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3화 (53/1,329)

제4화 작고 가냘픈 생명 (1)

시야를 가리는 이물과 거품을 제거한 김지훈이 튜브를 넣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기도에 비해 튜브가 너무 굵었다.

“가는 튜브!”

심장을 압박할 때마다 기도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튜브도 굵었는지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억지로 힘을 주자 튜브가 식도 쪽으로 밀렸다.

김지훈이 튜브를 내던지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더 가는 거!”

이제야 맞았다.

튜브가 제대로 들어갔다.

김경수가 재빨리 이경석과 호흡을 맞춰 공기주머니를 짰다. 앰부를 할 때마다 저항을 못 이긴 공기가 역류하며 삑삑 소리를 냈다.

김지훈이 튜브를 통해 기관지 깊숙한 곳까지 석션 줄을 넣었다. 체액과 섞인 물이 석션을 따라 흘러나왔다.

이제야 공기가 폐에 제대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이 수액 라인을 확보했다.

“에피 하나, 아드레날린 하나, 비본 하나 섞어요.”

수액에 섞인 주사제들이 아지랑이처럼 퍼졌다.

심전도는 여전히 일직선이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전기 충격 준비해요.”

간호사가 충전을 시작했다.

“몇 줄이요?”

‘몇 줄(joul)로 하지?’

어린아이다. 성인과 같은 충격을 주면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김지훈도 이런 경우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응급실 수간호사를 보며 외쳤다.

“어리아이는 몇 줄부터 시작해요?”

의사가 간호사에게 구체적인 처치를 묻는 경우는 없었다.

수간호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100부터 시작해요.”

“100줄.”

삐이이이!

충전이 됐다는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까지도 이경석이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전기 충격기를 막 갖다 대려는 순간 심전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띠! 띠! 띠! 띠!

심장이 돌아왔다.

느릿느릿하던 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마침내 미약하지만 호흡까지 돌아왔다.

이경석과 김경수가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이 동공 반사를 확인하며 오더를 내렸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하고, 루틴 랩(사전에 정해진 검사) 내보내요. 포터블 부르고.”

정신없이 간호사들이 움직이는 사이 유석재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그 뒤에 변상훈 과장과 박경일 과장이 있었다.

“환자, 괜찮아?”

형식적인 물음이었다.

유석재는 물론 과장들까지 직접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단 급한 고비는 넘긴 것 같네. 동공 반사가 거의 없으니까 신경외과에 연락해.”

변상훈 과장의 말에 인턴들이 뒤로 물러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아이의 상태는 여전히 심각했다. 하지만 인턴들만의 힘으로 심장과 호흡을 돌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의사들이 모든 힘을 기울였다.

일반 외과와 흉부외과는 물론 신경외과와 내과, 그리고 소아과까지 와서 아이를 확인했다.

미약한 동공 반사는 있었지만 코마(coma:혼수) 상태다.

자발 호흡이 살아났지만,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정도로 불규칙했다.

더구나 강물에 빠져 거의 익사한 상태로 후송된 아이였다.

오염된 강물 때문에 흡인성 폐렴이나 패혈증 등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그 전에 손도 못 써 보고 아이를 잃을 수도 있었다.

의학적으로는 사망에 더 무게를 둘 상황이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하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보호자의 결정에 따라 보다 큰 병원으로 후송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대개의 안전사고가 그렇듯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였다.

보호자와 연락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환자실로 아이를 옮겨야 했다.

변상훈 과장이 박경일 과장과 뭔가 상의를 했다.

“박 과장, 가져갈래?”

“아무래도 너희 과는 여력이 없으니까 그 수밖에 없는데, 폐 문제는 너희 과가 전문이라 애매모호하네. 어디로 입원하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을지 모르겠어.”

어느 과든 자신의 환자에게 집중을 한다.

중환자실에 입원한다고 해도 다른 과 환자에게는 분명 소홀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야 일반 외과가 더 많았지만 그만큼 일이 많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변상훈 과장이 김지훈을 불렀다.

“김지훈 선생, 저 아이 볼 수 있겠어?”

이게 무슨 소린가?

일반 환자도 능력에 부치는 판국에 중환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김지훈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선생님,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오더는 내가 내리지만, 저런 환자에겐 정성이 더 필요할 수도 있어.”

“정성이요?”

물론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과 능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보호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작정 환자 옆에서 지낸다고 치료될 리 만무했다.

“앞으로 모든 치료를 다 하게 될 거다. 그중 대부분은 간호사들이 해도 돼. 하지만 환자 옆에 붙어서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치료할 사람이 필요해. 저 아이는 수시로 기관지 내의 가래를 제거해야 할 텐데, 간호사들만으로는 힘들어. 그리고 간호사의 경험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합병증 발생을 알아내는 것은 결국 의사야. 매일 체스트(흉부 사진)를 확인하는 일도 간호사에게 맡길 수는 없어.”

김지훈이 주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과장님,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실수할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난 네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믿고 말하는 거야.”

정성만으로는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변상훈 과장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의사의 지식과 정성, 그리고 열의가 필요했다.

김지훈이 틈날 때마다 책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흉부 도관은 물론 텐션이 걸린 기흉 환자를 적절하게 처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식은 빨리 채울 수 있어도 정성과 열의는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으면 빨리 채울 수 없다. 사실 많은 의사들에게는 그런 면이 부족했다. 가르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김지훈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변상훈 과장의 뇌리를 스쳤다.

