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9화 (99/1,329)

제2화 친구야! (2)

김지훈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복부 초음파와 CT를 찍는 그 짧은 시간에도 초조하기만 했다. 초음파상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CT가 나오자마자 방사선과 스태프에게 달려가 리딩을 받았다. 임파선이나 타 장기에 전이된 흔적은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영철아, 다 괜찮대.”

“그래? 다행이네.”

한영철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입원 수속은 내가 할 테니까 일단 숙소에 가 있어. 아니다, 일석이 부를까?”

“아냐, 병실 정해지면 바로 올라가는 게 낫겠어. 지금은 나 혼자 있고 싶어.”

“부모님께 전화는?”

“조금 있다가.”

김지훈이 멍하니 앉아 있는 한영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혁민 교수의 자신 있는 말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입원 수속을 하는 내내 드는 불길한 생각에 김지훈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조기 위암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병행하면 5년 생존율이 95프로를 상회한다. 다른 암과 비교하면 대단한 확률이지만, 반대로 5프로 가까이 사망한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암은 환자가 젊을수록 예후가 나빴다.

‘씨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해선 안 될 생각에 고개를 흔든 김지훈이 한영철과 함께 일반 외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입원 차트를 본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 한영철을 보았다.

김지훈이 조용히 해 달라는 손짓을 하며 함께 병실로 향했다.

한영철이 묵묵히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까지는 의사였던 동기가 한순간에 환자가 돼 입원을 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숨만 쉬었다.

얼마 후, 유석재가 들어왔다.

살짝 어깨를 두드리며 한영철을 다독이고는 차트를 펼쳤다.

“영철아, 힘들겠지만 몇 가지 질문 좀 할게.”

유석재가 기본적인 상태와 가족력을 비롯해 기존 병력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기가 위암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오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영철아, 이혁민 선생님이 최대한 빨리 스케줄을 잡으신다니까 걱정하지 마. 지훈아.”

“예, 선생님.”

“영철이 진정되는 대로 빨리 집에 연락해. 부모님 동의를 받아야지. 오늘 영철이랑 같이 있어 주고.”

김지훈이 고개만 끄덕였다.

똑딱, 똑딱, 시계 소리만 들렸다.

멍하니 천장만 보던 한영철이 중얼거렸다.

“지훈아, 나 위암인 거 확실하겠지? 혹시 다른 사람 조직을 내 것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착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말없이 한영철의 손을 잡았다.

“후우!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씨팔! 하필이면 왜 나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한영철이 답답한 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창밖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마를 주무르며 고개를 숙였던 한영철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눈물이 철철 흘렀다.

“아니야, 내가 위암일 리가 없어.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나 죽는다고 할 수는 없잖아.”

“죽긴 왜 죽어, 인마. 수술만 하면 돼.”

“씨팔! 차라리 내가 의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기 위암이라고 다 사는 게 아니잖아.”

“에이! 개새끼, 별소리를 다 하고 있네.”

김지훈이 한영철의 어깨를 때리며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맞잖아, 인마. 내 말이 틀려?”

“병신 같은 새끼. 수술도 하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넌 괜찮아. 이 새끼야, 별…….”

김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차마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울고 말았다.

한영철이 주먹으로 입을 막고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병실 안에서 끅끅 울음을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밤새 한영철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다였다.

전공의 선발 시험 날이 밝았다.

함께 시험장으로 가야 할 한영철이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훈아, 시험 봐야지. 이러다 늦겠다.”

“미안하다, 영철아.”

“미안하긴, 이게 네 탓이냐? 빨리 가, 인마. 나도 집에 전화하고 준비를 해야지. 하하! 나 수술하면 군대 안 가지? 가기 싫었는데 잘됐다.”

한영철의 웃음에 왈칵 눈물이 또 나올 뻔했다.

지난밤 내내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병을 부정하며 까닭 모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하루 밤은 너무 짧았다. 그런데 눈이 퉁퉁 부어 있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한영철이 의사인 탓일까?

애써 눈물을 참은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물고는 병실을 나섰다.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

“그래, 인마. 군대 안 가서 좋겠다.”

혼자 중얼거리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지를 막 나누어 주기 직전에 도착했다.

손일석과 김경수, 그리고 이경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제 와, 인마? 영철이가 안 왔어. 혹시 못 봤어?”

“이따가 얘기해.”

뭔가 알고 있는 눈치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현수도 궁금한지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한영철이 안 보이자 정갑수만 신이 났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경쟁 상대라지만, 시험도 못 치른다면 걱정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개새끼. 저런 놈 놔두고 하필이면 왜 영철이야.’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했다.

시험을 치는 내내 속이 상하고 울화통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밤새 잠을 못잔 데다 정신까지 혼란스러워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3시간에 걸친 시험이 끝났다.

불안한 얼굴로 웅성거리는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손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지훈의 곁으로 달려왔다.

“지훈아, 영철이 왜 안 왔는지 알아? 이 자식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죽겠네, 정말.”

문득 정갑수의 표정이 궁금했다.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주먹까지 흔들며 시험장을 나서고 있었다. 한영철이 시험을 보지 못했으니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합격할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기뻐할 일이었다.

그런데 보기 싫다 못해 화까지 치밀었다.

‘현수는?’

