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D.O.A (2)
흥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끝까지 머릿속에 잡아 두어야 했다.
“그러니까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거죠.”
“그럼 우연이 아니면 뭐가 있어요? 우리가 뭐 돈이라도……. 에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짓인지.”
구급대원이 김지훈을 노려보다 말고 갑자기 말을 돌리며 앰뷸런스에 올랐다.
하다 만 말이 마음에 걸렸다.
환자 얘기를 한 건데 돈이 나왔다.
그날 밤, 한가한 틈을 타 경험이 가장 많은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저도 이상하긴 해요. D.O.A 환자가 들어오는 날이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가끔 사망한 사람이 환자보다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기억에 남을 정도면 여러 번 있었다는 말이죠?”
“그렇죠.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까 구급대원하고도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던데.”
문제가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환자를 두고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이혁민 교수와 응급실 회진을 돌며 한참을 망설이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뭐가 확실해야 말씀을 드리지. 경찰을 부를 수는 없고, 구급대원에게 또 말을 했다가는 싸움이 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회진을 마치고 꾸벅 인사를 하던 김지훈의 눈에 TV가 들어왔다. 아침 뉴스를 하고 있었다.
“혹시 형님이면?”
보도국 기자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프였지만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 선잠을 잤다.
늦은 저녁이 돼 정훈철이 퇴근을 했을 무렵 전화를 했다.
“형님, 접니다.”
(응, 지훈아. 웬일이야.)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김지훈이 그간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정훈철이 혀를 찼다.
(설마 했는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나도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
“무슨 얘기요?”
(시신을 싣고 오면 장례식장에서 돈을 준다는 거야. 그래서 일부 구급대원들이 환자보다 사망자를 먼저 이송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정말이요?”
(확실하진 않아. 있다고 해도 극히 일부겠지.)
“형님, 극히 일부라고 해도 문제는 사망자가 아니라 환자예요. 만일 당장 치료를 받아야 살 수 있는 환자를 뒤늦게 이송한다면 자칫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아무리 수가 적다고 해도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한다. 알았어. 니 말을 들으니까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닐 수도 있겠네. 일단 알아는 볼게.)
“감사합니다, 형님. 형수님하고 승희는 잘 지내죠?”
정훈철이 웃었다.
(야! 승희가 니 목소리 듣고 칭얼댄다. 받아 봐. 바쁠 테니까 대충 들어 주다 끊어.)
(삼촌!)
승희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응, 우리 승희. 밥 먹었어?”
방금 전까지 심각한 말을 나누던 김지훈이 활짝 웃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았다.
물론 대화는 아직 일부만 가능했다.
10분이 넘게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승희의 말이 끝났다.
‘아우! 좋긴 한데 정신이 하나도 없네. 쪼그만 게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을까.’
김지훈이 머리를 흔들었다.
***
가끔 정훈철의 전화가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김지훈도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설마 그런 짓을 한다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곧 크리스마스였다.
김지훈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괴로워했다.
‘아니, 어떻게 크리스마스에 이브까지 다 당직이지?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나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심코 당직과 오프 날을 정하기 위해 사다리를 탔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장 즐겁게 보내야 하는 날에 모두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로비에는 천장까지 닿을 것 같은 트리가 요란한 장식과 함께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 남의 일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고경아에게 전화를 했다.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요. 난 당직입니다.”
(어머! 어떻게 해요. 그런 날은 환자도 많지 않아요?)
“많죠. 개인 병원들이 다 놀아서 정말 많죠. 게다가 주말이네요. 죽었다고 복창합니다.”
고경아가 안타까워했다.
(대신 일을 해 드릴 수도 없고, 그럼 신정 때는 쉬세요?)
“그때도 주말이네요. 토요일은 당직이고, 일요일에는 일이 있어요. 사이에 한 번 보죠. 혹시 전화가 안 오면 일하다 죽은 줄 알아요. 참! 경아 씨는 집에 가죠?”
고경아가 크게 웃었다.
(지훈 씨, 힘내시라고 응원할 테니까 죽지는 마세요. 그리고 저도 신정 때는 당직이라 못 가요.)
끼리끼리 노는 걸까?
한숨만 쉬다 전화를 끊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걸까?
크리스마스이브에 이어 당일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환자들의 물결에 피곤죽이 됐다.
게다가 다음 날 폭탄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헐레벌떡 숙소로 달려 들어온 손일석이 숨을 몰아쉬며 자고 있던 김지훈을 깨웠다.
“지훈아, 비상이야, 비상. 지금 잘 때가 아니야!”
“왜? 너 아무것도 아니면 죽어.”
“야, 정갑수가 일반 외과에 지원을 했대.”
“뭐? 인원 다 찼잖아?”
천안에 있을 때 손일석, 김경수, 한영철에 오민성까지 킴(군 미필자) 티오를 딱 맞췄다. 온 동네에 소문을 낸 데다 다들 학교 성적도 좋았기에 마음을 푹 놓고 있었다.
정갑수는 명함도 못 내밀 상대들이었다.
그런데 일반 외과에 지원을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뭔 걱정이냐? 어차피 떨어질 텐데.”
“야, 정갑수 아버지가 보사부 고위 공무원이잖아. 거기다 과장님하고 친구라는 말이 있어. 이거 심각하지 않냐?”
“그게 뭐 어쨌다고, 인마. 아무리 백이 좋아도 기본이 돼 있어야지. 다들 결과가 어떨지 빤히 아는데 설마 정갑수를 붙일 수 있겠어?”
“흐음! 그렇긴 한데 불안해. 인원이 찼는데도 정갑수가 지원을 했다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잖아.”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아마 군대는 가기 싫고, 갈 수 있는 과는 없으니까 그냥 찔러 본 걸 거야. 씨펄! 그래도 그렇지! 일반 외과를 너무 우습게 본 거 아냐? 기분이 확 잡치네.”
