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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60화 (60/1,329)

제7화 행복한 시간을 즐겨라 (1)

김진호가 환자에게 숫자를 세라는 말을 하며 정맥 마취제 투여를 지시했다. 환자가 다섯도 세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곧바로 근육 이완제를 투여하고, 인투베이션이 이어졌다.

김지훈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손에 가려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김진호는 여유롭고도 부드럽게 기관 내 삽관을 했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진호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수술이 시작됐다.

잠시 수술과 마취 상태를 지켜보던 김진호가 인공호흡기에 달린 공기주머니를 건넸다.

“저항이 약가 느껴질 정도로 배깅(bagging)을 해. 산소 포화도와 바이탈 사인 잘 체크해서 5분마다 기록하고.”

본격적인 마취 실습이었다.

김지훈이 속으로 숫자를 세며 대략 5초 간격으로 공기주머니를 짰다. 산소 포화도가 내려가면 더 많이 빠르게 짜 적정 호흡을 유지했다. 5분이 지날 때마다 마취 기록지에 혈압과 박동 수 및 산소 포화도를 기록했다.

김진호가 수술실을 왔다 갔다 하며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가끔은 잠깐이었지만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오기도 했다.

수술 중에 잡담은 금물이었다.

김지훈은 마취과 간호사와 함께 2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안이 텁텁할 지경이었다.

마침내 수술이 끝나 가자 김진호가 다시 공기주머니를 넘겨받았다. 신중하게 회복제를 투여하며 수술 종료에 맞춰 마취를 끝냈다.

인투베이션을 제거한 후 환자가 신음 소리를 내자 곧바로 회복실로 옮겨졌다. 함께 회복실로 간 김지훈이 환자가 완전히 마취에서 깨어났는지 확인했다.

“김진호 선생님, 환자 잘 깼습니다.”

“음! 그래. 인수인계 잘 받았네. 앞으로도 그렇게 착착 알아서 할 거지?”

“예, 선생님.”

“좋아. 신현수도 잘했는데, 너도 꽤 잘할 것 같네. 니들 둘 다 일반 외과 지원했지?”

“예.”

김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을 정리하고, 다음 환자가 준비되는 사이 쉴 생각이었다. 악어가 틈을 발견했다.

“김진호 선생님도 참. 어떻게 현수하고 비교를 하시나. 야, 인턴. 넌 어떻게 생각해?”

정형외과를 도는 동기가 우물쭈물하자 악어가 인상을 썼다.

“지금 동기라고 편드는 거냐? 웃기는 새끼들. 김지훈.”

“예.”

“우리 과 환자 수술할 때 신경 써라. 실수해서 환자 상태 나빠지면 그땐 진짜 죽어. 알았어?”

백번 들어도 맞는 소리였다. 하지만 악어의 입에서 나오니 코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응급실 일을 벌써 잊은 거야? 누가 할 소린데.’

“예, 선생님.”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쓴 김지훈이 대답은 크게 했다. 그게 악어에겐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어쭈! 이 새끼가 이젠 고개까지 돌리네. 똑바로 해, 이 새끼야.”

참 질긴 인연이었다. 아니, 악연이었다. 후배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악어에게 찍힌 것이 죄라면 죄였다.

‘씨벌 놈.’

욕만 늘었다.

마취과의 일상은 변화가 없었다. 연이어 수술이 벌어졌지만, 마취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했다. 김지훈이 공기주머니를 짜다 말고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이러다 손에 알 배기겠네.’

스태프는 물론 전공의들 모두 마취를 주관하면 인공호흡기로 환자의 호흡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인턴은 예외였다. 수술 내내 공기주머니를 잡고 배깅(bagging)을 해야 했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지만, 무척 단순한 일이기에 정말 지루했다. 일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마취의 시작과 끝은 여전히 흥미로웠고, 무엇보다도 김지훈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환자가 있었다.

중환자실의 은비였다.

마취과 근무 시작 전, 새벽같이 중환자실에 들러 은비의 손을 꼭 잡으며 힘내라고 속삭였다.

