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마음이 아픈 사람들 Ⅰ (2)
육체적인 질환을 가진 환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단 3주를 돌며 정신과 환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신과 과장과의 간단한 미팅이 끝나고 입원실로 향했다.
세 번째 문이 열렸다.
하얀색과 회색이 섞인 벽면이 우중충하게만 느껴졌다.
약물 때문인지 느릿느릿 걷는 환자들 사이로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는 환자들도 보였다.
‘흐음! 난감하네. 이 속에서 무얼 하라는 거지?’
정신과 과장은 열심히 돌라는 말과 리포트 말고는 할 일조차 정해 주지 않았다. 그나마 환자를 보고 있던 1년차가 반갑게 맞아 다행이었다.
“선생님, 저 뭐 해야 되죠?”
“인계 안 받았어? 우리가 시키는 일 없으면 어떤 환자들이 있는지만 잘 봐. 우리도 잘 모르는데, 3주 동안 뭘 하겠냐.”
정신과 1년차도 잘 모른단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TV로 영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천장에 바짝 붙어 있어 목을 치켜들지 않으면 볼 수가 없었다.
잠시 영화에 눈을 팔던 김지훈이 뻐근해진 목을 만지며 입맛만 다셨다.
열린 문 사이로 병실이 보였다.
아주 단순하게 만든 침대 하나와 쇠창살이 박힌 창문이 다였다. 세면도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해할 만한 물건은 다 치운다더니 정말이네. 환자들은 어디서 닦지? 화장실도 안 보이네.’
김지훈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있어야 할 시설은 다 있었다. 단지 환자들이 직접 이용하지 못할 뿐이었다.
화이트 가운이 천천히 환자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위험하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지 감시하는 모양이었다.
학생 때는 진료실이 있는 공간에서 실습을 돌았다.
막상 환자들을 직접 보니 적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숨만 나왔다.
그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옆에 앉았다.
“인턴 선생님입니까?”
“예. 왜 그러시죠?”
“심심해서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속에 있으니까 나도 미칠 것 같네요.”
환자가 아닌가?
“입원은 왜 하셨는데요.”
“술 끊으려고요. 1년에 한 번씩 입원하는 것도 참 힘드네. 이놈의 술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 좋은 방법 없습니까?”
알코올 중독 환자였다. 구미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 생각이 났지만 그게 다였다.
김지훈이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하긴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내가 여기를 들락날락거릴 리도 없겠죠. 어이쿠! 저승사자 왔네.”
간호사와 화이트 가운이 다가와 약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난데없이 소주 2병을 놓았다.
“저번에 다시는 안 온다더니 또 왔어? 술부터 먹고 약 확실하게 먹어.”
“예, 형님. 화장실 키는?”
얼마나 자주 왔는지 병원 직원을 형이라고 불렀다.
“토할 것 같으면 바로 말해. 너 또 저번처럼 문 열어 놔서 난리 나게 만들지 말고.”
김지훈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환자를 보았다.
알코올 중독 환자답게 안주도 없이 소주 2병을 마치 물 마시듯 벌컥벌컥 글라스로 마셨다. 시원하게 트림을 한 후, 약 봉지를 보며 약간은 주저했다.
화이트 가운의 눈초리가 매서워지자 얼른 약을 먹었다.
달랑 두 알이었다.
약을 복용한 것을 확인한 화이트 가운이 간호사의 뒤를 따라다니며 일일이 환자들에게 약을 주었다. 확실하게 복용했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얼마 후, 얼굴이 벌게진 알코올 중독 환자가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닫힌 문 너머로 고통스럽게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후! 저러다 목에서 피 나겠네.’
도대체 무슨 치료일까?
정신과 1년차가 보이지 않았다.
은근한 호기심에 김지훈이 환자 차트를 펼쳤다.
오더를 보다 말고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야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이 생각난 것이다.
디설피람(disulfiram:진토제)!
원리는 간단했지만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치료제였다.
술을 마신 후 구역, 구토, 두통, 심계항진 등의 증상은 중간 분해 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 때문이다.
