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아버지 (1)
단 이틀 만에 중환자실이 왜 악명을 떨치는지 알았다.
아침 7시부터 각 과의 회진이 이어졌다.
그 탓에 전날 미리 나온 오더에 따라 환자에 대한 처치를 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 이전에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빈 침대가 없을 정도로 중환이 많아 시간이 빠듯했다.
회진 중에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스테이션에 대기하고 있다가 스태프들의 오더가 나오면 바로 시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회진이 끝나면 30분간 보호자들의 면회가 허락됐다. 잠시 앉아 있을 타임이었지만 당직실에 들어가 누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면회가 끝나면 아침에 새로 나온 오더에 따라 또 환자 처치를 해야 했다.
대충 일을 끝마치고 한숨을 돌릴 때쯤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번갈아 식사를 하고 나면 금방 오후 회진 시간이 다가왔다.
중환들이라 검사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회진 때만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오더가 쏟아졌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그동안 하도 찔러서 쉽게 할 수 있는 환자들도 거의 없었다. 감염의 우려 때문에 하다못해 소변 줄까지 수시로 갈아야 했다.
여기에 욕창을 비롯해 드레싱(상처 치료)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꽤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태반인 까닭에 간단한 치료에도 꽤 많은 힘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한 차례 심폐소생술까지 했다.
삐이익!
툭하면 기계에서 경고음이 터졌다. 그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저녁 10시가 돼서야 한가해진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천안은 중환자가 왜 이렇게 많아요? 일이 끝이 없네.”
간호사들이 웃었다.
“저도 맨 처음에는 그게 궁금했는데, 온양(현 아산) 쪽으로는 대학 병원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쪽 환자들은 다 우리 병원으로 와요. 그나마 북일고 쪽에 D대 병원이 생겨서 편해졌죠. 그래도 일을 잘하시니까 여유가 있어 보이네요.”
이게 편해진 거라고?
간호사 말대로 온양 남쪽에 위치한 예산, 홍성, 당진, 서산 등지는 중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게다가 길까지 대부분 외길인 데다 이차선에 불과해 큰 사고도 많이 났다.
이래저래 중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답답한 눈으로 중환자실을 둘러보았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죽는 환자들도 정말 많겠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때 손일석과 근무를 교대한 이경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테이션으로 왔다.
“어이구! 힘들어. 내일은 또 어떻게 근무하냐. 지훈아, 넌 괜찮아?”
이틀을 연속으로 근무했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든 법이었다.
“당연히 괜찮죠. 전 젊잖아요.”
“그래, 젊어서 좋겠다. 씨펄! 이럴 줄 알았으면 옛날에 인턴을 마쳤어야 하는 건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행동을 고친다면 결코 늦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 외과를 지원한 이후 이경석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시계를 본 간호사가 비지에이 하나가 있다고 하자 이경석이 김지훈을 잡았다.
“내가 할게.”
“형이요?”
“너처럼 빠릿빠릿할 때는 한 번만 해도 되지만 난 아니다.”
‘야! 경석이 형, 정말 많이 변했네.’
김지훈이 내심 탄성을 터뜨렸다.
농담처럼 붙인 말이지만 삼총사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틀 만에 손일석과 교대를 했다.
개운하게 씻은 후 잠을 자고 나니 오후였다.
김지훈이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천안에 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1년 후배인 안호석의 집이었다.
안호석은 무난한 성격에 붙임성도 좋아 친한 선후배들이 꽤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김지훈과 친해 마치 친형처럼 따랐다. 다들 의아해할 정도였다.
어쩌면 안호석도 아버지가 안 계셨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자주 어울렸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천안 병원 앞에서 슈퍼를 했기 때문에 천안에 오면 꼭 들르곤 했었다.
오늘도 평화 슈퍼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계산대에 앉아 있던 안호석의 어머니인 윤숙자가 깜짝 놀라며 달려 나왔다.
“어머! 지훈이구나. 인턴 선생님이 되더니 몰라보겠네. 왜 이렇게 멋있어졌어.”
“에이! 어머니도. 원래 멋있었어요. 호석이는 국가고시 준비 때문에 서울에 있죠?”
윤숙자가 눈가를 찌푸렸다.
“으응, 뭐가 그렇게 바쁜지 얼굴 보기도 힘들어.”
“시험 보기 전에 긴장이 많이 돼요. 공부할 것도 엄청 많아서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울 때예요. 서운하셔도 어머니가 이해하세요.”
내심 서운한 기색을 보이던 윤숙자가 손을 씻으며 물었다.
“번데기 탕에 소주?”
“예. 칼칼하게 끓여 주세요. 라면도요. 두 개 먹는 건 기억하시죠?”
“그럼, 그걸 어떻게 잊어 먹어.”
김지훈이 오면 윤숙자는 슈퍼 안에 마련된 간이 주방에서 라면과 번데기 탕을 끓여 주곤 했었다.
슈퍼 앞에 놓인 파라솔에 앉은 김지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낯익은 풍경은 언제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잠시 후, 윤숙자가 빨간 고춧가루를 뿌린 라면을 들고 나왔다. 이상하게 윤숙자가 끓인 라면은 면발이 살아 있는 것이 정말 맛있었다.
후후 입김을 불어 가며 라면을 다 먹은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이제 술안주로 일품인 번데기 탕이 나올 차례였다.
칼칼한 맛에 소주의 알싸함이 정말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역시 윤숙자표 번데기 탕이 최고예요. 어디 가도 이런 맛이 없어요. 어머니, 한잔하실래요?”
