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이제야말로 1년차 시작이다 (2)
그 옛날 1년차였던 시절, 자신도 저런 눈빛을 보였을 것이다. 가장 아끼는 후배였던 이혁민도 그랬었다.
‘그래, 다시 해 보자. 최소한 두려움 때문에 회피하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내 개인적인 문제로 저렇게 배우려고 애쓰는 놈을 외면한다면 의사라고 할 수도 없다.’
이준영 과장이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무영등 불빛에 은색 메스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반짝였다.
김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드디어 수술이 시작됐다.
이준영 과장이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단번에 절개했다.
전기 소작기로 피하 지방을 잘랐다.
하얀 연기와 함께 지방이 녹으며 살 타는 냄새가 퍼졌다.
김지훈이 재빨리 절개 부위를 따라 흐르는 피를 닦았다.
이준영 과장이 집게로 하얗게 보이는 구조물을 잡았다.
리네아 알바(linea alba:백색선)였다.
흔히 복부 근육이 잘 발달된 모양을 왕(王) 자로 표현할 때 왕자 가운데 일자로 그려지는 선이 바로 백색선이었다.
좌우 복부 근육을 단단하게 연결하는 구조물로 혈관이 적어 거의 출혈이 없는 부위다. 그런 이유로 복부 정중앙을 절개할 때는 반드시 백색선을 통해 복부 내로 접근했다.
김지훈이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바로 무뚝뚝하면서도 약간은 톤이 높아진 목소리가 날아왔다.
“뭐 해?”
김지훈이 서둘러 반대쪽을 잡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탄다는 신호였다.
백색선을 절개한 이준영 과장이 복막을 앞에 두고 잠시 멈칫거렸다. 외부의 충격으로 발생한 피멍 때문에 빨갛게 보인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김지훈이 슬쩍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왜 이러시지? 내가 뭘 빼먹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빼먹은 것은 없었다.
잠시 후, 이준영 과장이 눈빛을 굳히며 수술용 가위로 복막을 절개했다.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절개 창을 통해 배 속이 훤히 드러났다. 다행히 출혈은 없었다.
이준영 과장이 안도하는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외상으로 인한 복막염의 경우 어디부터 확인해?”
‘어? 이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김지훈이 답을 하지 못하자 어김없었다.
“너 책 들고 다니면서 뭐 본 거야?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퍼스트를 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지 마. 위부터 확인하는 게 원칙이야.”
손상 부위 확인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위와 십이지장이 말짱한 것을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남은 소장을 배 밖으로 끌어냈다. 소장의 길이는 십이지장을 빼고도 5미터가 넘는다. 그렇게 긴 소장을 노련한 손길로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파열된 부위 세 곳을 찾아냈다.
파열된 부위를 깨끗이 소독하고 추가 손상이 있는지 확인한 후 봉합이 시작됐다.
“장을 수처 할 때의 포인트가 뭐야?”
다행히 수술 술기에서 매우 강조된 말이었다.
“반드시 점막을 연결해야 합니다.”
“수처 방법은?”
“점막은 연속 수처를 하고, 이후 겉면을 이중으로 다시 봉합해 줍니다.”
웬일인지 이준영 과장이 수술 술기의 핵심을 묻고 있었다.
큰 소리가 안 나오자 도리어 의아해진 김지훈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는 순간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이론과 실전은 천양지차였다.
“연속 수처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
“점막이 잘 연결될 정도로만 힘을 주란 말이야. 너무 세게 하면 장이 찢어지고, 너무 약하면 안 붙어. 봉합한 곳이 새면 재수술이야. 환자 배 또 열고 싶어?”
“김지훈, 너 실 안 잘라 봤어? 매듭에 실을 이렇게 많이 남기면 어떻게 해? 배 속에서는 이물이야, 이물.”
파열된 세 곳을 봉합하는 동안 새카맣게 타는 김지훈을 본 서도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래서 소문내지 말라고 했구나. 제일 뛰어나다는 지훈이 형을 이 정도로 태우면 다른 사람은 아예 죽이겠네.’
