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것은 감동 그 자체다 (2)
마치 유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흉 환자가 또 왔다.
변상훈 과장도 의외인지 엉뚱한 말을 했다.
“요새 누가 일부러 가슴만 찌르고 다니나? 혈흉을 열지 않나, 기흉 환자는 또 왜 이렇게 많아?”
“그러게요, 새앰. 김지훈 샘이 오신 이후 정말 많이 오네요. 혹시 김지훈 새앰이 찌르고 다니는 거 아닐까요?”
흉부 도관을 준비하던 간호사의 말에 변상훈 과장이 웃으며 김지훈을 보았다.
“준비됐지?”
“예?”
“다음번에는 김지훈 선생 차례라고, 전에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튜브(흉부 도관) 박을 준비해.”
김지훈이 놀란 표정으로 눈만 멀뚱거리자 변상훈 과장이 재촉을 했다.
“김지훈 선생, 뭐 해. 안 할 거야?”
“아닙니다.”
김지훈이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다들 지나가는 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변상훈 과장이 김지훈에게 정말 메스를 넘긴 것이다. 모두들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응급실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제 인턴이 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김지훈이 흉부 도관 삽입술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환자 앞에 선 김지훈의 눈에 힘을 줬다.
적절한 긴장과 함께 강한 자신감이 필요했다.
김지훈이 흉부 도관을 삽입할 준비를 모두 끝냈다.
변상훈 과장의 눈빛이 분명하게 묻고 있었다.
흉부 도관은 몇 번째에 넣어?
여섯, 일곱 번째 늑골 사이로 넣습니다.
그럼 인시전(incision:절개)은 어디에?
늑골 일곱, 여덟 번째를 절개합니다.
그 이유는?
각 늑골의 하부에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도관은 반드시 늑골의 상부를 통과해야 합니다. 따라서 실제 삽입할 위치보다 아래쪽을 절개합니다.
당연한 일인 것처럼 흉부 도관 삽입술에 대해 공부했다.
이혁민 교수가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였다.
변상훈 과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다.
김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리도카인(lidocaine:국소 마취제)을 주사했다.
시리도록 날카로운 메스의 날이 반짝였다.
사람의 피부는 보기보다 훨씬 질겼다.
절개가 쉽지 않았다.
변상훈 과장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게.”
김지훈이 메스에 강하게 힘을 가했다.
깊게 잘릴 줄 알았건만, 피부만 갈라졌다.
다시 한 번 메스에 힘을 주고 나서야 지방층이 드러났다.
켈리(kelly:집게가 달린 가위처럼 생긴 기구)로 늑골 상부를 따라 지방과 근육을 헤쳐 길을 만들었다.
흉막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집게 부분만 7~8센티미터 이상 되는 롱 켈리(long kelly)를 미리 만든 길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단단한 저항이 느껴졌다.
흉막과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근육이 분명했다.
변상훈 과장이 도관을 박던 모습을 떠올렸다.
‘끙’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힘을 썼었다.
롱 켈리를 단단히 잡고 강하게 밀었다.
상당히 질긴 조직이 뒤로 밀리다 뻥 뚫렸다.
롱 켈리에 전해지던 저항이 사라지는 순간, 공기 새는 소리가 들렸다.
피식! 피시시식!
롱 켈리를 벌릴 때마다 폐와 흉막 사이에 있던 공기가 빠르게 빠져나왔다. 환자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망설이거나 주저하면 안 된다.
김지훈이 재빨리 롱 켈리로 도관을 잡고 흉강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10센티미터 이상 들어갔다.
변상훈 과장이 다시 묻고 있었다.
도관의 위치는?
최대한 바깥쪽을 따라 상방에 위치하게 합니다.
김지훈이 롱 켈리를 사용해 도관을 원하는 위치에 넣고자 애를 썼다. 환자의 고통이 가중됐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좋아, 고정해.”