디설피람은 이 물질의 대사를 막는다.
즉, 일부러 술을 마시고 약을 먹으면 술로 인한 증상이 극대화된다.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근 한 달에 걸쳐 술과 약의 용량을 줄여 가며 치료를 한다. 다시 말해 한 달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환자는 술만 보면 치를 떨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디설피람의 효과였고, 혐오치료라고 불렀다.
몇 번을 화장실로 뛰어갔던 환자가 축 처져 자신의 병실로 들어갔다. 힘없이 누워 있던 환자가 근 한 시간이 넘도록 왝왝거리며 구역질을 해 댔다.
‘무지 힘들어 보이네. 저러고도 또 술을 먹고 싶을까? 가만, 나도 시간만 나면 거의 술을 먹는데 안전한 거야?’
문득 스스로 알코올 중독이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책을 보며 일일이 따져 보니 아니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정신과 책을 보면 따라오는 전형적인 고민이었다.
점심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갇혀 있었다.
간혹 얼굴을 보이는 1년차와 정신과 과장의 오후 회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회진이 끝난 후, 알코올 중독 환자가 다시 변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것을 본 후에야 일과가 끝났다.
좁은 공간에서 앉아만 있었던 탓인지 온몸이 뻐근했다.
문득 정신과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 날 일과도 변함이 없었다.
3개의 문을 통과해 환자들과 오전 내내 함께 있었다.
어제와 다른 점은 이제 갓 20살이 된 여자 환자가 곁에 바짝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꽤나 예쁘다는 소릴 듣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잠시 딴 곳을 보는 사이, 생글거리며 김지훈의 무릎을 쓰다듬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김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김지훈에게 은밀한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환자를 두고 엉뚱한 생각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환자의 시선을 피하던 김지훈의 눈에 마침 1년차가 보였다. 혹시나 들을까 봐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선생님, 저 환자 뭐예요?”
“왜? 혹시 니 손을 잡았어? 아니면 무릎을 만졌다든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1년차가 씨익 웃으며 차트 하나를 찾아 내밀었다.
“확인해 보고, 관심 있으면 저 환자에 대해 리포트 하나 써 봐. 사실 우리도 확실한 병명은 잘 모르거든. 책에도 없다.”
백승주. 20세(여자).
병명이 길고도 희한했다.
우울증을 배제할 수 없는 성적 환상을 동반한 망상증.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일까?
책에도 없다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김지훈은 하루 종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만 방심하면 무릎, 팔 할 것 없이 쓰다듬었고, 심지어 허벅지까지 손이 올라왔다.
병에 대해 알아도 답답할 판에 정신과 의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덕에 긴장을 풀 틈이 없었지만, 사실 백승주 환자를 빼면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환자 이외에는 의료진도 보기 힘들었다. 진료와 환자 면담 및 치료는 모두 두 번째 공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때론 완전히 고립된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이렇게 3주를 근무해야 하나. 진짜 고문인데.’
환자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동기의 말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입원실로 들어가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다. 오늘도 점심을 먹은 후 첫 번째 철문 앞에 서니 선뜻 들어갈 마음이 나질 않았다.
그때 복도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김지훈을 보고는 인사를 하며 익숙하게 인터폰을 눌렀다.
“면회 왔어요.”
보호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입원실로 들어선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호자들은 보이지 않았고, 환자들만 차례차례 진료실을 다녀왔다. 아마도 과장과 전공의가 보호자와 환자를 동시에 면담하는 모양이었다.
근 2시간이 지나서야 보호자들의 면회가 허락됐다.
상태가 양호한 환자들은 탁구대가 있는 곳에서 보호자들을 만났다. 물론 화이트 가운이 당연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간 중증의 환자들은 진료실이 있는 공간에서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가장 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입원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 명이 들어왔다.
하루 종일 혼자 뭔가 중얼거리는 것이 특징인 중년의 환자가 느릿느릿 다가갔다.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엄마.”
“내 새끼, 잘 있었지.”
