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사탕과 아이 (1)
신현수는 인턴 숙소에서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오프 때면 집에 가 편안한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김지훈이 그 즐거움마저 빼앗았다.
어느 날부턴가 봉합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익숙하게 만든다는 뿌듯함을 느끼긴 했지만, 이내 김지훈이 떠올라 화가 나곤 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지금도 슬며시 화가 치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이 생길 때마다 간호사들은 물론 동기들까지 김지훈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김지훈에 대한 믿음을 견디기 어려웠다.
신현수가 딱딱한 표정으로 병동을 벗어났다.
누군가 자신보다 앞에 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확실하게 누를 방법을 찾아야 했다.
***
기다리던 주말이 왔다.
오프를 받자마자 목욕탕으로 달렸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묵은 때와 피로를 씻었다.
미용실에 들러 말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티셔츠와 바지도 하나 장만했다. 운동화가 낡은 것이 생각나 내친김에 운동화도 하나 새로 샀다.
숙소로 돌아온 김지훈이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일요일을 기다렸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 눈을 뜨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새 옷에 새 운동화를 신고 병원을 나서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유달리 가벼웠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고경아가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벌써 와 있었네요.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런데 경희는요?”
“무슨 변덕인지 안 간대요.”
‘고경희, 술 먹고 한 말을 잊지 않았구나. 아주 좋아.’
셋도 좋지만, 사실 둘이 더 좋았다.
“그래요? 하하하! 그런데 뭘 들고 왔어요?”
“깔고 앉을 거하고, 김밥을 쌌어요. 김밥 좋아하세요?”
“그럼요. 좋아하기는 하는데, 힘들게 뭐 하러 김밥을 쌌어요. 간단하게 사 먹으면 되는걸.”
“맛있게 드시면 돼요.”
“어후! 누가 만든 건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김지훈이 택시를 잡았다.
확실히 나들이하기 가장 좋다는 5월이었다.
날도 따뜻하고 무척이나 맑았다.
시원한 강바람 덕분에 기분까지 상쾌했다.
한강 둔치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잘 정비된 한강변을 따라 걸었다.
특별히 할 말도 없었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대화가 술술 풀렸다. 지난 주에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어느 틈엔가 한적한 곳까지 걸어왔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제법 걸었는지 슬슬 배가 고팠다.
“경아 씨, 배 안 고파요?”
“걸었더니 배가 조금 고프네요.”
“그럼 여기서 먹죠.”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꺼냈다.
“음료수 뭐 드실래요?”
“음, 전 사이다요.”
“별, 아니면 킨?”
논을 말똥말똥 뜨던 고경아가 웃었다.
“별이요.”
“당연히 그걸 먹어야죠. 경아 씨에겐 별이 어울려요.”
매점을 본 김지훈이 후다닥 달려가 맥주 세 캔과 7개의 별이 그려진 캔 사이다 하나를 샀다.
고경아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한 잔만 드신다면서요.”
“내 잔이 좀 커요. 솔직히 이거 반잔인데.”
김지훈이 딴청을 피우며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치고는 꽤 무겁다 느꼈는데, 김밥 양이 어마어마했다.
김지훈이 놀란 표정을 짓자 고경아가 나무젓가락을 꺼내며 말했다.
“많이 드시잖아요.”
“이거, 너무 많은데.”
말과는 달리 만족스러운 얼굴로 김지훈이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거 경아 씨가 만든 거 맞아요?”
“그럼요.”
“야! 이거 완전 예술이네. 어쩜 이렇게 맛있죠? 입에서 살살 녹네, 녹아.”
김지훈이 온갖 칭찬을 다 늘어놓으면서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찬합 하나가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체하겠어요.”
“그래서 이놈이 필요하죠.”
맥주 한 캔을 따 시원하게 들이켠 김지훈이 꺽꺽 트림을 했다. 몇 개 집어 먹던 고경아가 사이다를 마시며 웃기만 했다.
아직도 배가 안 찼는지, 김지훈이 남은 김밥에 코를 박았다.
“그렇게 맛있으세요?”
“그럼요. 엄마가…….”
김지훈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머니!’
감자기 왜 엄마라는 말이 나왔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싸 주셨던 김밥이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두고, 그냥 돈으로 달라며 화를 냈던 게 정말 후회스러웠다.
그땐 왜 엄마의 마음을 몰랐을까?
김지훈이 아무 말도 없이 꾸역꾸역 김밥만 입에 넣었다.
고경아가 슬픈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이 슬쩍 눈가를 닦으며 활짝 웃었다.
“바람이 꽤 부네. 김밥에 먼지 들어가기 전에 빨리 먹어야겠어요. 경아 씨도 보지만 말고 먹어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맥주 한 캔을 쭉 들이켰다.
“캬! 좋다! 맨날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네. 난 남이 해 주는 밥이 정말 맛있더라.”
또 애먼 말을 했다.
김지훈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자 고경아가 살며시 웃었다.
“자취를 오래 하셔서 그래요. 저도 가끔은 사서 먹는 게 맛있거든요.”
“그렇죠? 난 구내식당 밥도 맛있어요.”
“많이 드세요. 말씀하시면 또 만들어 드릴게요. 자주는 안 되고요.”
“그래도 돼요?”
“정말 가끔. 1년에 한 번 정도?”
김지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경아 씨, 김밥 한 번 더 싸 준다고 확실하게 약속하는 거죠?”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어요.”