“김지훈, 아이를 살려 봐.”

인턴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은 유석재뿐이었다.

김지훈과 눈을 마주친 유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할 수 있어.’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해 보겠습니다.”

선배 의사들의 믿음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살려 보라는 변상훈 과장의 말이 이상스럽게도 가슴을 때렸다.

“좋아, 중환자실로 아이 옮기고 해 보자.”

변상훈 과장의 눈에 힘이 팍 들어갔다.

마치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 같았다.

이름:송은비(F:여자)

나이:10살

아이의 머리 위쪽에 놓인 인공호흡기가 퓨욱, 퓨욱 하는 소리를 내며 공기를 밀어 넣었다.

심전도와 심장 박동 수, 그리고 15분 간격으로 체크되는 혈압이 끊임없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가습기가 수증기를 내뿜고, 기도에 삽입된 튜브로 분당 10리터의 산소가 주입됐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이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10살이라지만 또래보다 키와 체격이 작아 두세 살은 어려 보였다. 코에 매달린 엘 튜브(코 줄)와 방광에 연결된 폴리(소변 줄)마저 부담스럽게 보였다.

팔에 달린 수액 라인을 따라 강한 항생제가 투입됐다.

중환자실에 옮겨진 지 30분이 지났다.

김지훈이 기관에 삽입된 튜브에서 인공호흡기 라인을 뺐다.

호흡 이상을 감지한 기계가 경고음을 울렸다.

주사기에 든 생리 식염수를 튜브에 쏜 후 석션 줄을 넣어 기관과 폐에 찬 이물과 체액을 제거했다. 물컹물컹한 액체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석션 줄과 흡인력에 기침이 유발되어야 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김지훈이 무거운 한숨만을 내쉬었다.

얼마 후, 변상훈 과장이 낯선 사람과 함께 들어왔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논일을 하다가 달려왔는지, 보호자용 가운 밑으로 드러난 발과 다리는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은비야, 흐흐흑! 아이고! 내 딸! 어쩌다 네가.”

너무도 서럽게 울어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울음이 잦아들자 변상훈 과장이 아이의 상태를 설명했다. 비관적인 말뿐이었다.

“선생님, 엄마도 없이 자란 아이입니다. 꼭 살려 주십시오. 은비 없이는 저도 못 삽니다. 내 딸, 이렇게 가면 불쌍해서 어쩝니까?”

변상훈 과장이 아이 아빠를 위로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대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하실 거면 지금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버님?”

“여기서 다 죽었던 아이를 다시 살려 냈다고, 구급 대원에게 말을 들었습니다. 믿겠습니다, 선생님. 제발 제 딸을 살려 주십시오.”

엄마도 없이 아빠와 단둘이 살아온 아이였다.

가슴이 너무 아파 신경이 온통 아이에게만 쏠렸다.

저녁 회진과 병동 일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밤새 아이의 곁을 지켰다. 간호사들이 걱정 말라고 했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인 것이 다였다.

아침 회진을 위해 중환자실을 나오던 김지훈이 아이의 아빠를 만났다. 새벽부터 면회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아이고! 선생님! 우리 은비는 좋아졌습니까?”

하룻밤 사이에 좋아질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김지훈도, 아빠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과장님께 들으라는 것뿐이었다.

병동에 올라가 회진을 돌았다.

장성기 과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김지훈, 너 어제오늘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아닙니다.”

“근데 평소와 왜 이렇게 달라. 변 과장, 얘 왜 이래?”

“글세, 나도 잘 모르겠네.”

변상훈 과장이 웃는 것 같았다.

김지훈은 병동과 응급실에 일이 있을 때를 빼면 하루 종일 중환자실에서 살았다. 수시로 석션을 해 주는 것이 다였지만, 그마저 안 하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나고 퇴근하던 변상훈 과장이 아이의 아빠와 나타났다. 불과 두세 번 아이를 보았을 뿐인데, 아이 아빠에게 확실하게 상태를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변화가 별로 없습니다. 심장과 콩팥이 기능을 유지해서 다행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인내를 갖고 지켜보셔야 합니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면회 시간 내내 아이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던 아이 아빠가 김지훈에게도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시간까지 아이를 지켜보던 변상훈 과장이 다소 엉뚱한 질문을 했다.

“환자 어때?”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너, 중환자실에서 종일 킵(keep) 할 생각이냐?”

“예?”

사실 김지훈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응급 환자는 많이 보았지만, 응급실을 거치고 나면 인턴에게는 끝이었다. 물론 구미에 와서는 환자가 입원한 이후에도 보았지만, 이렇게 중한 환자를 본 적은 없었다.

능력도 문제였지만, 아이와 아이의 아빠를 보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입원한 환자는 제대로 안 봐도 돼?”

“죄송합니다. 아이의 상태가 너무 불안해서요.”

“김지훈, 내가 응급실에서 이 환자를 네게 맡긴다고 했다만, 의사가 너만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환자가 심각하다고 단 한 명만 볼 수는 없어. 다른 환자들 역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네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은 안 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가 필요한 자리에 있어야지. 지금 이 아이의 옆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30분 간격으로 석션을 해 주고,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하는 것은 간호사들이 충분히 커버하고 있잖아. 매정한 게 아니라 그게 의사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