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4화 (114/1,329)

제9화 일반 외과 환자 좀 봅시다 (1)

정형외과 수술의 마무리는 거의 자신이 했다.

10년 동안 수처를 했는데, 어째 김지훈이 더 능숙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선생님, 수처를 엄청 많이 해 보신 모양입니다.”

김진호가 웃었다.

“미스터 최, 김지훈 선생이 수처를 잘해서 놀랍지? 무지하게 노력한 선생이야. 그런 노력은 아무나 못하지.”

김지훈이 얼굴을 붉혔다.

사실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퍼스트를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환자가 회복되길 기다리는 동안 김지훈은 오늘의 수술을 계속 상기했다. 머릿속으로도 이준영 과장의 손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반복적인 경험이 아니면 제대로 어시스트할 방법이 없었다.

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질환에 따른 수술 방법과 과정만 전문적으로 기술된 책이야말로 훌륭한 조언자였다. 아뻬 수술 편을 찾은 김지훈이 실제 수술을 연상하며 머릿속에 수술 과정을 새겼다.

한참 책에 빠져 있을 때 병동에서 신환이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다. 외래에서 입원시켰다면 수술 환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급히 병동으로 간 김지훈이 환자를 확인했다.

우측 서혜부 탈장 환자였다.

“과장님이 내일 수술하신다고 준비하시래요.”

부랴부랴 환자를 보고 수술에 필요한 오더를 냈다.

탈장 수술은 아뻬처럼 기본적인 수술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에겐 어떤 수술이든 처음이었고, 무엇이든 혼자 준비해야 했기에 2배로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70세 고령 환자라 주의할 점도 많았지만 그보다 다른 걱정이 앞섰다. 아뻬 수술은 많이 보기라도 했지만 탈장 수술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큰일 났다. 아뻬 어시스트도 제대로 못했는데, 탈장은 또 어떻게 하지?’

“숙소에 있을 테니까 검사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 주세요.”

정신없이 책을 뒤져 탈장 편을 읽었다.

질환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수술 방법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끙끙대며 책을 읽던 김지훈이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에 투덜거리며 병동으로 향했다.

“다른 환자들 검사 결과도 이렇게 빨리 나왔었나?”

혈액 검사 결과와 흉부 사진을 보던 김지훈이 ‘끙’ 소리를 냈다. 흉부 사진에 이상이 있었다. 전신 마취에 지장이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에게 노티를 했다.

“김지훈입니다.”

(왜?)

“내일 수술 예정인 탈장 환자의 흉부 사진에 이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일 수술한다. 해결해.)

뚜뚜뚜뚜!

이준영 과장에게 예외는 없었다. 고개를 흔들던 김지훈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오후 3시였다.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차트와 흉부 사진을 들고 방사선과로 달려가 판독을 받았다. 예전에 결핵을 앓았던 흔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내과 컨설트까지 받아야 한다고 배웠다.

내과 과장이 한창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틈을 봐 잽싸게 진료실로 들어가 컨설트를 봤다.

“별거 아닙니다. 폐에는 문제없어요.”

“감사합니다.”

“응급실 환자 잘 봐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과장님.”

끝이 아니었다. 재빨리 수술 스케줄표를 작성하고 마취과로 올라가 김진호에게 제출했다. 컨설트 내용을 자세히 살핀 김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9시에 하자. 그리고 음성이라고 예외는 없다. 정규 수술 스케줄은 오후 5시까지 제출해. 넘어가면 안 받는다.”

“예, 과장님.”

과장이라는 소리에 김진호가 크게 웃었다.

적정한 때 적절하게 아부하는 기술이 점점 늘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위한 처신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새 오후 회진 시간이었다.

이준영 과장의 표정이 약간은 갑갑해 보였다.

‘10년이 지났는데 나도 모르게 예전 습관이 나오다니, 우습군.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나?’

