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멘토(mentor) (2)
“김지훈이요?”
“그래.”
송동하와 유석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를 보았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인턴이 1st(첫 번째 수술 보조 의사)를 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었지만, 스태프에 대한 기본적이 예우이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왜, 무슨 문제 있나? 그리고 둘이 들어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김지훈 선생, 환자 내리고 준비해라. 할 수 있겠지?”
김지훈이 난처한 눈빛으로 송동하를 보았다.
송동하가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못 하면 죽어.’
눈빛만으로도 부담 백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었다.
이혁민 교수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1st를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하겠습니다.”
이혁민 교수와 김지훈이 나가자 수술실에서 묘한 소리가 터졌다. 이번 달에 일반 외과 마취를 전담하는 김진호였다.
“야아! 인턴을 데리고 들어가셔? 대단하네. 저 정도로 신경을 쓰시는 것을 보니 김지훈 백이 정말 빵빵한가 봐.”
이혁민 교수는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고집이 센 것이 아니라, 원칙을 매우 중시하는 타입이었다. 절대 인맥이나 집안 배경 따위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송동하도 꽤나 의외였는지 입맛만 다셨다.
“석재야, 정말 그러냐?”
“아닌데요.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가까운 친척도 없다는 것 같던데요.”
“그래? 학교는 마쳤으니까 최근에 돌아가신 모양이지?”
“학교 들어오기 전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긴 한 모양인데, 액수가 적어서 거의 고학하다시피 다닌 걸로 알고 있어요. 고생을 무지 했을 텐데, 거의 티를 안 내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인턴들도 몇몇 빼고는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던데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김진호가 어색한 기침을 터뜨렸다.
“허험! 그럼 뭐야? 송동하 선생,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혁민 선생님이 왜 저러시는 거야?”
“글쎄요. 일도 잘하고, 정말 열심히 하긴 해요. 응급실에서 몇 번 눈에 들 일도 있었구요. 그렇다고 해도 정말 파격적인데요. 전 과를 통틀어 1년차 중 최고라는 우리 석재도 인턴 돌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석재가 어색하게 웃었다.
“선생님, 왜 이러세요. 지훈이가 저보다 훨씬 낫죠. 그리고 괜찮다 싶어 찍으시면 우리 과를 하든 말든 굉장히 신경을 쓰시잖아요. 지훈이도 외과 쪽을 하고 싶다고 했구요.”
김진호가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인턴은 인턴이다.”
곧 다음 수술이 이어졌지만, 한동안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함몰 유두(inverted nipple).
수술을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마이너 수술은 분명했다. 하지만 난생처음으로 1st를 서게 됐다. 그것도 이혁민 교수와 단둘이서 말이다.
환자를 내리고 수술실로 옮기자 이혁민 교수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후였다. 급히 손을 씻고 들어가 이혁민 교수와 마주 서서 드레싱과 드랩(drap)을 했다.
여전히 가슴이 떨렸다.
수술을 해도 좋다는 말이 떨어지자 이혁민 교수가 끝이 날카로운 집게로 유두를 잡아끌어 올렸다. 유방에 파묻혀 있던 유두가 모습을 드러내자 굵은 나일론으로 두 바늘을 떴다.
“당겨라.”
김지훈이 유두에 걸린 나일론실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다시 함몰되지 않게 했다. 긴장 때문인지 은근히 손이 떨렸다.
“잘 잡고 있어라. 메스.”
수술용 칼을 받아 든 이혁민 교수가 단칼에 유두를 수직으로 잘랐다. ‘헉’ 소리가 날 정도로 과감했다.
반으로 잘린 유두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주변 조직을 깨끗이 소독했다.
이혁민 교수가 수술 부위에서 눈도 떼지 않고 물었다.
“함몰 유두의 원인이 뭔지 아나?”
일반 외과 수업 시간에 유방 질환에 대해 배웠지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원인을 알 리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유두를 지지하는 인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나?”
