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마음이 아픈 사람들 Ⅱ(3)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갑자기 박인재가 정색을 했다.
“아닙니다. 속상한 일 없는 사람이 있나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신의 병실로 들어가 누웠다.
그날 이후, 김지훈은 박인재와 더욱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꼭 술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말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떠나 많이 친해졌다.
백승주가 항상 옆에 앉아 빤히 얼굴을 보며 무릎을 만지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살짝 손을 밀어내는 것으로 족했다.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이제 정신과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도 백승주의 손을 가만히 밀어야 했다.
“좋으면서 왜 그래? 오빠, 저 오빠랑 얘기 그만하고 나랑 자자. 오빠도 그거 좋아할 거 아냐.”
박인재가 한숨을 쉬었다.
“어이구!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젊은 애가 요 모양이 됐을까? 참 너도 인생 힘들게 산다.”
“오빠, 내가 뭐 어때서?”
남자는 다 오빠였다.
꽥 소리를 지른 백승주가 눈을 흘기며 다른 환자 옆으로 갔다. 어김없이 무릎을 만졌다. 도가 지나친 선에 근접하자 화이트 가운이 달려와 백승주를 잡았다.
김지훈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승주 씨도 다 사연이 있겠죠.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구미에서 보니까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알겠던데요.”
“구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은비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김지훈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은비에 대해 말했다.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고요? 그래서요?”
“다행히 잘 회복돼 퇴원했어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인재가 울고 있었다.
김지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만 멀뚱거렸다.
“왜 그러세요? 제가 뭐 잘못 말한 게 있나요?”
박인재가 고개를 흔들다 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줄줄 흐른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으흐흑! 그때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물론 듣기에 따라 감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십이 훌쩍 넘은 남자가 눈물까지 흘릴 일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환자들이 느릿느릿 다가와 박인재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울지 마.”
무슨 일이 났는지 알고 일어나는 간호사와 화이트 가운을 정신과 1년차가 막았다. 어쩌면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들을 수도 있는 기회였다.
꾹꾹 울음을 삼키던 박인재가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잘하셨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자식이 먼저 떠나면 가슴에 대못이 박혀요. 내 자식도 그렇게 갔습니다.”
자식을 떠나보낸 사람이 또 있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눈물이 생각난 김지훈이 가만히 박인재의 손을 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박인재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들놈이 하나 있었어요. 대학교도 좋은 델 갔죠. 2학년까지 마치고 군대를 가서 무사히 지내고 말년 휴가까지 나왔는데…….”
목이 타는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는다더니, 그놈이 그 꼴이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친구들과 계곡에 가서 놀고 온다기에 출근하면서 용돈까지 두둑하게 줬는데, 글쎄 그놈이 차디찬 몸으로 돌아왔지 뭡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었어. 이 사람 아들이 죽었어.”
정신분열증 환자의 느릿한 말에 박인재가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내 아들은 죽었어. 술 처먹고 계곡 물에 코를 박고 죽었어. 후우!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인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아픔을 술로 달랜 것이다. 10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묻은 채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했으니, 그동안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착잡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김지훈이 박인재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박인재의 아픔을 듣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박인재가 비틀비틀 병실로 들어갔다.
1년차가 조용히 김지훈에게 다가왔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잘했어. 아픈 사람들에겐 위로하는 말보다는 들어 주는 게 더 좋아. 과장님 지론이지만 나도 환자들을 보다 보니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듣기만 해서 어떻게 치료를 한단 말인가?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자식을 못 잊어 술을 먹는 사람에게 술 끊는 약을 준다고 해결이 되나요?”
“이젠 될 거야. 눈물로 마음속에 숨겼던 아픔을 해소했고, 사연까지 다 털어놓았으니까 확실한 열쇠를 찾은 거지.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 아니겠어? 고맙다. 니 덕분에 오래간만에 환자 한 명 확실히 치료하겠어.”
다음 날, 박인재의 심리 치료가 시작됐다.
가슴속에 묻었던 기억을 끄집어낸 탓인지 하루 종일 울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박인재가 약을 거부하고는 술병과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근무 날까지 박인재는 술병에 손도 대지 않았다.
