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반드시 살려야 한다 (1)
‘그새 무슨 일이 있으셨나?’
의아함도 잠시였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안호석과 서도훈이 피를 짜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이다.
김지훈과 이준영 과장을 본 보호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아들이 이상한데, 어떻게 된 겁니까?”
이준영 과장이 아무 말도 없이 CT를 확인한 후 환자를 보았다. 혈복강이 분명했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지훈과 보호자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답답한 숨만 내쉬었다.
‘후우! 왜 이렇게 결정을 안 내리시지? 이러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초조한 표정으로 결정을 기다리던 김지훈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과장님, 어떻게 할까요?”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준영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일반 외과 의사라면 당연히 망설이지 않고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가슴에 묻어 두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두려움이 밀려왔다.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 왔다. 하지만 절대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장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김지훈, 이 환자…….”
김지훈의 눈에서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보였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의지까지 떠올랐다. 그렇게 혼나면서도 한 번도 주눅 든 표정을 짓지 않았다. 수술이 끝날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준영 과장 자신이 1년차였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있었다. 두려움보다는 희망과 열정, 그리고 자부심이 가득했던 그 시절이 아른거렸다.
놀랍게도 마음속의 두려움이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이렇게 환자를 위하고 열정이 있는 놈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다. 아니, 이젠 날 위해서라도 벗어날 때가 됐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복막염 수술까지 한 이상 문제없다.’
이준영 과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술하자.”
무언가 표정이 이상했다. 하지만 보호자가 이내 동의를 했고, 김지훈은 수술 준비를 해야 했다.
김지훈이 추가로 피를 시키고 다시 한 번 바이탈을 체크한 후 수술실로 달려갔다.
복막염과는 달리 혈복강은 시간을 다투는 질병이었다.
수술 스케줄을 받아 든 김진호가 바로 수술실에 환자를 올리라고 했다.
빠르게 수술 준비가 끝났다.
마취가 끝나고, 병동 당직이던 서도진과 함께 드랩을 했다.
띠띠띠띠띠!
환자의 박동 수를 알려 주는 모니터가 쉬지 않고 삑삑거렸다. 위이잉, 소리와 함께 혈압을 측정할 때마다 날카로운 경고음까지 울렸다.
“간호사, 피 좀 짜자. 환자 상태가 안 좋다.”
김진호의 지시에 따라 마취과 간호사가 피를 짰다.
당장 출혈 부위를 찾아 지혈을 시켜야 했다.
한시가 급했지만 이제야 이준영 과장이 들어왔다. 그런데 환자의 배를 보며 뜸을 들였다. 김지훈의 초조한 눈빛과 마주 치고 나서야 복부 정중앙을 절개했다.
“CT 소견상 어디가 의심돼?”
“비장 파열이 의심됩니다.”
“간은?”
“사진상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배를 여는 동안 이상스럽게 질문이 많았다. 손이 느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다투는 수술이었다. 조금은 의아한 일이긴 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험이 많은 의사의 여유일까?’
복막을 여는 순간, 피비린내가 확 퍼졌다.
출혈량이 상당히 많아 검붉은 피가 절개된 부위를 타고 흘렀다. 즉시 복강 내에 찬 피를 제거하고, 최대한 빨리 비장부터 살펴야 했다. 그런데 이준영 과장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과장님.”
이준영 과장의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가가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심한 통증이라도 느끼는 사람처럼 나직한 신음만 터뜨렸다. 이준영 과장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치명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다른 질환도 아닌 혈복강이 발생한 환자에 대한 노티를 받고도 늦게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김지훈이 다급하게 물었다.
“과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이준영 과장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수술에 지장을 줄 정도로 어딘가 크게 불편한 것이 틀림없었다. 김지훈은 물론 김진호까지 크게 당황했다.
띠띠띠띠띠띠! 삐이이익!
수술이 지연되자 모니터가 요란하게 울렸다.
환자의 몸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계 직전까지 몰렸다.
조금만 더 지체됐다가는 사고가 날 상황이었다.
수술대에 오른 환자가 죽는다는 것은 일반 외과만이 아니라 마취과에게도 악몽이었다. 책임의 소재를 떠나 평생의 짐이 될 수도 있었다.
“과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김진호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준영 과장은 움직이질 못했다.
손은 굳었고, 환자는 막판으로 몰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힐끗 모니터를 본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피 제거해.”
“예?”
“빨리.”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지금은 누가 하느냐를 따질 시간조차 없었다. 혈복강 환자의 수술은 인턴 때 몇 번 들어갔던 것이 다였다. 비록 써드 어시스트를 섰지만 눈여겨봤고, 다행히 피를 제거하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탭(두툼하게 만들어진 수술용 헝겊).”
배 속에 탭을 넣자마자 피를 잔뜩 머금어 검붉게 변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탭으로 피를 제거했다.
출혈량을 재기 위해 수술실 바닥에 펼쳐진 탭들이 점점 늘어났다. 20여 장의 탭이 쌓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됐다.
따뜻하게 데워진 생리 식염수를 부어 장기 사이에 숨은 피까지 제거했다. 수술용 석션을 따라 피와 섞여 붉게 변한 식염수가 쉬지 않고 빨려 나왔다.
