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2화 (112/1,329)

제8화 경험이 있고 없음의 차이 (2)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환자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하루 종일 찌뿌듯하던 몸이 개운해졌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도 편했다.

바쁘게 움직이며 환자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쉽다면 일반 외과 환자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사흘째였지만 하도 답답해 간호사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일반 외과 환자가 없어요?”

“네. 제가 여기 온 지 5년 됐는데, 일반 외과 환자는 정말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그 흔한 아뻬도 없어요?”

“있기야 있죠. 근데 솔직히 이준영 과장님이 밤에는 콜을 잘 안 받으셨어요. 밤에 와 봐야 의사도 못 만나고 충주나 청주로 가야 하는데 누가 오겠어요? 시골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벌써 여기 와 봐야 수술 못 받는다는 소문이 쫙 났죠.”

김지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낮에 외래로 오는 환자들만 수술을 한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아뻬 수술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조금이라도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더더욱 오지 않을 것이다. 동네 의원들도 환자를 의뢰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비상이었다.

이렇게 3개월을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최소한 내원한 환자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뿐이었다.

바람은 바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환자들의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평소 주중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인 7명의 환자를 입원시켰다. 그중 3명이 일반 외과에 입원했지만 역시나 정형외과 문제가 없는 외상 환자였다.

다음 날도 일상에 변화는 없었다.

인턴 때보다 더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준영 과장은 아직도 무뚝뚝하기만 했고, 몇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정말 한심한 일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정식으로 1년차를 시작할 동기들을 생각하니 초조하기까지 했다. 낮에는 시간이 남아돌아 김진호를 찾아가 한 시간이나 놀다 왔다.

‘이번 주가 지난다고 뭐가 변하나? 이러다 정말 3개월 동안 허송세월하는 거 아냐?’

한참 일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숙소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회진이 끝나고 나서도 별일이 없었다. 착잡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김지훈이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응급실이었다.

왜 이렇게 신이 나는지!

급히 응급실로 내려가니 아이 하나가 얼굴에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안면부 열상 환자였다. 그런데 보호자인 엄마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지훈을 본 보호자가 웃었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구시죠?”

“315호 환자 때문에 두 번이나 봤는데.”

번뜩 유난히 말이 많았던 여인이 생각났다.

“아! 얼굴 꿰맨 환자 면회 오셨던 분이구나. 사촌 되신다고 하셨죠?”

“맞아요. 그걸 다 기억하시네.”

김지훈이 환자와 사촌 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이 엄마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 아이 엄마세요?”

“네, 제가 엄마예요. 제가 이 병원 간호사 한 명을 잘 아는데, 선생님처럼 잘 꿰매시는 분은 처음 봤다고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래서 원래는 충주로 가려고 했는데, 이리로 왔어요. 우리 애 잘 좀 꿰매 주세요.”

그동안 몇 명 꿰매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듣다니, 솔직히 의외긴 했다. 아이 엄마의 칭찬에 은근히 뿌듯해진 김지훈이 정말 모든 신경을 써서 수처를 했다.

농담까지 해 가며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자 완전 난리가 났다. 아이 엄마가 간호사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머! 나 저런 선생님 처음 보네. 실력도 좋으신 분이 어쩜 저렇게 친절하실까.”

간호사가 맞장구를 쳤다.

“그것뿐인 줄 아세요. 며칠 안 되셨지만 정말 환자를 꼼꼼히 보세요. 툭하면 시끄러웠었는데, 요 며칠 동안은 응급실에서 큰 소리 한 번 안 났다니까요.”

“그래요? 이제 아프면 저 선생님한테 와야겠네.”

은연중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지훈의 얼굴이 빨개졌다.

수처 하나로 이런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다.

드레싱을 막 끝내고 일어나려는 순간 응급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환자가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간호사들이 급히 환자를 침대에 눕혔다.

김지훈이 아이 엄마에게 간단히 설명을 마친 후 환자에게 다가갔다.

“바이탈은 어때요?”

“혈압은 120에 80인데 맥박이 100회가 넘고, 호흡수도 30회가 넘어요.”

간호사가 정석대로 답을 하자 김지훈이 살짝 웃어 주고는 환자를 살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갑자기 오른쪽 가슴이 아프면서 답답해요.”

“언제부터 그랬죠?”

“어제 아침부터요.”

“그전에 심하게 운동을 했거나 어디 부딪친 적은 없어요?”

“그런 적 없는데요.”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청진을 했다. 우측 흉부의 호흡 소리가 조금 미약한 것 이외에는 특별한 소견은 없었다. 하지만 전에 몇 번이나 봤던 증상이었다.

때마침 환자 수속을 하고 온 보호자가 한걱정을 했다.

“선생님, 우리 애 어디가 아픈 거죠?”

의심되는 질환이 있었지만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거칠게 노는 남자애들의 경우 단순한 근육통이 발생해도 똑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외상이 없긴 하지만, 통증이 심하고 호흡도 곤란해 하니까 X-ray를 찍어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진 나오는 대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환자가 촬영을 하는 사이 부지런히 차팅을 한 김지훈이 흉부 사진을 뷰 박스에 걸었다.

의심한 대로 기흉이었다.

김지훈이 침착하게 방사선 사진 소견과 함께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기흉이 발생했네요. 폐에 구멍이 나서 공기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오는 병입니다. 원인은 나중에 CT를 찍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구요. 지금 바로 가슴에 도관을 넣어서 공기를 빼 주고, 폐에 난 구멍이 아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깜짝 놀란 보호자가 말까지 더듬었다.

“폐에 구멍이 났다고요? 그리고 가슴에 뭘 넣어요?”

