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가만히 앉아서는 배우지 못한다 (1)
구미 응급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경석이 응급실을 돌고 있었다.
장성기 과장이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과장과 인턴이지만, 학생 때는 1년 선후배 사이였다. 이경석의 욱하는 성격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경석아, 이번에는 잘 돌아라. 또 욱해서 사고 치지 말고. 마지막 기회야.”
“제가 나이가 몇인데 또 그러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장성기 과장이 X-ray를 보며 골절 유무를 확인한 후 수처할 준비를 했다.
김지훈이 소독 장갑을 끼며 앞에 앉았다.
“수처 어시스트는 간호사가 해도 돼.”
“아닙니다. 어떻게 수처하시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그에 장성기 과장이 아무 말 없이 수처를 시작했다.
수처를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크게는 상처를 한꺼번에 꿰매는 One Layer 방식과 피부, 피하 조직, 근육 등을 각각 꿰매는 Layer by Layer 방식으로 나뉜다.
장성기 과장은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
얼굴 조직은 생각보다 무척 연약해 근육 층까지 찢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종종 뼈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게다가 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커트(cut).”
마지막 실을 자르고 드레싱까지 끝났다.
심하게 찢어졌던 상처가 깔끔하게 치료됐다.
성형외과 의사다운 솜씨였다.
오더 내는 것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과장님, 수처할 때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습니까?”
“서울에서는 한 번도 못 해 봤겠지. 연습은 했어?”
장성기 과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3주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었다.
김지훈도 순간 악어가 떠올라 얼굴을 찌푸릴 뻔했다.
“연습도 하고, 실제로 해 보긴 했습니다만, 좀 더 잘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해 봤다고?”
“예, 솔직히 말씀드리면 딱 한 번 해 봤습니다.”
서울 초텀이 어떤지 모르는 선배 의사는 없었다. 다소 의외인지 장성기 과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의사에게 수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인턴도 의사야. 의욕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 전 텀 인턴에게 인수인계는 받았지?”
확실하게 깨질 각오를 하란 말로 들렸다.
“예, 받았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김지훈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의욕은 높이 사 줄 만하다고 느낀 장성기 과장이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성형외과에 지원할 생각이 아니면 이 정도의 의욕을 보이는 인턴은 없었던 것이다.
“너, 혹시 우리 과 하고 싶어?”
“아닙니다. 이미 일반 외과에 지원했습니다.”
‘지원을 벌써 했어? 우리 과 할 것도 아닌데, 깨질 거 각오하고 이렇게 덤벼드는 놈은 처음이네. 입원 환자까지 미리 다 챙기고. 인턴 중에 이런 놈이 있었나?’
장성기 과장이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다 웃고 말았다.
능력이야 어떤지 몰라도, 일단은 쓸 만한 인턴이었다.
“수처는 상황이나 부위마다 하는 목적이 다 달라. 주로 얼굴이 찢어진 환자를 보게 될 텐데, 잘 붙는 것만큼이나 흉을 최대한 적게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레이어 바이 레이어 방식으로 하면 됩니까?”
“물론 따로따로 꿰매야 잘 붙긴 하지. 하지만 그건 수처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해. 중요한 건 스킨 에지(skin edge:피부 절단면)를 정확하게 맞추는 거야.”
오더를 다 낸 장성기 과장이 응급실을 나서며 말했다.
“뭐가 중요한 건지 가르쳐 줬으니까 각오 단단히 해.”
“예, 알겠습니다.”
김지훈이 물끄러미 장성기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스태프가 일요일에 나와 드레싱은 물론 수처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전공의와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었지만, 귀찮은 기색조차 내지 않았다.
‘과장님도 저렇게 환자를 보시는데, 인턴인 내가 농땡이를 부릴 수는 없지.’
김지훈이 응급실을 도는 동기인 김경수와 이경석을 찾았다.
“저, 형님, 앞으로 밤 12시 이후에 혹시 바쁘시면 성형외과나 흉부외과 환자 콜은 제가 받을게요.”
“수처도?”
“예. 이왕 도는 건데, 열심히 하는 게 좋잖아요.”
이경석의 물음에 김지훈이 말끝을 흐렸다.
누구나 깨지는 것은 싫지만, 반면 인턴이라면 누구나 하기를 원하는 술기가 수처이기도 했다. 자칫 욕심을 내 다른 인턴들의 기회를 빼앗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나야 안 깨지니까 좋은데, 그래도 되나?”
“깨지는 건 상관없습니다, 형님.”
이경석이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너 오프 때만 타면 되겠구나. 말 나온 김에 흉부외과 환자나 한 명 보고 가. 메인은 정형외과인데, 가슴이 아프대. 아직 노티 못 했거든.”
“옙. 경수야, 너도 괜찮지?”
“오케이.”
김경수도 깨지긴 싫은 모양이었다.
사실 응급실을 돌면서 깨지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었다.
‘좋았어. 마구 마구 와라. 다 꿰매 주마. 까짓것 오래 깨져 봐야 3주다. 일반외과를 하기 위한 준비인데 뭘 못 하겠어.’
김지훈이 내심 신이 나 환자를 찾았다.
통상적인 질문을 한 후 청진을 해 폐 소리의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X-ray도 정상이었다.
응급실 간호사에게 콜을 부탁했다.
“흉부외과 과장님 연결해 주세요.”
“응급실 환자 콜을 왜 쌤이 하세요.”
사투리는 아닌 것 같은데, 어딜 가나 쌤이었다.
김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성형외과, 흉부외과 환자는 내가 봅니다.”
“주말하고 야간에도요?”
“네, 오프 때만 아니면 언제나 콜.”
마치 희한한 동물이라도 본 것처럼 김지훈을 보던 간호사가 전화를 연결했다.
