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환자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1)
“너, 공부하면 죽어. 난 졸업한 지 8년 됐고, 전과까지 있는 사람이야. 우리 공평하게 붙자. 난 학교 다닐 때 배운 거 싹 잊어먹었다구.”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이경석 쌤, 정말 전과가 있어요?”
겁까지 내는 눈치였다.
김지훈과 이경석이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예전 인턴 때 간호사와 전공의하고 싸운 일을 말한 것인데,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그래, 니들도 조심해. 나 무서운 사람이야.”
이경석이 인상을 쓰자 간호사가 가슴에 손을 모으며 뒤로 물러났다.
“어머! 어떡해.”
‘에휴! 그 말을 고대로 믿네. 순진하기는.’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형, 농담도 못하겠네요. 간호사,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가서 바이탈이나 다시 체크해요.”
혈압 변동은 없었지만 호흡이 약간 가빠지고 맥박이 조금 증가했다. 김지훈이 청진을 했다. 좌측 흉부의 호흡음이 약간은 약해졌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환자분, 호흡이 더 가빠지면 빨리 말씀하세요. 조금 있으면 흉부외과 과장님이 오실 거니까 조금만 참으시고요.”
골절된 다리에서 전해지는 통증 때문인지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이경석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30분이 지났다.
변상훈 과장의 전화가 왔다.
“예, 김지훈입니다.”
(무슨 환자야?)
“40세 된 남자 환잡니다. 금일 낙상으로 발생한 대퇴골 및 좌측 늑골 골절로 인한 기흉으로 내원했습니다.”
(또? 몇 달치 기흉을 한꺼번에 다 볼 모양이네. 알았어,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체스트 튜브(흉부 도관) 박을 준비해 놔. 한 30분 정도 걸리니까 환자 잘 보고 있고.)
“예, 과장님.”
내심 또 한 번 튜브를 박을 기회를 기대했던 김지훈이 히죽 웃었다. 한 번 한 것도 감지덕진데, 욕심이 너무 과했다.
“간호사, 튜브 박을 준비 다 해 놨죠.”
“네, 과장님이 오시기만 하면 돼요. 그냥 새앰한테 하라고 하면 좋은데.”
“어이구! 나 인턴이에요. 10분 간격으로 바이탈 체크합시다. 이상 있으면 바로 말하고.”
“새앰은 뭐 할 건데요.”
“나? 이경석 선생님하고 하고 놀 건데. 하하하!”
위급한 환자들만 없으면 이젠 제법 여유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김지훈의 눈과 귀는 환자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기흉은 결코 만만한 질환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지훈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환자의 바이탈이 흔들리고 있었다.
느리기는 했지만, 혈압이 떨어지며 박동 수가 증가하고 호흡도 훨씬 가빠졌다.
“당직실에 연락해요. 지금 체스트 다시 찍읍시다.”
포터블(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을 이용해 흉부 촬영을 하고 난 후에야 악어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과장님도 안 오셨는데, 왜? 무슨 일 있어?”
“기흉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바이탈도 불안하구요.”
악어가 힐끗 김지훈을 째려보고는 환자를 살폈다. 곧 간호사의 기록을 확인하고는 한심하다는 듯 김지훈을 보았다.
“야, 대퇴골이 부러졌어. 출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당연히 혈압 좀 떨어지고 환자도 힘들어 하지, 인마. 왜, 기흉이 문제인 것 같아?”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끼, 정말. 간호사, 사진 아직 멀었어?”
“지금 찾으러 갔어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다.
악어가 짜증을 내자 간호사도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잠시 후, 사진이 도착했다.
불과 30분 만에 흉강의 10프로를 차지했던 기흉이 30프로까지 넓어졌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진행이 너무 빨랐다.
김지훈이 새로운 오더를 내렸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 준비해 주고, 환자 모니터합시다. 10분 후에 체스트 다시 찍고 바로 찾아와요.”
“네, 새앰.”
악어가 코웃음을 쳤다.