변상훈 과장의 지시에 따라 도관을 피부에 단단히 고정했다. 도관과 절개창 사이로 공기가 새지 못하도록 추가로 봉합을 했다.
이제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김지훈이 이마에 잔뜩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간호사, 포터블(portable) 불러요.”
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인 포터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와 환자의 가슴을 찍었다.
김지훈이 입술에 침을 축였다.
입안까지 바싹 말랐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필름이 나왔지만, 마치 1시간은 기다린 것 같았다.
우측 폐부에 굵은 도관이 하얗게 보였다.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았지만, 전문의의 눈은 확실히 달랐다.
결과에 대한 판단은 당연히 변상훈 과장이 내려야 한다.
변상훈 과장이 눈가를 좁히며 필름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지? 잘못 들어갔나?’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변상훈 과장의 입이 열렸다.
“김지훈 선생, 환자 올리자. 잘 들어갔다.”
제대로 들어갔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쳤다.
인사를 하고 환자가 입원실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김지훈은 밖으로 나갔다.
불어오는 밤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혔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았다.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난데없는 고함 소리가 터졌다.
“야호!”
김지훈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마구 흔들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일 중 가장 짜릿하고 뿌듯했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였다.
‘아버지, 어머니, 저 잘했죠.’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유난히 밝았던 별 2개가 깜빡거렸다. 조금은 서글픈 미소를 머금은 김지훈이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누군가는 함께 기뻐해 주었으면 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고경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아 씨? 저예요.”
(어머! 지훈 씨, 웬일이세요.)
불과 이틀 만에 한 전화였지만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별일 없었죠?”
(그럼요. 지훈 씨도 별일 없으시죠?)
“아니요, 전 별일이 있었네요.”
고경아가 깜짝 놀랐다.
(어머!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아니에요. 사실은 오늘 정말 굉장한 일이 있었어요. 흉부 도관을 직접 넣었거든요.”
(정말요? 지훈 씨, 정말 대단해요. 축하드려요.)
고경아도 수술실에 있다 보니 흉부 도관 삽입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인턴들이 할 프로시저(procedure)가 절대 아니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고경아의 마음이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지훈의 가슴이 더욱 뿌듯해졌다.
“고마워요, 경아 씨. 다음 주 주말 약속 잊지 않았죠?”
(그럼요.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네, 토요일에 봐요.”
(근데 너무 멀어서 피곤하실 텐데, 어쩌죠?)
“나만큼 체력 강한 사람도 없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시간 나실 때마다 충분히 쉬세요. 제가 재밌는 일 하나 말해 드릴까요?)
고경아의 말이 길어졌다.
들떴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편안함이 찾아왔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전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시간이야 얼마가 됐든 김지훈에게는 분명 짧은 시간이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오늘이 최고의 날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했다.
김지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장성기 과장의 칭찬에 이어 흉부 도관까지 넣은 인턴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방송에 나온 사연까지 더해지면서 눈빛들이 달라졌다.
시샘과 부러움이 섞인 동기들의 눈초리.
한턱 제대로 쏘라는 간호사들의 기대 어린 눈빛.
김지훈도 우쭐한 기분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말이 됐다.
유난히 한가로운 일요일이었다.
인턴들도 적은데 주말 오프까지 겹쳐 숙소가 텅 비었다.
일찌감치 병동 일을 마친 김지훈이 나른한 잠에 빠졌다.
중환자실에 있던 혈흉 환자도 일반 병실로 올라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환자도 없었다.
따르릉! 따르릉!
단잠을 깨우는 벨소리에 김지훈이 눈을 떴다.
(지훈아, 나 경수야.)
“환자 있어?”
(응. 정형외과 환잔데, 기흉이 떴다. 무슨 놈의 기흉이 이렇게 많이 오는지 모르겠네. 2주 동안 5명도 넘게 왔잖아?)
“기흉이라고?”
김경수의 말을 끊은 김지훈이 부랴부랴 가운을 걸쳤다.
