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휴가다! (1)
악어가 입가를 말며 코웃음을 쳤다.
“넌 뭘 그렇게 많이 먹냐? 어쭈, 계란을 3개나 풀었네. 새끼, 계란에 비비는 게 아니라 아주 말아 먹고 있네.”
“정말 많이 먹긴 하네. 응급실이 무지 힘든가 봐. 하긴 그래야 환자를 잘 보지.”
정갑수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까지 들렸다.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꾹꾹 누르며 아무 말도 없이 밥만 씹었다. 말을 해야 입만 아픈 상대들이었다.
‘이젠 밥 먹는 것 같고도 지랄들이네. 어후! 참자.’
마주 앉아 있던 이경석이 인상을 썼다.
“야, 악어, 정갑수. 그냥 가, 이 새끼들아. 밥 먹는 것 같고도 지랄이냐. 니들도 참 희한한 놈들이다.”
이경석에게 정형외과 2년차라는 명함이 통할 리 없었다. 하지만 역시 악어였다. 선배도 선배 나름인지 이경석에게는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어쩐지 말이 삐딱하게 들렸다.
“예, 선배님, 맛있게 드십쇼. 김지훈, 꼭꼭 씹어 먹어라. 그러다 체한다. 컨디션 나쁘면 또 실수할지도 몰라.”
김지훈이 인상을 확 구겼다.
의사라면, 아니 선후배라면 절대 서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었다. 김지훈이 주먹을 쥐자 손일석이 발을 툭툭 찼다.
‘참아, 인마. 너만 손해야.’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뭐가 좋은지 악어와 정갑수가 낄낄거리며 나갔다.
“갑수야, 김지훈 저 새끼 1년차 되면 나한테도 기어오를 태센데 잡을 수 있겠어? 꼴새를 보니 힘들 것 같다. 옷 벗어야 할 정도로 큰 실수를 하면 모를까.”
“야, 저 새끼한테 백이 있냐, 뭐가 있냐. 지금은 웃으라고 그래. 아버지한테 대충 말해 놨어. 언젠가는 울게 될 거다. 저 새끼라고 실수 안 하겠어?”
“그래? 니네 아버진 뭐라고 하시는데?”
“씨펄! 몰라. 설마 하나뿐인 아들 말을 안 들어주겠어?”
끝까지 악어를 지켜보던 이경석이 중얼거렸다.
“참 더러운 놈들이네. 선배면 선배다워야지. 근데 저 자식들 뭐라고 하는 거야? 어째 기분이 안 좋다. 오늘 힘 좀 쓸까?”
“형,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야 형만 피곤해져요.”
얼굴만 안 봐도 좋았다.
김지훈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표정으로 열심히 밥을 삼키며 말했다.
“그렇지? 어후! 저 새끼들 보니까 소름이 다 돋네. 나도 예전에 후배들이 똑같은 놈으로 봤을 거 아냐?”
“형이 백배 낫죠. 일석아, 그렇지?”
“김지훈, 네놈이 지금 하늘 같은 이경석 대형을 감히 저 마도 놈들과 비교한 거냐?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로다. 네놈이 정녕 내 손에 죽고 싶구나.”
또 무협이다. 김지훈이 자라목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소생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손 대협, 용서해 주십시오. 하여튼 악어는 정말 재수 없어. 저번에 보니까 지는 계란 6개를 넣고 비비더만. 그것도 두 대접이나 먹더라. 겨우 3개 가지고 지랄이야. 내가 배부르면 배 터져 뒈지겠다.”
참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바로 악어였다.
김지훈이 맞장구를 치다 말고 이젠 대놓고 욕을 했다.
물론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이긴 했다.
“먹는 양만큼 일하면 악어가 제일 엑설런트할 거야. 그치? 아마 전 세계에서 이걸걸?”
손일석이 엄지를 척 치켜들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난데없는 웃음소리에 밥을 먹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김지훈이 시치미를 뚝 떼고 대접에 고개를 박았다.