파열된 소장을 모두 봉합한 후 대장과 비장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준영 과장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물었고, 대답이 안 나올 때마다 비수를 날렸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김지훈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주요 과정이 끝나고 배 속 전체를 깨끗한 식염수로 닦아 냈다. 다시 한 번 손상 부위가 없는지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또 질문을 했다.
“김지훈, 드레인(drain:심지)은 어디에 넣어?”
꿀꺽, 침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너 일반 외과 1년차야. 기본 중의 기본은 알고 있어야지. 공부 좀 해. 이런 경우 3개를 넣어. 오른쪽에 넣을 때는 간 밑에 하나, 아랫배 깊숙한 곳에 하나, 그리고 수술한 부위 근처에 하나. 알았어?”
“예, 과장님.”
“드레인을 박는 이유가 뭐야?”
이건 확실히 배운 것이었다.
“배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물을 제거하고, 수술 후 장 내용물이 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도 아는 것만 제대로 대답을 하는구나.”
이준영 과장의 말에 도리어 서도진이 놀라며 김지훈을 보았다. 1년차에게 학생까지 거론하다니, 기분이 더럽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이 확실히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태움에는 끝이 없었다.
절개 부위가 완전히 다르고 크기 때문에 절개 창을 닫는 방법도 아뻬 수술과는 달랐다.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김지훈을 태운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었다.
“마무리해.”
서도진은 또 놀랐다.
학생 때의 기억으로는 분명 1년차 초반에는 수처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수술하는 내내 그렇게 화를 냈으면서도 15센티미터에 가까운 절개 창을 봉합하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김지훈은 더 이상했다. 그렇게 타고도 수술실에서 나가는 이준영 과장에게 힘차게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절개 창을 봉합하기 위해 집도의 자리에 선 김지훈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웃고 있었다.
어째 좋아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김지훈이 타다 못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 확실했다.
적어도 서도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뭐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탔는데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학생 때라면 몰라도 차마 미쳤냐는 소리까지 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의 눈가에 또 주름이 잡혔다.
이번에도 웃는 것 같았다.
마스크를 벗겨서라도 확인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도진아, 이제야 과장님이 날 가르치실 생각인 모양이야.”
“이게 가르치는 거예요?”
“야, 수술 포인트에 대한 방법을 물으시고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려 주셨잖아. 못 들었어? 이제 손만 따라가면 돼. 아유! 그게 문제야. 이놈의 손은 언제 쌩쌩 돌아가려나.”
김지훈이 자신의 손을 보며 끌탕을 했다.
미쳤다. 이마에서 흐른 땀에 수술용 모자가 흠뻑 젖었는데 저런 소리를 하다니, 확실히 미쳤다.
김지훈이 피부 봉합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련한 의사처럼 끝내주게 봉합을 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보기만 하던 김진호가 웃었다.
“김지훈, 이젠 내 말이 좀 이해가 돼?”
“예, 과장님.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할 일이 뭐가 있어. 그나저나 수처 하나는 참 끝내준다. 인턴 선생, 서도진이라고 했나?”
“예, 과장님.”
“김지훈 선생 따라서 열심히 해라. 인턴 막 마치고 이 정도로 수처 하는 사람 없다. 배워.”
쑥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김지훈이 미스터 최를 보며 말했다. 항상 퍼스트를 서다 써드까지 밀려서인지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인턴들이 온 이상 확실하게 해야 했다.
“미스터 최, 당분간은 모든 수술에 인턴 선생들이 들어올 겁니다. 이제부터는 미안하지만 써드를 섰으면 좋겠어요. 훨씬 경험이 많고 잘하시겠지만 우리도 배워야죠.”
정중한 말투와 은근한 칭찬에 미스터 최가 손사래를 쳤다.
“그럼요. 당연하죠. 저도 편하고 좋습니다.”
시작은 살벌했지만 마무리는 화기애애했다.
김지훈이 회복실로 옮겨진 환자 옆에 앉아 수술 후의 오더와 수술 기록을 작성했다. 이런 수술은 처음이었다. 오더 자체가 가물가물했다. 결국 환자가 병실로 올라갈 때까지 기본적인 사항만 낼 수 있었다.
수술실에서 나가던 김지훈이 서도진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준영 과장이 보호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수술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보호자들과 인사를 한 이준영 과장이 옆에 서 있던 김지훈을 보았다.
