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일반 외과(General surgery) (1)
드디어 정형외과에서의 마지막 주다.
응급실의 경험으로 볼 때 후딱 지나가지만 조심해야 할 때였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정말 원치 않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오늘도 수술실에서 월요병과 주말 오프의 심각한 후유증을 떨쳐 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는 덕일 것이다.
뚝딱! 뚝딱!
위이이잉! 삑!
목공소 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하나둘 병동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은 척추 디스크 수술이었다.
팔다리 수술보다는 훨씬 큰 수술이었지만, 정작 정형외과 인턴에게는 할 일이 가장 없는 수술이었다.
수술실 구석에 앉아 있던 김지훈이 눈치를 보고는 슬며시 밖으로 나갔다. 10개가 넘는 방에서 아직도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으아아앙!”
제왕 절개로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
현미경 수술이 진행되는 신경외과 방은 완벽한 고요에 휩싸여 있었다.
“타이(tie:매듭), 석션(suction:흡입). 졸지 마라.”
나직한 대화가 오가는 일반 외과 방 등등.
온갖 수술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지훈이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수술실 밖에서 힐끔힐끔 구경을 했다. 역시 눈이 가는 과는 일반 외과와 신경외과였다. 성형외과 수술도 벌어지고 있었지만, 왠지 바느질 공장 같은 느낌이 들어 별로 관심이 가질 않았다.
주로 안면부 수술이기에 2밀리미터 간격으로 수술 창을 봉합하다 보니 그 시간만도 상당히 걸렸다. 비록 PK 때의 경험이 다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과라는 것은 확실했다.
“선생님, 선생님.”
누군가가 일반 외과 수술이 끝나 가는 것을 지켜보던 김지훈을 불렀지만 정신이 팔린 그는 듣지를 못했다. 어깨를 살짝 건드리는 감촉을 느끼고 나서야 김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예쁜 간호사?’
“어, 왜요?”
“수술 거의 끝나 가요.”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됐나?
화들짝 놀란 김지훈이 정형외과 수술실로 향했다.
간호사의 말대로 수술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이럴 때 인턴이 자리를 비우다니, 하마터면 작살이 날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했다.
‘눈이 예쁜 간호사 덕에 살았네. 어?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정형외과 수술 담당이 아니었다.
시암 연습을 할 때 빼고는 말을 나눈 적도 없었다.
그동안 단지 눈만 마주쳤을 뿐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연히 보인 호의일까, 아니면 혹시 김지훈의 눈길에 신경이라도 쓰였던 것일까?
신경이 쓰였다면 이유가 뭘까?
온갖 상상을 하던 김지훈이 눈을 비볐다.
흔하게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수술이 끝나지 않았다면 머리에 쥐가 났을지도 몰랐다.
병동으로 올라가던 김지훈이 어깨를 주물렀다.
‘깨진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수술실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가.’
마치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보낸 것처럼 오늘따라 유난히도 몸이 뻐근했다.
악어의 갈굼은 멈추지 않았지만, 정형외과의 시계는 돌아갔다.
임상 병리로 가는 손일석은 점점 힘이 넘쳤지만, 일반 외과로 가는 김지훈는 다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와 1년차인 유석재를 생각하면 기대도 됐지만, 외과는 외과다. 인턴의 역할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악어를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일지도 몰랐다.
다른 과에 대해 궁금할 때는 손일석이 답이었다.
“일석아, 일반 외과는 어떻대?”
“일반 외과? 분위기야 정형외과보다 낫다지만, 결국 똑같지, 뭐. 병동하고 수술실 도는 거 말고 또 있겠어? 왜, 신경 쓰이는 일 있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손일석이 고개를 저었다.
“지훈아, 너는 왜 매사를 큰 것만 생각하고 멀리만 봐?”
“뭐가?”
“응급실에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구나. 미련한 놈, 네가 누구랑 도는지 어서 확인하거라.”
“너, 정형외과 돌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구나.”
“내가 뭘?”
“이젠 무협 영화에 출연해도 되겠다. 아주 중국 놈 같다. 아니, 말투는 그냥 중국 놈이네.”