***
무사히 일요일이 지나갔다.
가뜩이나 차가운 신현수의 말이 더욱 없어졌지만 김지훈은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다!
환자들까지 도와주려는 듯 월요일 새벽 내내 응급실이 이상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그 덕에 잠을 더 잤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윤서연과 교대를 했다. 얼굴이 보기 좋게 탄 것이 어디 바닷가에라도 갔다 온 모양이었다. 잠깐 시간을 내 인사를 하고는 바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시작부터 재수가 좋았다.
표를 끊자마자 드문드문 있는 수원행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7월의 후끈한 열기만 아니라면 날씨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김지훈이 들뜬 표정으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녹음이 우거져 이제는 사방이 온통 진한 청록색의 물결이었다.
‘내려올 때는 봄이었는데, 벌써 한여름이네.’
조그마한 송풍기를 통해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후텁지근한 열기에 끈적끈적해진 몸을 식혀 주었다.
휴가 일정이 은근히 빡빡하면서도 한가했다.
월요일, 고향인 수원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화요일, 고경아와 함께 정훈철의 집에 가야 한다.
수요일, 고경아와 함께 청평에 다녀온다.
목요일, 고경아와 함께 서울에서 데이트를 한다.
금요일, 미정이다.
토요일, 미정이다.
일요일, 눈물을 머금고 구미로 돌아온다.
휴가를 생각하던 김지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서렸다.
그간 일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고향 친구들이 그리웠다.
정훈철과 한수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주일 중 3일이나 고경아를 보기로 할 줄은 몰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휴가 때 집에 놀러 오지 않으면 형제의 인연을 끊겠다는 정훈철의 말은 즐겁기만 했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김지훈에겐 가족일지도 몰랐다.
‘한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봐야 할 사람이 정말 많아졌네요. 그럼 잘 살아온 거죠?’
그리운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 모양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행복하면서도 슬픈 눈빛을 보이던 김지훈이 주섬주섬 잠바 안주머니를 뒤졌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넥타이를 꺼내며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윤서연이 휴가를 갔다가 사 왔다며 신현수 몰래 건넨 선물이었다.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그렇다고 갖고 있자니 고경아가 마음에 걸렸다. 고민스럽기만 했다.
‘이걸 어쩌지? 경아 씨와 서연이를 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정리를 해야 할 텐데.’
한동안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말고 웃음을 머금었다.
병원을 나오기 직전 일반 외과 병동을 찾았다.
유문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아이가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다. 젖병을 문 채 잠든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었다.
배운 것도 많았다. 특히 딱 한 번이었지만 바이탈이 흔들리는 환자의 중심 정맥을 잡아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쇄골 하 정맥에, 수혈 때 사용하는 바늘보다 훨씬 굵은 바늘을 찔러 수액 라인을 확보했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런 술기는 위험도가 있어 인턴들이 정말 받기 힘든 술기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최철한이 신현수와 자신에게 케이스를 주었다.
박경일 과장의 오더를 받았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냥 내가 2개를 할걸 그랬나? 아니지. 현수 그 자식 요새 뭐든 하려고 안달 난 눈치던데, 이럴 때 한 번쯤은 양보하는 게 좋겠지. 어차피 기회는 금방 또 올 텐데, 뭐.’
각각 하나씩 해 봤을 때, 누가 받아야 할지 애매모호한 상황이 벌어졌다. 김지훈도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처 문제도 있었던 데다 신현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슬쩍 뒤로 물러났다.
최철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김지훈 역시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쉽기는 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현수와도 친해지겠지.’
웃음을 보이던 김지훈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여전히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한 알코올 중독 환자가 떠오른 것이다. 간 기능이 좋지 못해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금단 증상으로 인한 자해를 막기 위해 아직도 팔다리를 다 묶어 놓은 상태였다.
