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경험이 있고 없음의 차이 (1)
신중하게 벌어진 상처를 맞춰 가며 흡수성 봉합사로 피하 조직을 봉합했다. 상처가 깊은 경우 피부보다 더 정교하게 봉합을 해야 하는 부위였다. 그래야 흉도 덜 생겼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봉합을 해 나가자 간호사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놀랍게도 수처 하나만큼은 과장들 못지않았다. 도리어 더 세심한 면이 있었다.
김지훈의 자신 있는 손놀림과 간호사의 경험이 어우러졌다.
어느새 피하 조직을 다 꿰맨 김지훈이 피부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는 실인 6번 나일론으로 촘촘하게 피부를 연결했다.
구미 성형외과에서 배운 대로 두툼하게 거즈를 대 상처를 압박했다. 2차 출혈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딱딱 각을 잡아 드레싱을 하는 것으로 1시간 만의 모든 치료가 끝났다.
모자와 수술복이 은근히 땀에 젖어 있었다.
긴장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보호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잘 끝났습니까?”
“예, 봉합은 잘됐고요. 앞으로 염증만 안 생기면 5일 후에 실밥을 풀겠습니다.”
“그때까지 입원을 해야 하나요?”
“퇴원은 과장님께서 결정하실 겁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이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환자가 김지훈을 보며 힘겹게 웃었다.
표정이 뭔가 기괴하게 보였지만 얼굴 반이 거즈로 덮인 데다 마취까지 풀리지 않았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 내려온 김지훈이 당직실에서 끙끙댔다.
수술실에서 봉합을 한 이상 수술 기록을 작성해야 하는데, 모델이 될 만한 기록이 없었다. 한 시간에 걸쳐 겨우 작성을 했다. 수술실에서보다 이마에 땀이 더 맺혀 있었다.
슬슬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환자 수는 많지 않은데 의외로 입원할 환자들이 많았다.
아직까지는 환자를 진료하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점점 여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진료 후 노티만 하면 끝났던 인턴 때와 입원까지 책임져야 하는 1년차의 일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거 만만치 않네. 에이, 씨! 우리 과 환자는 하나도 없는데 이게 뭐냐.’
날밤을 새운 것은 아니지만 한 시간 이상을 자지는 못했다.
그래도 환자를 보던 도중 새로운 힘이 솟았다.
또 한 명의 원군을 만난 것이다.
팔이 부러진 환자 때문에 정형외과 과장에게 노티를 하는 순간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김대성 선생님!”
(그래, 나야, 인마. 넌 새벽부터 노티냐. 입원시키고 항생제 좀 써. 아침에 보자.)
“예, 선생님.”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다, 졸다, 환자를 보다 보니 어느새 월요일 아침 6시였다. 방금 내원한 환자를 진료한 김지훈이 부랴부랴 병동으로 향했다.
일반 외과에만 안면부 열상 환자를 포함해 주말 동안 6명을 입원시켰다. 환자 리스트를 새로 작성해 한 부 더 복사하고 서둘러 회진 겸 드레싱을 했다.
혹시나 환자에 대한 기록이 빠지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하고 나니 7시 반이었다.
환자 스무 명 남짓에 맥이 다 빠졌다.
그 시간, 응급실에 병원장이 들어섰다.
산부인과 과장을 겸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많고 산부인과 환자는 적어 진료보다는 행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개인 병원의 성격이 강한 음성 병원에 근무하는 이상 최소한의 밥값은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늘릴 방법은 없고, 이거 참! 일반 외과 1년차가 오면 도움이 좀 되려나?’
인사를 하는 간호사들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표정은 무척 밝았다.
“아침부터 좋은 일들 있어? 얼굴들이 좋네.”
흔히들 말하는 충청도 사람 기질이 있는지 말이 정말 느릿느릿했다. 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간호사가 응급실 기록을 슬며시 내밀었다. 원장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입원 환자가 왜 이렇게 많아. 우리 과장님들이 주말에 일을 열심히 하신 모양이네.”
평소에는 주말이라고 해도 대여섯 명이 다였다. 그런데 무려 내과 4명, 외과 6명에 정형외과 4명까지 14명이나 입원을 한 것이다. 게다가 몇몇 환자는 병명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동안 충주나 청주로 보냈던 환자들이 떡하니 입원을 한 것이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원장님, 서울에서 오신다던 일반 외과 선생님이 토요일 저녁부터 근무를 하셨어요.”
“오늘부터 근무한다고 했는데, 벌써 왔어?”
