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일반 외과(General surgery) (2)
그 옆에 눈이 예쁜 간호사가 있었다. 그녀 역시 초짜인지 보조를 하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공연히 어색해진 김지훈이 딴청을 피웠다. 옷을 입는 사이 송동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석재야, 이혁민 선생님이 쟤 언제 찍으신 거야?”
“예. 첫 텀에 바로 찍으셨습니다. 리포트까지 내 주셨다고 하던데요. 인투베이션도 제법 할 줄 알고요.”
유석재의 말에 김지훈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리포트를? 야아! 아주 확실하게 점찍으셨네. 그럼 당연히 우리 과 하겠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지훈이도 전통을 따르겠죠.”
무슨 말인가?
김지훈의 눈이 동그래지자 송동하가 웃었다.
“김지훈, 찍혔다며. 너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나도, 석재도 모두 찍혔었다. 그중에 외과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인턴은 다 일반 외과 했고, 우리도 당연히 그 질문을 받았지. 너도 할 거지?”
김지훈이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아직 못 정했습니다.”
“석재야, 인턴이 감히 이혁민 교수님의 오더를 어긴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
“그러게 말입니다. 오더를 어기면 제가 확실히 죽여 놓겠습니다.”
‘헉! 석재 형, 왜 이러세요.’
평상시의 유석재가 아니었다.
“그래, 다른 과 보내느니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김지훈.”
“예, 선생님.”
“네 생사를 결정하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김지훈이 당황하고 말았다.
얼굴이라도 보여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이미 모자와 마스크까지 다 한 상태였다. 더구나 섣불리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송동하가 갑자기 소독 세트를 유석재에게 내밀었다.
“둘이 드레싱해.”
유석재도 조금은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인턴 선생, 반대편에 서서 나 따라 해.”
환부 소독이 거창한 일은 아니다. 양쪽에 서서 수술 부위를 먼저 알코올로 닦고, 그 위에 베타딘(피부 소독제)을 바르면 끝이었다. 하지만 어떤 외과도 인턴에게 이런 일을 주지는 않았다. 환부 소독은 수술의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유석재가 하는 것을 보며 열심히 따라 했다.
갑자기 송동하의 목소리가 매서워졌다.
“김지훈, 가운이 수술대에 닿잖아.”
깜짝 놀란 김지훈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넌 소독 가운을 입었을 때의 원칙도 몰라? 수술대 밑으로 손 내리지 말고, 다른 데 닿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 것 아냐? 이 환자 감염되면 네가 책임질래?”
“죄송합니다.”
“이런 건 기본이야, 기본. 기본을 안 지키면 환자에게 반드시 문제가 생겨. 명심해.”
“예, 알겠습니다.”
단 몇 마디였지만 모자 사이로 땀이 뱄다. 외과를 한다는 사람이 기본조차 잊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술 부위를 드랩(drap:절개할 부위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모두 소독된 천으로 덮는 과정)하던 송동하가 김지훈을 노려보았다.
“기본적인 원칙은 몸에 밸 정도로 확실하게 지켜라. 일주일 준다. 그다음에도 이런 실수가 나오면 알지?”
“예, 알겠습니다.”
송동하의 목소리가 여전히 매섭기만 했다.
일반 외과 첫 수술에 들어가자마자 깨질 줄은 몰랐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했다.
곧 과장이 들어와 수술을 시작했다.
복부가 완전히 열리자 송동하가 양쪽 끝이 ‘ㄷ’ 자처럼 생긴 리트랙터(retractor)를 복벽 양쪽에 걸었다.
유석재와 김지훈이 반대편을 잡고 당겼다.
복벽이 좌우로 크게 벌어지며 환자의 배 속이 보였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어떤 사람도 절대 집도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바로 옆에 선 써드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수술을 본다고 몸을 들이밀면 집도의를 건드리게 된다. 위험한 부위를 수술할 때는 특히나 피해야 할 행동이었다.
최대한 수술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아예 몸을 뒤로 빼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술 과정을 거의 볼 수 없다.