변상훈 과장이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입원 환자에게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응급실입니다. 환자 한 명 노티 드리려구요.)
“오늘 너 당직 아니잖아? 응급실 인턴들은 뭐 하고?”
당황한 김지훈이 급히 말을 이었다.
(제가 환자를 보고 싶어서 부탁했습니다. 노티 드릴까요?)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변상훈 과장도 의외인 모양이었다.
“무슨 환자야?”
(36세 남자 환자입니다. 금일 발생한 교통사고로 내원했습니다. 우측 가슴에 통증을 호소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서 임프레션(impression:임시 진단)이 뭐야?”
아차 싶었다.
구미는 인턴들에게 임시 진단에 따른 검사 오더까지 허용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떠올렸다.
김지훈이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
(우측 흉부의 컨투전(contusion:타박상)으로 보입니다. 하지에 골절이 있어서 정형외과에 입원할 예정입니다.)
“알았어. 차팅하고 내일 컨설트(consult) 내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지훈이 응급실 차트에 환자에 대한 기록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컨설트 오더를 추가했다.
consult to CS
흉부외과에 문의 바람
마치 1년차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정말 묘했다.
서울보다는 상대적으로 환자가 적었지만, 응급실은 역시 응급실이었다.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환자가 왔고, 응급실 인턴들은 잠시도 쉬지 못했다.
당연히 얼굴이나 가슴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도 왔다.
김지훈은 몇 명의 환자를 노티 한 후 환자가 뜸한 틈을 타 오후 드레싱을 했다. 드레싱 소리에 김지훈을 살짝 째려보던 새로운 얼굴의 간호사가 따라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쌤, 혹시 구미에 온 적 있어요?”
“왜요?”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요.”
“경상도 쪽은 처음인데, 어디서 날 봤겠어요.”
“그쵸. 그런데 왜 낯이 익을까요.”
“내가 흔한 얼굴이라서 그래요.”
“아닌데, 분명 어디서 봤는데.”
‘보긴 날 어디서 봐.’
드레싱하는 내내 간호사가 종알거렸다.
데일리 작성을 위해 차트를 정리하던 중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쌤, 얼굴 찢어진 환자 왔어요.)
드디어 바라던 환자가 왔다. 김지훈이 남은 일을 후다닥 해치우고 쏜살같이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때 신현수와 정갑수도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현수구나. 지금 온 거야?”
정갑수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김지훈도 굳이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응. 넌 언제 왔어?”
“어제. 지금 바쁘니까 이따 보자.”
신현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지훈이 응급실로 향했다.
“갑수 형, 지훈이가 어디 돌지?”
“저 새끼가 어딜 도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마 성형외과하고 흉부외과 돌 거야.”
“정식 근무는 내일 아침부터인데, 뭐가 저렇게 바쁠까?”
“원래 일은 혼자 다 하는 척하잖아. 신경 쓰지 마.”
안경을 고쳐 쓰는 신현수의 표정이 딱딱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김지훈이 환자를 보고 X-ray 오더를 냈다.
오더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바로 이거야. 온몸에서 즐거움이 무럭무럭 솟네.’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상처를 봉합하기만 하면 됐다.
김지훈이 장성기 과장에게 노티를 하려 하자 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쌤, 입원 환자만 노티 하시면 돼요.”
“그래요?”
“과장님들밖에 안 계시는데, 수처 환자까지 노티 받으시면 두 분 다 쓰러지실 거예요. 쌤 오프 때는 응급실에서 알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맞는 말이었다. 구미 병원의 여건상 응급실까지 커버하는 것은 장성기 과장이나 변상훈 과장에게 대단히 무리한 일이었다. 의사라고 1년 내내 가족까지 내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몸도 챙겨야 하고 말이다.
김지훈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수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확실하게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바랐던 일이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김지훈이 환자와 X-ray를 다시 찬찬히 살폈다.
다른 문제는 확실히 없었다.
“수처 준비해요.”
간호사들이 김지훈의 비장한 얼굴을 뒤로하고 평소처럼 수처를 준비했다.
그간 별일이 다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제 두 번째였다. 그것도 얼굴이었다. 알량한 손재주와 니들 홀더(봉합 시 바늘을 잡는 기구) 잡는 법을 연습한 것을 믿을 때가 아니었다. 삼겹살에 대고 수백 바늘을 꿰맸지만, 사람에게 수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신중하고도 침착하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 깨질 때 깨지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더 있어.’
김지훈이 니들 홀더를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따르륵! 따르륵!
니들 홀더에 달린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에 김지훈의 긴장이 다소 가라앉았다.
흡수성 봉합사로 손상된 근육을 꿰맸다. 근육이나 피하 조직을 수처하며 생긴 실매듭은 피부 쪽이 아닌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니들 홀더를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으로 잡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긴장으로 조금씩 떨리는 손에 김지훈이 숨을 가다듬었다.
피하 조직을 역시 같은 실과 방법으로 봉합했다.
내부 조직이 단단하게 결합되자 찢어진 부위가 하나의 선처럼 변했다. 가장 가는 블랙 실크로 마무리했다. 간격은 2밀리미터였다.
“커트(cut).”
간호사가 마지막 실을 잘랐다.
김지훈이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았다.
불과 3센티미터를 꿰매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마치 대단한 술기라도 한 것처럼 힘이 들었다.
상처 부위에 맞게 거즈를 자른 후, 직사각형 모양으로 테이프를 붙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성형외과는 거즈를 고정할 때도 각을 딱 잡았다.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하루에 세 번씩 잘 드시고, 내일 반드시 외래로 오셔야 합니다.”
“밥 먹고 먹어야죠?”
“그게 좋겠죠.”
김지훈이 낮에 내원했었던 환자의 처방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