“내 외모면 히트 좀 칠 텐데. 아무튼 전체 스케줄이나 봐. 깜짝 놀라거나, 암담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도 후자겠지? 아니, 둘 다인가?”
김지훈이 숙소에 걸린 전체 스케줄을 확인했다.
GS(General Surgery:일반 외과).
김지훈. 정갑수.
쿠궁!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이 맞아도 힘든 게 외과 인턴 생활인데, 정갑수라니.
“야! 정말 꼬인다, 꼬여. 어떻게 악어를 피하니까 갑수 형이 나타나냐. 죽겠네.”
“너도 스케줄부터 파트너까지 참 험난하다.”
“아아! 인턴이 되도 세상이 내 생활력을 무지하게 키워 주네. 차라리 잘됐어. 앞으로 누구랑 돌아도 편하다고 생각할 거 아냐.”
“그래, 좋게 생각해.”
연거푸 한숨을 쉬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일석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건 정말 잘된 거야.”
“이 자식이 미쳤나. 웬 헛소리야?”
“갑수 형이 하루 종일 박혀 있어야 하는 수술실을 돌 리가 없잖아. 어차피 병동은 잡일뿐인데 수술실이 훨씬 낫지. 내가 무슨 과를 할지 선택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말이야.”
손일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 생활력 강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 똑같은 일을 두고 나랑 정반대로 해석할 수가 있냐. 대단하다.”
“야, 인마, 이건 기회야. 짜증을 내 봐야 힘들기만 하잖아. 어차피 도는 건데, 즐겁게 돌아야지.”
“그래, 갑수 형이랑 잘해 봐라.”
홀로 남은 김지훈이 병동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다.
이혁민 교수에게 들은 수많은 말과 전공을 빨리 정하라는 김대성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학생 때 보았던 일반 외과와 인턴 때 보는 일반 외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어떤 차이가 있을지, 외과로서 얼마나 멋진 과인지 궁금했다.
병동에서도 배울 것은 많겠지만, 외과의 꽃은 단언컨대 수술이었다. 아무리 이론이 해박해도 수술을 못하면 외과 의사로서 자격 미달이다. 충분히 보는 것만으로도 이론의 한계를 조금은 넘어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갑수와 같이 도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만약 외과를 지망하는 동기였다면 서로 수술실에 들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수술실만 6주를 도네. 내과 가기 전에 실컷 피 냄새 좀 맡아 보자.’
수술실을 떠올리자 문득 예쁜 눈이 생각났다.
김지훈이 머리를 두드리며 투덜거렸다.
“이 여자는 왜 또 나타나는 거야?”
혼자가 된 이후, 아무리 어려운 일도 스스로 헤쳐 왔다.
친구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연애를 하기에는 상황이 허락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 흔한 미팅이나 소개팅도 폭탄 제거반으로서 몇 번 해 봤을 뿐이었다.
김지훈이 좋다고 고백한 여자들도 있었지만, 기억에 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자꾸 생각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찬물에 세수를 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서연아, 너는 또 왜?’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괴로운 일이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만세!
지긋지긋한 악어와도 이별이었다.
물론 끝나는 날까지 욕을 한 대박이나 날렸다. 하지만 한동안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즐거웠다.
인수인계를 하는 동기들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3주만 버티면 돼. 그리고 악어에게 절대 개기지 마. 한 번 더 그런 일이 생기면 인턴이 피박을 쓸 분위기야. 조심해라. 고생하고.”
심심한 위로의 말을 던진 김지훈이 의국으로 가 김대성과 최성훈에게 인사를 했다. 이것으로 정형외과 근무가 완전히 끝났다.
“잘 가. 다음에는 말썽 피우지 말고. 하하하!”
김대성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예, 선생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정형외과 병동을 나온 김지훈과 손일석이 계단에 숨어 악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동시에 냅다 주먹 감자를 날렸다.
‘이거나 많이 먹고 오래 사셔.’
속이 시원하면서도 왠지 섭섭했다.
???