“외래에 있을 테니까 혹시 환자 있으면 그리로 연락해.”
“예? 외래에서 주무시려고요?”
“그래, 시간이 늦었다.”
시간이 늦었다고 해도 이준영 과장이 집에 안 갈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외래로 내려가는 이준영 과장을 급히 따라갔다.
“과장님, 잠자리가 안 좋으실 텐데.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제 숙소에서 주무시죠.”
“네 방에서? 그럼 넌.”
“전 아직 할 일이 남았고, 잘 곳도 많습니다. 응급실에서 자도 되고요.”
가만히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히 먼저 숙소로 올라간 김지훈이 대충 침대를 정리하고 수술 환자 기록 작성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주무십시오, 과장님.”
김지훈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이준영 과장이 피식 웃었다.
서울 병원에서 근무할 때 응급 수술이 늦게 끝나면 전공의 숙소에서 자곤 했다. 수술이 끝나면 당직인 삼사 년차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이 무척이나 컸었다.
이준영 과장이 옛 기억을 떠올리며 침대를 보았다.
침대보가 깨끗한 것이 잔 흔적이 없었다.
‘토요일부터 잠을 거의 못 잤겠지. 체력이 대단한 건지, 지독한 놈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즐겁다. 속이 까맣게 되도록 타다 보면 어느 날 훌쩍 커 있는 널 볼 수 있을 거다.’
침대에 누운 이준영 과장이 뒤척였다.
옛날 기억이 나서인지 오늘따라 이혁민 교수가 유난히도 생각났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저런 놈을 보냈으면 전화라도 하지. 하긴, 그렇게 무관심하게 대했는데 지금은 전화를 하기에도 껄끄럽겠지. 그래도 이 교수, 오늘은 왠지 서운하네. 자네도 내게 그랬겠지?’
생각이 많은 밤이었다.
무엇보다도 복막염 수술을 했다는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려 10년 만이었다. 이젠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준영 과장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쉴 시간이 없었다.
응급실 환자들이 밀려 있었다.
인턴들이 먼저 보기는 했지만 미숙할 수밖에 없어 김지훈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환자를 다 본 후 숙소에서 필요한 기록을 응급실로 가져와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한숨을 쉬었다.
진단명 : 외상성 소장 파열로 인한 범발성 복막염
(Panperitonitis due to traumatic small bowel rupture)
딱 여기까지만 간단했다.
오더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1. N.P.O(not per oral):금식
2. 수술 후 4시간까지는 30분마다 바이탈 사인 체크. 이후 안정되면 8시간마다 체크할 것
3. 아침까지 절대 안정
4. 분당 10리터로 산소 투여
5. 습도 조절
6. 엘 튜브와 폴리는 유지할 것
7. 분당 25가트로 하루 2500밀리리터의 수액을 투여할 것
8. 항생제는 8시간마다 투여
9. 아침 이후에는 조기 운동 시킬 것
10. 통증 호소 시 반드시 노티 후 투여
11. 시간당 소변량 30시시 이하 시 즉시 노티
기타 등등
오더도 아뻬와는 달리 상당히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수술 기록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끙끙대며 기록을 작성한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그새 또 환자들이 밀려 있었다. 인턴들에게 노티를 받는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월요일 새벽 3시였다.
토요일부터 지금까지 다해서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것 같았다. 수술실의 긴장감까지 더해져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뜰 수가 없었다.
불과 하룻밤도 안 지났는데 인턴들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누구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도진아.”
“예, 선생님.”
“나 2시간만 있다 깨워 줘. 졸려 죽겠다.”
비틀비틀 당직실로 들어간 김지훈이 그대로 쓰러졌다.
‘오늘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들의 차트는 언제 작성하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체력이 한계에 다다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노티를 받고 잠에서 깬 김지훈이 멍하니 흉부 사진과 CT만 보았다.
‘후우! 그렇게 오랄 때는 안 오더니 이젠 몰려오네. 죽었다.’
수술 환자와 기흉 환자를 빼고도 버스가 넘어가 난 교통사고로 입원시킨 환자만 근 20명이었다. 기본 차팅만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새로 온 환자의 흉부 사진에 떡하니 프리 에어가 떠 있었다.
6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