‘인턴인데, 학생처럼 그냥 끌개만 할 수는 없잖아.’
김지훈이 수술 과정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머리는 디밀고 몸을 빼자니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곧 허리까지 아파 왔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이리저리 돌렸는데 그 와중에 리트랙터를 잡은 손까지 흔들렸다. 복벽 사이가 좁아지면 당연히 수술 시야까지 좁아진다.
“잘 끌어라.”
과장의 한마디에 송동하가 눈을 부릅떴다.
뒤로 물러나 리트랙터만 열심히 잡아당기던 김지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4시간이 지났다.
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수술이 모두 끝났다.
힐끗 시계를 본 송동하가 복벽을 봉합하며 물었다.
“김지훈, 수술명이 뭐야?”
“예, 서브토탈 가스트렉토미(subtotal gastrectomy:부분적 위절제술)입니다.”
“잘 봤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잘 못 봤습니다.”
“이번 주에 3개 정도 하니까 잘 봐. 대신 리트랙터 잘 끌고, 오퍼레이터 건드리지 마라. 나가서 다음 환자 준비해.”
“예, 선생님.”
일반 외과 역시 수술실의 점심시간은 없었다.
김지훈이 나가자 송동하가 유석재에게 물었다.
“석재야, 너보다 더 열심인 것 같다. 어땠어?”
유석재가 응급실과 정형외과의 평을 전했다.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악어 형하고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김대성 선생님이 꼬신다는 말도 들려요.”
“대성이가 꼬신다고? 제법 괜찮은 모양이네. 근데 악어 그 자식은 왜 그러냐. 우리한테는 잘하면서 왜 그렇게 후배들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인간성 문제다.
유석재가 입맛만 다셨다.
잠시 후, 물배를 채운 김지훈이 환자를 태운 스트레치 카를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급히 수술 환자에 대한 오더를 낸 유석재와 함께 다음 수술을 준비했다.
그날 오후 내내 김지훈은 송동하에게 깨졌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뭐라도 날아올 것처럼 살벌했다.
김지훈이 삐질삐질 땀만 흘렸다.
‘잘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거의 이삼십 번은 한 것 같았다.
모든 수술이 끝나고 한숨만 푹푹 쉬는 김지훈을 본 유석재가 어깨를 툭툭 쳤다.
“힘들어?”
“아니요.”
“아니긴. 어째 일주일은 송동하 선생님에게 깨질 것 같다.”
“그렇겠죠?”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지만 김지훈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잘못한 일 때문에 혼나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와 연관이 있다면 몰라서 혼나는 것조차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실을 나가던 김지훈이 슬며시 누군가를 찾았다.
‘벌써 6시인데 퇴근했겠지.’
눈이 예쁜 간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매일처럼 깨졌다. 익숙해지는 일이 많아질수록 부족한 것도 더 많아졌다. 이제 인턴인 의사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송동하는 김지훈에게 유달리 엄격했다.
욕만 안 했지, 어떤 때는 마치 악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화가 안 날까?
아마도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가끔 이혁민 교수가 터뜨리는 만족스러운 웃음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
며칠이 후딱 지나갔다.
오늘도 무척이나 피곤한 하루였다. 주구장창 써드만 서다 보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 병동으로 올라가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반 외과 병동 일은 정형외과보다는 훨씬 즐거웠다. 물론 복사나 잔심부름도 많았지만, 그만큼 환자에 관한 일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유석재의 오더가 반가웠다.
“지훈아, 내일 수술할 환자들 엘튜브하고 폴리 좀 해.”
엘튜브(Levin tube:일명 코 줄)나 폴리(Foley:소변 줄)를 넣는 것은 의사에게는 단순한 술기지만 환자에게는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소화관을 수술하거나, 장시간 수술을 요하는 환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일반 외과 환자들은 피할 수도 없었다.
코를 통해 목까지 들어간 이물이 위장까지 쭉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괴롭겠는가!
요도에 굵은 줄을 낀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여자는 그래도 요도가 5센티미터 정도로 짧지만, 남자는 대략 20센티미터 정도 된다.
