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휴가다! (2)
과일을 내오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여보! 또 옛날얘기 했죠. 이젠 그만해요. 어엿한 의사까지 됐는데, 지훈이도 앞을 보고 살아야죠.”
“당신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 거지. 지훈아, 먹자. 엄마가 너 온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싱싱한 걸로 사 온 거야.”
“예, 잘 먹겠습니다.”
“너도 올 거면 좀 일찍 연락하지. 아침에 연락해서 밥하고 국밖에 못했잖아.”
김지훈이 과일을 한입 가득 문 채 말했다.
“엥? 정말 밥하고 국밖에 없어요?”
“음식 만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
“에이! 나 좋아하는 갈비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버님, 그럼 대신 탕수육하고 양장피 사 주세요.”
“걱정 말어. 내가 너 온다고 이미 다 연락해 놨어. 중국집에 전화만 하면 돼.”
아버지의 농담에 어머니가 핀잔을 주었다.
“연락은. 중국집에 전화하는 거는 나도 해요.”
“그럼 당신이 해. 우린 먹기만 할게.”
결국 웃음이 터졌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집 안이 시끌벅적해졌다.
맛있게 밥을 먹고, 탕수육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간만에 사람 사는 집 같다며, 고재현의 아버지가 꼭꼭 숨겨 놓았던 양주를 꺼냈다. 김지훈이 양주 맛도 모르면서 환호성을 터뜨리며 박수까지 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즐겁기만 한 자리였다.
얼마 후, 함께 자리했던 고재현의 부모님이 젊은 애들끼리 놀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죄송한 일이었지만, 술맛이 더 좋아졌다.
다들 얼굴이 벌게졌을 때 고재현이 엉뚱한 말을 했다.
“지훈아, 너 내 덕에 의사 된 거 알지? 잊으면 안 돼.”
“그럼 네 덕이지.”
인연이라는 것이 참 질기고도 묘했다.
고재현과는 국민학교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집까지 같은 동네여서 항상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 학습 때문에 늦게 하교를 했다.
공부를 더 한다는 핑계로 거의 날마다 번갈아 서로의 집에서 잤다. 그 탓인지 하필이면 고재현도 입시에서 실패를 맛봤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덩달아 군대에 지원을 했다.
고재현은 18개월을 근무하는 방위로 떨어졌다.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 그래도 너 인마, 나하고 군대 같이 간다고 지원한 덕에 18방위를 했잖아.”
“그러게. 그때 안 갔으면 그런 일도 없었겠지?”
잊지 못할 추억이 떠올랐다.
1986년, 1987년, 1988년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키면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더욱 거세게 불타오를 때였다. 시위에 참가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여겨지던 시기였다.
거의 매일처럼 시위가 벌어졌고, 수업은 휴강하는 때가 더 많았다. 의대는 휴강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예과는 교양이라 다소 예외적이었다.
먹고살아야 하고, 학비까지 벌어야 하는 김지훈에겐 시위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참가했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하는 방학 중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당시 대학생들은 공장에서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못했다.
노동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막기 위한 강제적인 조치였다.
신분을 속이고 간신히 일자리를 얻었다.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해 버스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넥타이를 맨 평범한 직장인들까지 모여들었다.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곧 하나둘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스크럼을 짰다.
김지훈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시위 행렬에 끼어들었다.
함성이 점점 커지고, 반대편에서 대열을 이룬 전경들은 한 발짝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돌이 날았다. 화염병이 시뻘건 불길을 날름거리며 전경들 앞에 떨어졌다. 확성기를 통해 해산하라는 경고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아무도 물러나지 않자 ‘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본격적인 진압을 알리는 신호였다.
최루탄이 터졌다.
하얀 연기가 퍼지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상당수의 시위대가 최루탄에 맞서 격렬하게 싸우며 버텼다.
부르릉!
차량 전체를 검은색으로 칠한 장갑차가 전경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창 위에 달린 동그란 구조물에 삐죽이 달린 길고 동그란 파이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따다다다다!
지랄탄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지면 마치 지랄하는 것처럼 튀어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름처럼 효과도 지독했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노란 연기가 퍼지면 웬만한 사람들은 단 5분도 버티지 못했다.
재채기와 콧물은 기본이었다. 심한 구토까지 유발되면 약한 사람은 괴로워 움직이지도 못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김지훈도 화가 났다.
다시 전열을 정비한 시위대에 합류했다.
코와 입을 막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선두에 선 시위대를 따라 전경들과 대치했다.
돌과 화염병, 그리고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고, 사방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자 악몽이 시작됐다.
하얀 헬멧에 하얀 면 티와 청바지를 입고 손에는 죽봉을 든 공포의 존재들, 백골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백골단의 손에 걸리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다. 도망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끝까지 추격해 와 죽봉을 휘두르는 진압 부대였다.
하얀 물결이 시위대를 향해 밀려드는 순간, 거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도망을 쳤고, 발이 느린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야 했다.
김지훈도 정신없이 사람들 속에 섞여 도망쳤다.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 끝에야 백골단이 보이지 않았다. 옷에 묻은 최루탄 가루가 매캐하게 코를 자극했다. 거친 숨을 따라 들어온 가루에 구역질까지 났다.
그때 골목 어귀에 있던 슈퍼의 문이 열렸다.