대학 병원에 근무할 당시 믿을 만한 전공의에게는 수술 마무리를 줬었다. 그런데 첫 수술을 들어온 김지훈에게 마무리를 맡겼다니,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일과를 다 마쳤다.

내일 있을 탈장 수술에 대해 확실하게 알기 위해 책과 씨름하려는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응급실이 이상하게 바빴다.

음성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슬슬 몸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낮에는 한가하다고 해도 마냥 잠을 잘 수는 없었고, 밤에는 당연히 조각 잠을 자야 했다.

낮밤이 바뀌는 것만큼 힘든 상황도 없었다.

인턴 때와는 달리 환자에 대한 부담이 커 은근히 스트레스까지 받았다. 조금씩 쌓인 피로를 못 이긴 김지훈이 환자를 보는 사이사이에 깜빡깜빡 졸았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뜬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6시 30분이었다.

‘으아악! 비상이다. 씨펄! 깨워 달라고 할걸.’

정신없이 드레싱을 하고 회진 준비를 했다.

하필이면 신환도 5명이나 입원시켜 더욱 시간이 부족했다. 이준영 과장이 올라오기 직전에야 모든 준비를 마쳤다.

여느 때처럼 회진을 돌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할 일이 없을 때였지만 탈장 환자 수술이 있는 오늘은 달랐다. 회진이 끝나자마자 수술실로 내려가 수술 준비를 해야 했다.

제대로 잠을 못 잔 데다 머리까지 띵해 탈장 수술 과정이 가물가물했다. 걱정이 앞선 김지훈은 혼자 중얼거리다 머리를 쳤다.

‘야단났네.’

수술이 시작되는 순간 걱정이 현실이 됐다.

어찌어찌 피부 절개까지는 넘어갔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 들어가서는 여지없었다.

“탈장 수술의 원칙이 뭐야?”

“복벽을 강화시키는 겁니다.”

이준영 과장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그걸 아는 놈이 이따위로 하냐는 것 같았다.

“타이 확실하게 해.”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한지 몰라?”

“너, 해부학은 배웠어?”

급기야 해부학이란 말까지 튀어나왔다.

등이 서늘해지고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맺혔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수술의 핵심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순간 해부학이란 말에 중요한 포인트를 기억해 냈다.

서혜부 탈장이 남자에게만 발생하는 이유가 있다.

고환으로 이어지는 혈관은 배 속에서 복벽을 통과해 고환까지 주행한다. 따라서 복벽에 혈관이 통과하는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젊을 때는 근육이 강해 구멍을 단단히 조여 장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반면 나이가 들면 근육과 주변 조직이 점점 약해져 구멍이 늘어나게 된다. 한계점을 지나게 되면 결국 그 공간을 따라 장이 빠져나온다.

수술 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고환으로 주행하는 혈관이 만들어 낸 구멍 주위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김지훈이 눈에 힘을 주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의 빠른 손놀림을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뚝뚝한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똑바로 못해?”

“정신 어디에 팔고 있는 거야?”

긴장으로 인해 땀만 뚝뚝 흘리는 사이 중요 과정이 모두 끝났다.

“마무리해.”

이번 수술도 피부 봉합은 김지훈의 몫이었다.

새카맣게 타들어 간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긍정적인 생각은 힘이다. 체계적인 트레이닝은 못 받을지라도 1년차들은 꿈도 못 꿀 퍼스트를 서고 있지 않은가!

‘원래 100일 당직 때는 수처도 안 준다는데, 퍼스트에 피부 봉합까지 주시는 게 어디야. 이것도 복이다. 다음에는 기필코 해내고 만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의외로 힘찼다.

이준영 교수의 눈빛이 묘해졌다.

아뻬에 이어 탈장 수술 때도 심하게 태웠다.

서울 병원에 근무했을 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의기소침해 져야 했다. 더욱이 가장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1년차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의외로 희한한 구석까지 있는 놈이었다.

‘멘탈 하나는 제법 강하네.’