“우리, 약속합시다.”
김지훈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고경아가 얼굴을 붉히며 살짝 손가락을 걸었다.
“그럼 이걸로 내년까지는 확실하게 만나는 겁니다.”
“어머!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난 모릅니다. 약속했어요.”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고경아를 보며 김지훈이 도시락을 챙겼다.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을까요?”
“그래요.”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강바람을 따라 흩날린 머리카락이 코끝을 간질였다.
향긋한 냄새도 따라 퍼졌다.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즐거워하는 아빠와 엄마.
행복에 겨운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팔짱을 낀 연인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찌를 보며 낚시에 몰두한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김지훈도 행복했다.
이런 마음이 사랑인지는 모르지만, 고경아와 함께 있으면 설레면서도 편안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을 입에 문 모습이 정말 예뻤다.
“좋네요.”
혼자 중얼거리듯 흘린 말에 고경아의 얼굴이 또 발개졌다.
천천히 걸으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어깨에 전해지는 고경아의 감촉에 김지훈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손을 잡아도 될까?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조그맣고 여린 아이가 숨을 쉬지 못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어떡해. 승희야, 어떡해. 도와주세요.”
아이만큼이나 하얗게 질린 엄마가 비명처럼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모여들며 웅성거렸다.
“사탕이 목에 걸렸나 봐요. 도와주세요. 여보, 어떻게 좀 해 봐. 우리 승희, 어떡해.”
아이의 눈이 허옇게 뒤집어졌다.
“승희야, 제발 숨 쉬어. 승희야.”
엄마가 거의 정신을 놓았다.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빠가 아이의 입에 억지로 손가락을 넣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던 김지훈이 고함을 질렀다.
“안 돼요! 손가락을 넣으면 안 돼요!”
아이의 목이 꺾이며 축 늘어졌다.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파래졌다.
김지훈이 아이를 잡으며 아빠를 밀어냈다.
“제게 맡기세요.”
본능적으로 아이를 놓지 않으려던 아빠가 고경아의 말을 듣고서야 뒤로 물러났다.
“이분, 의사세요.”
“우리 승희 좀 살려 주세요, 제발.”
아이 엄마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김지훈이 아이를 뒤에서 안고는 깍지를 끼었다.
깍지 낀 손에 의해 들어 올려진 아이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명치 부분을 강하게 들어 올렸다.
아이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두세 번 반복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더 강하게 들어 올렸다.
아이의 몸이 가슴에 닿았다.
깍지 낀 두 손에 묵직한 압력이 느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승희야, 어떡해. 우리 승희.”
너무도 겁이 난 엄마가 움직이지도, 울지도 못했다.
아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발 숨을 쉬어. 이렇게 떠나면 남은 가족이 얼마나 아픈 줄 아니? 힘을 내. 엄마 아빠가 널 기다리잖아.’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허공에 내던지다시피 강하게 들어 올렸다.
깍지 낀 두 손에 의한 묵직한 충격과 함께 아이의 입에서 동그란 사탕이 튀어나왔다.
숨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축 늘어진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스… 승희야.”
김지훈이 아이의 가슴에 귀를 묻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인지, 심장이 멈췄기 때문인지 박동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김지훈이 아이의 코를 막고 입에 숨을 불어넣었다.
후욱! 후욱!
반응이 없었다.
어린아이의 시피알(CPR:심장 마사지)은 성인과는 약간 다르다. 가슴의 왼편이 아니라 정중앙을 생각보다 빠르고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어린아이라고 가볍게 했다가는 심장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다.
김지훈이 양손의 두 손가락을 포갰다. 그러고는 가슴이 쑥쑥 들어갈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아이를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정신없이 가슴을 압박하고 숨을 불어넣었다.
아이의 차갑고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절대 늦지 않았어. 반드시 내가 널 살리고 말 거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온정신을 집중해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후욱! 후욱!
김지훈의 숨결이 아이에게 전해졌다.
가슴을 압박하는 두 손가락에 살리고 말겠다는 의지가 실렸다. 그 순간 아이의 가슴이 튕겨져 오르며 기침이 터졌다.
“콜록! 콜록! 으아아앙!”
아이가 울었다.
창백했던 아이의 혈색이 급격하게 돌아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승희야!”
이제야 아이의 엄마가 엉엉 울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지훈이 탈진한 사람처럼 주저앉았다.
“살았어, 아이가 살았다!”
초조한 눈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입안이 바싹 말랐던 김지훈이 물 한 통을 다 마셨다.
온통 울음바다였다.
엄마가 아이를 꼭 안은 채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극도의 긴장감에서 벗어난 김지훈이 아이의 엄마 앞에 앉았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아이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심장 정지까지 발생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고, 몇 분 동안 호흡이 정지됐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김지훈이 울기만 하는 아이를 달래며 물었다.
“승희야, 괜찮아. 승희 몇 살?”
엄마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울기만 할 뿐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혹시 119에 연락하신 분 계십니까?”
다급한 상황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공중전화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금 당장 연락을 해도 구급차가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 혹시 차 있으세요?”
눈가가 벌게진 아이의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다른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운전하실 수 있겠어요?”
아이 아빠의 상태로는 운전도 위험했다.
그러나 그런 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습니다.”
몇 차례 깊게 숨을 내쉬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아이 아빠가 급히 주차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