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사탕과 아이 (2)
아이가 괜찮은지 묻는 아빠의 목소리가 불안정했다.
아이를 안은 엄마와 함께 뒷좌석에 탄 김지훈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품의 따스함 때문인지 울음이 잦아들고 있었다.
“승희, 몇 살이야?”
살짝 고개만 돌린 아이가 손가락 5개를 폈다.
“5살이야? 아빠는 어디 있어?”
아이가 손가락으로 운전하는 아빠를 가리켰다.
엄마가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괜찮나요?”
“제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을 봐서는 괜찮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일단 소아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작고 보드라운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다행이야.’
이제야 운전이 불안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님, 아이는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경아 씨, 아무 말이나 좋으니까 아빠한테 말 좀 하세요.”
앞좌석에 앉은 고경아가 뒤를 보며 아이가 참 예쁘고, 이제는 웃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김지훈이 아이에게 말했다.
“승희야, 아빠 불러 봐.”
눈을 깜빡이던 아이가 조그만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아빠.”
“승희야!”
아이 아빠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끼이익, 하는 브레이크 소리에 응급실 문이 활짝 열렸다.
간호사들이 스트레치 카를 밀고 나왔다.
김지훈이 아이 엄마와 함께 내리자 놀란 눈으로 물었다.
“김지훈 선생님?”
“일단 아이부터 옮겨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간 김지훈이 동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소아과에 노티를 했다.
“인턴 김지훈입니다.”
(지훈이? 나 선미야. 너, 응급실 아니잖아?)
구선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 선생님. 노티부터 할게요. 5세 된 여아 환자로, 금일 기도 이물로 인해 발생한 아스픽시아(asphyxia:질식)를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내원 전 호흡 정지가 발생했고, 심정지가 의심돼 시피알 시행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김지훈이 빠르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큰일 날 뻔했네. 아이는?)
“현재 외견상으로는 이상이 없습니다.”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전화를 끊은 김지훈이 아이를 찾았다.
엄마 품에 꼭 안겨 불안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아이가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갑자기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를 살렸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마냥 행복했다.
단란했던 가족을 지켰다는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김지훈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앙증맞은 손이 김지훈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나, 누군지 알아?”
“의사 선생님.”
“어? 어떻게 알았지? 승희 똑똑하네.”
아이가 또 웃었다.
눈가에서 눈물을 닦던 아이의 엄마와 아빠도 웃었다.
‘잘했어, 승희야. 다신 엄마, 아빠 아프게 하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정말 아프단다.’
소아과 2년차인 구선미가 내려왔다.
그제야 김지훈이 인사를 하고 스테이션으로 갔다.
김지훈을 본 간호사가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정말 시피알까지 하셨어요?”
“시피알은 무슨. 사탕 먹다가 숨 막힌 것뿐이에요.”
응급실을 도는 동기들도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공연히 쑥스러워진 김지훈이 말꼬리를 흐렸다.
“아이 아빠의 말은 그게 아니던데요. 선생님이 죽은 애 살렸다고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고마워했는데.”
“엄마, 아빠야 애가 숨을 못 쉬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보인 거지.”
공연한 소리라는 듯 고개를 흔들던 김지훈이 두리번거리다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고경아가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갔나?’
시간을 확인한 김지훈이 초조한 눈으로 시계만 보았다.
고경아에게 전화를 해야 했지만,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시피알을 하며 혹시나 가슴에 손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시 후, 아이의 흉부 사진이 나왔다.
구선미와 함께 사진을 확인했다.
“선생님, 괜찮은 거죠?”
“다행히 깨끗하네. 왜, 걱정되는 거라도 있어?”
“심장이 멎었는지 알고 시피알을 했어요. 혹시 뼈라도 다쳤으면 어떻게 하나 해서요.”
구선미가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잘했어. 들어 보니까 호흡 정지 때문에 일시적으로 심장에 쇼크가 왔었던 것 같아. 네가 시피알을 한 덕분에 산 거야.”
“다른 문제는 없나요?”
“응, 지금으로서는 다 좋아. 머리에 손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고. 이삼 일 정도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퇴원시켜야지.”
“다행이네요.”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어느새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종알거렸다.
“맞네, 시피알까지 하셨네. 어쩜 선생님은 밖에서도 사람을 살리고 다녀요. 저 아이 정말 운이 좋았네요. 다른 선생님이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누가 알아요.”
“별소리를 다하네.”
김지훈이 핀잔처럼 말을 던지고 응급실을 나섰다.
뜻밖의 일이었지만, 아이를 살렸다.
뿌듯함이나 자부심보다는 행복하기만 했다.
아이와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함께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가족!
가슴이 시리도록 소중한 말이었다.
‘승희야, 건강하게 잘 커라. 경아 씨도 궁금할 텐데 빨리 전화해야겠다. 아직 할 말도 다 못했는데, 아예 다시 만날까?’
힐끗 응급실을 본 김지훈이 공중전화 박스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 나왔다.
아이 아빠였다.
“선생님, 잠깐만요.”
“예? 아! 아버님, 왜 그러시죠?”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데요, 뭐.”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 엄마도 인사를 같이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경황 중이라 성함도 묻지 못했네요.”
거의 마흔이 다 된 아이 아빠였지만 김지훈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정중했다. 아이를 살려 주었다는 고마움만이 아니라 몸에 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김지훈입니다.”
“아! 김지훈 선생님이셨군요.”
“이 병원에 근무하시는 것 맞죠? 실례지만, 어느 과에 계십니까?”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김지훈이 웃으며 솔직히 말했다. 덩달아 말투도 정중해졌다.
“이제 인턴입니다.”
“올해 인턴이시면…….”
