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첫 데이트 (1)
송동하가 소리를 질렀다.
“쇼크다! 간호사, 서브클라비안(subclavian:쇄골 하) 준비해. 김지훈, 더 빨리 짜.”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였다.
초응급 상황이다.
김지훈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마취를 못 한다.
자칫하면 수술도 못 해 보고 환자를 잃을 수 있었다.
관건은 혈관 내 혈액의 볼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유석재가 수혈에 사용하는 바늘보다 2배 정도는 더 굵은 도관을 쇄골 하 정맥에 삽입했다.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던 송동하가 직접 혈액 주머니(pack)를 연결했다.
김지훈이 혈액 주머니를 압박하자 피가 환자의 혈관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갔다.
“피 더 시키고, 수액 가져와.”
모든 의사들이 달라붙었다. 유석재에 응급실 당직 인턴까지 모두 5명이나 있었지만, 4년차인 송동하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목적은 오직 하나, 혈압을 올려 일단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많은 양의 수액과 피가 투여됐다.
이내 혈압이 다소 올라가며 모니터의 경고음이 사라졌다.
“김지훈, 소변 나오는지 확인해.”
송동하의 말에 김지훈이 고개만 숙여 소변 줄에 연결된 통을 확인했다.
“잘 나옵니다. 시간당 50시시는 될 것 같습니다.”
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수술뿐이었다.
응급실로 내려온 이혁민 교수가 마지막으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준비되는 대로 즉시 수술실로 올리라고 했다.
딱 한 시간이 지난 12시였다.
마취과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던 유석재가 김지훈을 보았다. 모든 인턴들이 일주일 내내 주말 오프를 기다린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인턴이었던 유석재가 그 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지훈아, 이번 주 주말 오프지?”
“예.”
“병동으로 올라가 있다가 2년차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가. 정갑수 선생한테 수술 들어오라고 하고.”
“가도 돼요?”
“그럼, 주말 오프가 몇 번이나 있다고. 아니면 네가 수술 들어갈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정갑수는 유석재에게 인턴이 아니라 1년 선배였다. 갑갑한 일이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아마 2시간 정도?”
2시간이라!
김지훈이 시간을 계산했다.
2시 반 이전에만 끝나면 3시까지는 맞출 수 있었다.
‘씻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데 30분이면 충분하겠지.’
혈복막 수술을 꼭 보고 싶었다.
일반 외과가 응급실서부터 수술실까지 환자의 바이탈을 다루는 가장 좋은 예였다.
아직은 어느 과를 할지 마음을 굳히지 못했기에 더욱 봐야 했다.
잠시 고민하던 김지훈이 결심을 했다.
“제가 들어갈게요.”
“오프 안 가고?”
유석재가 은연중에 반색을 했다.
“괜찮아요. 약속이 있는데, 3시니까 충분하잖아요.”
스테이션에 있던 송동하가 다가왔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지훈, 너 오프 아니야?”
유석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지훈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이 환자 수술까지는 제가 당직입니다.”
송동하가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잠시 후, 마취과에서 환자를 올리라는 연락이 왔다.
(환자 올려. 응급실 인턴 선생은 수술실까지 환자 따라오고.)
송동하, 유석재, 김지훈이 3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수액과 피를 주렁주렁 매단 채 올라온 환자를 받았다. 환자를 수술대에 옮기는 동안 송동하가 손을 씻고 들어왔다.
“빨리 씻고 들어와.”
유석재가 김지훈에게 눈짓을 했다.
손을 씻고 들어가자 이미 마취가 끝났고, 이혁민 교수와 송동하가 환부를 소독하고 있었다. 단 1분도 허비할 수 없다는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모든 과정이 정규 수술과는 확연히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가 마취과 당직 의사에게 물었다.
“마취과, 시작합니다.”
“예, 선생님, 시작하십시오.”
“메스.”
날카로운 칼날이 환자의 복부를 길게 갈랐다.
