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33화 (133/1,329)

제6화 입 꽉 다물자 (2)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첫 수술을 40분 만에 끝냈다는 말에는 손일석도 할 말을 잃었다.

‘현수 이 자식은 손재주까지 타고났나?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으면 우리하고는 비교도 안 되겠네. 씨펄! 부족한 게 도대체 뭐야?’

화가 나면서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신현수가 성공적으로 아뻬 수술을 마친 그 시간,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멀뚱멀뚱 눈만 껌벅거렸다.

이준영 과장이 퍼스트 자리에 서 있었다.

“과장님!”

“수술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과연 수술을 받아도 되는 걸까?

스스로 할 준비가 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취가 끝나고 수술을 해도 좋다는 사인이 났다.

그사이 수술 과정을 빠르게 되짚은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퍼스트를 제법 많이 섰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자신감을 보이는 김지훈을 본 이준영 과장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지금까지 보고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술은 하겠지. 하지만 단 한 번을 하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해, 김지훈. 첫 수술은 그래서 어렵고 힘든 거야.’

이준영 과장이 김진호를 보았다.

“김진호 선생, 10분만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그럼요, 과장님.”

“김지훈, 수술 과정 말해 봐.”

예전에 유석재가 수술을 받을 때 수술 기록지를 달달 외웠던 것이 생각났다. 지난 6주 동안 열다섯 번 가까이 아뻬 수술 기록을 작성했다. 눈에 훤했다.

김지훈이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환자의 우하 복부를 절개하고 피하 조직을…….”

“김지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수술 기록지가 수술하는 거야, 아니면 네가 하는 거야?”

“예? 과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절개는 어떻게 할 건데? 수술하기 전에 미리 플랜을 세워야지, 기록지를 외우고 앉아 있어?”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심하게 태울 때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낮아졌다. 잘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급히 환자의 복부를 보았다.

아뻬 수술 시 절개 방법은 두 가지였다.

보통의 체격을 가진 환자에겐 평행(transverse) 절개를 하고, 복부 비만이 심하거나 합병증을 동반한 아뻬일 경우 사행(oblique) 절개를 했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평행 절개를 하면 되겠지?’

“환자의 우하 복부에 평행 절개를 가한 후, 피하…….”

“절개는 그냥 네 마음대로 할 거야? 몇 번 메스로 얼마나 절개할지는 생각도 안 해?”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얼굴이 벌게진 김지훈이 정신을 집중하느라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였다.

“12번 메스로 환자의 우하 복부에 평행 절개를 5센티미터 정도 가한 후, 피하 조직을…….”

“김지훈, 너 수술할 때 도대체 뭘 본 거야?”

급기야 이준영 과장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까지 저었다.

도대체 피부를 절개하는 과정 중 몇 가지나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환자가 뚱뚱해? 살도 없는 젊은 환자의 배를 5센티미터나 열어서 뭐 할 건데? 너, 지금 아뻬 수술하면서 대장이라도 뗄 생각이야?”

마른 환자의 경우 통상 피부는 3센티미터 정도 절개한다. 상당히 작게 열지만, 수술 중 양쪽에서 절개 창을 강하게 끌어당기기 때문에 충분히 수술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때 피부가 늘어나 봉합 후에는 대략 5센티미터 정도의 절개 창이 남았다.

‘어후! 지금까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수술 기록지를 작성했구나.’

사소하다고 여겨 무심코 지나쳤던 과정들조차 이준영 과장은 미리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이며 다시 시작했다.

이준영 과장이 끊임없이 말을 잘랐다.

“아뻬를 묶는 일은 네가 아니라 퍼스트가 해야 하잖아. 너, 지금 어시스트하려고 그 자리에 섰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 이제야 알았다. 너무도 창피해 수술조차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거쳐야 할 일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고, 결코 놓칠 수 없었다.

메스도 잡기 전에 새카맣게 탔지만, 마침내 피부를 봉합하는 과정까지 모두 말했다. 실제로 수술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힘이 들었다.

‘첫 수술로 아뻬를 주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속에 네가 배워야 할 기본의 90프로 이상이 있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서운해하지 마라.’

이준영 과장이 1분가량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지훈이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준 것이다.

“김지훈, 뭐 해?”

한결 차분해진 눈으로 김지훈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김진호 선생님,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십시오. 정확하게 10분 지났습니다.”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은 물론 어시스트로 들어온 서도진과 미스터 최까지 바짝 긴장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무지막지하게 탔으니 수술 중에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2번 메스로 피부를 3센티미터 절개했다.

노랗게 드러난 피하 조직을 전기 소작기로 쳐냈다.

복부 근육을 덮고 있는 근막이 보였다.

메스로 1센티미터 정도 근막을 절개한 후 맷잼(끝이 둥근 수술용 가위)으로 근막의 결을 따라 사선으로 길게 잘랐다.

검붉은 색깔의 근육을 켈리로 벌렸다.

약간은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복막을 열었다.

상행 결장이 보였다.

상행 결장의 시작 부분에 위치한 맹장을 확인하고 롱 포셉(long forcep:기다란 집게)으로 맹장을 끌어당겼다.

쥐꼬리처럼 길고 가는 구조물이 슬슬 끌려 나왔다.

염증으로 발갛게 부어 있었다.

충수 돌기염이 확실했다.

먼저 동맥을 찾아 결찰하고, 충수 돌기에 연결된 주변 조직을 확실하게 자르고 묶었다.

