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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92화 (92/1,329)

제10화 마음이 아픈 사람들 Ⅱ(2)

갈매기살 집에 모였다.

김지훈, 손일석, 이경석, 김경수, 한영철, 윤서연.

이렇게 여섯이었다.

다들 배가 고픈지 갈매기살에 집중했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열심히 고기를 씹던 김지훈이 한영철을 보았다. 함께 나온 된장찌개에 밥만 먹고 있었다.

“영철아, 너 왜 안 먹어? 갈매기살 좋아하잖아.”

“요새 이상하게 속이 안 좋아.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래? 내과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약 좀 먹지.”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먹고 있는 중이다.”

소화불량이라니, 강철도 소화시킬 수 있는 나이다.

조금은 의아한 일이었고, 한영철만 빼고 먹으려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눈앞에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일단 먹고 볼 일이었다.

고기가 바닥을 보이고, 몇 잔의 술이 오갔을 때쯤 신현수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합석을 했다. 윤서연이 김지훈 옆에 앉아 있는 걸 본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평소 동기들과 좀처럼 술자리를 하지 않았기에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현수야, 술자리에 다 오고 웬일이냐. 밥은 먹었고? 아 참! 그 애 수술은 잘 끝났어?”

“밥은 됐고. 손일석, 오늘 왜 꼭 보자고 한 거야? 빨리 얘기해. 나 시간 없어.”

정말 갈 기세였다. 손일석이 급히 술 한 잔과 함께 씹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야야, 뭐가 그렇게 급해. 경수하고 영철이도 일반 외과를 한다고 해서 보자고 했어. 이런 일은 우리가 서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호성을 질렀다.

김경수와 한영철은 눈에 확 띄진 않아도 성실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있어 정말 든든한 동기들이었다.

“오! 김경수, 한영철! 웰 컴 투 쥐에수 월드. 니들이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까 든든한데.”

김경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아직 붙은 것도 아닌데, 뭐.”

“경수야, 여기 붙은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솔직히 니가 떨어지면 누가 되겠냐.”

“그럼. 지훈이 말에 100프로 동감. 이렇게 되면 지훈이, 현수, 경석이 형까지 난킴(예비역)이 셋이고, 킴(군 미필자)이 나하고 경수, 영철이까지 셋. 티오가 네 명씩이라니까 한 명씩 남았네. 그럼 작전을 짜 볼까?”

모두들 머리를 맞댔다.

이젠 손일석의 말대로 작전이 필요한 때였다.

전공의 티오는 미리 정해져 있기에 인원이 차면 다 찼다고 일부러 소문을 냈다. 반드시 하고 싶은 과가 아니라면 대부분 인원이 찬 과는 피했다.

특히 킴인 경우 전공의 선발에서 떨어지면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경쟁을 피하고 싶어 했다. 물론 일부 인기 과는 피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서울 동기들에게 연락을 할 테니까 경수는 구미에 난킴 한 자리, 킴 한 자리 남았다고 연락해. 경석이 형, 군대 갔다 온 선배들은 형이 맡으셔야겠어요.”

“알았어. 나도 여기저기 물어보고 있는 중이다.”

윤서연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귀를 기울였다. 신현수 역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명만 더 지원하면 당연히 정갑수가 떨어지겠지? 그런 인간이 들어와 봐야 내겐 도움이 안 돼. 쓸데없이 엉겨 붙기나 하겠지.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도 있고 말이야. 김지훈도 전공의가 되면 내 상대가 될 수 없으니까 정갑수는 없는 게 훨씬 낫겠어.’

해마다 한두 명 정도는 더 지원을 했으니 인원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정갑수가 정식으로 지원하기 전에 한 명이 더 지원을 해야 뜻대로 될 수 있었다.

“갑수 형이 일반 외과를 한다는 소리가 있어.”

신현수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 모습에 김지훈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교 다닐 때 성적하고 인턴 도는 걸 볼 때, 누가 와도 경쟁이 안 돼.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코웃음이 터졌다.

“정원 다 찼다고 지원하는 애가 없으면.”

앗! 그 생각을 못했다.

김지훈이 흠칫 놀라는 사이 신현수가 일어났다.