‘어마 오늘 아침에 튜브를 뽑을 거야. 힘내서 숨 잘 쉬어야 한다. 전에 네 목소리 듣고 싶다고 말했지? 꼭 그렇게 하자.’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음 수술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김진호에게 허락을 받은 김지훈이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향했다. 변상훈 과장과 손일석이 초조한 눈으로 은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은비를 재웠던 진정제는 더 이상 투여되지 않았다.

진정제의 효과가 사라졌는지 은비가 몸을 뒤척였다.

마침내 눈을 뜨며 침대에 묶은 손과 발이 갑갑한지 몸부림을 쳤다. 기관에 삽입된 튜브로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신중한 눈으로 은비를 보던 변상훈 과장이 결정을 내렸다.

“손일석, 튜브 제거해.”

손일석이 조심스럽게 튜브를 제거했다.

“콜록! 콜록! 크르륵! 크르륵!”

가래 끓는 기침을 한 은비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튜브를 제거한 후 빠르게 입안과 기도 주변의 가래와 체액을 제거하지 못하면 다시 호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석션(suction:흡입).”

손일석이 석션을 하려 하자 은비가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은비야, 이거 해야 돼.”

청진을 하던 변상훈 과장이 은비를 달랬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손일석이 억지로 입을 벌리려 하자 은비가 발버둥을 치며 입을 꽉 다물었다.

변상훈 과장이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은비의 숨소리가 더욱 나빠졌다.

어떻게든 석션을 해 기도가 다시 막히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김지훈이 은비의 손을 잡았다.

“은비야, 나야.”

그 순간 은비가 고개를 돌리며 김지훈을 보았다.

한 줄기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참아야 해, 은비야. 내 말, 기억하지? 아! 해 볼까?”

가만히 김지훈에게 시선을 주던 은비가 입을 벌렸다.

김지훈이 은비의 손을 꼭 잡은 채 손일석에게 눈짓을 했다.

석션 팁이 거칠게 가래를 뽑아내자 소스라치게 놀란 은비가 입을 앙 다물었다.

“은비야, 조금만 참아.”

김지훈이 고통과 두려움에 바르르 떠는 은비의 작고 가녀린 몸을 꼭 안았다. 치익, 치익, 석션 소리가 이어졌다.

“하아!”

한결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렸다. 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은비를 달래며 김지훈이 살며시 웃었다.

“잘했어, 은비야. 말할 수 있겠니?”

은비가 입을 벙긋거리자 신음 비슷한 소리만 나왔다. 오랫동안 성대를 압박했던 튜브 때문이었다.

변상훈 과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두 시간 있으면 목소리까지 돌아오겠어. 김지훈, 손일석, 수고했어.”

너무도 가슴이 벅차 미처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은비가 안정될 때까지 함께 있어 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수술실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었다.

“은비야, 이따 저녁에 또 올게.”

은비가 고개를 저으며 김지훈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간 죽음과 싸운 어린아이에게 홀로 남겨진다는 느낌은 두려움일 것이다.

변상훈 과장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허어! 참! 김지훈, 너 은비한테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널 기억하는 거야? 신기한 일이네.”

김지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마 은비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때 마침 면회 시간이 돼 은비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를 본 은비가 울었다.

“아앙! 아… 아바…….”

은비 아빠가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은비만 보았다.

눈가가 벌게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은비야.”

“아… 빠…….”

믿을 수 없게도 은비의 목청이 터졌다.

아이를 안은 아빠의 어깨가 들썩였고, 은비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가슴이 찡해진 김지훈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가만히 은비의 손을 놓았다.

등 뒤에서 묵직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가 물에 빠졌다는 아이냐?”

김진호였다.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눈가를 비볐다.

“예? 예, 선생님.”

“변 과장님이 너 때문에라도 꼭 살 거라고 했는데, 정말이었네. 올라가자, 늦겠다. 사내자식이 이런 일에 울기는.”

“안 울었습니다, 선생님.”

김진호가 힐끗 째려보며 웃었다.

***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월, 수, 금이 오프였지만, 이한주를 따라 응급 수술까지 참여했다.

‘대개 의사들도 마취과를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마취는 말이야 환자를 죽였다 살리는 거야. 이것보다 엄청난 일이 어디 있겠어. 김지훈, 안 그래?’