이준영 교수가 수술실을 나가자마자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긍정적인 생각도 다리가 풀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한 번만 더 수술에 들어갔다가는 쓰러질 것 같았다.

차라리 대놓고 욕을 먹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토요일 오전 일과가 모두 끝났다.

오늘로 딱 일주일이 지났다.

김지훈이 피곤한 모습으로 환자 리스트를 보았다.

총 환자 30명.

처음 왔을 때보다 환자를 무려 15명이나 더 늘렸지만 일반 외과 환자는 아뻬 환자 둘과 탈장 환자 한 명뿐이었다.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두 번째 아뻬 환자를 떠올린 김지훈이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수술 중에 이준영 과장이 한 말만 생각하면 화가 나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번째도 이따위로 할래?’

정말 생각도 하기 싫었다.

응급실 분위기도 변했다.

한 시간에 두세 명이었던 환자가 이젠 대여섯 명으로 늘었다. 어제는 심근 경색 환자까지 와 밤새 난리를 쳤다. 내과 과장과 함께 심폐 소생술을 해 간신히 살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더 극심한 피로를 느꼈을 것이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1년차치고는 편하게 일하는 것 같은데 아뻬 퍼스트도 제대로 못 서고 정말. 책으로라도 수술 공부를 해야겠다. 오늘이나 내일 인턴 선생들이 오겠지? 그러면 시간은 많이 남겠네.’

인턴들이 온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후배이긴 하지만 이제 함께 일할 동료가 오는 것이다.

김진호나 김대성도 같은 전공의긴 했지만 연차나 나이 차이가 너무 났다. 게다가 김대성은 수술에 외래 환자까지 제법 많아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김지훈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병실로 향했다.

안면부 열상으로 입원했던 환자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간호사와 함께 드레싱 카를 끌고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보호자들이 바글바글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몰라도 환자와 관련 있는 사람은 다 온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응급실에서 보았던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럼요. 퇴원하는데 와야죠.”

김지훈이 환자의 얼굴에 붙였던 거즈를 제거했다.

보호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상처로 쏠렸다.

실밥을 다 제거하자 다들 잘 나았다며 한마디씩 했다.

“환자분, 오늘 퇴원하시고요. 워낙 상처가 크고 얼굴이라 흉이 눈에 잘 보일 겁니다. 만일 흉을 제거하고 싶으시면 6개월 정도 기다리셨다가 제거술을 받으시면 됩니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 보던 환자가 물었다.

“생각한 것보다 흉하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흉 제거가 여기서도 되나요?”

“그건 좀 힘듭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보험이 안 되니까 비용이 좀 나오실 거예요.”

“얼마나 나올까요?”

김지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전화로 물어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원무과에 문의하시면 번호를 알려 드릴 겁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병실에서 나온 김지훈이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의 호들갑에 피식 웃었다.

“어머머! 역시 친절하시네. 저런 선생님이 어디 있다가 이제야 오셨데. 안 그래요?”

“그러게. 그런데 이 병원 환자가 많아진 것 같지 않아? 저번에는 한산했는데 오늘은 환자들이 꽤 많아 보이네.”

“내 생각에는 저 선생님 때문인 것 같아요.”

“저 선생님 때문이라니?”

“며칠 전 우리 애 얼굴이 찢어져서 응급실에 왔었는데 환자를 얼마나 잘 보시던지. 병명이 뭐라더라? 하여간 학생 하나가 숨이 차서 왔는데 가슴에 수도 줄 같은 걸 꽂아서 금방 해결하더라구요. 정말 실력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보호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간호사가 새침을 떨었다.

“선생님 때문에 우리는 일이 많아져서 죽겠는데, 환자하고 보호자들은 신났네요. 김지훈 선생님, 환자 좀 그만 입원시키세요.”

“그럴까요? 일단 원장님께 우리 간호사의 불만을 말씀드리고 여쭤 볼게요.”

김지훈의 너스레에 간호사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안 돼요.”

비록 일반 외과 환자는 아니지만 무사히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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