“난 간다. 잘들 해 봐.”

“신현수, 이제 시작했는데 가는 거야? 같이 먹자.”

“당직이야.”

손일석이 급하게 불렀지만 신현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윤서연, 지금은 김지훈이 괜찮아 보이겠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거야. 아버님이 허락할 것 같아? 결혼은 현실이야.’

신현수만이 아니라 아버지인 신동석도 윤서연을 원했다.

윤서연의 집안 역시 신현수를 잘 알았고, 이미 사윗감으로 점찍고 있었다. 대학과 병원에 막대한 돈이 결합되면 최고의 집안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병원으로 향하던 신현수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외과의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수술을 잘해야 한다.

개인 병원에도 아버지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인맥이 많았다. 기본적인 수술은 전공의가 되기 전에 충분히 숙지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당직만 아니라면 술자리에 남아 김지훈을 지켜보고 싶었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현수가 가 버리는 바람에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이내 다들 머리를 맞댔다.

“빨리 한 명 더 수배하자. 일반 외과 할 마음이 있다는 소리 들으면 번개처럼 연락하자구. 다 달려가서 바로 꼬시는 거야. 정갑수가 아예 지원할 마음도 품지 못하게 하자구.”

손일석의 말에 김지훈이 맞장구를 쳤다.

“오케이.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야. 만일 1년차 때 정갑수랑 같이 돌게 되면 최소 사망이라고 본다. 그 인간 웬만한 일은 다 떠넘길 게 틀림없어.”

윤서연이 있어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의외로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한지 김지훈이 윤서연을 보며 입 확실히 닫아 달라는 시늉을 했다.

“걱정 마.”

이것으로 오늘 할 말은 다 했다.

남은 일은 하나였다.

돈만 내면 갈매기살과 소주는 얼마든지 준다.

악어와 정갑수는 훌륭한 안주였다. 오늘 응급실에서 있던 일까지 더해 모든 것이 완벽해졌다.

부어라, 마셔라.

그렇게 어둠이 깊어졌다.

김지훈의 매서운 눈초리에 윤서연은 딱 맥주 한 잔만 마실 수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앉아 있었다.

몇 잔밖에 안 마신 한영철이 속이 안 좋다면 간간이 인상을 찌푸렸다. 은근히 걱정이 된 김지훈이 병원으로 돌아가며 한영철에게 농담처럼 말을 했다.

“그 화려했던 한영철이 어디 간 거야? 그렇게 안 좋아?”

“그러게 말이다. 몇 잔 안 마셨는데 속이 꽤 답답하네.”

“그럼 내시경이라도 해 봐, 인마. 위궤양인가 보다.”

이제 20대 중반에 그럴 일은 없었지만 한영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정신과 근무는 단조롭고 지루하면서도 마음까지 불편하게 했다. 마치 에로 배우라도 된 것처럼 끈적끈적한 눈길을 보내는 백승주의 공세가 더욱 심해졌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이제 하루에 소주 한 병만 마셨지만 고통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망상과 환청 때문에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를 했다. 잠을 잘 때도 손에서 놓지 않는 수첩 속에는 자신만이 아는 온갖 기호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금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조울증 환자는 마치 깊은 절망에 빠진 것 같았다. 불과 몇 달 전, 조증으로 하룻밤에 7백만 원을 쓰고 들어왔다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항상 철문에 난 틈과 창문으로 밖을 보며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편집증 환자는 강박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만 보면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김지훈이 환자들을 보았다.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환자의 상태는커녕 질병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머리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인데, 뭘 제대로 알아야 말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리포트 쓰는 것도 걱정이네. 대충 쓸 수도 없고.’

도대체 뇌에 어떤 문제들이 생긴 것일까?

문득 총에 맞아 어이없게 죽은 환자와 수술까지 한 갓난아기가 생각났다. 보호자들의 울음소리와 슬픔에 젖은 눈동자가 머릿속을 스쳤다.

이들도 분명 환자였다. 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어딘가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말이었다. 정신과 의사들도 치료에 한계를 토로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눈에 빤히 보이는 증상이 있는데도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원인조차 모른다. 답답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눈가를 찌푸렸다.