그사이 환자의 바이탈이 더욱 불안정해졌다.
띠띠띠디띠! 삐이이익!
너무 자주 울려 수술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김진호가 모니터의 소리를 죽였다.
지금도 이준영 과장은 식은땀만 흘리며 입도 열지 못했다.
‘이혁민 선생님이 피를 제거한 후에 뭘 했더라?’
비장 절제는 김지훈이 일반 외과를 하게 된 결정적인 수술이었다. 그 때문에 거의 1년 전이었지만 어느 수술보다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최대한 기억을 살린 김지훈이 비장 근처에 탭을 밀어 넣었다. 간접적인 압박이라도 해 출혈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도였다. 김지훈이 할 수 있는 일이 다 끝났다.
이준영 과장의 안색이 돌아오질 않았다.
식은땀이 너무 흘러 간호사가 이마를 닦아 주어야 할 정도였다.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수술은 무조건 진행해야 했다. 환자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과장님!”
김지훈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준영 과장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기구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는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어디가 얼마나 아픈 것일까?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피가 다 제거된 상태였지만 이준영 과장의 눈에는 환자의 열린 배 속이 온통 시뻘겋게만 보였다. 사나운 광풍처럼 머릿속을 헤집는 지난날의 기억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Table death(수술 중 사망)!
이준영 과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일이었다.
또다시 수술 중에 환자가 죽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이준영 과장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김지훈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돌처럼 굳은 몸으로는 수술할 수가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김지훈뿐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김지훈, 내 자리로 와.”
간호사가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1년차를 집도의 자리에 세우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진호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눈만 부릅떴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과장님, 진짜 김지훈에게 수술을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이준영 과장이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빨리.”
고함처럼 터진 소리에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집도의 자리로 갔다. 이준영 과장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겹게 움직여 김지훈의 자리에 섰다.
‘설마 지금 나보고 비장을 제거하라는 말씀이신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장부터 확인해.”
폭탄과도 같은 말이었다. 단 한 번도 수술해 본 적 없는 김지훈에게 수술을 맡긴 것이다. 김지훈이 선뜻 손을 움직이지 못하자 이준영 과장이 소리를 질렀다.
“어서 해.”
이제는 백지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숨까지 가쁜지 숨소리까지 거칠었다.
누가 보아도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김지훈을 보며 김진호가 소리를 질렀다.
“김지훈, 환자 죽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출혈 부위를 잡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입술을 꽉 깨문 김지훈이 눈빛을 굳히며 서도진을 보았다.
“도진아, 확실하게 끌어.”
강한 힘에 복벽이 넓게 벌어지자 비장이 보였다.
손상된 부위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헉헉거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탭으로 손상된 부위를 눌러.”
출혈을 막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압박이었다.
김지훈이 탭을 꾸겨 넣어 손상된 부위를 꽉꽉 눌렀다.
“동맥을 찾아.”
외과 의사에게 해부학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이혁민 교수의 오더로 리포트까지 썼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지만, 비장 동맥의 주행 경로만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손을 넣어 비장 주변을 촉진했다.
미약한 박동과 함께 단단하고 질긴 구조물이 만져졌다.
“동맥 확인했습니다.”
“앵글(끝이 ㄴ 자로 휘어진 기구)로 위아래를 잡아.”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힘겹기만 했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어서!”
‘후우! 난 할 수 있다. 아니, 하지 못하면 환자가 죽는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동맥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을 뚫고 앵글을 걸었다. 앵글에 걸린 동맥을 따라 손끝에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따르륵!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동맥 두 곳이 앵글 안에 잡혔다. 꽉 눌린 동맥의 감촉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잡았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간신히 손을 뻗어 앵글 사이에 잡힌 동맥을 잘랐다. 굵은 동맥의 단면이 확실하게 보였다.
“동맥 맞습니다. 확실하게 잘렸습니다.”
“출혈 확인해.”
김지훈이 비장을 눌렀던 탭을 제거했다.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비장 주변에 고였던 피인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모니터 소리마저 꺼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흘렀다.
어디선가 피가 술술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동맥을 묶었는데 어디서 출혈이 있단 말인가?
김지훈과 김진호가 동시에 외쳤다.
“과장님, 아직도 출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장님, 여전히 바이탈이 불안합니다.”
이준영 과장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비장으로 가는 동맥이 또 있다는 말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가 다시 떠올랐다.
석상처럼 굳은 이준영 과장의 얼굴이 파리하게 변했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
“김지훈, 동맥이 더 있어. 확인해.”
비장을 향해 손을 뻗던 김지훈이 돌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비장으로 가는 주요 동맥은 하나였다.
사람에 따라 한두 개의 동맥이 더 있기는 하지만 아주 드물었고, 주요 동맥보다는 훨씬 가늘었다. 손으로 만져 찾을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니었다. 더구나 환자의 혈압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박동까지 미약한 상태였다.
“과장님, 어떻게 확인합니까?”
방법은 비장을 지지하고 있는 모든 조직을 잘라 확실하게 묶는 것이었다. 경험이 충분하면 간단한 술기였다. 하지만 김지훈은 경험이 없었다.
이준영 과장이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
“과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