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작고 가냘픈 생명 (2)
순간 머릿속을 지배했던 혼란이 조금은 사라졌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모니터만 쳐다보며 중환자실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 아이가 정말 의사의 손을 필요로 할 때 옆에 있는 게 의사로서 가져야 할 태도였다.
김지훈이 벌떡 일어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서울에서 이혁민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구미에서는 변상훈 과장이 의사로서 가져야 할 소양과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깜짝이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김지훈이 이제야 웃으며 석션을 했다.
그러고는 병동으로 올라가 입원 환자들을 보았다.
드레싱을 하며 환자들의 아픔을 들었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의사에게 기대지 않는 환자도 없었다.
오늘따라 그들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부랴부랴 병동 일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석션을 했다.
의사로서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바이탈과 소변량 등을 확인한 후 잠시 아이를 지켜보았다.
부모를 잃은 아이와 아이를 잃은 부모 중 누가 더 아플까?
결코 누가 더 아프고 슬픈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날 필요로 할 때 꼭 네 곁을 지켜 줄 테니 은비야, 힘을 내.’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체스트 사진을 확인하던 김지훈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양측 폐가 허옇게 보였다. 불과 이틀 만에 폐렴 중 가장 치명적인 흡인성 폐렴이 발생한 것이다. 심하게 오염된 강물이 원인이었다.
급히 노티를 해 강력한 항생제인 3세대 세파를 투여하라는 오더를 받았다.
변상훈 과장이 출근하자마자 중환자실을 찾았고, 곧 소아과 과장도 와서 아이를 보았다.
흉부 사진을 보며 논의를 거듭한 후, 더욱 강력한 병합 항생제 요법이 결정됐다. 세 종류의 항생제가 투여됐다.
“김지훈, 석션 더 자주 해 주고, 아이 열나면 바로 컨트롤해. 호흡 나빠지지 않는지 잘 보고.”
“예.”
상황이 긴박해졌다. 수시로 과장들이 아이를 살폈고, 아이의 아빠는 더욱 불안해했다. 병동과 응급실 일까지 해야 하는 김지훈으로서는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공부를 해야 했다.
열이 날 때 무엇을 투여해야 하는지, 소변이 안 나올 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책으로는 모자라 과장들에게는 물론 간호사들에게까지 물었다.
“설피린(sulpyrine:해열제) 0.5시시 주사해요.”
폐렴이 원인이었지만, 고열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주사제를 써서라도 내려야 했다.
소변량이 줄면 수액을 더 투여하고, 그래도 안 되면 약을 썼다. 콩팥 기능까지 잃으면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이어져 사망은 시간문제였다.
“라식스(lasix:이뇨제) 반 앰플 주사해요.”
점점 해야 할 처치가 많아졌고, 그만큼 은비라는 아이에겐 김지훈이 필요했다. 변상훈 과장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침마다 폐렴이 좋아졌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흉부 사진을 확인했다. 별로 변화가 없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쓸 수 있는 약은 다 들어간다. 남은 일은 석션을 더 자주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폐렴에 있어서 기관지에 찬 가래와 체액을 제거해 주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치료였다. 더욱이 흡인성 폐렴의 경우에는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됐다.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꼬박 3일을 중환자실에서 지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지막지하다고 할 정도로 석션을 했다. 바이탈을 포함한 모든 상태가 안정될 수 있도록 눈에 불을 켜고 살폈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얼굴을 비추는 아침 햇살에 깜짝 놀라 깼다. 김지훈이 머리를 흔들며 석션을 찾았다.
주사기에 든 생리 식염수를 기관에 삽입된 튜브에 쏜 후 석션을 했다. 그때 아이의 가슴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시 석션을 했다.
분명 미세하게나마 아이의 가슴이 움직였다.
확실한 반응이었다.
초조하면서도 떨리는 마음으로 흉부 사진을 뷰 박스에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관지에 찬 가래와 체액으로 허옇게만 보였던 폐의 음영이 짙게 보였다.
드디어 막혔던 기관지에 공기가 통한다는 의미였다.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작고 가냘픈 아이가 생명력을 되찾고 있었다.
