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입국식 (1)
김진호가 어깨를 흠칫거렸다.
“과장님, 지금 웃으신 거죠?”
“내가 언제.”
“아닌데. 확실히 웃으셨잖아요. 오늘 정말 이상하시네. 뭔가 확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혀를 차며 일어났다.
“김진호 선생, 이따 집에 가서 한잔하자. 그리고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수술 들어왔던 간호사들하고 인턴 선생들 입단속 좀 부탁해.”
김진호마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너무 때 이르게 받은 수술은 축하보다는 시기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일견 이해가 가는지 김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과장님.”
“김지훈, 내일 입국식이란다. 근무 끝나면 바로 올라가. 입국식에서 술 많이 마시게 될 텐데, 내 말 절대 잊지 마. 그리고 집도식은 없다. 다른 병원에서 받으면 그때 해.”
입국식?
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다.
벌써 한 달 반이 지난 것이다.
김지훈이 함께 일어나며 말했다. 자신이 서울로 올라가면 이준영 과장이 응급실을 커버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내려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일요일 막차 타고 내려와.”
이준영 과장이 김진호와 함께 수술실에서 나갔다.
김지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한 적은 없었다.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었다. 수술이 준 감동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이 밀려왔다.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도 집도식은 과장님이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수술을 받은 것조차 함부로 말하지 말라면서 집도식을 할 리는 없었다. 피곤 때문에 머리가 멍한 탓인지, 이준영 과장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준영 과장이 가장 걱정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한 김지훈도, 김진호도 진의를 알긴 어려울 것이다. 잠시 자리를 지키며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 뛰어나갔다.
밀린 일이 산더미였다.
‘으아아! 큰일 났다. 오늘은 병동 일로 잠을 못 자겠네.’
감동이고 뭐고, 1년차에겐 일이 먼저였다.
정신없이 일을 끝낸 김지훈이 홀로 숙소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여전히 가슴이 떨렸다. 당장 고경아나 정훈철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손일석에게도 전화해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의 말이 가슴을 짓눌렀다.
‘자만하지 마라. 누군가 시기하고 싫어한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길게 말했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도식은 하고 싶다.’
첫 수술과 집도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구미에서 본 유석재의 집도식이 너무 부러웠던 탓이었다.
첫 수술의 여운은 여러모로 길고도 깊었지만, 이내 몰려오는 잠에 모든 것을 잊었다. 깊게 잠들었던 김지훈이 눈을 감은 채 미친놈처럼 웃었다.
잠꼬대였다.
그렇게 좋을까?
토요일 오후, 김지훈이 7주 만에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만 가지 상념이 들었다 싶은 순간, 깊은 잠에 빠졌다. 누군가가 서울에 도착했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흔들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서울 병원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분하고 서운했던 감정 대신 설명하기 힘든 뿌듯함이 가득했다. 물론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다들 잘 지냈겠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면 깜짝 놀랄 텐데 입 꾹 다물라는 말씀을 어길 수도 없고. 그나저나 내가 지금 모자란 게 무얼까? 수술 하나 했다고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았다고 하긴 그렇잖아. 일석이한테 슬쩍 물어봐야겠다.’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참을 때였다. 응급실에 어떤 환자가 올지, 이준영 과장이 고생은 하지 않을지 걱정도 됐다.
특히 첫 수술을 한 환자가 너무 마음에 걸렸다.
합병증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불안하기만 했다.
보통 중압감이 아니었다. 수술 후의 치료가 수술보다 더 중요하고 어렵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어휴! 열이라도 나면 어쩌지?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
가급적이면 빨리 내려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고경아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접었다.
으레 들러야 할 곳처럼 응급실부터 들렀다.
응급실은 언제나 똑같았다.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대고, 인턴들은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후배 인턴들이 김지훈을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했다.
학교 다닐 때는 곧잘 까불던 후배들이었다.
반가워하면서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인턴에게는 1년차도 하늘이었다.
김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으며 웃었다.
“힘들지?”
“아닙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꾀죄죄한 몰골에 떡 진 머리를 한 채 어깨에 힘까지 팍팍 들어가 있었다. 전형적인 초턴들의 모습이었다.
‘나도 저랬겠지? 벌써 1년이 지났네. 자식들! 지금은 내가 부럽겠지만, 1년차 돼 봐라. 더 힘들다.’
문득 1년 전 서울 응급실을 돌던 때가 생각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를 잊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마치 눈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기만 했다.
나직한 한숨을 내쉬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악어와의 일이 생각난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악어 생각은 왜 나냐. 절대 그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 해. 개새끼.’
속으로 욕을 하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후배 인턴들이 아직도 바짝 긴장한 채 옆에 서 있었다.
“야야, 왜들 이러니. 누가 보면 기강 잡는 줄 알겠다. 한가하면 가서 좀 쉬어. 응급실 잘 돌고.”
“예, 선생님.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르르 당직실로 들어가는 인턴들을 보며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군대나, 의사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들이 깜작 놀라며 반가워했다.
“어머! 김지훈 선생님,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다들 별일 없었어요?”
“응급실이 항상 그렇죠, 뭐. 그런데 어쩐 일로 서울에 오셨어요?”
순간 마치 못 할 말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간호사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반가움에 김지훈이 음성으로 파견 갔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갑자기 얼굴들이 왜 그래요? 오늘 입국식이에요.”
간호사들이 더욱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어머! 오늘이 입국식이었어요? 그럼 이따가 또 보겠네요.”
“또요?”
“김지훈 선생님 거는 특별히 따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마음 놓고 마시세요. 포도당 20프로짜리에 비타민 듬뿍.”
1년차는 입국식 날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셔야 한다고 들었다. 다음 날 일을 하려면 빨리 술에서 깨야 했고, 방법은 고농도의 포도당을 맞는 것뿐이었다.