“이 정도는 흔히 보는 거야, 새끼야. 하긴 몇 개 봤다고 아는 게 아니지. 튜브 한번 박아 봤다고 기흉 갖고 난리 치기는. 환자나 똑바로 봐.”
김지훈이 악어의 말을 무시했다.
환자에 관한 판단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없어 들을 가치조차 없었다.
10프로와 30프로의 차이?
이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30분 만에 3배로 커졌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어어, 왜 저래.”
그때 이경석이 환자를 가리키며 신음처럼 묘한 소리를 질렀다.
환자의 호흡이 가빠졌다.
숨을 쉬기 힘들어, 다리에 견인 장치가 걸려 있는데도 앉으려 애를 썼다. 좌측 흉부의 호흡음이 상당히 미약해졌다.
청진을 하던 김지훈이 소리를 질렀다.
“혈압 재고, 포터블 빨리 불러!”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혈압은?”
“110에 70이고, 박동 수는 110회예요.”
“산소 풀로 틀고, 침대 좀 올려요.”
환자의 식은땀과 증가하는 박동 수는 기흉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포터블 왜 안 와?”
“지금 중환자실에서 있대요.”
“과장님한테 연락은?”
“10분 이내에 도착하신다고 막 연락이 왔어요.”
변상훈 과장이 전화를 하지 않는 한 통화할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10분? 환자 상태가 너무 불안해. 내 마음대로 튜브를 넣었다고 혼나더라도 일단 박자.’
“체스트 튜브 박읍시다.”
김지훈의 말에 간호사가 달려왔다.
그때 악어가 소리를 질렀다.
“기다려, 인마! 10분이면 오신다잖아.”
“그런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튜브를 넣는 게 안전합니다. 바로 하겠습니다.”
“뭐, 바로 한다구? 이 새끼가 우리 과를 뭐로 보는 거야. 이 환자 정형외과 환자야. 인턴 따위한테 체스트 튜브 박게 할 수 없어. 안 돼.”
“선생님, 이러다 순식간에 환자 넘어갑니다.”
“건방진 새끼. 지금 경험도 없는 새끼가 날 가르치는 거냐? 기흉이 좀 심하면 다 저렇게 힘들어 해. 내 환자는 인턴한테 못 맡겨. 과장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 건드리지 마.”
김지훈이 초조한 눈으로 환자를 보았다.
이 정도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었다. 그 당시 이삼십 분 정도는 충분히 버텼다. 하지만 기흉이 빠르게 커지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악어가 눈에 불을 켜고 환자 옆에 서 있었다.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태도였다.
때마침 포터블이 왔다.
김지훈과 간호사가 서둘러 흉부 촬영하는 것을 도왔다.
“사진 좀 빨리 빼 주세요. 환자가 급합니다.”
방사선과 기사도 환자 상태가 걱정되는지 급히 움직였다. 변상훈 과장이 단 1분이라도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10분이 거의 다 지났다.
갑자기 환자의 호흡이 급격히 가빠졌다.
급격한 박동 수의 상승으로 인해 모니터가 요란하게 울렸다.
환자가 거의 숨을 쉬지 못하면서 눈을 까뒤집었다.
‘설마 텐션(tension:긴장)?’
김지훈이 크게 소리쳤다.
“간호사, 튜브 박읍시다!”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악어의 안색이 변했다.
그때 변상훈 과장이 들어섰다.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막 튜브를 박을 자리에 마취를 하려던 김지훈을 보고는 고함을 질렀다.
“김지훈, 뭐 하는 거야? 텐션 걸렸잖아!”
번뜩 정신이 돌아왔다.
단순 기흉과 긴장성 기흉(tension pnemothorax)은 전혀 다른 질환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손상되 폐 부위가 체크 밸브처럼 작동하면서 호흡하면 할수록 흉강 내를 채운 공기가 급격하게 불어난다.
결국 부피가 커진 공기 덩어리가 심장을 누르고, 최악의 경우 반대편으로 밀어붙인다. 심장 압전(cardiac tamponade)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수 분 내에 사망하게 된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간호사, 16게이지!”