전화기를 통해 김경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성훈 선생님 주말 오프 가셨다. 무슨 소린지 알지? 빨리 내려와.)
악어가 환자를 본다는 말이었다.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몰랐다.
전화를 끊자마자 김지훈이 응급실로 내달렸다.
“전화 받았으면 빨리빨리 내려와.”
보자마자 시비다.
김지훈이 흉부 사진을 걸어 확인하고는 인상을 구겼다.
“차팅 다 해 놨어, 인마. 넌 가서 빨리 노티나 해. 튜브 한번 박아 봤다고 인턴 아닌 것 같아? 주제를 알아.”
뭐라고 그러든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알겠습니다.”
대답과는 달리 김지훈이 신중하게 X-ray를 확인했다.
좌측 세, 네 번째 늑골 골절과 기흉이 동반돼 있었다.
다행히 손상이 크지 않은지 새어 나온 공기의 양이 적었다.
김지훈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환자를 살폈다.
낙상으로 인한 대퇴골 골절(femur fracture) 환자였다.
상당히 굵고 큰 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었다. 특히 골절 부위에서 2,000~3,000시시(CC)에 달하는 출혈이 발생하기도 해, 정형외과에서도 상당히 빠르게 대처하는 질환 중의 하나였다.
악어도 절대 응급 처치를 미룰 수는 없는 환자였다.
이미 응급으로 하지 견인(traction)까지 마친 상태였다.
골절 부위가 안정되고, 진통제를 투여한 덕에 환자가 크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다.
“여기 바이탈 다시 체크합시다.”
간호사가 쪼르르 달려와 혈압과 호흡수 등을 체크했다.
다행히 맥박만 조금 빠를 뿐 나머지는 안정적이었다.
김지훈이 스테이션으로 가자 간호사가 전화를 연결했다.
변상훈 과장이 집에 없었다.
대신 부인이 받았다.
“응급실 인턴 김지훈입니다. 과장님 안 계신가요?”
(어떡하죠. 잠깐 일 보러 나가셨어요. 제가 지금 바로 나가서 연락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 사모님. 급한 환자라 빨리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한데, 얼마나 걸릴까요?”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최대한 빨리 연락할게요.)
“감사합니다.”
기흉이긴 하지만, 사이즈가 작아 30분 사이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다. 김지훈이 차팅을 하고는 전화를 기다렸다.
“언제 오신대?”
“잠깐 나가셨답니다. 30분 내로 연락을 주신다네요.”
“30분? 에이 씨! 주말에 이게 뭐야. 나 당직실에 있을 테니까 과장님 오시면 연락해.”
악어가 짜증을 내며 당직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투덜거렸다.
“이제 2년차면서 당직 때마다 왜 저래. 며칠 서지도 않으면서. 짜증 나 죽겠네. 자기만 주말인가.”
어느새 이경석이 옆에 서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주제를 알라고? 어디 서러워서 인턴 해 먹겠나. 애새끼, 싸가지 진짜 없어.”
“설마 형한테도 그래요?”
“뭐, 그냥저냥. 학교 다닐 때는 저런 줄 몰랐다. 나 본과 3학년 때 들어왔으니까 차이도 많이 나고. 하여튼 악어처럼 후배 대하는 놈은 처음 봤어. 병원에서 나가는 순간 후회할 거다. 선배 대접은커녕 찾지도 않겠지.”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이치였다.
악어는 왜 그걸 모를까?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갑자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 주머니에 그거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인마.”
이경석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머니를 가렸다.
“혹시 야마(의대 족보집) 아니에요?”
“아니야. 내가 야마를 왜 봐, 인마.”
“에이! 딱 보니까 야만데? 맞죠?”
손까지 흔들며 아니라던 이경석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이 눈은 좋네. 맞아, 인마. 너랑 붙을 생각하니까 앞이 캄캄해서 공부 좀 한다. 왜, 불안해?”
“윽! 형이 공부를. 큰일 났다. 나도 공부해야지.”
이경석이 눈을 부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