“기흉이라는 병에 사용하는 튜브가 있습니다. 환자가 크게 힘들어 하는 치료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충주나 청주로 가야 합니까?”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흉부 도관을 박을 자신은 충분히 있었지만, 합병증은 물론 도관 삽입 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김지훈이 그런 문제들을 충분히 설명한 후 답을 했다.

“우리 병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가시겠다면 소견서를 써 드리겠지만 서두르셔야 합니다. 기흉이 점점 커지면 말씀드린 것처럼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청주까지 갈 시간이 있을까요?”

“그건 저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앰뷸런스 내에서는 응급 처치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보호자에겐 겁이 덜컥 날 말이었지만 확실하게 경고를 해야 하는 질환이었다. 실제로 도중에 긴장성 기흉이라도 발생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었다.

보호자가 고민스러운지 바로 결정을 하지 못했다.

흉부 도관을 넣는다는 말에 간호사들도 놀란 눈으로 김지훈만 보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던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솔직히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소견서 준비하고, 보호자분이 결정하면 바로 할 수 있도록 체스트 튜브 박을 준비 합시다.”

간호사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흉부외과가 없는 탓에 흉부 도관 삽입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김지훈이 보호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필요한 기구들을 가리켰다.

마침 흉부 도관이 있었고, 간호사의 보조도 거의 필요 없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수처 세트도 꺼내요. 환자분이 다른 병원으로 갈지 모르니까 풀진 말고요.”

그사이 20분 정도 흘렀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호자분, 이제는 결정하셔야 합니다. 바로 가시든지, 아니면 지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정말 여기서 해도 괜찮습니까?”

“제가 직접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때론 자신감을 확실하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응급실을 돌며 배운 것 중 하나였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실력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던 보호자가 동의를 했다.

음성 병원은 미덥지 못했지만, 왠지 김지훈은 믿음이 간 것이다.

청주나 충주에 가면 모든 검사를 다시 할 것이고,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준영 과장에게 노티를 하려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수술 환자 말고는 연락하지 마. 그리고 네가 치료할 수 있는 환자만 입원시켜.’

위압적인 체구와 무뚝뚝함 때문인지 마치 방금 전에 들은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김지훈이 한숨의 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노티 하면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다.

변상훈 과장의 말과 도관을 삽입할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미 경험이 있었지만 사람의 몸은 다 다르다. 똑같은 치료라도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지금은 뒤를 받쳐 줄 선배 의사도 없었다.

국소 마취를 하고 피부를 절개했다.

켈리(끝이 둥글고 구부러진 집게 모양의 기구)와 롱(long) 켈리를 이용해 흉곽에 길을 만들었다.

단단한 흉막이 느껴지는 순간 강하게 밀어 넣었다.

가죽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흉강에 고여 있던 공기가 마치 공에서 바람 빠지는 것처럼 빠져나왔다.

흉강 외측을 따라 흉부 도관을 진행시켰다.

재빨리 도관을 피부에 고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불과 20분도 안 돼 모든 과정이 끝났다.

남은 일은 확인뿐이었다.

간호사가 흉부 사진을 걸었다.

정확한 위치에 도관이 들어가 있었다.

김지훈이 나지막한 숨을 내쉬며 결과를 설명했다.

“보호자분, 잘 들어갔습니다. 이대로 아물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CT는 적당한 때를 봐서 찍겠습니다. 환자분, 고생했어요. 간호사, 병실 준비되는 대로 환자 올립시다.”

초조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던 보호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필요한 사항들을 기록했다.

‘이것도 수술 기록지처럼 작성해야 하나? 모르겠다, 일단 작성하자.’

열심히 도관 삽입 과정을 떠올리며 꼼꼼히 기록하던 김지훈은 누군가가 눈앞에 자꾸 아른거리자 슬쩍 눈길을 돌렸다. 얼굴을 꿰맨 아이의 엄마가 아직도 병원에 있었다.

“어머머! 세상에 가슴을 뚫는 것도 하시네. 저 선생님 이름이 김지훈 선생님 맞죠? 대단하네, 정말 대단해.”

처음 봤다면 환자나 보호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갔어도 벌써 갔어야 할 사람이 이걸 구경하고 있었다니, 오지랖도 꽤 넓은 아낙이었다.

겁도 없는 걸까?

아직 창밖은 깜깜했지만 어느덧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아침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김지훈이 기지개를 펴며 응급실 기록을 보았다.

외과에만 기흉 환자를 포함해 4명을 더 입원시켰다.

‘그럼 환자가 총 22명인가? 아뻬하고 탈장 수술한 환자들이 오늘 퇴원하면 우리 과 환자는 한 명도 없네. 내가 일반 외과 전공의야, 아니면 인턴 2년차야.’

한숨을 폭폭 쉬며 병동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또 한 명의 환자가 들어왔다. 시간이 애매모호해 눈가를 찌푸리던 김지훈이 돌연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오른쪽 아랫배를 잡고 들어오는 모습이 아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환자가 침대에 눕자마자 진찰을 한 김지훈이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했다.

환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확실한 아뻬였다.

드디어 일반 외과 환자가 온 것이다.

“환자분, 맹장염이 의심됩니다.”

“맹장이요?”

새벽 6신데 청주나 충주로 가야 한단 말인가?

환자와 보호자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환자에게 수술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100프로 확실한 진단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 하지만 다른 질환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단 필요한 검사부터 하겠습니다. 과장님도 진찰을 하셔야 하고요.”

“이 시간에 여기서 수술할 수 있습니까?”

야간에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히 박힌 모양이었다.

시골 바닥은 정말 좁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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