 확실하게 느껴진 건가?’

오더를 받은 김지훈이 힐끗 환자를 보고는 재빨리 움직였다. 다행히 의료 보호 환자라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한다고 해서 추가 비용이 들 일은 없었다.

얼마 후, 사랑원 원장이 도착했다.

이준영 과장의 설명을 듣고는 더욱 걱정되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수술할 환자도 환자였지만, 다른 환자들에게 끼칠 피해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과장님, 일단 수술을 받고 사랑원으로 옮길 수는 없을까요? 다른 환자들이 너무 큰 피해를 받을 겁니다.”

“며칠 금식을 해야 하고, 항생제 주사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때 사랑원 환자 중 한 명이 무엇에 놀랐는지 고함을 질렀다. 다닥다닥 붙은 병실과 좁은 복도를 따라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렸다.

다른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고개를 내밀며 인상을 썼다. 다들 이해는 했지만, 그들 역시 아프기 때문에 입원한 사람들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일이 벌어지는 탓에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사랑원 원장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수술을 받고 나면 저희로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인실이라면 조금은 나을 텐데,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아 정말 난감합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안 하면 사람이 죽으니 반드시 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입원 환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중에는 절대 안정이 필요한 환자들도 몇몇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장애가 있는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니, 세상이 왜 이러냐. 의국비라도 보탤까?’

못할 것도 없었다.

최치수 과장에게 말하면 깎아 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준영 과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병원에 부탁해 보겠습니다.”

사랑원 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원생들이 모두 보호 환자라지만, 일반인인 경우에도 돈 한 푼 안 받으셨습니다. 그게 벌써 5년이 넘었는데, 더 이상 염치가 없어서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어떻게든 제가 돈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상황이 묘했다. 병원 입장에서도 할 만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준영 과장이 망설이는지도 몰랐다.

콧등을 찡그리며 말을 듣던 김지훈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잘하면 입장 곤란한 사람 없이 해결할 수도 있었다.

“과장님, 그럼 수술을 한 후 제 숙소를 병실로 이용하면 안 될까요? 어차피 전 거의 잠도 자지 않고 3층 맨 끝에 있으니까 다른 환자들도 크게 불편할 것 같지 않은데요.”

“네 숙소를?”

“예. 병원 입장에서는 누가 쓰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리고 이 환자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은데, 바로 옆에 인턴 숙소가 있으니까 환자 보기에도 용이할 것 같습니다.”

사랑원 원장과 영훈 엄마가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 말씀은 고맙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원장님 말씀이 맞아요. 잠도 못 주무시고 일하시는데 선생님 잠자리를 어떻게 써요.”

김지훈이 맑게 웃었다.

“전 괜찮습니다. 잘 곳은 많아요.”

“그래도 그렇죠.”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과장님, 그렇게 해도 될까요?”

이준영 과장이 묘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말은 쉬워도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을 테지만, 음성을 떠나면 다신 오지 않을 병원이었다. 김지훈에게는 어떤 득도 없었다.

‘이 정도로 환자를 생각하는 놈이었어?’

나직한 숨을 내쉰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총무과에는 내가 얘기하마. 수술 준비해.”

“예, 과장님. 병실을 준비해야 하니까, 일단 짐부터 옮겨 놓고 스케줄 제출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그럼 원장님께서는 간병할 분만 구하시면 되겠습니다.”

김지훈과 이준영 과장이 바삐 걸음을 옮기자 영훈 엄마가 멍하니 뒷모습만 보았다.

“어쩜! 저런 선생님이 또 있을까요?”

사랑원 원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술실로 환자를 옮겼다.

정신 지체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육체적인 기형이나 장기 기능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다. 내과 과장까지 들어와 환자를 살폈고, 김진호는 진땀을 흘리며 마취를 했다.

수술이 시작됐다.

애초에 몸이 약한 환자이기에 가급적 마취 시간이 짧을수록 좋았다. 이준영 과장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빨리빨리 들어와. 이런 환자는 시간이 중요해. 내과 과장님까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이렇게 할래?”

김지훈이 오래간만에 얼굴을 붉혔다.

다들 아는 사실이었지만, 내과 과장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솔직히 창피했다.

‘에이! 과장님도. 내과 과장님까지 계신데 꼭 평소처럼 태우셔야 하나?’

내심 투덜거리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김지훈, 딴생각할 틈이 있어?”

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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