“난 장사해야지. 그래도 지훈이가 주는 거니까 딱 한 잔만 할게.”
홀짝 소주를 마신 윤숙자가 동네 아주머니 특유의 수다를 풀었다. 김지훈은 간간이 크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점점 날이 어두워져 전등 빛이 환하게 느껴질 때쯤 김지훈이 일어났다.
“가 볼게요, 어머니.”
“자주 와. 중환자실 힘들다는데 잘 먹고. 다음에 오면 밥을 해 줄까?”
“아니에요. 라면에 번데기 탕이면 바랄 것이 없어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숙소로 향했다.
문득 정훈철과 한수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 병원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휴우! 형님에 형수님, 이모까지 주변에 좋은 분들이 참 많네. 나도 복이 없진 않은 모양이다.’
피를 나눈 사람은 없지만 김지훈은 그들을 가족처럼 생각했고, 그들 또한 그렇게 자신을 대해 주었다. 고마웠다.
숙소로 향하던 김지훈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멈췄다. 주섬주섬 동전을 찾은 후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편안하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
중환자실은 의사로서의 보람과 한계를 동시에 느끼게 했다.
위태롭기만 하던 환자가 고비를 넘기고 일반 병실로 올라갈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반면,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도 가망이 없는 환자를 볼 때면 무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모호했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가는 환자가 있는 반면, 모질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끈을 놓지 않는 환자도 있었다. 하기에 최대한 집중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중한 환자들만 있다면 의사라는 직업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49세 여자로 신경외과 환자였다.
응급실에서 이미 기관 내 삽관을 한 상태였고, 조그만 충격에도 입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환자지? 수술도 안 했네.’
뇌 손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수술도 하기 전에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일은 없었다.
“김지훈, 특별히 할 거 없어. 어레스트(심정지) 나도 시피알(CPR:심폐소생술) 하지 마라.”
신경외과 전공의의 말에 깜짝 놀란 김지훈이 다시 학인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 건가요?”
“그래. 이 환자 얼마 못 버텨. 응급실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잠시 중환자실로 옮긴 거야. 혹시 사망 후에 보호자들이 면회를 오면 앰부 배깅만 해. 그리고 경찰이 올지도 몰라. 날 찾으면 방송하고.”
시간이 없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경외과 전공의가 급히 중환자실을 나갔다.
‘대체 어떤 환자기에 완전히 포기한 거지? 경찰은 또 뭐야.’
김지훈이 다소 멍한 표정으로 차트를 확인했다.
마침 다른 환자를 보던 손일석이 새로운 환자를 보기 위해 다가왔다. 역시 환자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 이 환자 뭐야? 왜 아무 처치도 안 해?”
환자 기록을 다 읽은 김지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트를 건넸다. 그러고는 브레인 CT를 뷰 박스에 걸었다.
정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입천장에서 시작해 후두부 쪽으로 좁쌀 크기의 하얀 음영이 마치 부챗살처럼 뇌 속에 퍼져 있었다. 숫자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손일석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저게 다 총알인가?”
“산탄총이라고 했으니까 맞겠지.”
“기가 막히네. 부부 싸움 하다 와이프는 총에 맞아 죽고, 남편은 감방에 가게 생겼네. 나 참!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정말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날 일이었다.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문 채 죽어 가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부부 싸움 하면서 총을 꺼내는 놈이 어딨어. 어떻게 입 안에 총을 집어넣고 쏘냐. 완전히 미친놈 아냐? 설마 고의로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겠지?”
손일석의 말대로 부인을 향해 총을 쐈다면 정말 미친놈일 것이다. 이유 없는 짜증이 확 솟구친 김지훈이 소리를 질렀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인마!”
“자식이, 왜 성질을 내고 그래?”
까닭 모를 화가 났다.
부부 싸움을 얼마나 격하게 했는지 몰라도 자신과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결코 이럴 수는 없었다.
남편은 결코 총을 쏠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부인도 설마 총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입에 총이 들어올 때까지 싸웠을 리가 없었다. 경위야 어찌 됐든 부부 모두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부인도 불쌍하지만 남은 가족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일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발적인 사고라고 믿고 싶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목숨을 걸고 싸우다니, 부부가 서로 적이라도 된단 말인가?
깊은 정적만이 흘렀다.
환자의 팔에 달린 수액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모든 치료가 무의미한 상태였지만 정말 지켜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환자의 호흡이 얕아졌다.
숨을 쉴 때마다 그르렁그르렁 소리가 났다.
마침내 깊고 빠른 호흡에 이은 무호흡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이는 단계인 체인스톡(cheyne stokes) 호흡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지속되지 않았다.
곧 모니터에 그려지는 심전도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변했다.
경고 장치를 끈 까닭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처럼 한 사람의 삶이 끝났다.
뒤늦게 달려온 가족들이 울부짖었다.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전공의의 오더대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인공호흡만 할 뿐이었다. 갈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해할 수가 없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쩔 수 없이 떠나도 남은 사람의 가슴에는 못이 박히는데 이렇게 떠나면…….’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공기주머니만 짜던 김지훈이 신경외과 전공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더 오실 분이 없으면 사망 선고를 하겠습니다.”
대답 대신 더 큰 울음이 터졌다.
“오후 8시 30분에 운명하셨습니다. 김지훈 선생, 그만하고 튜브 제거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기관에 삽입된 튜브를 제거했다.
하얀 천이 죽은 여인의 얼굴을 덮었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김지훈이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었다. 지금처럼 술 생각이 나는 날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