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0화 (110/1,329)

제7화 일단 일부터 하자 (2)

이제 검사 오더는 물론 임프레션에서 진단까지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일반 외과 환자는 아니었지만, 비로소 1년차가 됐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도 부담이 적지 않았다.

장염이라는 가정하에 수액 오더와 함께 혈액 및 방사선 검사를 냈다. 오더를 확인한 간호사가 재빨리 수액을 달며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가만히 보고 있던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최 간호사, 수액이 너무 빨리 들어가네요.”

“탈수가 심하다고 하셔서 빨리 틀었어요.”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노인분들한테는 수액이 너무 급격하게 들어가면 도리어 콩팥에 부담을 줄 수 있어요. 일단 기능 검사가 나올 때까지는 30가트(30gatt:수액이 분당 30방울 투여되는 속도) 정도 유지합시다.”

“어머! 그렇게 해야 되나요?”

김지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 ‘끙’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민이 됐다. 확실히 서울이나 구미에 비하면 간호사들의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잠시 후, X-ray와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소장에서 다수의 공기 음영이 관찰됐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대장에서만 공기가 보인다. 장마비 소견이었다.

설사를 동반하면서도 장마비까지 보인다면 장염이 상당히 심하다는 말이었다. 즉 소장은 염증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대장은 거꾸로 염증 때문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콩팥 기능은 정상이었다. 장염만 빠르게 해결하면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입원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였다.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보호자분, 아버님은 다행히 장염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증상이 심하고 탈수까지 겹쳐서 입원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X-ray상 장마비까지 보여 금식을 하셔야 하는데, 집에서 치료하실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보호자가 망설였다.

입원이라는 것이 그냥 단순히 환자가 병원에 있는 게 아니었다. 돈도 돈이지만 간호할 사람도 구해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며칠이나 하면 되겠습니까?”

“확실히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최소한 죽 정도는 드실 정도가 돼야 퇴원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만일 탈수 때문에 합병증이라도 발생하면 더 큰 고생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당장 입원하시는 게 좋겠네요.”

김지훈이 치료가 지연될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설명했다.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도 때론 단호하게 위험을 경고하자 보호자가 입원에 동의했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김지훈이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오더하에 처음으로 입원시키는 환자였다.

일반 외과가 아닌 내과 환자라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지만 환자를 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간호사가 내과 과장과 전화를 연결해 줬다.

“일반 외과 1년차 김지훈입니다, 과장님.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80세 남자 환잡니다.”

환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들은 내과 과장이 꽤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 선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놓지 못했다.

(김지훈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예, 김지훈입니다.”

(월요일부터 근무 아니었나요? 이번 주말은 내가 노티를 받기로 했는데.)

“오늘 도착했습니다, 과장님. 그리고 응급실은 일차적으로 제가 커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덕분에 편하게 됐네요. 그럼 입원시켜 주시고, 수고하세요.)

내과 과장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김지훈이 전화기를 내려놓다 말고 멈칫거렸다.

입원 환자에 대한 오더를 받지 못한 것이다.

다시 전화를 연결하려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인턴이 아니라 1년차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내과 과장도 그래서 입원 오더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원장에 사인을 했다.

김지훈이라는 세 글자가 유난히도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뿌듯했지만 그만큼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표시였다.

입원에 필요한 오더를 낸 후 김지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리 과도 아닌데 정식으로 작성해야 하나? 어떻게 하지?’

입원 기록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던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작성을 시작했다. 환자의 나이가 많고, 귀가 어두워 보호자에게 가족력 등 필요한 사항을 물었다.

너무 세세한 질문에 보호자는 물론 간호사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김지훈이 무려 세 페이지에 걸친 입원 기록지를 작성했다. 은근히 손가락까지 아팠다.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다.

그때마다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이게 다 입원 기록이에요?”

“그럼요.”

“이렇게 길게 작성할 필요가 있나요?”

언젠가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김지훈이 웃으며 대답을 했다.

“이게 기본이에요. 지킬 건 지켜야죠.”

“그럼 앞으로 입원시키실 때마다 다 이렇게 작성하실 건가요?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 과는 당연히 이렇게 작성하겠지만, 다른 과는 필요할 때만 할 수도 있겠죠.”

간호사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 병원 트레이닝이 어떤지는 몰라도 음성 병원에 혼자 와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환자나 보호자는 물론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뭔가 다른 면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슬그머니 걱정 하나가 고개를 쳐들었다. 똑같은 환자를 봐도 전보다 할 일이 훨씬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간호사들의 마음도 모르고, 김지훈이 마지막까지 환자를 최대한 꼼꼼하게 살폈다.

“준비되는 대로 환자 올립시다. 그리고 만일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고 하세요.”

“어디 계실 건데요.”

“숙소 아니면 병동이거나 여기겠죠.”

고령이 확실한 위험 인자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환자가 올 때마다 3층 숙소에서 응급실을 오가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응급실에 딸려 있는 당직실에서 잠을 청했다.

낯선 환경에서 1년차 근무를 시작했다는 긴장과 설렘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까지 30명 정도의 환자를 봤다.

숫자로는 정말 대학 병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치료까지 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그중 교통사고로 들어온 환자가 3명 있었다.

가슴과 사지에 걸친 타박과 염좌가 심했고, 교통사고는 의외로 주의를 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함께 입원을 권했다. 모두 입원에 동의했다.

“이런 환자들은 정형외과에 입원시켰나요?”

간호사들이 머뭇거렸다.