김지훈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변상훈 과장과 아이의 아빠가 들어왔을 때 다시 석션을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기관지 내에 물이 들어가자 아이가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기관지에 삽입된 튜브가 아니었다면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을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김지훈, 언제부터 이랬어?”
“오늘 새벽부터 반응을 보였습니다, 선생님. 체스트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흉부 사진을 본 변상훈 과장이 처음으로 아이의 아빠에게 웃음을 보였다.
“아버님, 희망이 보입니다.”
“정말입니까? 내 딸이 살 수 있는 겁니까? 흐흐흑!”
아이 아빠가 김지훈의 손을 잡은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아이의 아빠를 보며 김지훈도 눈시울을 붉혔다.
면회 시간이 끝난 후 늦은 회진을 돌았다.
김지훈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김지훈.”
“예.”
“지금부터가 더 중요해. 이 타임만 제대로 넘기면 아이는 산다. 조금만 더 힘을 내.”
“알겠습니다, 과장님.”
소식을 전해 들은 장성기 과장이 김지훈의 어깨를 치며 좋아했다.
“음! 역시 김지훈이야. 아이 이름이 은비라고 했지? 너, 이번 텀 끝나기 전에 은비 인투베이션은 빼고 가라. 그럼 그동안 내 회진 대충 돈 거 용서해 주마.”
“과장님, 대충 안 돌았습니다.”
“정신이 중환자실에 가 있는데, 대충 안 돌았다구? 빵꾸만 안 내면 다냐.”
장성기 과장이 타박을 하면서도 기분 좋게 웃었다.
금요일이 왔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5일째였다.
송은비가 흡인성 폐렴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소아과 과장도 놀랄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물론 김지훈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송은비가 중환자실에서 나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제 하루 후면 성형외과와 흉부외과에서의 근무가 끝난다.
‘내일 서울에 올라가려면 은비가 더 좋아져야 하는데. 아예 일요일에 올라갈까?’
아무리 시간을 계산해 보아도 너무 빠듯했다.
진퇴양난이었다.
김지훈이 마지막 힘을 냈다.
당장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손이 한 번 더 닿으면 환자가 하루를 일찍 퇴원한다는 말이 있다. 김지훈과 송은비가 그랬다.
기침을 하며 반응을 보인 지 이틀 만에 눈을 뜬 것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 5일 만이었지만, 애초의 상태로 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이의 아빠가 거의 실성한 것처럼 기뻐했다.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김지훈의 손을 잡고는 면회 시간 내내 놓지 않았다.
김지훈이 석션을 하며 속삭였다.
“은비야, 힘내. 입안에 든 거 갑갑하지도 않아? 이젠 힘차게 숨을 쉬자.”
한 번 회복세에 들어서자 송은비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김지훈의 격려가 힘이 된 듯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인공호흡기가 요란한 경고음을 울렸다.
송은비가 괴로운지 몸을 마구 비틀었다.
급히 달려온 간호사가 놀라 소리쳤다.
“은비가 파이팅을 하네요.”
파이팅?
자발 호흡이 강해지면 인공호흡기가 밀어주는 숨과 환자의 숨이 충돌하게 된다. 결국 기계는 세팅된 공기량을 배출하지 못하게 돼 경고음을 울린다. 환자 역시 자신의 호흡이 막히면 당연히 숨을 쉬고자 기계에 저항하게 된다.
마치 환자와 기계가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였다.
간호사가 은비의 팔다리를 침대에 묶었다. 무의식적으로 기관에 삽관된 튜브나 수액 라인을 잡아 뽑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 새앰, 인공호흡기 모드(mode)를 어떻게 할까요?”
인턴이라는 사실을 잊은 걸까?
김지훈이 신중한 눈으로 지금도 파이팅하고 있는 송은비를 보았다.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송은비를 재워 강제 호흡을 유지하거나, 인공호흡기가 환자의 호흡에 순응하도록 모드를 바꾸는 것이었다.
은비의 호흡하는 힘이 상당히 강력했다.