간호사가 16게이지 바늘을 내밀자마자 김지훈이 환자의 좌측 늑골 두, 세 번째 사이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삐이이이!
과도한 압력에 눌렸던 공기가 피리 소리를 내며 빠져나왔다. 16게이지 바늘은 수혈할 때 쓰는 18게이지보다 훨씬 두꺼웠다. 하지만 빠르게 공기를 빼내기에는 부족했다.
김지훈이 주사기를 들고 공기를 빼내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 수가 내려가고, 환자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단 1분이라도 늦었으면 환자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헉! 헉!”
김지훈이 가쁜 숨을 내쉬자 변상훈 과장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또 소리를 질렀다.
“빨리 튜브 박지 않고 뭐 해?”
“예.”
김지훈이 두 번째 체스트 튜브(흉부 도관)을 박았다.
그사이 응급실 차트를 본 변상훈 과장이 간호사들에게 몇 마디를 물었다. 곧 악어를 부르며 당직실로 들어갔다.
변상훈 과장이 화를 참느라 연거푸 숨을 몰아쉬었다.
“너, 2년차나 되는 놈이 환자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한 거야? 정형외과라 몰라?”
“죄송합니다. 인턴에게 튜브를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이미 케이스 준 거 알았지? 그럼 환자의 상태가 급하면 내 대신 박아도 좋다는 말인데, 몰랐어?”
이미 구미 근무만 세 번째였다.
변상훈 과장의 말을 모를 리가 없었다.
김지훈이 튜브를 박은 일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케이스를 주셨는지 몰랐습니다. 솔직히 환자가 그렇게 빨리 나빠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김지훈이 튜브를 박아야 한다고 했을 때 왜 막았어. 그땐 튜브를 박아야 한다는 걸 너도 알았을 거 아냐?”
“과장님이 바로 도착하실 거란 생각에 그랬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김지훈이 튜브를 박아 봤다는 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악어가 싹싹 빌었다.
“몰랐다고? 간호사 말로는 그게 아니던데. 지금 네가 한 말이 거짓말이면 단단히 각오해. 너 때문에 환자 죽을 뻔했어, 이 새끼야.”
“거짓말 아닙니다. 알았다면 맡겼을 겁니다.”
변상훈 과장이 모든 일을 확실하게 알았다면 악어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사에게 전해 들은 말뿐이었기에 상황이 짐작은 가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악어가 아니더라도, 단 한 번도 흉부 도관술을 못 해 본 인턴에게 환자를 맡길 전공의는 없었다.
“나가 봐.”
당직실을 나서는 악어를 보는 변상훈 과장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환자가 걸린 문제라면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의사라면 사적인 감정이 있어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악어, 내가 앞으로 확실히 지켜본다. 만약 오늘 한 말이 거짓이거나, 환자를 앞에 두고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으면 옷 벗게 만든다.’
환자의 목숨이 걸렸던 일이었기에 지나간 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변상훈 과장도 없이 체스트 튜브(흉부 도관)을 박았다.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환자 바이탈까지 직접 체크했다. 모든 것이 확실하게 처리됐지만 심장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텐션이 걸린 환자에게 튜브부터 박으려 했다니, 과장님이 아니었다면 환자가 죽었을 거야.’
환자를 앞에 두고, 단지 선배고 2년 차라는 이유로 악어의 위세에 눌렸다.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쳐 환자를 죽일 뻔했다.
견딜 수 없는 자책과 후회만이 남았다.
딩직실에서 나온 변상훈 과장이 흉부 사진을 보며 물었다.
“제대로 들어갔어?”
“예, 과장님.”
“환자는?”
“스테이블(stable) 합니다.”
“당직실로 들어와.”
변상훈 과장이 당직실에 들어서자마자 무섭게 화를 냈다.
김지훈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너, 환자 그 따위로 볼래? 튜브 한번 박더니 기흉이 우습게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