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1화 (101/1,329)

제3화 전공의 선발 (2)

금경태 과장이 알 수 없는 눈빛을 보이며 물었다.

“자네, 성적이 굉장히 좋군. 인턴 초반에 우리 과를 돌았지? 내 기억이 정확한가?”

“예, 과장님. 3월에 돌았습니다.”

“그래, 열심히 한 티가 나는구만.”

금경태 과장이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항상 나오는 질문인 부모님 문제는 물론 지난 일부터 현재의 상황까지 너무 자세하게 물었다. 하다못해 물려받은 재산까지 물었다. 지금까지의 면접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외과 과장님이라 그런가? 별걸 다 물으시네.’

일반 외과를 하게 되면 스승과 제자가 사이가 된다.

스승이 제자에 대해 자세하게 알면 알수록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김지훈이 더욱 진지하게 대답을 했다.

“일반적인 상황은 이 정도면 됐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자네는 왜 우리 과에 지원을 했나?”

“최고의 써전이 되고 싶습니다.”

모든 면접관들이 했던 질문이었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금경태 과장이 입술을 모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고의 써전? 너도 신현수처럼 지식과 실력을 갖추고 싶단 말이지. 작년이었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지. 하지만 사람은 말이야.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자신이 저지른 일은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야. 올해는 신현수와 손일석으로 만족할 수밖에. 흐음! 그럼 어떻게 한다.’

무언가 한참을 생각하던 금경태 과장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마치 눈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엉뚱한 곳을 보며 웃었다.

“그래, 두고 보자. 나가 봐. 수고했다.”

“예, 과장님. 가 보겠습니다.”

이제 막 시작할 것 같았던 면접이 끝났다.

개운하다기보다는 뭔가 찜찜했다. 하지만 수없이 지원자들을 면접한 금경태 과장이었다. 지금까지 듣고 본 것만으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 믿었다.

‘어쨌든 홀가분하네.’

김지훈이 부르르 몸을 떨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신현수와 정갑수까지 보였다.

“지훈아, 잘 봤지?”

“그럼. 니들도 잘 봤지? 경석이 형은요?”

“당연한 걸 묻고 있어. 가자. 너 오기 전에 오늘 새끼줄 쫙 잡아 놨다. 우리가 다 모일 기회가 언제 오겠어.”

아직 합격 발표가 나진 않았지만 정말 의미 있는 날이었다.

킴 ? 손일석, 김경수, 오성민, 정갑수.

난킴 ? 김지훈, 신현수, 이경석, 유창수.

이변이 없는 한 4년을 함께할 동료들이 처음으로 모두 모였다. 정갑수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공의가 되면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밖으로 나온 김지훈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불안했던 마음과 한영철에 대한 미안함을 날리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니 후련해졌다.

“으아아아!”

손일석도, 김경수도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유창수의 옆으로 다가간 김지훈이 꾸벅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어! 그래. 유창수다. 네 얘가 많이 들었어. 잘 부탁해.”

“아닙니다, 형님.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이경석이 코웃음을 치며 냅다 김지훈의 등짝을 때렸다.

“아야! 왜 때려요, 형.”

“이 자식이 인턴 헛돌았네. 창수는 내 밑이야, 인마. 나한테 잘 보여야지.”

“에이! 형, 형은 지는 해고, 창수 형은 뜨는 해잖아. 내가 미쳤어요? 형한테 아부하게.”

“어라? 이거 손일석보다 더한 놈이었네.”

그 순간, 손일석의 입이 반사적으로 열렸다.

“어? 거기서 내가 왜 나와요? 난 지훈이보다 세 수는 앞선 사람이에요. 비교할 놈하고 비교를 해야죠.”

“그래, 잘났다, 이 자식들아.”

모처럼 웃음이 터졌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한영철에게 들렀다.

“일석아, 영철이 보면 얼굴 찌푸리지 말고 웃자. 경석이 형, 우리 그렇게 하는 게 좋겠죠?”