김지훈이 환자를 볼 때도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야! 나도 술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겁나서 어디 술 먹겠나. 근데 술 안 마시면 뭐 하고 놀지? 당구?’
생각해 보니 놀 거리가 없었다. 당구나 잘 치면 손일석이라도 꼬셔 보겠지만, 80이다.
친구들도 하수라고 쳐 주질 않는 수준이었다.
입맛을 쩝쩝 다시던 김지훈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탔으니 오래 버텼다.
함께 탄 승객들은 이미 꿈나라로 떠난 지 오래였다.
그날 오후 7시쯤 김지훈이 고향 친구의 집을 찾았다.
유달리 인연이 깊은 고재현의 집이었다.
고재현의 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허허! 지훈이 왔구나. 어서 들어와. 어떻게 먼 곳에서 오는 놈이 제일 먼저 왔네. 여보, 지훈이 왔어.”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놈이 지각한다고, 얼굴 보기로 한 친구들이 아직 한 명도 안 온 모양이었다.
“왜 이제 와. 그렇게 바빴어? 나쁜 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밥은 잘 먹었지?”
마치 군대 간 아들이 첫 휴가라도 나온 것처럼 어머니의 눈가가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생각보다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자주 올게요.”
“그래, 시간 되면 자주 와. 그동안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밥 먹고 싶지도 않았니?”
“어휴! 정말 먹고 싶었죠.”
“어서 앉아. 오래간만에 우리 아들들하고 다 같이 먹자.”
고재현의 어머니가 앉으려다 타박을 들었다.
“당신은 지금 뭐 해. 과일하고 주스 좀 빨리 내와. 얘, 땀 흘리는 것 좀 봐. 얼음 좀 많이 넣고.”
“알았어요.”
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주방으로 가자 고재현의 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인사는 하고 왔지?”
“예, 아버님. 아버지께는 좋아하시던 맥주 따라 드리고, 어머니께는 장미 한 다발 드리고 왔어요.”
“좋아하셨겠구나. 벌써 7년이나 됐네. 넌 이제 괜찮지?”
“그럼요. 이젠 저도 다 컸습니다.”
김지훈이 애써 웃었지만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힘들면 언제든지 전화해, 이놈아. 혼자 삭이지 말고.”
“예, 아버님.”
고재현의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리운 이들을 떠나보냈을 때 김지훈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너무나 슬픈 탓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나이도 아니었다.
그때 떠난 이들을 모시는 일부터 김지훈에게 남은 일까지 모두 도맡아 해 준 사람이 바로 고재현의 아버지였다. 그 덕에 학교를 무사히 마쳤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 원하던 대로 의사가 되니까 어때?”
“아직은 의사라고 말하기도 그래요, 아버님.”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맙구나. 난 아직도 네가 한 말이 귀에 생생해. 그때의 마음을 평생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고재현의 집에서 밥을 먹다가 느닷없는 슬픔에 북받쳐 울고 말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뼈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다가왔었다.
다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따스한 손길로 말없이 등만 두드리는 고재현의 아버지에게 울먹이며 말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말 보고 싶어요. 그렇게 떠나지 않으셨으면 덜 아플까요? 다신 그렇게 아픈 사람도, 나처럼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내내 거의 톱을 놓치지 않았었다. 실력대로라면 무난하게 의대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탓에 실패를 맛봤다.
막막한 현실과 실망감을 이기고 못해 바로 군대에 지원했다. 자원이 남아도는지, 고아라는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6개월 방위 판정을 받았다. 그때 불현듯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꿈과 희망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자극이 됐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정시 출퇴근 덕에 공부할 시간을 벌었다. 제대 후에는 이를 악물고 코피까지 쏟아 가며 교과서와 씨름을 했다. 운까지 따랐는지 천신만고 끝에 의대에 합격했고,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7년이 지났다.
그 당시 느꼈던 절망과 슬픔도 이젠 많이 희석돼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