그 고통을 알려 주기 위해 PK 때 엘튜브와 폴리를 당할 자원자를 받는다. 다들 기피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지만, 김지훈이 과감하게 자원을 했었다. 물론 땅을 치고 후회했다.
엘튜브는 눈물 콧물을 다 쏟을 정도로 괴로웠다.
폴리를 당할 때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를 익히 알기에 김지훈은 정말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환자에게 엘튜브와 폴리를 끼웠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었다.
정갑수의 무지막지한 손길 덕분이었다.
병실에서 몇 번 불만에 찬 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환자도 한 번만 하면 끝나는 일인 데다, 3년차와 동기인 탓에 별다른 질책도 없었다.
‘정말 운도 좋네.’
김지훈이 느긋하게 병동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 정갑수를 보며 병실로 향했다. 몇몇 환자에게 엘튜브와 폴리를 끼우고 돌아와 보니 정갑수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칼퇴근이었다.
‘나 오프 때는 나눠서 일하자는 인간이, 지 오프일 때는 바라처럼 사라져요. 무슨 과를 할지 참 걱정되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김지훈이 병동 간호사들과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며 저녁 먹기를 기다렸다. 곧 전공의들이 의국에서 우르르 빠져나왔다.
정형외과처럼 서열대로 앉아 식사를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1년차들도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물론 위의 연차에게 지켜야 할 선은 누구도 넘지 않았다.
김지훈은 맨 끝에 앉아 조용히 입만 놀렸다. 세 그릇을 뚝딱 비운 후 끅끅거리며 포만감을 즐겼다.
‘오늘도 잘 먹었네. 먹는 건 좋은데, 이렇게 몰아 먹다가 배만 볼록 나오는 거 아냐?’
일반 외과 역시 아침이나 점심을 먹기가 녹록지 않았다.
인턴이 이 정도이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1년차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일어섰다.
유석재가 맨 뒤에 남아 김지훈에게 손짓을 했다.
“지훈아, 응급실 가자.”
“환자 있대요?”
“응.”
유석재가 허리에 찬 삐삐를 가리켰다. 병원 내에서는 주로 전화나 방송을 하지만, 외부에 있을 때는 정말 유용한 물건이었다.
응급실이 환자들로 북적였다.
김지훈과 함께 노티 받은 환자를 본 유석재가 오더를 냈다.
“지훈아, 나 조금만 잘 테니까 검사 결과 나오면 바로 깨워.”
“예, 주무세요.”
응급실의 당직실은 종종 1년차들의 간이 숙소가 되곤 했다.
그들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기에 응급실 인턴들도 별 불만 없이 자리를 피했다. 그래 봐야 30분 정도이긴 했다.
응급실 스테이션에 선 김지훈이 간호사들과 눈인사를 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곤에 절은 동기들이 분주하게 환자를 보고 있었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갑수 형은 왜 그러지? 이렇게 해도 부족한데 말이야.’
이곳저곳을 보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며 뷰 박스를 보았다.
‘저 사진들이 정상인가?’
그때 잠시 틈이 난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김지훈 선생님, 봉봉 잘 먹었어요.”
“그래요? 그런데 저 X-ray 어느 환자 거예요?”
김지훈이 웃음을 보이며 답하자 간호사가 차트 하나를 내밀었다.
“이 환자 건데, 왜 그러세요?”
복통으로 내원한 환자로 내과에 이미 노티가 돼 오더까지 나온 환자였다. 고개를 갸웃거린 김지훈이 뷰 박스로 가 한참 동안 방사선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응급실을 도는 동기가 다가왔다.
“야! 여기까지 와서 X-ray 보고 있냐? 그 시간에 쉬어.”
“이 사진,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내과 선생님이 보셨어?”
“글쎄,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
차트를 확인한 동기가 손가락을 튕겼다.
“보셨네. 맞아, 확실히 보고 가셨어. 환자 증상 좋아지면 퇴원시키라고 했어.”
“그래. 그런데 이거 프리에어(free air)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