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마음이 아픈 사람들 Ⅱ(1)
이젠 다들 초짜 티를 벗었다.
일단 약속이 있으면 일단 응급실에서 먼저 만났고, 간호사들도 한눈에 인턴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김지훈이 응급실에 들어가 곧장 당직실로 향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피부과 도는 자식이 뭐가 바쁘다고 아직도 안 왔어?”
혼자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운 김지훈이 귀를 쫑긋거렸다.
천안 응급실은 밤이나 낮이나 전쟁터였다.
중환자실과 같은 이유로 온 동네에서 환자들이 밀려들어 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응급실이 소란스러웠다.
정신과 도는 것도 피곤한지 솔솔 잠이 왔다.
눈이 감길락 말락 할 때, 응급실을 도는 동기 한 명이 들어왔다. 김지훈을 보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지훈아, 혹시 일반 외과 선생님들 어디 계신지 알아?”
“응? 난 일반 외과 아닌데.”
“그렇지? 지원을 한 거였지. 그나저나 큰일 났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소아과 애 수액 라인 하나 잡아야 하는데, 지금 아무도 못 잡고 있어. 구선미 선생님도 정맥을 못 찾네.”
소아과 환자 중 아주 어린 아이들은 종종 수액 라인을 잡기가 곤란했다. 노련한 응급실 간호사가 안 되면 소아과 간호사를 부르고, 그래도 안 되면 소아과 전공의까지 불렀다.
소아과 전공의 중 엑설런트하다는 구선미까지 실패했다면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분명했다.
김지훈이라고 딱히 방법이 있은 건 아니지만, 걱정 반 호기심 반에 동기를 따라 당직실을 나왔다. 슬쩍 처치실을 보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무슨 환자야?”
“6개월 된 앤데, 어제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쳤어. 신경외과에서 바로 시티를 찍었는데 출혈이 있더라구.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라인을 잡아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 중심 정맥이라도 잡으려고 일반 외과 선생님들을 찾았는데, 모조리 수술 중이라 사람이 없네.”
말로만 듣던 지연 출혈이었다.
두개골에 충격이 가해진 직후가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뇌출혈을 하는 경우였다.
뼈가 단단한 어른들에게는 극히 드물지만 뼈가 연한 아이들에게서는 드물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차트를 보니 6개월짜리의 몸무게가 12킬로그램이었다.
가뜩이나 아이들은 혈관이 가는데 비만이 너무 심해 구선미도 정맥을 찾지 못한 것이다. 머리도 과도한 체중 때문에 손상을 받았을 것이다.
두개내출혈은 위치에 따라 수술 방법이 달랐다. 따라서 조영제를 써 정확하게 어디서 출혈을 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설혹 출혈 종류를 안다고 해도 수액 라인을 잡지 못하면 마취조차 할 수 없다.
수술을 요하는 두개내출혈의 무서운 점은 적절한 때를 놓치면 100프로 사망을 한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혈종과 뇌부종이 심해져 결국 뇌가 공간이 좁은 척수 쪽으로 밀리게 된다.
문제는 가장 먼저 척수로 밀려들어 가는 부위인 뇌간과 연수에 호흡 중추가 있다는 것이다.
호흡 중추가 눌리면 숨을 못 쉰다.
그렇게 되면 누가 와도 손을 쓸 수가 없다.
신경외과 전공의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신현수, 일반 외과 연락 안 됐어? 오프인 사람 있을 거 아냐. 빨리 찾아. 이러다 애 놓쳐.”
신경외과를 도는 신현수가 눈빛을 굳히며 답했다.
“당직 팀은 지금 모두 수술 중입니다. 오프인 선생님들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만, 연락이 안 됩니다.”
처치실에 의사들이 바글거렸지만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틈엔가 손일석과 이경석도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지훈아, 뭐야? 왜 그래?”