토요일 오후 12시 15분.
내부 장기 손상으로 인한 출혈로 저혈량성 쇼크가 발생한 환자의 수술이 시작됐다.
힐끗 시계를 본 김지훈이 이내 고개를 꺾으며 수술에 집중했다.
출혈이 심한 탓에 절개된 피부와 근육에서 피가 흐르지 않았다. 복막을 열자 검붉은 피가 배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미 대량 실혈로 쇼크까지 발생한 환자다.
신속하게 출혈 부위를 찾아 지혈부터 해야 한다.
속도가 관건이었다.
“석션(suction:흡입).”
굵은 수술용 석션 관이 배 속의 흥건한 피를 빨아들였다.
검붉은 피가 석션 통에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복강 내에 고인 피를 빠르게 제거하기에는 부족했다.
“탭(tap).”
이혁민 교수가 탭(흡수력이 뛰어난 두터운 수술용 천)을 우겨 넣었다. 배 속에서 꺼낸 탭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스무 장이 넘는 탭이 피로 물들고, 2,000시시 용량의 석션 통이 절반이 넘게 찼다.
‘이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출혈을 한 거야?’
김지훈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량 출혈이었다.
언뜻 계산해도 3,000시시 이상은 돼 보였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절반 이상의 혈액을 잃은 것이다.
저혈량성 쇼크가 올 수밖에 없었다.
배 속을 가득 채웠던 피를 거의 다 제거했다.
“물.”
알맞게 데워진 물로 장기 사이에 숨은 피까지 모두 씻어 냈다. 이제야 장기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분홍색으로 보여야 할 장기들이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혈액이 부족해지자 뇌와 심장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장기에만 피를 보내는 보상 기전 때문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빠르게 출혈 부위를 찾았다.
비장(spleen)이 거의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손상된 비장은 적출이 원칙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피멍이 든 조직들 사이에서 비장으로 가는 동맥을 찾았다. 기다란 겸자로 굵은 비장 동맥의 두 곳을 잡고 가운데를 잘랐다.
“타이(tie:매듭 혹은 결찰).”
송동하가 능숙하게 잘린 동맥의 양쪽 끝을 묶었다.
깨진 부분에서 줄줄 새어 나오던 피가 멈췄다.
손이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비장이 적출됐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신중하고 세심했던 궤양 천공 수술과는 달리, 이번 수술은 겁이 날 정도도 과감했다. 환자 상태와 질환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같은 응급 수술이라도 수술하는 방식이 다르구나. 과감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이혁민 교수가 다른 장기들을 살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출혈 부위는 없었다.
“마취과 선생, 출혈 부위 다 잡았데이. 환자 바이탈은 어떻노. 괜찮나?”
마취과 전공의가 혈압과 심장 박동 수를 확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혈압 회복되고, 박동 수도 100회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소변은?”
“잘 나오고 있습니다.”
소변량은 콩팥의 기능만이 아니라 혈액이 적정량을 유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하고도 유용한 지표였다.
콩팥에 적정한 혈액이 공급된다는 의미였다.
급속도로 나빠졌던 환자의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적절한 수액 및 혈액의 공급에 이어 빠른 수술이 이어진 결과였다. 정말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이제 막 1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거의 다 죽었던 환자를 불과 한 시간 만에 살렸네. 이게 일반 외과구나.’
사람의 목숨을 다루지 않는 과는 없다. 서비스 파트라고 해도 분명한 역할이 있다. 하지만 일반 외과만큼 직접적으로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과는 없었다.
수술에 압도당한 김지훈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혁민 교수는 자신의 눈만을 믿지 않았다. 함께 수술에 참여한 전공의들의 생각을 물었다.
“송동하 선생, 유석재 선생, 더 확인해야 할 곳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마무리하자.”
그때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어? 대장에 손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배 속을 가장 보기 어려운 위치가 써드(3rd)였다.