“그럼. 영철이도 우리가 웃길 바랄 거야.”

병실에 들어서자 퇴원 준비를 하던 한영철이 밝게 웃으며 맞이했다. 두 눈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아픔이 서려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생각만 할 때였다.

다들 한마디씩 했다.

“자식! 얼굴 좋네. 다음 주에 보자.”

“잘될 거야. 미안해, 영철아.”

“까짓것 병도 아니다. 그냥 수술 받으면 끝이야. 영철아, 형이 응원할게.”

신현수까지 한마디 했다.

“영철아, 힘내.”

한영철이 눈가를 비볐다.

모두들 웃고는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을 고스란히 느낀 것이다. 김지훈이 슬그머니 한영철의 어깨를 잡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한영철, 앞으로 우리 볼 때 깍듯이 대해라.”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내년에 다시 지원할 거잖아. 그때 우린 몇 년차? 알지? 하나 위가 제일 무섭다는 거.”

“그런가? 김지훈, 너 정말 그럴 거야?”

김지훈이 슬며시 손일석을 보았다.

“흐음! 영철이가 친구이긴 하지만, 우리도 2년차의 임무를 다하는 게 맞지. 영철아, 강호는 말이야, 서열 순이다. 앞으로 우리를 보면 일단 무릎 꿇어라.”

이경석이 고개를 흔들다 말고 김지훈과 손일석의 뒤통수를 냅다 쳤다.

“이 자식들아, 생쇼를 해라. 그럼 난 어떻게 하냐? 내가 위의 연차들에게 인사는 한다만, 무릎까지는 못 꿇는다.”

어라, 그렇게 되나?

그러고 보니 이경석보다 학번이 빠른 전공의는 없었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유창수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가야 할 시간이었다.

“영철아, 다음 주에 보자.”

“그래, 나하고 한 약속 잊지 마. 엘튜브하고 폴리는 꼭 네가 해 줘야 한다.”

“알았어.”

김지훈이 한영철을 안고는 두 팔에 힘을 꽉 주었다.

하나둘 돌아가며 한영철을 안았다.

신현수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김지훈이 모른 척하고 슬쩍 밀었다.

엉겁결에 한영철을 안고 만 신현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했다.

“다음 주에 보자.”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신현수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하자 다들 재빨리 병실을 나왔다.

힐끗힐끗 뒤돌아보던 김지훈이 정갑수를 보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쯤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개새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저녁 겸 술자리 겸 삼겹살집에 모였다.

잘 구워진 삼겹살에 노랗게 익은 묵은지를 곁들였다.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갈 정도로 좋아했던 메뉴다. 소주와 어우러진 맛은 가히 예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자 이경석이 소리를 질렀다.

“지훈아, 마시자. 다들 잔 들어. 힘들 일도 있지만, 어쨌든 즐거운 날이야. 얼굴 풀고 웃어, 이 새끼들. 안 웃으면 집합이다. 김지훈, 알지? 집합이 뭔지.”

“예, 형님. 마시죠. 즐거운 날입니다.”

애써 얼굴을 폈다. 술잔이 오고 가자 조금은 분위기가 살아났다. 간단하게 호구 조사를 벌이고는 본격적인 친목 다지기에 들어갔다. 그때 팔짱을 낀 채 몇 마디로 자신을 소개한 신현수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났다.

“내일 일이 있어서 전 이만.”

옆에 앉아 고기만 우겨 넣던 정갑수도 일어났다.

“나도 가 볼게.”

“현수야, 그러지 말고 오늘은 같이 술 먹자. 앞으로 이렇게 다 모일 수 있는 날도 없잖아.”

김지훈의 말에 손일석이 묵은지를 꿀꺽 삼키며 거들었다.

“그래, 인마. 분위가 막 좋아지려는데 가면 어떡해.”

“미안하다. 할 일이 있어서.”

손을 저으며 밖으로 나온 신현수가 답답한 숨을 내뱉었다.

