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라이벌 (1)
신현수도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환자를 보는 모습을 보며 내심 놀랐다. 분명 차이가 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자신만큼 빠른 판단에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았다.
기분이 썩 즐겁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면이 있었다.
‘언제 잠을 잘지 모르는데, 저렇게 환자들에게 시간이 뺏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전주에 서연이와 돌았으면 얼마 못 가 체력의 한계를 느낄 텐데. 환자를 죽일 뻔한 일이 꽤 신경 쓰이는 모양이네.’
김지훈은 잠을 자거나 환자가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았다. 전공의들의 뒤를 따르며 귀를 기울였고, 시간이 나면 몇몇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심지어 같은 인턴인 자신의 말까지 소홀히 듣지 않았다.
물론 누구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현수가 보기에는 극히 비효율적인 행동이었다. 자신과 전공의들이 내린 진단을 비교하고 적절한 치료 및 투약을 확인하면 인턴이 더 배울 일은 없었다.
‘실수했던 일을 만회하고 싶은 건가? 그런다고 사람들이 그 일을 잊진 않아.’
신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간호사들의 표정도 조금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김지훈의 실수에 집중한 탓인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 김지훈은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시간을 사용하지 않았다. 웃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대하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분명 보다 집중적으로 신경을 쓰는 환자가 따로 있었다. 그런 점을 신현수는 보지 못했다.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장 더 읽어라, 김지훈. 그게 더 낫지 않겠어?’
코웃음을 친 신현수가 당직실로 들어갔다.
습도가 높은 탓에 퀴퀴한 냄새가 나고 침대 시트까지 눅눅했지만 응급실을 떠날 수는 없었다. 침대를 만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신현수가 전화기를 들었다.
“총무과죠. 저 인턴 신현순데요. 응급실에 딸린 당직실 청소에 신경 좀 써 주세요. 이렇게 더러워서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신현수가 재단 이사장의 손자이자 대학 총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청소 아줌마가 당직실로 들어왔다.
당직실이 깨끗해진 후에야 신현수가 침대에 누웠다.
그때까지도 무엇을 하는지 김지훈은 들어오지 않았다.
‘김지훈, 몸으로 때우는 건 한계가 있어.’
의사에게는 머릿속에 든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항목이라고 확신했다. 환자의 관리도 필요한 때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의사가 더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진단학 책을 보던 신현수의 눈이 감겼다.
체력 하나만은 김지훈이 확실하게 강했다.
응급실이 쌩쌩 돌아갔다.
인턴들 중 가장 뛰어난 김지훈과 신현수 덕이었다.
인턴이 빠르게 환자를 보면 전공의들에게 노티를 하는 시간이 앞당겨진다. 필요한 검사까지 제대로 내면 환자가 퇴원하는 시간도 덩달아 빨라진다.
아뻬 수술 때 겪은 일 탓인지 신현수가 수처 등을 비롯한 각종 술기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김지훈이 내심 감탄했다.
‘똑똑한 것만이 아니라 손 기술도 좋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뒤처질지도 몰랐다.
성형외과를 도는 이경석도 오프 날을 제외하고는 절대 일을 미루지 않았다. 장성기 과장이 휴가를 간 덕에 안면부 열상 환자가 와도 탈 일이 없었다.
일종의 선순환이었다.
간호사들이 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는 누가 일을 잘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이상스럽게 냉랭한 신현수의 태도에 약간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현수 쌤은 일은 잘하는데, 왜 저렇게 차갑대?”
“원래 그렇다고 하잖아. 겪어 본 선생님들이 다 그러시던데. 웃는 거 보기가 정말 힘들단다.”
“웃어도 힘든데, 저러면 얼마나 힘들까?”
“대신 항상 웃는 김지훈 샘이 있잖아. 어쨌든 저런 샘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편해.”
신현수가 당직실에서 나오자 소곤대던 간호사들이 시치미를 뚝 뗐다. 일반 외과를 돌 때나 지금이나 농담이 통하지 않는 신현수였다. 마음이 가장 편하다는 구미에서도 말이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내원했다. 마침 맡은 환자의 오더를 다 낸 신현수가 자연스럽게 아이를 보았다.
“어디가 아파서 데리고 왔죠?”
“아이가 배가 아픈지 잘 놀다가 아침부터 자지러지게 울면서 보채네요. 설사도 몇 번 했어요.”
“완전히 물처럼 나오던가요?”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에 냉정한 태도였다.