김진호의 말을 떠올린 김지훈이 마음을 다잡았다.

이틀 후, 마침내 은비가 병실로 올라갔다.

일과를 마친 김지훈이 은비의 병실을 찾았다.

아빠가 수저에 밥과 반찬을 올리고 한 입, 한 입 먹여 주고 있었다. 입을 오물거리던 은비가 김지훈을 보고 활짝 웃었다.

“선생님.”

“야! 은비 드디어 밥 먹네. 맛있어?”

“네, 죽보다 맛있어요.”

“꼭꼭 씹어 먹어야 돼. 안 그럼 체해서 주사 맞아야 한다.”

“나, 주사 싫은데.”

어린아이의 생명력은 경이로웠다.

은비의 발간 혈색과 티 없는 웃음에서 기적을 보았다.

의사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버님, 은비 퇴원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어요?”

아이의 아빠가 밝게 웃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퇴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야! 정말 잘됐네요. 은비야, 축하한다.”

은비가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 김지훈이 은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일어섰다.

“아버님, 가 보겠습니다. 은비야, 조금이라도 아프면 꼭 말해야 돼. 안 그럼 집에 못 가. 알았지?”

“네, 선생님.”

아이 아빠가 병실 밖까지 따라 나오며 인사를 했다.

어느새 금요일도 다 지났다.

하룻밤만 자면 은비도 퇴원이었다.

악어가 수술에 들어올 때마다 김지훈을 괴롭혔지만, 이제 마지막 수술만이 남았다. 다음 주에는 일반 외과 수술을 도니 악어와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전완부 골절 환자였다.

이제 20살 언저리여서 전신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김지훈이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마취 과정에 집중했다. 정맥 마취에 이어 근육 이완제까지 투여한 김진호가 헛기침을 하며 튜브를 내밀었다.

“김지훈 선생, 인투베이션 해.”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었다.

김지훈이 꾸벅 인사를 하고 튜브를 받았다.

환자의 아래턱을 올리고 시야를 확보했다.

완전히 마취가 돼 호흡까지 멈춘 상태였다.

기도 입구에 삼각형으로 벌어진 성대는 물론 주변 구조가 환하게 보였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기관 내 삽관을 했다.

청진을 통해 확실하게 삽관된 것을 확인했다.

김진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

마취를 진행하라는 의미였다.

공기주머니를 짜며 바이탈을 체크한 김지훈이 수술을 해도 좋다는 사인을 내렸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선생님.”

하필이면 과장이 아직 안 들어온 데다 1st가 악어였다.

악어가 김진호를 보며 불평을 터뜨렸다.

“선생님, 왜 하필 인턴에게 인투베이션을 주세요. 불안하게.”

어떻게 보면 별말 아니었다. 수술팀에게는 당연히 불안한 일일 수 있었다. 그런데 김진호의 표정이 묘해졌다.

“악어,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예?”

목소리가 심상치 않자 악어가 깜짝 놀랐다.

“네가 왜 마취과 영역을 침범해. 그리고 김지훈 선생한테 인투베이션을 준 사람은 나야. 지금 불안하다는 말은 내 마취가 불안하다는 말과 똑같은 거 아니냐? 너, 마취과가 우습게 보여?”

“선생님, 그게 아니라…….”

“악어, 조용히 해. 지금 선배가 말하잖아.”

“예, 선생님.”

악어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마취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넌 어시스트나 잘해. 신현수한테 줄 때는 축하한다고 한 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어떻게 일주일 내내 니네 과도 아닌 우리 과 인턴을 태워. 내 참다못해서 말하는데, 후배라고 무시하지 말고 의사로서 대우해. 알았어?”

“예.”

선배한테는 정말 깍듯한 악어였다.

군말 없이 대답을 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김진호가 처음으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푸슈슉! 푸슈슉!

기계가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김지훈 선생, 나 좀 보자. 간호사, 5분만 잘 지켜봐. 수고.”

“네, 새앰.”

마취과 간호사가 방긋 웃으며 김지훈의 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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