“일단 자발 호흡 모드로 바꾸고, 바로 과장님께 노티 합시다.”
간호사가 모드를 바꾸는 사이 김지훈이 노티를 했다.
“과장님, 은비가 파이팅을 합니다.”
(뭐, 파이팅을 해?)
“예. 일단 호흡이 강해 자발 호흡 모드로 바꿨습니다.”
(알았어, 바로 갈게.)
변상훈 과장이 1분도 안 되어 달려왔다.
청진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송은비의 호흡 상태를 확인했다. 김지훈의 얼굴이 벌게졌다.
‘아! 맞다. 저렇게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눈으로만 보고 판단했으니, 이걸 어쩌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폐렴에서 막 회복된 송은비에게 호흡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초조한 눈으로 지켜보던 김지훈이 변상훈 과장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빠른데. 휴우! 정말 놀라워. 김지훈, 오전까지 자발 호흡 모드 유지하고, 오후에 인공호흡기 떼 보자. 이 상태로만 가면 며칠 내에 인투베이션도 제거할 수 있겠어. 트라케오스토미(tracheostomy:기관 절개술)를 해야 할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네.”
“정말 그 정도로 회복된 건가요?”
김지훈이 흥분된 눈으로 물었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지금이 바로 네가 은비 옆에서 킵(keep)을 해야 할 때야. 바이탈 흔들리나 잘 보고, 2시간 간격으로 비지에이 해. 호흡만 원활하면 오후에 다시 보고 결정하자.”
“옙!”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변상훈 과장이 나가자 김지훈이 송은비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은비야, 고마워. 조금만 더 힘을 내. 넌 할 수 있어.”
송은비의 눈이 김지훈을 보는 것 같았다.
폐렴에서 회복된 상태라도 기관지 삽관을 하고 있는 상태다. 끊임없이 염증 반응이 일어나 언제든 기관지를 막을 수 있었다. 아직도 석션은 반드시 필요했다.
컥컥!
기관에 삽관된 튜브에 생리 식염수를 쏘고 석션을 하자 가래가 섞인 내용물이 얼굴에까지 튀었다. 송은비의 파이팅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호흡뿐만 아니라 근육의 힘까지 돌아오고 있다는 징후였다.
오전이 금방 지나갔다,
마침내 변상훈 과장이 인공호흡기를 떼도 좋다는 오더를 내렸다.
“김지훈, 너 아니었으면 은비 죽었을 거야. 인공호흡기는 네가 직접 제거해.”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떨리는 손길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변상훈 과장이 눈짓을 했다.
김지훈이 송은비의 작은 가슴에 청진기를 댔다.
후욱! 후욱!
콩닥! 콩닥! 콩닥!
호흡 소리도 좋았고, 심장도 힘차게 뛰고 있었다.
“호흡은 원활합니다.”
“그래? 이제 한 고비만 더 넘기면 은비는 확실히 살겠다. 장 과장한테는 회진 못 돈다고 말해 놓을 테니까 내일 아침까지 킵(keep) 해. 조금이라도 숨 쉬기 힘들어 하면 바로 인공호흡기 다시 연결하고 노티 해.”
“예.”
육체적 생명은 90프로 돌아왔다.
한동안 송은비를 보던 김지훈이 동공 반사를 확인했다.
전보다는 확실하게 관찰됐다.
인투베이션을 제거했을 때 과연 송은비는 말을 할까?
아직도 고비가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뇌 손상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완연한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샜다.
송은비는 지난밤을 잘 버텼다.
변상훈 과장이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는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주말 오프지?”
“예? 예.”
“은비가 안 좋아졌으면 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도 되겠다. 이 정도면 다음 주에 인투베이션 뽑겠어. 이제 뇌 손상만 없으면 확실히 살려 낸 거야.”
모두들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의 아빠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얼마나 인사를 하는지 도리어 미안할 지경이었다.
피곤한 눈을 억지로 뜨며 병동으로 올라가는 사이 방송이 나왔다.
[김지훈 선생님, 0번. 김지훈 선생님, 0번.]
고경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