아이 엄마의 얼굴이 약간은 어두워졌다.
“맨 처음에는 그랬다가 세 번짼가에는 끈적끈적하게 변을 봤어요. 기저귀에 불그스름한 게 묻은 것 같기도 했어요.”
신현수가 복부 청진을 시행했다.
배는 빵빵하지 않았고, 장음이 감소돼 있었다.
간헐적으로 발생한 심한 복통.
끈적끈적하고 불그스름한 설사.
이제 돌이 된 아이의 나이.
차팅을 하던 신현수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딱 떠오르는 임프레션(Impression:임시 진단)이 있었다.
통상 보지 못하는 질환일 가능성이 높았다.
김지훈은 어떤 질환을 의심할까?
신현수가 간만에 먼저 말을 붙였다.
“김지훈, 저쪽에 한 살 된 애 하나 왔어. 진찰 좀 해 봐.”
“왜, 무슨 문제 있어?”
“그건 아니고, 의심되는 질환이 있는데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 보려고.”
신현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별일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아를 찾은 김지훈이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보호자의 말을 충분히 듣고 의문이 가는 사항을 꼼꼼하게 물었다. 그래야 5분 정도 더 걸렸을 뿐이었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김지훈의 얼굴이 다소 심각했다.
“뭐가 의심돼?”
“단순 장염 같지는 않네. 나도 처음 봐서 자신은 없어.”
“그래서 임프레션이 뭐야?”
“내 생각에는…….”
김지훈과 신현수의 시선이 정면에서 부딪쳤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염이 꽤 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 증상이 마음에 걸려. 아무래도 혈변을 본 것 같지?”
“혈변일 가능성이 높아.”
“아이 엄마가 변이 끈적끈적하다고 표현한 걸 봐서는 점액성 혈변일 수도 있겠어. 그런 경우라면 인투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드문 질환이라고 알고 있는데, 너무 생각이 많았나? 네 생각은 어때?”
순간 묘한 기색을 보인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인투가 의심된단 말이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을 보는 시간이 적은 김지훈이었다. 그렇다고 흔히 보는 질환도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련 내내 한 번도 보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과 같은 임프레션(임시 진단)을 내리다니, 기분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알고 있는 질환이 아니라 머릿속에 확실히 박혀 있다는 의미였다.
차팅을 하던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인투!
인투수셉션(Intususception:장 중첩증)을 흔히 줄여서 인투라고 부른다. 장 속에 장이 끌려들어 가며 중첩돼 폐쇄를 유발하는 질환이다.
주요 발병 부위는 소장의 말단인 회맹(회장과 맹장)부 연결 관으로 생후 6개월에서 1살 반 사이에 잘 발생한다.
간헐적이면서도 발작적인 복통과 설사, 점액성 혈변과 감소된 장음 등이 특징적인 소견이다.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발병 원인은 대부분 확실하지 않다.
다행히 빈도가 높은 질환은 아니다.
신현수가 바로 소아과에 노티를 했다.
소아과 전공의 2년차인 구선미가 내려왔다. 환아의 병력과 증상을 확인한 후 같은 임프레션을 내렸다. 구선미가 아이 엄마에게 진단 및 치료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다.
김지훈이 슬며시 신현수 옆에 서서 구선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 장 중첩증이 의심되네요.”
“그게 뭔가요?”
“장 속으로 장이 들어가 막히는 병이에요. 일단 바륨 관장이라는 걸 해서 진단이 되면 바로 장을 풀어 줄 거예요. 잘되면 급한 치료는 그것으로 끝인데, 만일 실패하면 수술을 할 수도 있어요.”
“수술이요? 정말 수술까지 해야 돼요?”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엄마가 발을 동동 굴렀다. 구선미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아직 하루는 안 지난 것 같으니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될 가능성이 높아요. 만에 하나를 말씀드린 것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바륨 관장부터 했으면 좋겠네요.”
“위험하진 않나요?”
“관장 자체는 위험하지 않아요.”
엄마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자식이 아프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구로 가지 않아도 될까요?”
“원하시면 가도 되는데, 장 중첩증은 시간이 중요해요. 시기를 놓치면 관장을 이용해 풀지도 못하고,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최선을 다할 테니까 절 믿으세요.”
잠시 고민한 엄마는 치료를 받기로 했다.
일차 치료는 방사선과 담당이었다.
구선미가 소아과 과장에 이어 방사선과에 노티를 했다.