김지훈이 아이를 보며 생각에 잠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반 외과를 찾는 이유는 하나였다. 몸 깊숙이 지나가는 중심 정맥을 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상완부 근육 속으로 들어가는 정맥을 찾아 정맥용 도관을 넣으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금과 같은 경우 아이가 고도비만이라 찾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두 번째는 쇄골하정맥에 도관을 넣는 것이다. 빠르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에는 주로 이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사용 가능한 적절한 길이와 두께를 가진 도관이 없었다.
무리하게 시도하다 쇄골 밑에 위치하는 폐를 찌르게 돼 기흉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많은 의사도 없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 당장 어떻게든 정맥을 확보해야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뚫어지게 보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신경외과 전공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방법이 없으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전공의와 인턴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지훈에게 쏠렸다.
신현수가 크게 놀란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정말 방법이 있단 말인가?
“방법이 있어? 뭐야?”
김지훈이 막 대답을 하려는 순간, 윤서연이 응급실로 내려왔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쇄골하정맥에 도관을 넣죠.”
잔뜩 기대를 했던 신경외과 전공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또 뭐라고. 그건 이미 한 얘기야. 그렇게 길고 굵은 걸 어떻게 이 조그만 애한테 넣어? 그러다 폐만 찔러.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손일석까지 이건 아니라는 얼굴이었고, 신현수는 눈가를 찌푸리며 김지훈을 노려보았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이 시간에 쓸데없는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그때 김지훈이 손을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꼭 중심 정맥용 도관을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16G 바늘로 찌르면 길이나 굵기가 꼭 맞을 겁니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의사들은 도제에 가까운 방법으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한다.
물론 수련에 알맞은 방법이었고, 장점도 많았지만 단점은 경직성이었다. 때론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살짝 비틀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구선미가 주의를 환기시키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간호사, 빨리 16G 바늘하고 수액 갖고 와요. 만니톨(manitol:뇌 손상 환자에게 쓰는 수액)도.”
간호사가 부랴부랴 준비를 하는 사이 묘한 정적이 흘렀다.
누가 이 어린아이에게 16G 바늘을 이용해 쇄골하정맥을 잡는단 말인가?
일반 외과를 제외한 모든 과 전공의들에겐 경험이 거의 없었다. 신경외과 전공의도 마찬가지였다.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대량으로 혈액이나 수액을 공급할 필요가 있는 환자에게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씨팔! 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누구 없어?”
신경외과 전공의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구선미는 소아과였기에 당연히 경험이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경험이 있는 의사가 필요했다.
지금은 전문의가 아니라 과장이 온다고 해도 경험이 없다면 도움이 되질 않는 상황이었다. 도리어 응급실을 담당하는 전공의들이 더 잘할 수밖에 없는 술기였다.
구선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누가 하지? 해 본 사람 없어?”
구미에서 중심 정맥에 도관을 넣어 봤던 김지훈과 신현수의 눈길이 마주쳤다.
적당한 케이스의 어른이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기흉이라도 만든다면 아이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수술도 하기도 전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만일 죽기라도 한다면?
인턴으로 수련을 끝내야 할 수도 있었다.
꿈과 희망이 모두 날아가는 것이다.
이미 구미에서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한 김지훈이었다.
솔직히 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죽어 가는 아이와 실패에 따른 책임.
‘정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렇게 어린아이가 아무 치료도 못하고 죽는다. 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면 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최악의 경우?’
힐끗 신현수를 보았다. 안경테를 올리며 아이를 보던 신현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을 몰아쉰 김지훈이 쇄골하정맥을 잡는 방법을 상기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너무 위험했다.
“간호사, 아직 일반 외과 선생님들에게 연락 안 됐어요?”
“안 됐어요.”
“수술실은요?”
“지금 당장 나올 수 있는 선생님이 없대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새 아이의 호흡까지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기도에 삽입된 볼펜 두께만 한 튜브를 통해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사람을 살리자고 의사가 됐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중환자실에 손도 못 쓰고 죽었던 환자를 벌써 잊어선 안 되잖아.’
지금 아이를 외면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김지훈의 꿈은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이지만 권위와 명예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죽어 가는 아이를 외면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꿈이었다.