“예, 면허 딴 지 3개월 됐습니다.”
아이 아빠도 순간 당황한 모양이었다.
인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했다. 끝까지 아이의 상태를 살피기까지 해서 경험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우리 아이를 어떻게 살리신 겁니까?”
다소 엉뚱한 질문이었다.
“왜 그러시죠?”
“오늘 일을 겪으면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되더군요. 선생님 같은 분이 옆에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사실 의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고경아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김지훈은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사탕 같은 것이 아이의 목에 걸렸을 때는 절대 손으로 꺼내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더 밀어 넣어서 기도를 완전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하임리히(Heimlich) 요법을 사용합니다. 인공호흡이나 심장 마사지도 응급 처치 방법만 알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탕을 뺀 후에 병원에 반드시 오셔서 검사를 해야 하구요.”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인데, 그걸 몰라서 큰 실수를 할 뻔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하던 아이의 아빠가 잠시 머뭇거리다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제 성의입니다.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연 봉투에 파란색이 비쳤다.
정말 촌지였다.
마음은 알지만, 절대 받을 수 없는 돈이었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만, 받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아이 아빠가 억지로 봉투를 건넸다.
손사래를 치며 한동안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인 김지훈이 결국에는 졌다.
“그럼 응급실에 주시죠. 의사나 간호사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는 곳입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응급실에서 따님을 살렸을 겁니다.”
아이 아빠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더 죄송하군요. 그럼 선생님께서 전해 주시겠습니까?”
‘아이 참! 정말 곤란하네.’
난처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왠지 더 이상 사양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았다.
응급실로 아이 아빠와 다시 들어간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받아요.”
“이게 뭐예요?”
“승희 아버님께서 주신 거예요. 응급실 선생님들하고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의아한 눈으로 봉투를 열어 보던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5만 원이나 들어 있었다.
“어머! 정말 받아도 돼요?”
김지훈이 아이 아빠를 보았다.
“김지훈 선생님 말씀대로 하시죠. 간호사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난하게 잘 해결했다.
이젠 가도 될 것이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승희는 건강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아이의 아빠가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무심코 받아 들고 나온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MBS 보도 담당 PD 정훈철.
‘아빠가 방송국 PD였어? 야! 연예인들 많이 보시겠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보도 담당 PD라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지훈이 방송국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래도 처음 받아 본 명함이었다.
김지훈은 별생각 없이 지갑에 명함을 넣었다.
고경아는 이미 집에 들어가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지, 왜 말도 없이 갔어요? 걱정했잖아요.”
(응급실에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요. 사람들 눈도 있고, 지훈 씨 입장도 있잖아요.)
당연한 일이었다.
확실한 사이도 아닌데, 병원 직원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서운했다.
‘서운해할 일이 아니지. 경아 씨도 곤란했을 거야.’
김지훈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아 씨,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뭔데요?)
“나, 일주일 후에 구미로 내려가요. 그다음에는 천안 파견이구요. 6개월이 지나야 다시 서울에 올라옵니다.”
(어머! 11월 달이나 돼야 올라오시겠네요.)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묻어났다.
그에 한결 힘이 난 김지훈이 자신을 얻었다.
“네. 그래서 말인데, 중간에 전화해도 되죠?”
(정말 하실 거예요?)
“그럼요.”
(기다릴게요.)
기다린다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만 더요. 주말 오프 때 시간되면 올라올게요. 그때 꼭 시간을 내야 합니다.”
(정말요?)
약간은 놀라면서도 들뜬 목소리였다.
“네, 오늘 못 먹은 저녁 먹어야죠.”
(좋아요.)
고경아가 활짝 웃었다.
한참 지나서야 김지훈이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다음 날, 어김없이 같은 일과가 이어졌다.
김지훈은 하루 종일 병동을 뛰어다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니들 홀더를 조작하며 따르륵, 따르륵 소리를 내자 간호사들이 따르륵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결코 기분 나쁜 별명이 아니었다. 도리어 기분이 좋은지 김지훈이 입가에 웃음을 걸고 다녔다.
더욱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
이완실 환자가 퇴원을 하게 됐다. 욕창이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좋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어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스테이션으로 찾아온 환자와 딸을 보며 김지훈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할머니, 다시는 병원에 오시면 안 돼요.”
“안 돼, 우리 선생님 보러 와야지.”
“아이구! 그런 말씀 마세요. 병원이 뭐 좋다고 오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따님 말 좀 잘 들으시고.”
“알았으니까 걱정 마.”
김지훈를 째려보던 이완실이 고쟁이를 뒤졌다. 그러더니 꼬깃꼬깃 조그맣게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우리 선생님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주는 돈이야. 어여 받아, 손 아파.”
안 먹고, 안 입으며 고이고이 간직해 온 돈일 것이다.
환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환자가 아니라 할머니가 주는 용돈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할머니, 고마워요. 맛있는 거 사 먹을게요.”
“혼자만 먹어야 해. 간호사들도 주면 안 돼.”
“할머니, 왜 우리는 안 돼요.”
간호사가 웃으면서 투정을 부렸다.
환자의 딸 김순자가 남은 주스와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것밖에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8인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의 형편은 빤했다.
간호사들도 순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지훈이 눈짓을 하며 밝게 웃었다.
“야! 우리 할머니한테 용돈도 받고 좋네요. 그냥 가셔도 되는데. 할머니, 제가 짐 들어 드릴게요.”
김지훈이 병원 밖까지 함께했다.
할머니와 딸이 못내 아쉬운지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김지훈도 모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건강하세요, 할머니. 덕분에 정말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입술을 모은 채 미소를 짓던 김지훈이 한참 후에야 병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