월요일 아침, 세 번째 텀인 일반 외과 근무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인턴이 해야 할 회진 준비를 마칠 무렵에야 정갑수가 나타났다. 벌써 6주가 지났지만 변한 것이 없었다.
문득 가장 힘들다는 응급실과 악어가 있는 정형외과를 손일석과 함께 돌았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과나 일상은 비슷했다.
4년차 회진이 끝나고, 스태프 회진이 이어졌다.
웬일인지 정갑수가 과장 회진을 자청했다.
“자네가 정갑순가?”
“예, 과장님.”
“아버지에게 네 얘기 들었다. 열심히 해.”
뒤에 서 있던 유석재가 의아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뭐냐?’
‘저도 몰라요.’
고개를 흔든 김지훈이 병실 문을 여는 정갑수를 보았다.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것이 인턴답지 않았다.
상당히 느긋해 이상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과장 회진이 끝난 후, 이혁민 교수가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이 인사를 하자 고개를 끄덕인 이혁민 교수가 환자 차트를 본 후 회진을 돌았다.
과장 파트에 속한 스태프이기에 정갑수가 회진을 돌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갑수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김지훈이 부랴부랴 병실 문을 열었다.
회진이 끝난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보며 물었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다소 느린 말투가 묘하게 사람을 압박했다.
“정형외과는 잘 돌았나.”
“예.”
“그래? 우리 과도 정형외과와 비슷한데, 아직도 외과가 하고 싶나.”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악어와의 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외과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악어와의 일로 김지훈의 선택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예, 지금도 하고 싶습니다.”
힘찬 대답에 이혁민 교수가 웃었다.
“수술실이가, 병동이가.”
“수술실입니다.”
이혁민 교수가 4년차인 송동하를 보았다.
다소 조그만 키에 둥글둥글한 인상이었지만, 4년차가 되자마자 과장 파트를 맡았으니 총치프(chief)다. 4년차 중 가장 유능하다는 말이었고, 시기만 잘 탄다면 스태프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공의였다.
“송동하 선생, 수술실에서 김지훈 선생을 놀리지 말고 써드(3rd)로 세워라. 유석재 선생은 김지훈 선생이 당직일 때 응급실 꼭 데리고 가라.”
“예, 알겠습니다.”
송동하가 묘한 표정을 지었고, 유석재는 김지훈을 보며 씩 웃었다. 김지훈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어후! PK도 아닌데 써드라니, 죽었다.’
일반 외과 수술은 대부분 4명이 참여한다.
집도의(operator):수술을 하는 의사.
첫 번째 보조자(1st assistant):집도의 맞은편에 서며,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수술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자리다. 대부분 4년차가 담당하며, 수술 난이도에 따라 3년차가 서기도 한다.
두 번째 보조자(2nd assistant):수술 환자의 드레싱과 마무리를 담당하며, 1st 옆에 서서 수술에도 어느 정도 참가한다. 1년차가 담당한다.
세 번째 보조자(3rd assistant):집도의 옆에 서지만 학생도 가능할 정도로 단순한 일만 한다. 심지어 수술 중에 조는 경우도 많았다. 더구나 써드로 수술에 참여하는 것보다 인턴 본연의 일을 할 때 도리어 수술을 더 잘 볼 수 있었다.
의사들의 위치와 수술 시야상 첫 번째 보조자 뒤에 발판을 놓고 올라서면 훨씬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써드는 힘만 많이 들고, 하는 일 없이 피곤한 위치였다.
‘이왕이면 세컨을 시키시지.’
인턴이 1년차 자리를 노리다니, 언감생심이었다.
김지훈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이혁민 교수를 보며 한숨만 쉬었다.
일반 외과의 첫 수술은 위암 수술이었다.
그것도 과장 파트의 환자였다.
수술 준비는 어느 과나 비슷했지만, 김지훈은 더욱 긴장했다. 더구나 인턴이 아니라 써드로 참여할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수술실로 환자를 옮기자 송동하가 눈짓을 했다.
5분간 손을 소독하고 들어오자 일반 외과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멸균된 수술복을 입혀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