“선생님, 구미에서 해 봤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니가? 할 수 있겠어?”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신경외과 전공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보호자에게 동의를 얻을 테니까 준비해.”
소독 장갑을 끼고, 아이의 우측 쇄골 주변을 깨끗하게 소독했다. 왼손으로 쇄골을 만지며 어느 방향으로 찔러야 할지 생각했다.
‘최대한 쇄골 하부에 붙여 평행하게 넣는다. 아이들의 폐는 위쪽으로 발달한 경우가 많으니까 약간 더 위쪽으로 찌르는 게 안전하겠지.’
그때 밖에서 아이 부모가 내지른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한 아이의 생명이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었다고 해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병원조차 막아 줄 수 없을 것이다.
신경외과 전공의의 오더가 떨어졌다.
“김지훈, 시작해.”
아이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희미하게 엄마의 울음소리가 멀어졌다. 차마 처치실 앞에서 기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우측 쇄골이 약간 밑으로 구부러진 부분을 왼손 엄지로 촉진했다. 바늘이 들어갈 부분이었다.
굵은 16G 바늘을 서서히 밀어 넣었다.
아이가 몸을 비틀자 구선미가 재빨리 어깨를 잡았다.
아이의 연약한 피부가 쉽게 뚫렸다.
예리한 바늘 끝을 쇄골 밑으로 전진시켰다.
2센티미터 정도 들어간 후, 김지훈이 바늘에 연결된 주사기를 당겼다. 쇄골하정맥에 들어갔다면 빨간 피가 올라올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밀어도 될까?
혹시 깊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식은땀이 났다.
더 밀어 넣을지, 아니면 깊게 찌를지 결정해야 한다.
‘쇄골 끝까지는 아직 2센티미터 정도 여유가 있고, 더 깊게 찌르는 것은 폐 때문에 너무 위험해.’
정맥의 주행을 생각할 때 실제 여유는 1센티미터 정도였다.
바늘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씩 전진시키며 주사기를 당겼다.
여전히 피 한 방울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여유가 거의 사라졌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시도한다고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문 채 바늘을 밀었다.
그때 뭔가 탁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주사기를 당기는 순간 검붉은 피가 쫙 올라왔다.
“후우! 라인.”
간호사가 재빨리 수액 라인을 연결했다.
“포터블 빨리 불러요.”
청진상 이상은 없었지만, 바늘로 찔려 생긴 초기의 기흉은 미세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폐를 확인해야 했다.
신경외과 전공의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일단 수술 준비부터 합시다. 검사 빨리 내보내고, 추가로 CT 찍어요. 응급실에서 확인할 여유가 없으니까 결과는 수술실로 바로 올려요.”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보호자는 신경외과 전공의만 바라보았다.
모두들 초조한 눈으로 가슴 사진을 기다렸다.
오늘 약속을 한 동기들과 윤서연에 가까스로 연락이 돼 응급실로 달려온 유석재까지 보였다.
가슴 사진이 나왔다.
폐는 멀쩡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지훈아.”
“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동기들과 유석재가 웃었다.
아이를 스트레치 카에 옮기고 막 응급실을 나서던 신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김지훈의 운이 좋았다고만 생각할 수 없었다. 치명적인 위험과 엄청난 책임을 감수하고 달려들었고, 그 덕분에 아이는 살 것이다. 김지훈에게는 운도 친분도 실력도 아닌 또 다른 것이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지 신현수가 자꾸 머리를 흔들었다.
윤서연의 시선이 김지훈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단순히 엑설런트한 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는 고작 한 번 해 봤을 뿐인데, 무슨 생각으로 한 거지? 문제라도 생겼으면 정말 큰일이 났을 텐데, 왜 두려움이 아니라 절박해 보였지?’
김지훈이 웃으면서도 아이의 뒤를 따르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럽게 눈물짓는 모습에서 부모의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 내가 의사가 된 이유는 바로 이거였어. 이렇게 살아야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 속에 앞날에 대한 새로운 각오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