“그렇겠지? 에이! 괜히 신경을 썼네.”
손일석이 턱을 만지며 투덜거렸다.
그때 한영철이 들어왔다.
어째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며 물었다.
“너 아직도 속이 안 좋아?”
“응. 그래서 내시경하기로 했어.”
손일석이 깜짝 놀랐다.
“뭐? 내시경? 아니, 속이 얼마나 안 좋기에 내시경까지 해? 정말 하기로 한 거야?”
“응. 소화기 3년차 선생님이 해 주시기로 했는데 시간이 나야 하지. 어후! 피곤해서 잠 좀 자야겠다. 미안한데, 혹시 나 찾는 방송 나오면 깨워 줘.”
한영철이 손을 휘휘 저으며 침대에 누웠다.
“지훈아, 저 자식 정말 많이 아픈가 본대?”
“별거 있겠어. 끽해야 위궤양이겠지. 후우! 아파도 검사할 시간이 없는 우리나, 병원 올 시간이 없는 환자나 똑같네.”
내시경을 하기로 했다는 말에 걱정은 하면서도 내심 별일 없을 것이라 믿었다. 이제 20대 중반인데 큰 병은 없을 것이다.
신정 연휴도 전쟁이었다.
첫날 근무를 끝낸 김지훈이 잠도 안 자고 수원으로 향했다. 칼바람이 불어 두툼한 잠바를 입었어도 몸이 떨렸다.
수원에 도착해 버스를 갈아탄 김지훈의 안색이 어두웠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조그만 납골당에 도착했다.
‘아버지, 어머니, 벌써 1년이 지났네요.’
맥주 한 병과 장미꽃 한 다발을 놓았다.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제 8년째에 들어선 탓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슬픔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손이 얼어 감각을 잃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던 김지훈이 절을 하고는 일어섰다.
‘환자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럼 저절로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되겠죠?’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한참을 걸어 버스에 타고 나서도 지독한 추위가 몰려왔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운 이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그런 생각에 빠지곤 했다.
다음 날, 어깨가 축 처진 김지훈이 간신히 근무를 마쳤다.
식욕도 없어 당직실에 누워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훈철이었다.
(지훈아, 별일 없었지?)
“예, 형님.”
(목소리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피곤한 모양이구나. 용건만 간단히 얘기할게. 일전에 말했던 거 문제가 많더라.)
“구급대 문제요?”
(응. 다들 아니라고 하지만 뒤로 주고받는 돈이 있었어. 조만간에 뉴스에 나올 거야. 아주 확실하게 보도를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야 되겠지. 뉴스로 안 되면 기획 프로그램까지 생각하고 있다.)
정훈철이 꽤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김지훈이 문득 병원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장들은 모두 병원의 이름을 달고 운영되기 때문이다.
“형님, 혹시 병원하고는 관련이 없을까요?”
(왜? 피해가 있을까 봐 걱정돼? 병원 이름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거의 모든 병원이 외주를 주니까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거야.)
다행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장 문제로 병원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니고요. 만에 하나 관련이 있는 경우가 있다면 그래도 사정을 들어 볼 수는 있잖아요.”
(정 그렇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알아볼게. 그런데 이런 문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당장 떠오르지 않네.)
“이혁민 교수님 아시잖아요. 아직도 응급실 부장님이시니까 다른 문제가 있는지 여쭤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정훈철이 잠시 뜸을 들였다.
(알았어. 니 말대로 확실하게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 그럼 내가 약속을 잡을 테니까 너 오프가 언제인지 알려 줘.)
“저도 같이 만나자구요?”
(그럼.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있잖아. 보니까 이혁민 교수님도 널 꽤 아끼던데, 이참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이혁민 교수가 아무리 자신을 아낀다고 해도 낄 자리인지, 아닌지 생각을 해 봐야 했다. 곰곰이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오프 날짜를 알려 주었다.
이틀 후 저녁 세 사람이 모였다.
김지훈의 경험과 정훈철의 취재 내용을 들은 이혁민 교수가 한탄을 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나도 의심은 좀 했는데 정말일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허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그래서 며칠 내로 방송을 내보낼까 합니다. 그런데 혹시 병원에 피해가 가는 일이 없는지 궁금해서 만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수님, 별일 없겠습니까?”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장 이름에 병원 명을 붙이긴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직영이 아니라 외주를 준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재단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직들 이외에는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예정대로 방영을 해도 되겠군요.”
“그렇게 하시죠. 우리 병원만이 아니라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들에서 모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막아야죠. 만약 돈과 관련해서 뒷거래를 한 직원이 있다면 병원을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도리어 이혁민 교수의 태도가 더 단호했다.
사람의 생명은 결코 돈과 바꿀 수는 없다. 단 한 명의 피해자만 나와도 그 사람에게는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예정대로 보도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D님.”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나도 의심만 하면서 지나친 일을 방송에 나오게 하다니 참 대단하네. 잘했다. 환자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나. 그렇제?”
“예, 선생님.”
“상황은 더럽지만, 널 보니까 기분이 좋다. 한 잔 받아라. PD님도 한 잔 받으시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들 씁쓸한 기분에 술을 마실 상황이 아니었다. 술이 그대로 남았다.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김지훈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내심 다른 것을 묻고 싶었다.
“저, 선생님, 혹시 지원자는 다 찼나요?”
슬며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니는 일반 외과 한다는 놈이 누가 지원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나? 그러다 니도 덜컥 떨어진데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이혁민 교수가 묘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성격상 신현수면 몰라도 김지훈이 모를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