“인대를 다시 만들어야 합니까?”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니 수업 시간에 졸았구나. 유방 인대가 팔다리 관절 인대와 똑같나? 그냥 얇은 막인데, 그걸 무슨 수로 재건하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대 대신 기둥을 세워야 한다. 잘 봐라. 알고 보면 아주 쉬운 수술이다. 꿰맬 줄만 알면 된다.”
반으로 갈라진 절단면을 깊은 곳에서부터 굵은 나일론으로 봉합하기 시작했다. 유두 끝까지 중심부를 따라 차례차례 봉합했다. 굵은 나일론과 결합된 조직이 정말 기둥 역할을 하는지 유두가 꼿꼿한 모습을 유지했다.
김지훈이 내심 감탄을 터뜨렸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함몰된 유두를 정상적인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반대편도 같은 방법으로 유두를 세웠다.
잠시 손을 멈추고 유두를 툭툭 건드린 이혁민 교수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이 잘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안 들어가제.”
“예,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처(봉합)를 하면 유관이 막히지 않나요?”
“아이고! 김지훈 제법 똑똑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네. 유관이 1개가. 15개가 넘는다. 그중 몇 개만 연결되면 젖 먹이는 데 하등의 지장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다 연결한데이.”
김지훈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6년을 배웠지만, 기본적인 해부학 지식과 사람의 육체가 갖는 생리에 대한 지식이 아직도 미흡하기만 했다.
이혁민 교수가 수술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는 실인 나일론 6번으로 잘린 유두의 외부를 봉합했다. 일반 외과 의사답지 않게 손길이 무척이나 꼼꼼했다.
“김지훈 선생, 이게 일반 외과 수술이가, 아니면 성형외과 수술이가.”
이혁민 교수가 수술을 했으니 답은 분명했다. 하지만 미용이라는 측면도 확실하게 있었다. 가끔은 환자나 보호자와의 관계 때문에 다른 과 환자를 수술하는 경우도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른다는 소리는 성형외과 수술이라는 소리네.”
함몰 유두도 처음 봤다.
솔직히 학생 때 배웠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머뭇거리는 사이 이혁민 교수가 허리를 펴며 외쳤다.
“커트(cut).”
한쪽 봉합이 모두 끝났다. 재빨리 실을 자른 김지훈이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유두를 보며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정말 성형외과처럼 꼼꼼하게 마무리하시네. 이것도 일반 외과 의사의 모습일까?’
이혁민 교수가 반대편 유두를 봉합하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얼굴을 수술한다고 다 미용이 아닌 것처럼, 함몰 유두도 만찬가지다. 유두가 유방에 박혀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 것 같나?”
곰곰이 생각을 한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염증이 생길 것 같습니다.”
“아주 잘 생긴다. 심하면 유방에 농양(고름집)까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말도 못 하게 아파한다. 또?”
“수유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애가 물지를 못하겠지. 억지로 물린다고 해도 염증이 있으면 애가 고름을 먹지 않겠나. 물론 아파서 먹이지도 못하지만 말이야. 이 환자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수술까지 결심했겠나.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안 된데이. 환자가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수 있다.”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데리고 들어온 이유였다.
“우리에겐 사소해 보이는 질환이라고 해도 환자에게는 큰 병이다. 앞으로 니가 어떤 과를 하든 언젠가는 방심하고 매너리즘에 빠질 거다. 그때 내가 한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픈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다.”
이혁민 교수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리포트도 지식만을 전달하기 위해 낸 것이 아니었다.
환자와 질병을 모두 이해하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지난 6년 동안 이렇게 신경을 써 준 사람은 없었다.
불현듯 김지훈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툭하면 감사하네. 니는 인턴이다. 전공의가 돼도 배워야 하고, 난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다. 당연한 일이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가슴이 시릴 정도로 고맙기만 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의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도가 따로 있겠나. 환자와 네 일에 열정을 가져라.”
‘열정! 그게 뭘까? 단순히 노력일까, 아니면 흥분?’
열심히 살아왔지만, 무언가에 열정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선생님, 하나만 더 물어도 됩니까?”