주인이 수도에 고무관을 연결하며 김지훈에게 손짓을 했다.
맑은 물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몇 번을 씻고 나서야 매캐한 냄새를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큰길가로 나오니 시위가 끝나 있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불과 몇십 미터도 가기 전에 한 무리의 전경을 만났다.
피로하고 지친 눈으로 길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쁜 새끼들! 개새끼들!
증오인지, 분노인지 모를 마음에 욕을 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부상을 입었는지 이마에 하얀 거즈를 붙인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현아.”
고재현이 힘없이 고개를 돌리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지훈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돌과 화염병을 던진 상대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고재현 역시 김지훈을 향해 최루탄을 쐈을 테고 방패와 몽둥이로 진압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했다.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친구도 이 안에 있을지 몰랐다.
그들이 군대에 끌려간다면 고재현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시위대나, 전경들이나 모두 시대가 만들어 낸 희생자일 뿐이었다.
고재현의 눈을 뒤로하고 다시 슈퍼로 갔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빵과 우유를 샀다.
진압 책임자들의 눈을 피해 고재현과 동료들에게 봉지를 내밀었다. 다들 눈치를 보며 서둘러 빵과 우유를 먹었다.
그들이 버스에 올라 떠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이름만 불렀을 뿐, 단 한 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며칠 후, 고재현의 아버지를 만났다. 우연히 시위에 대한 말이 나왔고, 김지훈이 고민을 털어 놨다. 나직한 한숨을 내쉰 후 던진 말에 가슴속을 꽉 막고 있던 부담을 떨칠 수 있었다.
“사회를 고치는 의사가 대의(大醫)고, 사람만 고치는 의사는 소의(小醫)란 말에 고민이 된다는 말이지. 대의가 되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말이야, 다들 큰 의사가 되고 나면 도대체 아픈 사람은 누가 고쳐 주지? 이건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그랬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예과에 다니는 주제에 대의와 소의를 말한다는 것도 우스웠다.
올바른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김지훈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아픈 추억에 잠겼던 고재현이 웃었다.
“그때 눈물 젖은 빵이 무언지 알았어. 그 이후로 제대할 때까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쏠 수가 없더라. 뒤로 뺀다고 왕고참들한테 진짜 존나게 맞았다.”
“나도 구호만 열심히 외쳤어. 그 덕에 별 탈 없이 졸업했는지도 몰라.”
그 당시는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 운동권으로 낙인찍는 일이 흔했다. 그렇게 되면 군대에 끌려가거나 낙제점을 받아 유급되기 일쑤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주변을 둘러싼 세상 때문이었는지.
김지훈은 시위에 참가하면서도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무사히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재현이를 보지 못했거나, 아버님의 말씀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었지만 가슴이 아린 기억이었다.
“재현아, 술이나 마시자. 이젠 다 지난 일인데, 뭐.”
술을 비운 고재현이 물었다.
“참, 너 작년에 부모님께 찾아갔었냐?”
“왜?”
“연락도 없고 해서 우리끼리 갔었다. 혹시 만날지도 몰라 2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어, 인마.”
가슴이 뭉클해진 김지훈이 단숨에 술을 비웠다.
“당연히 갔었지. 그땐 국가 고시에다 인턴 선발까지 겹쳐서 연락을 못 했다. 미안하다.”
“미안하긴. 혹시 앞으로 바빠서 못 가도 걱정 마. 해마다 가서 깨끗하게 청소하고 인사까지 드리고 올 테니까.”
“고맙다. 바빠도 꼭 가야지. 그래도 자주 전화는 해.”
“전화? 누구한테?”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자 김지훈이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밤이 깊도록 술잔을 돌리다 하나둘 쓰러졌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고재현의 혀 꼬부라진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술이 많이 올랐는데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별 2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 날, 고재현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었다.
마침 일이 있어 집에 들른 고재현의 아버지에게 2인용 텐트와 낚싯대를 하나 얻었다.
“휴간데 혼자 낚시 가려고? 넌 여자 친구도 없냐?”
의아해하는 눈길에 대충 둘러댔다.
고경아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에는 아직 섣부른 때였다.
버스 정류장 근처까지 따라온 친구 놈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낮술 한 잔을 했다.
맥주 1,000시시에 알딸딸해진 채 서울로 출발했다.
“잘 있어. 형 없다고 사고 치지 말고, 자식들아.”
“잘 가, 인마. 너나 환자 잘 봐. 다음에 보자.”
참 희한한 일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과 헤어지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헤어질 때는 마치 내일 또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기만 했다.
친구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약간은 헐렁한 면 티에 청바지를 입은 고경아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이거 드세요.”
고경아가 시원한 사이다 하나를 내밀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가 싹 사라졌다.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동안 별일 없었죠? 시간이 애매모호하네요. 바로 형님 댁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보자마자 정훈철의 집으로 가자는 말이 조금은 미안했다.
고경아가 고갯짓을 하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화요일 오후여서인지 버스 안이 한산했다.
“경희가 보고 싶다고 전해 달래요. 저녁 언제 살 거냐고 성화예요.”
“그래요? 나도 보고 싶네요. 흐음! 그럼 토요일 어때요?”
“토요일이요?”
“왜, 시간이 없어요?”
“그게 아니라 지훈 씨 휴가를 몽땅 뺏는 것 같아서요.”
김지훈이 기분 좋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