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반드시 살려야 한다 (2)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 조직을 차근차근 모두 잡아. 자르고 난 후에는 동맥이 확실하게 잡혔는지 반드시 확인해.”
비장은 왼쪽에 있다.
환자의 왼쪽에 서 있는 이준영 과장으로서는 복벽이 시야를 가려 보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몸을 비틀지 않는 한 비장 주변에서는 손을 원활하게 움직이기 힘든 위치였다.
지금까지 그랬듯 오롯이 김지훈의 몫이었다.
이제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김지훈을 믿어야 했다.
“김지훈, 넌 할 수 있어. 똑같이 하면 돼.”
‘후우! 후우! 할 수 있다. 반드시 해낸다.’
환자를 반드시 살리고 말겠다고 각오한 김지훈이 조직들을 잡아 나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조직들을 잡고 자르는 데 집중했다.
처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과감한 손길이었다.
잘린 조직을 묶고 단면을 확인했다.
드디어 모든 조직을 다 잘랐다.
가느다란 동맥이 2개나 더 있었다.
더 이상 비장과 연결된 조직은 없었다.
손상된 비장이 배 밖으로 나왔다.
김지훈이 간절한 눈빛으로 김진호를 보았다.
수액과 피가 빠르게 환자의 몸속으로 투여됐다.
반복적으로 혈압을 비롯한 바이탈을 체크한 김진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니터의 볼륨을 켰다.
띠! 띠! 띠! 띠! 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모니터에 120/8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바이탈 안정적입니다. 소변 잘 나오고 있습니다.”
환자가 살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김지훈은 주저앉을 뻔했다. 극도의 긴장이 갑자기 풀린 탓인지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렸다.
이준영 과장이 눈을 감고 있었다.
“다른 부위에 손상이 있는지 확인해.”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김지훈이 수술을 진행했다.
반질반질하고 매끈한 간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손상된 부위는 없었고, 진한 선홍색은 혈류가 원활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준영 과장이 했던 것처럼 위부터 시작해 소장과 대장까지 모두 확인했다.
탈색된 것처럼 창백한 빛을 보였던 장들이 제 빛깔을 찾기 시작했다. 살짝 자극을 주자 꿈틀꿈틀 움직였다. 내부 장기들이 차례차례 기능을 회복하고 있었다.
추가적인 손상은 없었다.
출혈로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던 복벽에서 슬슬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말초까지 피가 간다면 확실하게 출혈 부위를 잡았다는 의미였다.
“과장님, 더 이상의 출혈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확인해.”
꼼꼼하게 다시 살폈다.
손상된 부위는 더 이상 없었다.
“확실하게 없습니다.”
“드레인(심지) 박고, 마무리해.”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긴장을 풀지 못하고 물었다.
“드레인은 어디다 넣을까요?”
“왼쪽 횡격막 밑과 배 아래쪽으로 2개 심어. 마무리해.”
말을 마친 이준영 과장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수술에 대한 중압감에 눌린 김지훈은 인사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더대로 드레인을 박은 후 길게 숨을 내뱉은 김지훈이 열린 배를 보았다.
고비는 모두 넘겼다.
사실상 수술이 끝난 것이다.
갑자기 숨도 쉬기 힘들어졌다.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김지훈, 수술 아직 안 끝났어. 뭐 해?”
마취 시간이 길어지자 김진호가 소리를 질렀다.
환자에게는 하등의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번쩍 정신을 차린 김지훈이 복벽을 닫기 시작했다.
첫 아뻬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준영 과장을 대신했던 과정이었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며 손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절개 창을 봉합한 김지훈이 마지막 봉합을 끝냈을 때 환자가 깨어났다.
조용한 가운데 환자가 이동 침대로 옮겨졌다.
너무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병원이 발칵 뒤집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들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진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김지훈, 인턴 선생, 미스터 최, 간호사,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수술은 분명히 과장님이 하신 거야. 만일 새어 나가면 가만히 안 둔다. 알아들었어?”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김진호를 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돼. 김지훈에게 책임을 물을 거야? 과장님과 1년차는 책임과 권한이 완전히 달라.”
환자가 사망이라도 하는 날엔 누군가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었다. 과장이 수술했을 때와 1년차가 수술했을 때의 책임과 비난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진호는 당연히 김지훈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수술한 사람은 김지훈이지만, 집도의는 분명 이준영 과장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1년차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진호가 일일이 수술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확실하게 다짐을 받았다.
회복실로 옮겨진 환자의 옆에서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멍한 표정으로 볼펜만 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숱하게 보아 온 아뻬도 아니고, 비장 파열 환자를 수술했다. 어느 병원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3년차 후반 혹은 4년차나 되어야 받는 수술이었다. 그것도 뛰어나다고 인정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갓 1년차를 시작한 김지훈이 그런 수술을 한 것이다.
수술을 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문제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드레인을 살피며 출혈이 없는지 확인했다.
수시로 환자의 바이탈과 소변량까지 체크했지만 불안감은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쪼그리고 앉아 소변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누군가 어깨를 친 것뿐이었다.
“왜 이렇게 놀라? 환자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잖아. 괜찮을 거야. 잘했어. 지훈이 네가 환자도 살리고, 우리까지 살렸다.”
