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라이벌 (3)
수술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지훈이 수술실로 들어오자 수술을 참관하던 박경일 과장이 흠칫 놀랐다.
“김지훈, 노티 할 환자가 또 있어?”
“아닙니다, 과장님. 수술 좀 보려고요.”
“왜? 아뻬가 그렇게 보고 싶어?”
“그렇기도 하지만, 진단이 맞는지 알고 싶어서요.”
수술을 하던 최철한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능숙한 손길에서 2년차의 여유가 느껴졌다.
“야, 김지훈. 내 실력을 못 믿는 거야?”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기분이 좋은 일도 아니었다.
하늘과도 같은 선배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일이 없었다.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선생님.”
“그럼 왜?”
“환자를 진찰했을 때 제가 느낀 소견과 실제 아뻬하고 비교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다음에는 보다 정확하게 판단해 노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일순 묘한 침묵이 흘렀다.
휴가 때문에 응급실을 둘이 도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릴 일이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 일이었다.
참 희한한 놈이었다.
잠시 후, 최철한이 제거된 아뻬를 들어 보였다.
“이제 막 익기 시작했네. 이래서 해야 되는 거야. 알았지?”
일반 외과 의사들은 염증이 진행되는 것을 익는다고 표현했다. 김지훈이 제거된 아뻬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진찰상 그 정도의 느낌이어도 아뻬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네. 이 경우에는 확실했고. 팔구십 프로라!’
속성으로 경험을 쌓을 방법은 없었다. 경험이 많다고 해도 오진을 하기 쉬운 질환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열의라면 한 걸음 정도는 보다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수술실에서 나가는 김지훈을 보며 박경일 과장이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능력을 만들어 나가는 후배를 보는 일만큼 즐거운 것은 없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실수를 했으면 배우는 게 있어야지. 물건은 물건이야. 내년이 꽤 기대가 되는걸. 아 참! 그 환자, 이젠 조용해졌어?”
“조용해지긴요. 어젠 입에서 불나방이 나왔대요. 그런 금단 증상도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주 술독에 빠졌던 모양이네. 그게 알코올 중독자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치는 금단 증상이다. 나도 입에서 불나방 나오기 전에 술 좀 줄여야겠어.”
웃음이 터졌다.
술이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뻬 맞더라. 난 확신이 안 서던데. 대단해.”
응급실로 돌아온 김지훈의 말에 신현수가 씨익 웃었다.
‘이 정도는 당연히 맞혀야지. 곧 너와 나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 게 될 거야. 전공의들하고 경쟁해야 할 내가 김지훈을 견제하다니, 한심하네.’
신현수는 아직도 불만족스러웠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구미에 제왕 절개 수술이 많다는 것은 손일석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만큼 젊은 부부들이 많다는 말이었고, 당연히 애들도 많을 것이다.
그 탓인지 응급실로 내원하는 소아과 환자들이 정말 많았다. 수술실에서 내려오자마자 이제 막 100일 정도 된 아이가 내원했다.
소아과 환자를 많이 본다고 해도 이 정도 개월 수의 아기는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서너 살이 되도 말이 안 통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100일은 어려도 너무 어렸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이의 몸은 어른 몸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었다. 장기의 기능과 성숙도는 물론 전해질의 구성까지 어른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진단과 치료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뻐근한 어깨를 매만지며 간호사들의 기록을 먼저 살폈다. 체중 5.3킬로그램이었고, 심박 수는 112회로 정상 범위였다. 한걱정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는지 물었다.
“이삼 일 전부터 자꾸 토하네요. 애기가 보채서 젖병을 물리면 예전처럼 잘 먹는데 한두 시간 정도 지나면 토하고 또 보채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얼마나 토했는지 애가 그새 홀쭉해졌어요.”
홀쭉하기는커녕 포동포동했다. 사실 다른 엄마들도 흔히 이런 식으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곤 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의 눈에는 흔히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잘 먹으면서도 토한다고요?”
“네, 먹긴 아주 잘 먹어요.”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배는 부드러웠고, 장음도 증가된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칭얼댔지만 어디가 특별히 아파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토하는 것 빼고는 장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하나도 없네. 애가 크게 처진 것 같지도 않고. 이상한데.’
난감한 일이었다. 임프레션을 내릴 수가 없었다.
노티를 할 때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도 없었다. 환자를 두고 자존심을 세우는 것처럼 멍청하고 위험한 일도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도움을 청했다.
신현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았다.
김지훈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다.
그간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책을 보아 온 것을 유감없이 과시할 때였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지훈, 장염이잖아.”
“나도 장염이 의심은 되는데, 토하는 것 말고는 다른 증상도 없고 너무 멀쩡해 보여. 뭔가 이상하지 않아?”
“장염이라고 다 배 아프고 설사를 하냐? 그리고 지금 이 아이 같은 경우에는 도리어 다른 질환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없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맞는 말이었다. 여러 증상을 취합해 가장 확률이 높은 질환을 찾는 것이 곧 임프레션이었다. 사실 책에 씌어진 대로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찝찝하기는 했지만 단순 장염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소아과 전공의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었다.
하필이면 회진을 돌며 병동 환자를 보는 시간이었다.