신현수가 자리에 앉아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관심을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김지훈이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 신현수에게 향했다.

“현수야, 우리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왜? 영철이는 어떻게 된 거야?”

한영철을 찾아 정말 고마웠다.

항상 차갑게 행동하지만 동기들에 대한 애정과 마음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일단 가자.”

“지훈아. 뭐야, 인마. 왜 그래?”

손일석이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말없이 일반 외과 병동으로 향하자 모두들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601호 한영철.

다들 놀라 김지훈만 바라보았다.

문밖으로 한 여인의 서럽기만 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훈아, 무슨 일이야? 영철이가 왜 입원을 했어?”

이경석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벌겋게 변한 눈으로 입술만 깨물던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된 여인이 문을 열었다. 한영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 철이 친구입니다.”

급히 눈가를 훔친 여인이 말없이 비켜섰다.

이상한 낌새에 얼굴을 굳히며 들어간 손일석이 김지훈과 한영철을 번갈아 보았다.

“영철아, 무슨 일이야? 왜 입원을 했어?”

한영철이 콧등을 찡그렸다.

“어머니, 잠시만 나가 계실래요?”

동기들만 남았다.

한영철이 한 명, 한 명 얼굴을 보며 웃었다.

“시험은 잘 봤어?”

“야, 인마. 지금 시험이 문제가 아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손일석이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 위암이래. 곧 수술 받고, 항암 치료 받아야 해.”

담담한 목소리였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위암.”

“이 새끼를 그냥. 농담하지 말고, 이 자식아.”

“농담 아냐.”

손일석이 눈만 깜박거리며 김지훈을 보았다.

“맞아. 영철이 이혁민 선생님 앞으로 입원했어.”

“저… 정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한영철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두 귀로 분명히 듣고도 믿을 수가 없는지 손일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입만 벙긋거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영철이 입을 열었다.

“지훈아, 부탁이 있어.”

“뭔데.”

“나 엘튜브(코 줄)도 해야 하고, 폴리(소변 줄)도 껴야 하잖아. 이왕이면 네가 해 줬으면 좋겠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한영철의 손을 잡았다.

“당연히 내가 해야지, 인마. 인턴들 중 나보다 잘하는 놈 없잖아.”

“고맙다, 부탁할게.”

“이씨! 네가 말 안 해도 내가 하려고 그랬어.”

한영철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 힘들겠다. 다들 가 봐. 오늘 근무도 없고, 시험도 끝났는데 술 한잔해야지. 빨리 가. 나 피곤해.”

억지로 밀어내는 모습에 점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병실을 나왔다.

신현수도 마음이 안 좋은지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현수야, 같이 가자.”

웬일인지 신현수가 말없이 따라왔다.

아직 어두워지려면 멀었지만 포장마차를 찾았다.

“이모, 술 좀 주세요.”

“지훈아, 일석아,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오늘 시험 본 날 아니야?”

“맞아요, 이모.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술부터 주세요.”

소주 한 병과 골뱅이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다들 말을 잃었다. 잔을 비운 김지훈이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 지독하게 썼다.

이렇게 술이 쓴 적은 없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도 한영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한영철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무기력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한 방울의 눈물이 술잔 속으로 떨어졌다.

조용히 잔을 들어 넘기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손일석이 눈가를 훔치며 김지훈의 어깨를 잡았다.

김경수가 욕을 하며 울먹였다.

“씨팔! 영철이 저 새끼랑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이게 뭐야? 개새끼!”

이경석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야! 이 새끼들아, 영철이가 죽기라도 했어? 사내새끼들이 대낮부터 질질 짜고 있어. 술이나 마셔.”

평소 마시지도 않던 소주를 단번에 들이켠 신현수가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김지훈이 눈가를 닦으며 웃었다.

“현수야, 고맙다.”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니까 고마울 거 없어. 정갑수 문제도 신경 써야 할 거야.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한 신현수가 이경석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손일석이 벌떡 일어나며 인상을 썼다.

“저 새끼는 영철이 걱정도 안 되나? 기껏 따라와서 한다는 소리가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니까 고마울 거 없다고? 나도 고마울 거 없다, 이 자식아.”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흥분을 했다.

김지훈이 손일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석아, 현수가 이런 자리에 따라온 게 처음이야.”

“그게 뭐? 뭐 어쨌다고. 우리가 저 새끼 속까지 이해하고 봐야 돼? 씨팔! 이사장 아들이면 아들이지.”

평소라면 이런 일로 흥분할 손일석이 아니었다.

도리어 농담처럼 지나가며 신현수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다. 한영철의 일로 다들 민감하기만 했다.

다음 날, 중환자실로 가던 김지훈이 한영철에게 들렀다.

한영철이 웃으며 진단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내시경을 한다고 했다.

“언제 한대?”

“글쎄, 내일이나 모레? 아니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김지훈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위암이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기 위암은 워낙 사이즈가 작아 수술 중 촉진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다. 아마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내시경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영철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따 시간 나면 들를게.”

“또 오려고? 나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인마. 모레 면접인데 준비도 해야 되잖아.”

“인상 좋기로 소문난 내가 면접을 걱정하겠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단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손을 흔들며 병실을 나선 김지훈은 착잡하기만 했다.

한영철도 멍하니 문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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