경미한 금단증상까지 나타났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면회를 왔던 부인에게 보름 정도 더 입원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여보, 왜요? 이젠 약도 안 듣는 거예요?”
“아니야, 여보. 나보다 당신이 더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미안했어. 이번엔 약이 아니라 내 의지로 끊고 싶어. 나 당신과 웃으면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그래야 그동안 당신에게 빚진 거 모두 갚을 거 아냐.”
부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김지훈이 밝게 웃으며 과제를 제출했다.
정신분열증과 편집증, 그리고 우울증으로 대표되는 질환에 관한 글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백승주가 가진 성적 망상도 물론 리포트에는 쓰지 못했다.
정신과 과장이 쓱쓱 리포트를 넘기며 말했다.
“알코올 중독에 관한 리포트는 김지훈 선생이 처음이다. 쓰기 쉬웠던 모양이야.”
“예.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면도 있습니다.”
“요령을 부린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왜 알코올 중독에 관해 썼는지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마지막 장을 펼친 정신과 과장이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본문이 아니라 사족처럼 달린 글이었다.
알코올 중독 환자에 대한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은 물론 질병이 없는 사람들까지 모두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인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기에 환자를 대할 때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 이것이 의사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마음을 살핀다. 좋지. 김지훈,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노력하겠습니다.”
정신과 과장이 처음으로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리포트 끝에 빨간색으로 A를 썼다.
그러고는 물었다.
“정말 노력할 거지?”
“예, 과장님.”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더 추가했다.
+ 기호가 선명하게 A 옆에 자리 잡았다.
모든 근무를 끝내고 인사까지 마친 김지훈이 3개의 철문을 통과했다.
함께 밥이나 먹자던 1년차가 중얼거렸다.
“정신과에서 A+ 받은 인턴은 니가 처음이다.”
김지훈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전공의가 되면 더 힘들겠지만 인턴 역시 시간과 싸움을 한다. 수련 일정마저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밥 먹고 자기 바빴다. 김지훈이 전형적인 예였다.
저녁에 잠깐씩 술자리를 하는 건 어떻게 시간을 낸다지만 데이트까지는 무리였다. 고경아와도 전화 통화는 제법 했지만 정신과 돌 때 한 번 만난 게 다였다.
명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안 근무 중 추석을 맞았지만 인턴들 대부분이 집에 가질 못했다. 연휴라고 해도 퐁당퐁당 하루걸러 당직이면 그냥 사이에 쉬는 날이 하루 있을 뿐이었다. 응급실을 도는 동기들은 아예 죽음이었다.
손일석이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아! 지훈아, 어제 응급실에서 400명 봤댄다.”
“400명? 추석 연휴라서 다 몰려온 모양이네. 응급실 도는 놈들 살아 있던?”
“그냥 죽지 못해 숨만 쉬고 있더라.”
“내공은 엄청 쌓였겠다.”
“야, 그건 내공이 쌓이는 게 아니라 기를 빨린 거야.”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문득 중환자실보다 더 힘들다는 응급실을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도 한번 돌고는 싶네.”
“미친놈. 이 자식이 완전히 맛이 갔네. 지금 토요일 8시야. 오프인 놈이 지금까지 일을 하고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러게. 정말 내가 미친 거 아닐까?”
이번 주말은 간만의 오프였다. 그런데 일이 많아 7시가 돼서야 근무가 끝났다. 고경아를 만나고 싶었지만 시간도 늦었고, 피곤이 몰려와 서울에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씁쓸한 기분으로 고경아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런데 고경아가 천안으로 내려오겠단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당연히 환영이었다.
다음 날, 터미널에서 고경아를 기다리는 동안 은근히 마음이 설렌 김지훈이 안절부절못하며 목만 뺐다.
‘올 때가 됐는데 길이 밀리나?’
버스 도착 시간이 늦어지자 시계를 보던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고경아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함께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생생한데 유독 얼굴만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 고경아가 버스에서 내렸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야 희미했던 윤곽이 또렷해졌다.
정말 희한하면서도 이상한 일이었다.
“오느라 피곤했죠? 버스 한 번 더 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어디로 갈 건데요?”