“뭔데.”
“일반 외과를 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외과를 왜 했냐고?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지. 하하하! 이건 농담이고, 내가 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바이탈 때문이었다. 모든 과의 의사가 다 그렇겠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라고 생각했지. 환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과가 외과 말고 또 있나? 하지만 말이다. 사람만 살린다고 진정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데이.”
일반 외과가 아니라 외과라고 했다.
이혁민 교수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커트.”
마지막 실을 잘랐다.
수술을 마친 이혁민 교수가 나간 후, 다음 환자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깊은 고민에 잠겼다.
‘사람만 살린다고 진정한 의사는 아니라고 하셨다. 난 정말 어떤 의사가 되길 원하는 걸까?’
응급실에서부터 일반 외과까지 돈 기간이라 해 봐야 불과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일천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보았고,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엿보았다.
‘아직은 진정한 의사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살리고 싶고, 목숨을 구하는 수술을 하고 싶다. 평생 내게 조언을 해 줄 선생님도 계셨으면 좋겠다.’
수술실이 좋았다.
일반 외과 수술을 보며 열정일지도 모를 흥분을 느꼈다.
이혁민 교수와 송동하, 그리고 유석재는 스승이자 선배였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런 과가 또 있을까?
임상 실습 때 본 것이 다이긴 했지만, 김지훈은 다른 어떤 과도 떠올리지 못했다.
수술실을 나올 때까지 김지훈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했다.
오후 회진이 끝난 후 리포트를 제출했다.
김지훈에게는 적잖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송동하는 쓱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확인을 끝냈다. 지식과 경험의 현저한 차이였다. 4년이란 차이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잘했어. 그리고?”
송동하가 김지훈에게 살짝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예?”
“오늘까지 결정하기로 했잖아.”
김지훈이 입술을 물었다.
유석재의 말대로 지금 마지막 선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말과는 달리 송동하의 눈치도 그랬다.
하지만 이젠 결정해야 할 때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정말 일반 외과가 하고 싶은 것일까?’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마지막 결정을 내릴 충분한 준비도 됐다.
“선생님, 지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송동하의 눈이 슬며시 커졌다.
4월에 지원하는 인턴은 정말 보기 드물었다.
사실 이혁민 교수의 말 때문에 묻긴 했지만, 설마설마했었다.
“정말 하고 싶어?”
“예, 하고 싶습니다.”
“왜?”
역시 일반 외과 총치프였다. 결코 덥석 손을 내밀지 않았다.
김지훈이 이유를 생각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진정한 외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밤 9시에 의국으로 와.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는 거야. 의국에 들어오는 순간, 절대 네 결정을 물릴 수는 없어.”
“예, 내일 9시에 의국으로 가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서 일해.”
김지훈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송동하가 의자에 기대며 유석재를 보았다.
“저 자식, 정말 할 기세지?”
“그럴 것 같은데요.”
“네 밑에 똘똘한 후배 들어와서 좋겠다.”
“파트가 같아야죠.”
“이혁민 선생님께서 확신을 갖고 찍으신 놈 같은데, 저 정도면 과장님 파트 하고도 남아. 내년에는 과장님 파트가 정말 화려하겠어. 4년차는 신영진이 맡을 테고, 3년차 최철한에 2년차가 유석재이면 완벽하네.”
“제가요?”
“그럼 1년차 첫 텀에 과장님 파트 돈 놈보다 뛰어난 놈이 어디 있어? 다음에 김지훈이 만나면 제대로 가르쳐. 이혁민 선생님 입이 찢어지시겠다.”
이혁민 교수는 과장 파트의 주니어(junior) 스태프다.
전공의들이 뛰어나면 그만큼 이혁민 교수의 위상도 올라가지만, 무엇보다도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유로 다소 정치적인 과장 밑에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마 김지훈 저놈, 브레스트(breast:유방)에 넘어간 건 아니겠지?”
농담 섞인 송동하의 말에 유석재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