“네. 덕분에 우리 간호사들이 밤새 잠도 못 자고 바빴다네요. 맛있는 것 좀 사 주세요.”
“허허허! 이름이 뭐야?”
“김지훈 선생님이요.”
원장이 응급실 기록을 보며 웃기만 했다.
원장실로 가던 도중 최치수 과장과 마주쳤다.
“원장님, 응급실 기록 보셨죠? 아직 이틀밖에 안 됐지만 정말 좋은 선생님이 오신 것 같습니다.”
“두고 봐야지.”
원장이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회진을 기다리고 있던 김지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김대성을 보며 반갑게 웃다 말고 흠칫 놀랐다. 김대성 뒤로 키가 185 정도에 어깨까지 쫙 벌어진 거구가 한 명 보였다.
가히 운동선수를 방불케 하는 체격이었다.
가운에 이준영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김지훈입니다.”
김대성이 손을 살짝 흔들며 묘하게 웃었다.
어제 김진호와 함께 인사를 하러 갔다가 자신도 깜짝 놀랐었다. 보기 드문 거구에 무뚝뚝하기까지 하니 김지훈이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테이션 앞에 선 이준영 과장이 떡하니 팔짱을 끼고 김지훈만 보고 있었다. 어째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금 과장이 제대로 된 놈을 보냈을 리가 없지. 이제 인턴 마친 놈이라. 하긴, 뛰어난 놈이 오면 또 뭐 하겠어. 내가 이 모양인데.’
묵묵히 서 있던 이준영 과장이 입을 열었다.
“뭐 해?”
다짜고짜 날아온 말에 당황한 김지훈이 급히 환자 리스트와 함께 차트를 이준영 과장 앞에 정렬했다.
“신환은?”
대답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단 몸부터 먼저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김지훈이 재빨리 신환 차트를 따로 모으자 이준영 과장이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입원 기록과 안면부 열상 환자 수술 기록을 한참 동안 보던 이준영 과장이 아무 말도 없이 병실로 향했다.
익숙한 일인지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가 재빨리 안내를 했다. 바짝 긴장한 김지훈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괜찮죠.”
환자들에게도 딱 그 한마디였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환자들도 크게 불편하지 않는 한 말을 꺼낼 것 같지가 않았다. 휙휙 회진을 돌던 이준영 과장이 안면부 열상 환자 앞에 섰다.
“드레싱.”
“예, 과장님. 아침에 했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았다.
어느새 사라진 간호사가 드레싱 카를 끌고 왔다.
‘아! 드레싱을 직접 하신다는 말씀이셨구나.’
솥뚜껑만 한 손으로 거즈를 푼 이준영 과장이 조용히 상처를 살폈다. 이리저리 얼굴을 돌리며 확인한 후 직접 드레싱을 다시 했다.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아 더욱 긴장된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드레싱을 하는 모습은 보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뜻밖이었다.
섬세하고 꼼꼼해 환자가 얼굴도 찌푸리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거구의 거대한 손에서 이런 손길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드레싱을 마친 후 남은 환자에 대한 회진을 돌았다.
이준영 과장이 묘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대충 일하는 놈은 아닌 것 같고, 수처는 1년차가 보일 수 있는 실력이 아닌데.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놈이야? 후우! 필요도 없는 전공의는 왜 보내서 신경 쓰이게 만들어?’
눈가를 찌푸리던 이준영 과장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앞으로 오더는 네가 내.”
첫 대면이 이렇게 끝나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오더까지 맡긴 것을 보면 일단 합격은 했다는 말인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대로 못하면 죽을 줄 알라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왠지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드시나?’
기운까지 쪽 빠져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 동안 김대성이 회진을 끝내고 돌아왔다. 그나마 힘이 다시 생겼다.
“김대성 선생님, 선생님도 3개월 동안 근무하세요?”
“응. 진호 형하고 같이 우리 모두 3개월이다. 네가 음성에 올 줄은 몰랐다. 무슨 생각들이신지. 쯧! 하여튼 이왕 온 거니까 열심히 하자.”
“예, 선생님. 근데 혹시 이준영 과장님을 잘 아세요?”
“왜, 겁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체구도 어마어마하신 분이 말씀까지 없으시니까 은근히 겁나네요.”
“그렇지? 저 주먹에 맞으면 최소한 사망일 것 같다. 사실 나도 이준영 과장님은 처음 봐. 진호 형도 임상 실습 돌 때 병원에서 잠깐 봤다고 하더라.”