딱히 어느 과 환자라고 말하기도 힘든 경우 일반 외과와 정형외과 과장 모두 입원을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과장님 두 분 다 이런 환자들은 싫어하세요. 심하지 않으면 입원을 안 시키는 경우도 많고요. 선생님이 알아서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흉부 손상이 동반됐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흉부외과에 입원을 시켜야 했지만, 외과라고는 정형외과와 일반 외과뿐이었다. 김지훈이 한숨을 쉬며 입원장에 GS(General Surgery:일반 외과)를 적어 넣었다.

세 페이지에 걸친 입원 기록을 작성하던 김지훈이 혀를 찼다.

‘첫날인데 아뻬(충수 돌기염)라도 한 명 와 주면 안 되나? 우리 과랑 상관도 없는 환자만 입원시키고 있네. 사서 고생을 하는 건가?’

일반 외과에 입원시킨 첫 환자가 가슴 부위를 다친 교통사고 환자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몸도 별로 힘들지 않아 더욱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병동에 올라가 아침 회진 겸 드레싱을 한 후 차팅을 하던 중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선생님, 얼굴이 심하게 찢어진 환자가 왔어요. 빨리 좀 봐주세요.)

안면부 열상?

구미에서 숱하게 봤다.

일반 외과 환자는 아니지만 간만에 수처를 할 기회였다.

부랴부랴 응급실로 내려가 환자를 본 김지훈이 심각해졌다.

왼쪽 얼굴이 무려 10센티미터 정도 찢어졌다.

급히 소독을 하고 상처를 살핀 결과, 신경과 근육 층의 손상은 없었다. 심해 보여 그렇지, 길이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단순 봉합만 하면 되는 상처였다.

물론 충분한 경험과 숙련된 기술을 요하긴 했다.

간호사가 오더를 내고 있는 김지훈에게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어디로 보낼까요?”

“보내요? 왜?”

“성형외과 환자는 충주나 청주로 보냈는데요.”

김지훈이 팔짱을 끼고는 고민에 빠졌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하필이면 일요일이었다.

대학 병원이라고 해도 성형외과 전문의가 나올 리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1년차가 수처를 했고, 시간을 지체할 경우 얼굴에 흉이 더 심하게 남을 수도 있었다.

‘이제 2월인데 성형외과 1년차나 나나 무슨 차이가 있어? 괜히 시간 끌다가 흉만 더 생긴다.’

대학 병원이었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묘하면서도 특수했다. 이런 경우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환자분, 상처가 커서 일단 최대한 빨리 봉합을 해야 합니다. 충주나 청주로 가셔도 되고, 원하신다면 여기서 봉합을 하셔도 됩니다.”

“여기서도 꿰맬 수 있습니까?”

보호자가 꽤 놀란 눈으로 물었다.

환자나, 보호자나 간단하게 응급 처치만 하고 청주로 갈 요량이었다. 음성 병원은 이런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실제로 보지도 못했다.

“가능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어느 선생님이 꿰매십니까?”

“결정하시면 상처가 크기 때문에 여기서는 안 되고, 수술실에서 봉합을 하겠습니다.”

“선생님이요?”

환자나 보호자가 다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지훈을 보았다. 상당히 자신감이 넘쳐 보였지만 이제 20대 중반이 막 넘은 김지훈이었다.

그때 봉합을 한다는 소리에 같이 놀랐던 간호사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의사든, 간호사든 환자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지는 않은 법이었다.

“이번에 서울 대학 병원에서 내려오셨어요.”

따지고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환자의 눈치가 달라졌다.

가족들과 한참 상의를 하더니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대학 병원이란 말이 이 정도로 중요한가?’

구미에서도 병원의 규모에 따라 의사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긴 했었다. 음성 병원의 규모를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빠르게 오더를 내고 입원장까지 날린 김지훈이 수술실에 전화를 했다. 국소 마취 시에는 마취과 의사가 필요 없었지만, 수술실을 이용하는 경우 마취과의 허락이 필요했다.

수술실 간호사가 마취과 과장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일반 외과 1년차 김지훈입니다. 국소 마취하에 봉합을 할 환자가 있습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이구나. 나다.)

“어? 김진호 선생님이세요?”

(그래. 너 내일부터라고 들었는데 벌써 근무하는구나. 어쩐지 일찍 내려오고 싶더라니. 수술실에 연락해 놓을 테니까 환자 올려. 그리고 뭘 챙겨야 하는지 알지?)

“예. 수술 스케줄표는 간호사에게 줄까요?”

(그래, 수고해라. 내일 보자.)

생각지도 못한 원군이었다. 믿고 의지할 선배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갑자기 힘이 솟았다.

마음이 든든해진 김지훈이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 수술실로 올립시다.”

국소 마취용 수술 스케줄표를 작성한 김지훈이 부리나케 수술실로 올라갔다.

환자를 본 수술실 간호사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부위도 아닌 얼굴이 찢어졌고, 남자라지만 32세의 젊은 환자였다. 그간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다.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하니까 생리 식염수 많이 준비해 주고, 실은 나일론 6번하고 서지핏(흡수성 봉합사 제품명) 준비해 주세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어시스트는 간호사 한 명이면 충분했다.

마주 앉은 간호사가 생리 식염수로 상처를 세척하는 김지훈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자신이 있는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환자분, 마취합니다. 따끔한 거 한 번만 참으시면 됩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응급실 대신 수술실일 뿐이었다.

10센티미터에 달했지만, 작은 상처의 연장일 뿐이었다.

구미에서 지독하게 깨지며 배웠고, 숱하게 봉합을 했다.

살짝 어깨를 펴며 긴장을 푼 김지훈이 니들 홀더(봉합 시 실에 달린 바늘을 잡는 기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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