신현수가 당직실로 들어갔다. 크게 피곤하지 않다면 아마도 책을 보다 잠을 잘 것이다.
김지훈이 엉덩이를 떼다 말고 다시 붙였다. 이럴 때 한 글자라도 더 보거나 자는 것이 좋았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100일 된 아이. 이것도 오진이나 실수할 위험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주의해야 해.’
김지훈이 수시로 아이를 확인했다.
20분쯤 지나 겨우 소아과 전공의에게 노티가 됐다.
아직 일이 안 끝났다고, 단순 장염이라면 보호자에게 잘 말해 달라는 오더를 받았다.
김지훈은 중간중간 내원한 환자 몇 명을 보면서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신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불안하면 항상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것이 의사라지만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론이 부족하니까 조금이라도 모르는 구석이 있으면 더 불안하겠지. 그나마 지금은 인턴이니까 너처럼 일하는 게 통할지 몰라도 전공에 들어가면 힘들 거다.’
혹시나 몰라 슬쩍 아이를 본 신현수가 코웃음을 치며 당직실로 들어갔다. 새근새근 잠만 잘 자고 있었다.
5시 반이 넘었다.
아직도 소아과 전공의가 내려오지 못했다.
커튼 뒤에 가려진 아이를 보기 위해 목을 빼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아이가 칭얼댄다고 젖병을 물린 것이다.
단순 장염이라도 확실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는 금식이 원칙이었다. 아이가 안쓰럽기만 할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안 되는 일이었다.
“엄마, 우유를 먹이시면 어떡해요. 그만 먹이세요.”
“또 보채서 먹였는데 안 되나요?”
“단순 장염이면 몰라도…….”
그때 갑자기 아이가 방금 전에 먹은 우유를 토했다.
엄마가 놀라며 소리를 지르자 간호사가 급히 비닐봉지와 휴지를 가지고 왔다. 김지훈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엄마,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토했죠?”
“이삼 일 됐다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토하는 모습이요. 그냥 울컥거리는 것이 아니라 분수처럼 토하네요.”
“여기 오기 전에는 이렇게 토한 적 없어요. 뭐가 잘못된 건가요?”
엄마의 눈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생후 100일 된 아이가 잘 먹고 난 후 분수처럼 토했다.
엄마가 토할 정도로 무식하게 먹였을 리도 없고, 이 정도 개월 수의 아이는 그렇게 먹지도 않는다.
“엄마, 얼마나 먹였죠?”
“100 조금 넘게 먹었네요.”
그새 많이도 먹였다. 하지만 정상적인 수유 용량이 120시시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장염이라 이 정도에도 토했나? 아니지, 그렇다고 분수처럼 토해? 분수!’
Projectile Vomiting(분출 구토)!
순간 한 가지 질환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파이로릭 스테노시스(Pyloric Stenosis)?’
비후성 유문 협착증(hypertrophic pyloric stenosis)!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인 유문의 괄약근이 지나치게 두꺼워져 발생하는 질환이다. 음식이 넘어가야 하는 통로가 너무 좁아져 모유나 우유마저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 구토가 유발되고 분수처럼 토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아이의 발육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기인 생후 100일 전후에 증상이 발현된다. 진단은 초음파로 가능하며, 확진 시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한다.
김지훈이 아이의 토사물을 치우고 있던 간호사에게 말했다.
임프레션이 맞다면 일반 외과 질환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소아과에서 일차적으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소아과 빨리 연결해 줘요.”
“방금 전에 연락 왔어요. 1년차 쌤이 많이 바쁘다고 구선미 샘이 내려오신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선미가 커튼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가 토한 우유에서 나는 다소 역한 냄새에 구선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기가 많이 토한다더니, 또 토했어?”
“예, 선생님. 그런데 분수처럼 토했습니다.”
“분수처럼? 단순 장염이라며?”
구선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노티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단순 장염으로 전해 들었다.
“내원 당시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질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토하는 것을 보고 애기의 개월 수를 생각해 보니까 혹시 유문 협착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래? 일단 애기부터 볼까?”
구선미가 차근차근 아이 엄마에게 증상과 과거력을 물어봤다. 신중하게 아이를 진찰하고 난 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심한 장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긴 했다.
그 경우에는 아이가 완전히 처져 입원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상태는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이런 경우 다른 질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만일 김지훈의 임프레션이 맞다면 아이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질 수도 있었다.
구선미가 엄마에게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초음파를 꼭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방사선과 과장님 퇴근하셨을 텐데.”
어느새 6시가 다 됐다.
김지훈이 구선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사선과로 달려갔다.
판독실의 불이 꺼져 있었다.
아이의 상태를 안정시키며 내일 아침 일찍 해도 되겠지만 진단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보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김지훈이 부리나케 주차장 쪽으로 달려갔다.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과장님.”
방사선과 과장이 숨을 헐떡거리는 김지훈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급 환자가 있다고 해도 방사선과가 당장 필요한 질환은 거의 없었다.
상당히 드문 장 중첩증 환자가 또 왔을 리도 없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
“퇴근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과장님. 유문 협착증이 의심되는 애가 있어서요.”
뒷말은 없었지만 뻔한 일이었다.
“나 퇴근해야 하는데 초음파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