하지만 분명 대장의 일부분이 찢어진 것을 보았다.
잘못 본 것일까?
만일 김지훈이 제대로 보았다면 환자의 배를 또 열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집도의인 이혁민 교수까지 더 이상의 손상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환자가 걸린 일이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왜 그러나?”
“디센딩 콜론 위쪽이 찢어진 것 같은데요.”
“뭐, 어디?”
디센딩 콜론(descending colon:하행 결장)은 평행 결장의 좌측 끝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대장을 말한다. 절반 정도가 복강이 아닌 후복막에 묻혀 고정되어 있는 장기다.
따라서 소장이나 평행 결장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장기였다.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의심되는 부위를 짚었다.
“이 부분 뒤쪽에서 봤습니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행 결장을 제껴 뒷부분을 확인했다. 1센티미터 정도 찢어진 부위가 보였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놈아 이거 눈도 좋네. 써드 서면서 이걸 어떻게 봤노. 김지훈 선생, 니 때문에 나도 살고, 환자도 살았다. 이거 놓쳤으면 복막염 생겼을 텐데, 큰일 날 뻔했다. 안 그런가, 송동하 선생.”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놓쳤습니다.”
“아니다. 니나 유석재가 쉽게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내가 봤어야지. 오늘 김지훈 덕 톡톡히 봤다. 맛있는 것 좀 사 줘야겠네.”
이혁민 교수가 찢어진 대장을 봉합했다.
다행히 구멍까지 나진 않았지만, 만일 놓쳤다면 며칠 후 100프로 구멍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같은 복막염이라고 해도 궤양 천공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위액을 포함한 소화액이 새도 위험한데, 말 그대로 세균 덩어리인 똥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배 속이 똥 천지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김지훈 덕에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
송동하가 수술 부위에 박은 드레인(심지)을 배 밖으로 뺀 후 복벽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미 나갔을 이혁민 교수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김지훈에게 물었다.
“김지훈 선생, 이 환자 시티 봤나?”
“예, 봤습니다.”
“비장이 어떻게 찍혔는지도 봤겠지?”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순 X-ray도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는 판에 시티를 판독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내 말 기억하제. 쓸데없이 하는 검사는 없다. 시티를 볼 줄 알아야 이런 환자의 출혈 부위를 미리 예상하고 접근할 거 아이가. 어떻게 할래?”
‘아! 그래서 바로 비장부터 확인하셨구나.’
이혁민 교수가 묻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심 감탄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런 수술을 봤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 적출술과 이 환자의 시티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하겠습니다.”
“그것만 하면 다가?”
“저혈량성 쇼크에 대해서도 공부하겠습니다.”
“이제야 스스로 뭘 공부해야 할지 감을 잡았구나. 책으로 배웠던 것을 실제로 보면서 다시 공부하면 머리에 콱 박히는 법이데이. 송동하 선생, 확실하게 확인해라.”
“예, 선생님. 김지훈, 월요일까지 제출해.”
주말 오프를 모조리 반납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되면?
김지훈이 다급하게 송동하를 불렀다.
“선생님! 하루만 더 주십시오. 저 주말 오픕니다.”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총치프가 알아서 해라.”
“그럼 화요일까지 제출해.”
“감사합니다.”
어느새 리포트의 제출이 당연한 일이 됐다. 하지만 그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사실을 김지훈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수술이 끝났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환자의 얼굴에 다소 붉은 기운이 감돌았고, 규칙적인 호흡을 보였다.
유석재가 기관에 삽입했던 튜브를 제거했다.
답답한 기침을 터뜨린 환자가 나직한 신음 소리를 냈다.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일반 외과 수술이었다.
‘아무리 약을 투여하고 피를 줘도 100프로 죽었을 환자를 수술로 살려 냈다.’
김지훈은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야 어떤 의사가 되기를 바랐는지 알 것 같았다.
문득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머니, 아버지도 수술을 했다면 사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