“천안 삼거리요. 분위기가 죽여준대요.”
고경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내버스를 탔다.
이놈의 버스는 정말!
청평에 갈 때는 만원버스라 고생을 했는데 천안 삼거리는 너무 멀었다. 근 한 시간을 넘게 달렸다.
김지훈이 내심 투덜거렸다.
‘충청도 사람이 여유가 많다는 말이 이거였어? 애새끼, 버스 타면 금방 간다고 하더니 한 시간도 넘게 걸리네. 이건 여유가 아닌 것 같은데.’
문득 고개 하나만 넘으면 바로 나온다고 해서 그 말 믿고 가 보면 몇 개를 넘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동기 놈도 그런 기질을 고스란히 받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고경아와 함께 있긴 마찬가지였다.
좋게 생각할 일이었다.
차창 밖 길가를 따라 능수버들이 멋들어진 모습으로 줄줄이 서 있었다. 늘어진 가지가 바람을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부터 흐릿했던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렸다.
1,000원짜리 파란색 비닐우산을 쓰고 함께 걸었다.
기대와는 달리 볼거리는 없었지만, 전통 활을 쏘는 궁터를 중심으로 데이트하기 좋은 코스가 있었다. 가을비답지 않게 촉촉하게 내리는 비로 분위기가 살았다.
길 건너편에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죄다 무슨 옥이네 무슨 집이네 하는 간판을 단 술집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마다할 수도 없고, 데이트에 술 빠지면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김지훈이 천안옥이라는 집을 가리켰다.
“대낮부터 술 마실 거예요?”
듣고 보니 그렇다.
김지훈이 딴청을 부렸다.
“밥도 먹어야 하고, 눈에 딱 보이는 식당이 없네요. 일단 메뉴만이라도 확인해 보죠.”
고경아가 김지훈을 째려보며 천안옥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식사와 술을 모두 파는 집이었다.
전통 한옥을 개조한 데다 사람까지 적어 고즈넉했다. 사랑방처럼 마당을 볼 수 있는 방에 들어서자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뭐 먹을래요?”
고경아가 메뉴판을 보며 되물었다.
“지훈 씨는 뭐 먹을 건데요?”
“나야 아무거나 다 잘 먹는 거 알잖아요. 천안까지 왔는데 경아 씨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응. 그럼 김치찌개 먹어요. 전에 지훈 씨가 끓였던 김치찌개를 또 먹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쉽네요.”
“그거 자취방용 김치찌개였는데 괜찮았어요?”
“맛있기만 하던데요. 다른 음식도 잘할 것 같아요.”
음식 잘한다는 소리가 왠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김치찌개에 파전 하나와 동동주를 시켰다.
비 오는 풍경을 보며 동동주를 마셨다.
김지훈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머! 지훈 씨, 요새 너무 피곤했나 봐요. 조금만 마셔요.”
“소주는 괜찮은데 동동주나 막걸리에는 내가 좀 약해요. 그냥 얼굴만 그렇게 보이는 거니까 걱정 말아요.”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한 잔의 술.
너무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가끔은 소리 내 웃는 고경아의 모습이 예뻤다.
‘경아 씨랑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서 참 좋네.’
안 나긴!
불타는 청춘이 주말을 맞이해 호젓한 술집에 앉았다.
낭만적인 분위기에, 슬슬 온몸에 퍼지는 술기운.
도발적인 빨간색 입술과 여인의 향기.
순간 후끈 달아오른 김지훈이 슬며시 고경아 옆으로 자리를 옮기다 눈이 딱 마주쳤다.
김지훈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말했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밀어붙였어야 했나? 아직은 빠른가?’
고경아가 마음에도 없이 천안에 내려왔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확신이 필요했고, 기회는 많을 것이다.
찬물로 세수를 하며 불타오르는 가슴을 식혔다.
즐거운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어느새 고경아가 돌아갈 시간이 됐다.
“이제 2주밖에 안 남았네요. 서울 올라가서 봐요.”
“네. 전화 주세요.”
버스에 오른 고경아가 손을 흔들었다.
언제나 아쉬운 작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