“신현수 선생, 아직 하루는 지나지 않은 것 같지?”
“예. 12시간 정도 지났으니까 바륨 에네마(enema:관장)로 풀 수 있겠죠?”
“못 풀면 수술해야 되는데 그래야지. 그런데 지훈이는 금방 어디 갔지? 혹시 지훈이도 이 아이 봤어?”
어느새 김지훈이 새로 내원한 환자를 보고 있었다.
신현수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예, 봤습니다.”
“지훈이는 뭐래? 물론 너랑 같은 판단을 했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들리는 말에 신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무 말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린 구선미가 김지훈을 찾았다. 마침 열상 환자가 와 처치실에서 수처(봉합)를 하고 있었다. 환자가 긴장하지 않도록 대화를 나누면서도 진지하기만 한 모습에 구선미가 웃었다.
“지훈이 쟤는 항상 열심히 해서 정말 보기 좋아.”
신현수에게도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인 구선미가 곧 방사선 실로 갔다. 응급실 인턴들이 이렇게 든든하기도 참 힘든 일이었다.
잠시 후, 아이가 옮겨졌다.
막 수처를 하고 나온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인투 의심되는 애, 어디 갔어요?”
“방금 전에 바륨 에네마 하러 갔는데요.”
“그래요? 지금 봐야 할 환자 없죠?”
“네. 없어요, 샘.”
“그럼 잠깐 방사선실 갔다 올 테니까 혹시 내가 봐야 할 환자 있으면 연락해 줘요. 부탁해요.”
김지훈이 부랴부랴 응급실을 나섰다.
스테이션에 앉아 있던 신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급실도 모자라 방사선실까지 갈 줄은 몰랐다.
관점에 따라서는 인투(장 중첩증)도 일반 외과 질환이긴 했다. 따라서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륨 관장을 실패해야 일반 외과에서 수술을 한다.
아직 수술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일차적인 치료까지 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방사선실에 들어선 김지훈이 조용히 차폐복을 입었다.
아이 상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진단까지 확실하게 알아야 같은 증상을 가진 아이가 왔을 때 실수할 확률을 줄일 수 있겠지. X-ray상에서 장 중첩증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면 수술이 필요할 때도 꽤 큰 도움이 될 거야.’
방사선과 과장과 구선미가 막 바륨 관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사선 기사는 아예 납판이 들어간 차단막 뒤에서 기계를 조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사선 피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매일 방사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니 위험하기까지 했다.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정말 힘들지 않은 직종이 없었다.
‘위험 수당은 받나?’
잠시 딴생각을 하던 김지훈이 이내 아이에게 집중했다.
방사선과 과장이 아이의 항문에 커다란 통이 연결된 조그마한 튜브를 꽂았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자 함께 들어와 있던 엄마가 울먹였다. 구선미가 엄마를 달랬다.
“어머니, 엄마가 울면 아이가 더 겁을 먹어서 치료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아픈 게 아니라 관장 때문에 놀란 거니까 진정하시고 아이 손만 잘 잡아 주세요.”
소아과 2년차답게 엄마를 잘 달랬지만, 이제 돌이 막 지난 아이였다. 엄마가 아닌 이상 가슴이 얼마나 아플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엄마 곁으로 다가가 눈인사를 한 후 옆에 섰다.
‘괜찮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의 입가에 슬프면서도 조금은 안도하는 미소가 걸렸다.
장 중첩증의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시작됐다.
하얗고 끈적끈적한 액체인 바륨은 X-ray상에서도 하얗게 나타난다. 바륨을 대장의 끝까지 주입한 후 사진을 찍으면 즉시 진단이 가능하다.
방사선과 과장이 바륨이 든 통을 높이 들었다.
과도한 압력은 대장에 손상을 줄 수 있기에 높이 차이로 발생하는 자연적인 압력만을 이용했다. 경험이 많은 방사선과 과장이 중간중간 슛을 외쳤다.
위이이잉! 삑!
날카로운 소리가 날 때마다 모니터에 대장을 따라 흐르는 바륨이 보였다. 잠시 후, 바륨이 대장의 시작 부위인 회맹부에 도달했다.
모니터에 속이 빈 튜브 형상이 나타났다.
소장인 회장이 대장 안으로 밀고 들어가 바륨이 대장과 소장 벽에만 묻기 때문에 나타나는 형상이었다.
확진이 가능한 전형적인 소견이었다.
“인투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