‘회진 때 듣는 말 정도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네. 이 사람들도 분명 환자들인데 이렇게 근무를 끝마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다.’

관심이 없다고 환자를 아예 몰라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 외과를 한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정신과 환자를 볼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 이상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정신과를 돌 수는 없었다.

도움이 안 될지언정 마음만은 편하고 싶었다.

오후 회진이 끝나고 김지훈이 퇴근을 하려는 정신과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제가 환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과장이 무덤덤하게 물었다.

“그건 왜 물어?”

“열흘이 지나도 환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힐끗 김지훈을 보는 과장의 표정이 묘했다.

“정신과에 관심 있어?”

“솔직히 그건 아닙니다.”

“그래? 그럼 먼저 환자들이 하는 말부터 잘 들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누구도 확실하게 몰라. 이 사람들을 대하는 의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환자나 보호자를 대할 때와는 달리 무뚝뚝한 말투였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라니,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말을 마친 과장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을 했다.

‘수업 때도 무뚝뚝하시더니 여전하시네.’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지훈에게 1년차가 다가왔다.

“김지훈, 일반 외과 한다며. 우리 과는 지금처럼만 돌면 돼. 전에도 얘기했지? 3주면 알코올 중독 환자 퇴원하는 것도 못 봐. 그냥 편하게 돌아.”

“선생님,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 다 똑같은 환잔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1년차가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좁은 공간에만 있다 보니 갑갑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마음이 불편하다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럼 한 가지만 말해 줄게. 백승주 환자 알지?”

“예. 너무 들러붙어서 정말 죽겠어요.”

“그 환자는 어디가 아픈 것 같아? 아니, 보고 있으면 아프다는 생각은 들어?”

“솔직히 그냥 정신과 환자 같기는 해요.”

1년차가 눈을 비비며 안경을 고쳐 썼다.

“많이 아픈 환자다. 지금도 말은 안 하지만 아마 예전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거야. 어쩌면 성폭행을 당했을 수도 있어.”

“성폭행이요?”

“추측일 뿐이지만, 그게 잠재의식 속에 숨어 죄의식처럼 작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합리화시키는 거지. 난 매력 있다, 모든 남자들은 나와 자고 싶어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무의식과는 반대로 나타나는 거지. 다른 환자들도 잘 찾아보면 원인이 될 만한 일이 있는 경우가 많아. 어떻게 보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야.”

마음이 아픈 사람!

뭔가가 뇌리를 강하게 치고 나갔다.

하다못해 맹장에 걸려도 환자는 두려워하고 상심을 한다.

왜 정신과 환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벌써 여섯 시 반이다. 퇴근해.”

1년차가 옷을 갈아입고 퇴근할 때까지 김지훈은 가운도 벗지 못했다. 뭔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 김지훈이 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전혀 알아들을 수 없거나 망상이었다.

편집증 환자의 말은 상당히 정교하고 그럴법해 정말이라고 믿을 뻔했다.

특히 의처증으로 입원한 환자의 말을 듣다 보니 정말 부인이 바람이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지훈이 머리를 흔들며 일단 자리를 피했다.

‘편집증 환자가 있으면 가족들도 다 환자 말을 믿는다고 하더니, 내가 그 짝이네. 이러다 나도 이상해지겠는데. 치료하기도 정말 어렵다는데 심각하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답답한 마음에 눈가를 찌푸리던 김지훈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알코올 중독 환자였다.

박인재. 56세 남자 환자.

환자의 이름과 함께 문득 부인의 붉어진 눈가가 떠올랐다.

단순히 술이 좋아 먹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이 된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왠지 눈빛이 슬퍼 보였다.

“뭐 보세요?”

“예? 그냥 답답해서요.”

“여러 번 입원하셨는데 왜 술을 못 끊으세요. 그러다 궤양 생기고, 간까지 나빠지면 몸이 다 망가질 수도 있어요. 전에 알코올 중독 환자를 봤는데 궤양으로 위를 반이나 잘랐어요. 금단증상도 엄청나게 문제가 되더라구요.”

박인재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잘 알죠. 근데 그게 뜻대로 안 되네요. 처음에는 마음이 아파서 먹기 시작했는데 이젠 몸이 술을 원해요.”

마음이 아파서 술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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