간호사들의 말에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술 많이 안 마실 거니까, 걱정 마세요.”
“우리가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그게 선생님 말처럼 될까요? 아마 작년에는 유석재 선생님이 그러셨죠?”
“그래요? 어떻게 됐는데요.”
“이혁민 선생님께서 얼마나 술을 많이 주셨는지 제일 늦게 일어났어요.”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혁민 선생님이요?”
갑자기 간호사가 목소리를 죽였다.
“제일 아끼는 전공의 선생님에게 집중적으로 주세요. 해마다 그랬으니까, 올해는 선생님 아니겠어요?”
“에이! 그럴 리가요. 현수하고 일석이가 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 김지훈이 손을 흔들며 응급실을 나섰다. 간호사들이 수군댔다.
“난 아직도 김지훈 선생님이 왜 음성에 가셨는지 모르겠어. 소문에는 일반 외과 환자를 거의 못 본대잖아.”
“과장님이 제일 뛰어나서 보내셨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말이 돼? 음성 병원은 그냥 개인 병원이라잖아. 정갑수라면 모를까. 혹시 미운털이 박힌 걸까?”
“어머머! 김지훈 선생님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다들 김지훈이 음성 병원에 간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귀가 간지러운지 휙 뒤돌아본 김지훈이 귀를 후비며 본관 6층 일반 외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지훈아!”
손일석이 달려와 김지훈을 덥석 안았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손일석과 함께 병동에 붙은 의국으로 들어갔다. 다들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항상 단정하고 깔끔했던 신현수의 턱밑이 거뭇거뭇했다. 풀어 헤친 넥타이 하며, 피곤에 절은 모습까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현수도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다른 1년차들이 어떨지는 빤한 일이었다. 정갑수만 팔팔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신현수 옆에서 웃고 떠들기 바빴다.
‘1년차가 한 명이라 구미도 만만치 않을 텐데.’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물어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쌩쌩한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고, 추측이 틀리지도 않을 것이다.
입국식을 앞두고 모처럼 얻은 휴식이었다.
김지훈을 반갑게 맞은 1년차들이 하나둘 탁자에 엎드려 고개를 파묻었다. 틈만 나면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김지훈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지금 아니면 궁금한 것을 물어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서울은 어때?”
반쯤 감긴 눈으로 김지훈을 보며 웃고 있던 손일석이 눈을 비볐다. 트레이닝을 어떻게 받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별거 없어. 5시 반쯤 일어나서 드레싱하고, 회진 돌고 나면 수술실이지, 뭐. 수술 끝나면 또 회진 돌고, 4년차 선생님들에게 오더 받은 후 드레싱하고 차팅하는 게 다야. 단순한 것 같은데 보통 한두 시는 돼야 일이 끝나.”
“다른 건 없어?”
“다른 거? 너도 아는 것처럼 수술 스케줄 챙기는 일이 제일 중요하지. 사실 리포트 작성만 없어도 살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징그러운지 손일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리포트?”
“픽스턴 때 봤잖아. 일주일에 2개씩 써서 하나는 주중에, 나머지 하나는 토요일에 발표하는 거 못 봤어? 차라리 수술실에 있으라면 있겠는데, 항상 졸리고 피곤해서 그런지 리포트 작성이 훨씬 더 힘들어.”
반쯤은 졸며 얘기를 듣던 김지훈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리포트에 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주로 뭘 발표해?”
“그 주에 수술한 환자들 케이스라 대중없어. 그래도 캔서(cancer:악성 종양)에 관한 게 제일 많지. 나도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쓴 것 같다.”
암 수술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더구나 밤 한두 시에 정규 일과를 끝내고 리포트까지 작성하면 거의 잠을 못 잘 수도 있었다.
서울 1년차들은 자신보다 훨씬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서늘해지며 졸음까지 사라졌다.
“그럼 잠은 언제 자?”
김지훈이 마치 다른 과 1년차인 것처럼 묻자 손일석이 한숨을 쉬었다. 왠지 미안하면서도 속상한 탓이었다.
“수술실에서 조는 거지, 뭐. 저번에는 졸다가 무릎 꺾여서 쫓겨난 적도 있어. 에휴! 나는 그렇다고 치고, 넌 어때? 생각보다는 괜찮지?”
김지훈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정말 많이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은 건가?’
혼란스러웠다. 트레이닝은 수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철저히 숙지하고, 이론까지 병행하는 것이 바로 트레이닝의 목적이었다.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손일석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
“근데 넌 퍼스트 서지? 좋겠다. 수술 많이 들어가면 뭐 해, 세컨드 서면 졸음밖에 안 와. 가끔 아뻬 퍼스트 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손일석의 눈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피곤에 지친 동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무엇을 배우느라 저렇게 힘들까?
정말 수술과 이론을 모두 차곡차곡 배우고 있을까?
정갑수는 어떻게 일을 하기에 아직도 팔팔할까?
한 번에 2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수술을 주로 배우고, 누군가는 수술과 이론을 동시에 배운다는 차이뿐이었다.
‘나도 동기들도 모두 힘들어서 쩔쩔매는데, 3개월 동안 누가 더 많이 배우고 앞설 수 있나? 지금 난 뒤처진 게 아니라 다른 길로 갈 뿐이야. 그것도 이준영 과장님께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있잖아.’
다른 교수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아니, 가르치는 것을 모두 소화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아직도 수술실에서 새카맣게 탈 것이다.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욕심만 부렸다.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은 것을 주어도 받아먹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불안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이마를 비비며 고개를 흔들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더니 딱 내가 그 꼴이네. 과장님이 가르치는 것도 다 못 배우면서 욕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