담담하게 웃는 김진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 순간 이준영 과장이 생각났다.
“과장님!”
덜컥 이준영 과장이 걱정됐다.
혹시 수술실 어딘가에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닐까?
급히 수술실을 뒤졌지만 이준영 과장은 보이지 않았다.
김진호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급한 마음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식, 상황이 그렇긴 하지만, 수술을 하고도 좋아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네. 과장님은 아까 나가셨다. 얼굴도 나아지셨고, 내과 과장님도 계시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라.’
다급하게 밖으로 나간 김지훈이 두리번거렸다. 이준영 과장이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수술은 잘 끝났나요?”
“보호자분, 과장님께 설명 못 들으셨나요?”
“선생님께 들으라고 하시던데요. 얼굴이 안 좋으시던데, 설마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니죠?”
보호자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김지훈이 애써 웃었다.
수술은 잘 끝났고, 오늘 하루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관찰한 후 안정되면 내일 아침에 병실로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곧 환자가 나오고, 신음을 내면서도 보호자를 알아보자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중환자실에 옮겨진 환자의 곁을 지키던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6시가 막 넘고 있었다.
진료가 끝날 시간이었고, 곧 회진을 돌아야 한다.
급히 병동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회진 준비를 한 후 스테이션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과장님은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프시기에 수술까지 못 하셨지? 안색이 되게 안 좋으시던데, 큰 병 아냐?’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불길한 생각은 꼭 현실이 되는 법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자 이내 수술이 떠올랐다.
복벽을 열고 피를 제거했다.
동맥을 잡고 주변 조직을 잘라 비장을 적출했다.
더 이상 손상된 부위가 없는지 확인하고 드레인을 박았다.
복막부터 피부까지, 절개 창을 닫았다.
이 모든 과정을 집도의의 자리에 서서 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살 떨리는 일이었다.
1년차의 능력을 훌쩍 벗어나고도 남는 수술이었다.
언젠가는 다가올 날을 꿈꾸며,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기쁘다 못해 팔짝팔짝 뛰어도 모자란 일이었지만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힘에 겨워 마지막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 이준영 과장이 걱정되기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7시가 다 됐다.
이준영 과장이 올라올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몸이 안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외래로 달려갔다.
모두 퇴근을 해 아무도 없었다.
마침 막 퇴근을 하는 최치수 과장이 보였다.
“최 과장님, 혹시 과장님 못 보셨어요?”
“이준영 과장님이요? 아까 퇴근하시던데요.”
“정말 퇴근하셨어요?”
“예. 수술 끝나고 바로 가시는 것 같아서 이상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신지 안색이 조금 안 좋으시던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총무과 과장답게 병원 내의 일에 빠삭했다.
잘못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수술을 못 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면 최소한 내과 과장에게 진료를 받거나 스스로 검사 정도는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냥 퇴근을 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전화를 해 볼까? 아니면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잠시 고민하던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의 집에 연락을 했다.
최치수 과장도 뭔가 이상한지 퇴근을 미뤘다.
“과장님, 김지훈입니다.”
(왜, 환자 있어?)
아직도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아닙니다. 괜찮으신가 해서요.”
(지금은 괜찮아.)
평소처럼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잠시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서 있던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와 다름없다면 이준영 과장의 말처럼 당장은 괜찮을 것이다.
‘내일 반드시 내과 진료를 받으시라고 해야겠다. 분명 어디가 상당히 아프신 게 틀림없어.’
최치수 과장과 인사를 하고 병동으로 올라가 일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중환자실에서 킵(keep)을 하며 수시로 병동과 응급실을 오갔다.
한시도 환자에 대한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환자에 집중했을 김지훈이 유난히도 산만해 보이자 안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김지훈이 어두운 안색으로 손만 저었다.
이준영 과장의 창백한 얼굴과 떨리던 손, 그리고 환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
이른 새벽, 밤새 잠을 못 이룬 이준영 과장이 물끄러미 환자를 앞에 두고 나무토막처럼 굳었던 자신의 손을 보았다.
한때는 두려울 정도로 칼바람을 일으킨 손이었다.
동료들이 어렵다고 하는 수술도 척척 해냈던 손이었다.
전공의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대학 병원 스태프가 됐다. 앞날은 순탄했고, 일반 외과 과장이 되는 일조차 당연하게 생각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그렇게도 거침없고 당당했던 일반 외과 의사가 몰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11년 전 치명적인 사고를 냈다.
비장 파열로 수술한 환자가 다음 날 사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였다.
가족의 치료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는 동료들의 말을 무시했다. 누구보다도 실력이 뛰어나다는 자신감, 아니 자만이 오판을 불렀다.
어쩌면 동료들을 불신했는지도 몰랐다. 후배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스스로 인정했던 이혁민 교수까지 말이다.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극도의 불안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갑게 식은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밤마다 나타났다.
술에 빠졌다. 툭하면 근무를 빼먹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만 보면 손이 떨리고 온몸이 굳어 수술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정신적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이해해 주던 동료들도 하나둘 지쳐 갔다. 그때 이혁민 교수가 옆에 없었다면 진작 폐인이 됐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은 모두 시도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문득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인생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