할머니가 과일을 담은 그릇을 열었다.
나무젓가락이 하나뿐이었다.
할머니가 앙상한 손으로 일일이 과일을 먹여 주었다.
김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화이트 가운을 보았다.
“입원실을 못 벗어나는 환자들은 아주 위험해요. 나무젓가락으로 자해를 할 수도 있어서 허락된 물건 이외에는 환자에게 아무것도 주면 안 됩니다.”
“보호자가 있어도요?”
“환자들도 다 누군가의 부모고 자식인데, 가족들의 마음이 약해지면 주게 돼 있어요. 일이 벌어지면 크게 나니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오랜 경력에 김지훈보다 훨씬 환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은근히 창피해진 김지훈이 면회를 하러 들어온 보호자들을 보았다.
몇몇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웃는 것이 아니었다.
복용한 약 때문에 어눌하고 느릿느릿한 환자들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아졌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는 탄식을 터트리고, 누군가는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슬쩍 틈을 봐 진료실 쪽으로 넘어갔다.
알코올 중독 환자도 면회 중이었다.
부인이 환자를 보며 눈시울만 붉혔다.
대개 가족들은 알코올 중독 환자를 원망하거나 화를 낸다고 들었다. 그런데 부인의 눈에는 슬픔이 기득했다.
가슴 깊은 곳에 사연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구미에서 본 환자와 눈앞의 환자는 같은 알코올 중독이지만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회가 끝나고, 오후 회진까지 다 끝났다.
퇴근을 하기 위해 문을 나서던 김지훈이 멈칫했다.
화장실에서 왝왝거리는 고통에 겨운 소리가 들렸다.
등 뒤로 백승주의 느끼한 눈길이 느껴졌다.
‘후우! 정말 혼란스럽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정신과에는 문외한인 김지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녁에 술 약속이 있었다.
술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도 술이 당기다니 웃음이 나왔다. 올라가는 길에 윤서연과 마주쳤다.
김지훈이 밝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윤서연, 근무 끝났어?”
“응. 중환자실 돌고 난 후라 얼굴이 말이 아닐 줄 알았는데 좋아 보이네. 정신과는 안 힘들어?”
“힘들지. 하루 종일 할 일도 없고, 갑갑해 죽겠다. 밥은 먹었어?”
“왜, 나 밥 사 주려고?”
갑자기 물경 2만 원씩 내고 먹은 한정식이 떠올랐다.
“한정식?”
윤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 일석이하고 경석이 형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너도 그러네. 맛이 있다는 소리야, 아니면 없다는 소리야.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오늘 사 줄래?”
‘맛을 떠나 돈이 문제지. 2만 원 내고 먹기에는 정말 아깝다. 그냥 반찬만 많은 백반이잖아.’
어차피 농담이었고, 차마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농담이야. 그리고 오늘은 안 돼. 술 마시기로 했거든.”
“누구랑?”
“누구겠어. 일석이하고 경석이 형이지. 아마 경수하고 영철이도 나온다는 것 같던데.”
“어떻게 다들 시간이 맞았나 봐. 많이 모이네.”
김지훈이 싱글벙글 웃었다.
“간만에 목 좀 시원하게 씻을 것 같다.”
윤서연이 힐끗 째려보다 말고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나도 가면 안 될까? 경수하고 영철이는 본 지도 오래 됐는데. 겸사겸사 저녁도 해결하게.”
순간 머뭇거리던 김지훈이 코를 비볐다.
‘자연스럽게. 자꾸 부담을 가지면 더 힘들어진다. 일단 좋은 친구니까 자연스럽게.’
“그래? 뭐,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와도 돼. 그럼 이따 7시까지 응급실로 와. 남자만 다섯인데 괜찮겠어?”
“걔들이 남자야? 동기지. 알았어. 한 시간도 안 남았네. 그럼 이따 응급실에서 봐.”
윤서연이 급히 숙소로 향했다.
‘남자가 아니라 동기라고? 좋은 소리야. 근데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뭐가 저렇게 급해?’
김지훈이 여자를 알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