매끈하게 남은 충수 돌기를 잘랐다.

자른 단면을 화이트 실크로 단단히 두 번 묶고, 제거한 충수 돌기를 간호사에게 건넸다.

수술 부위와 상행 결장 및 소장의 말단부에 동반된 질환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핵심적인 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부터는 항상 해 왔던 마무리였다.

이준영 과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김지훈의 손을 따라 어시스트만 섰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려움이 없었다. 2개의 손이 마치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어울린 것이다.

마지막 봉합을 끝낸 김지훈이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이준영 과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실을 나갔다.

‘내가 첫 수술을 제대로 해낸 건가?’

긴장이 확 풀린 김지훈이 연거푸 깊은 숨을 내쉬었다.

환자를 깨우던 김진호가 웃었다.

“제법이야. 40분 걸렸다. 아니지, 과장님한테 탄 시간을 빼면 30분이네. 야! 잘하네.”

“선생님, 첫 수술 하신 거 맞죠? 실습 돌 때 보니까 무지하게 깨지면서 하던데. 그런데 하기 전에는 그렇게 태우시다가 어떻게 막상 할 때는 한마디도 안 하셨을까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김지훈이 입을 열지 않았다.

김진호가 또 웃었다.

“잘하니까 그렇지. 너도 열심히 해. 그러면 김지훈처럼 될 수 있어. 근데 김지훈.”

그제야 김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역시 인턴보다는 전공의 3년차가 무서운 법이다.

“예?”

“그렇게 좋아? 얼굴을 보니까 아주 감동의 물결이 계속 몰려오고 있네.”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데 저 실수 없이 잘했죠?”

“기억 안 나?”

“그게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얼마나 집중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회복실에서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갑자기 잠에 취한 환자를 깨웠다. 이미 드레싱을 한 절개 창도 다시 확인했다.

수술을 잘 받아 주고, 아무 이상이 없어서 고마울 뿐이었다.

‘환자분, 감사합니다.’

이런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이제야 첫 수술을 실수 없이 해냈다는 실감이 들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몸을 떨던 김지훈이 마치 악을 쓰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내가 드디어 첫 수술을 했다. 으아아!’

감동의 물결이 쉬지 않고 몰려왔다.

흥분을 못 이겨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김지훈이 미친놈처럼 회복실을 왔다 갔다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환자가 병실로 올라갈 때쯤에야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김지훈이 눈을 크게 뜨며 매점으로 달려갔다.

“캔 맥주 큰 걸로 한 박스 주세요.”

기분이었다.

의국비도 충분했고, 쓸 시간도 없었다.

24개나 되는 맥주를 들고 보호자와 환자들의 눈을 피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휴게실에 있던 김진호가 놀란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너, 몇 개나 사 온 거야?”

김지훈이 머뭇거렸다.

옆에 이준영 과장이 떡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앉아.”

“예, 과장님.”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은 김지훈이 힐끗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비장 수술을 했다. 그러고는 난데없이 수술을 주었다. 그것도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수술 전에 태우고, 수술 중에는 한 가지도 지적을 하지 않았다.

“김진호 선생, 한 잔만 하자.”

“예, 과장님.”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켠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갑자기 김진호가 자세를 고쳤다.

“오늘 수술하고 난 후 네가 느낀 감정을 잊지 마. 평생 동안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언젠가 네가 무력함을 느끼고 좌절할 때 지금을 생각하면 도움이 될 거야.”

이준영 과장의 말에 숙연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신이 나 축하해 주던 유석재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예, 과장님.”

“첫 수술치고는 아주 잘했어. 자신을 가져. 하지만 결코 자만하면 안 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순간, 치명적인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야. 의사는 실수를 하고 나면 아무리 후회가 빨라도 결코 되돌릴 수 없어. 네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예, 과장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가슴에 콱콱 박혀 들었다. 일반 외과 의사로서 살아가며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병원으로 가면 음성에서 잊었던 일은 싹 잊어.”

“예? 잊으라니요?”

“넌 오늘, 받을 수 없는 수술을 받았어. 누군가는 기뻐해 주겠지만, 누군가는 시기하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 그런 사람이 생기면 의사로 살기 힘들어. 입 꾹 다물고 있다가 네 능력을 펼쳐야 할 때 말없이 보여 주면 충분해.”

무슨 말일까?

김지훈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금경태 과장이 널 찍었다면 이게 최선이야. 네가 수술을 한 것 자체를 꼬투리 잡을 수도 있어. 언젠가는 이혁민 교수가 널 지켜 주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이준영 과장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입 꽉 다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절대 잊지 마. 약속해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이준영 과장이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 또한 살아가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임은 분명했다.

김지훈이 눈과 귀를 열고 이준영 과장의 말에 집중했다.

첫 수술을 했다는 흥분보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준영 과장은 그런 김지훈이 좋았다.

‘네가 나처럼 될 일은 없을 것 같구나.’

공연히 미안해진 이준영 과장이 맥주를 들며 말했다.

“한 모금 해.”

“예? 아닙니다, 과장님.”

“괜찮아. 내일 토요일이다.”

“과장님,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솔직히 지금 맥주 한잔하면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습니다. 잔만 주십시오.”

아닌 게 아니라, 토끼 눈처럼 눈이 빨갰다.

첫 수술의 흥분과 감동이 아니었으면 벌써 뻗었을 것이다.

이준영 과장이 맥주를 따르며 웃었다.

그동안 웃는 건지 아닌지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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