뒤따라 나온 정갑수가 투덜거렸다.

“에이! 저 자식들 얼굴을 보니까 기분 잡치네. 현수야, 너도 그렇지? 이왕 한잔했는데 강남으로 가자. 일반 외과 전공의 된 기념으로 내가 한번 쏠게. 이런 날 소주가 뭐냐? 후진 새끼들.”

“아직 합격 발표 안 났어.”

“일대일인데 당연히 합격이지. 한영철 그 자식이 안 아팠으면 꼼짝없이 군대 끌려갔을 텐데, 큰일 날 뻔했어. 김지훈이 발목 잡으라고 하늘이 날 돕나 봐.”

신현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에게 감정이 있다고 일반 외과를 지원하다니,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다.

한영철에게 동정이 가고 안타깝기는 했지만, 솔직히 슬픈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영철에 대한 말은 정말 아니었다.

“한영철이 아픈 게 좋아?”

“누가 좋대?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다 그 자식 운명이지. 그걸 어쩌겠어. 난 합격한 걸 즐기는 것뿐이야. 솔직히 관심도 없고.”

신현수가 두 눈을 비비며 한숨을 쉬었다.

정갑수가 갈수록 싫어졌다. 한때 즐겁게 웃고 지냈다는 사실이 후회가 됐다. 그놈의 보사부 고위 공무원 자리가 무언지 몰라도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혼자 먹어. 난 병원에 남은 일이 있어.”

“야, 오늘은 공식적인 오프 날이야. 이런 날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 그러지 말고 축하주 한잔하자. 저 자식들 없는 데서 먹으면 술맛이 확 살 거다. 아까부터 날 보는 눈초리가 안 좋더라구. 개새끼들, 내가 뭘 어쨌다구 그 지랄들이야.”

잠시 정갑수를 쳐다보던 신현수가 아무 말도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뒤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병원에 도착한 신현수가 자신의 차에 타고는 눈을 감았다.

면접을 보던 금경태 과장이 김지훈의 평가서를 보여 주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자신과 함께 최고 점수를 얻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신현수 선생,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 이러다 추월당하는 건 시간문제야. 수련 마치는 대로 교수가 돼야 하는데, 그때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으면 신경 좀 써. 물론 내가 도와주면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놈이야.’

금경태 과장의 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김지훈을 압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주말마다 개인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했다.

이제는 간단한 수술이라면 4년차가 온다고 해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천안에서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답답했다.

‘임기응변이었나, 아니면 겁이 없는 탓일까?’

어떤 이유건 간에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김지훈은 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에 짜증까지 났다.

‘나보다 일을 잘하는 게 없잖아. 그런데 왜 직원들 입에 그렇게 오르내리는 거지?’

생각을 더듬을수록 답답해지며 화까지 났다.

당연히 일반 외과 1년차들을 주도하는 사람은 자신이어야 했다. 그런데 손일석은 물론 이경석까지 결정적인 순간에는 김지훈을 따르고 있었다.

한영철이 엘튜브(코 줄)와 폴리(소변 줄)를 부탁하는 것을 봤을 때는 정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술기였기에 도리어 그만큼 김지훈을 믿고 인정하는 게 분명했다.

하다못해 한영철의 병실에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까지도 김지훈의 뜻대로 되는 것 같았다. 스스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분명 내가 놓친 것이 있어. 서로 친하다는 것과 운? 그것만으로는 직원들과 환자들의 반응을 설명할 수는 없잖아.’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박은 채 생각에 잠겼던 신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의 후광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 전에 최고의 외과 의사가 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로써 병원을 거머쥐고 싶었다.

‘의사는 결국 실력으로 말한다. 지식은 물론 수술까지 확실하게 앞선다면 김지훈과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날 인정할 수밖에 없어.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반대도 없이 병원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어.’

눈을 굳힌 신현수가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마음껏 달리고 싶었다.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한 대의 자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올림픽 대로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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