김지훈이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 학교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어요?”
“그렇긴 한 것 같은데, 왜 여기 계신지는 진호 형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하여간 조심해. 어제 술 한잔하다가 체하는 줄 알았다. 무슨 양반이 저렇게 말이 없는지.”
김대성도 조금은 긴장하는 눈빛이었다.
“예, 선생님. 그리고 정형외과 환자 다 노티 드려요?”
“간단한 환자들은 알아서 입원시키고, 수술할 환자만 노티 해. 네가 어제 입원시킨 환자 덕분에 오자마자 수술부터 하네. 나도 음성에 온 김에 칼바람 좀 날려 보자.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어떻게든 입원시켜. 알았지?”
정형외과 4년차라고 해도 서울이나 천안에서 수술을 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김대성도 수술에 목이 말라 있었기에 음성이 도리어 기회의 땅이었다.
배우고자 하는 1년차에게 음성 병원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3년차인 김진호나 4년차인 김대성에게는 최고의 기회였다.
김지훈이 부러운 눈길로 김대성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별로 좋아하시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럴 리가 있어? 그냥 성격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김지훈이 너 정도면 며칠 안으로 좋아 죽으실 거다.”
“그럴까요?”
약간은 의기소침해진 김지훈을 본 김대성이 별걱정을 다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1년차 팔자 한번 좋았다.
응급실에 환자가 없으면 할 일이 없었다.
간간이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를 보는 것 말고는 저녁 회진 때까지 병동에서도 콜이 없었다. 그 덕에 낮잠을 2시간이나 자 머리만 띵했다.
오죽하면 오후 회진을 위해 올라온 이준영 과장이 반가울 정도였다. 물론 5분도 안 돼 후회하긴 했지만 말이다.
“항생제 끊어.”
“내일 퇴원시켜.”
필요한 말만 딱딱 한 이준영 과장이 퇴근을 했다.
그래도 두 번째 보는 거고, 저녁에는 뭔가 다른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지없이 기대가 깨졌다. 하다못해 오더 내는 법이라도 알려 줄 줄 알았다.
이준영 과장이 낸 오더를 일일이 확인하며 오더를 낸 김지훈이 환자 기록을 작성했다.
대부분, 아니 모든 환자들이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일반 외과 환자도 아닌 탓에 슬며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책임져야 할 환자들이었다. 스무 명에 달하는 환자를 일일이 생각하며 기록한 덕인지 머릿속에 환자들의 상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이래서 기본이 중요하구나. 아휴! 우리 과 환자가 10명만 되어도 정말 좋겠네. 외래에서도 수술 환자가 없고, 응급실에도 안 오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와라, 제발 좀 와라.’
모든 환자가 수술이 필요한 케이스는 아니겠지만, 오매불망 환자가 오기만을 빌었다. 이준영 과장의 무뚝뚝함도 일반 외과 환자에 대한 김지훈의 열망을 꺾진 못했다.
진료실의 불이 모두 꺼지자 슬슬 응급실로 환자들이 내원하기 시작했다. 다른 병원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다시 바빠지는 시간이 온 곳이다.
병원을 나서던 이준영 과장이 막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는 환자를 보았다.
‘생각보다 열심히는 한다만, 그래야 일주일이겠지. 음성에서 배울 게 뭐가 있다고 1년차를 내려보내. 3개월만 오는 걸 봐서는 금 과장에게 밉보였든지,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놈이 분명해.’
문제가 뭘까?
입원 기록은 물론 환자 기록에도 정성이 넘쳤다. 수술실에서 했다지만 모든 과정이 수처에 불과한 처치를 자세하게도 썼다.
비록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최소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술자리를 같이한 김진호와 김대성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득 정말 예기치도 않았던 생각이 들었다.
‘저놈과 수술을 하면 재미가 있을까?’
이준영 과장이 눈가를 찌푸렸다. 최근 조금씩 수술에 대한 열망이 살아나긴 했지만, 무려 10년이나 수술과 담을 쌓다시피 하며 살아왔다.
아뻬(충수 돌기염)나 하는 의사는 더 이상 일반 외과 전문의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서울에서 큰 수술들을 무리 없이 해냈던 기억 탓인지 이준영 과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깟 1년차 한 명이 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끽해야 아뻬 수술이나 하는 주제에 별생각을 다 하고 있군. 김지훈, 너도 그냥 편히 쉬다 가라.’
이준영 과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섣부른 생각은 이제야 편안해진 마음을 다시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