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두 번째 인투베이션 (intubation:기관 내 삽관) (2)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였지만 환자들은 잔뜩 밀려 있었다.
응급실 근무를 하는 동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중환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때 김지훈을 알아본 간호사가 급히 달려왔다.
“김지훈 선생님, 환자 좀 봐주세요. 급해요.”
“내가요? 무슨 일인데요?”
“어레스트가 났는데, 인투베이션을 못 하고 있어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급히 환자에게 향했다.
환자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전공의가 보이지 않았다. 미처 내려오기도 전에 어레스트가 났을 정도로 급격하게 환자가 나빠진 모양이었다.
신현수가 입에 스코프도 끼우지 못하고 땀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산소 포화도가 50프로까지 떨어지자 모니터가 더욱 요란하게 삑삑거렸다.
“몇 분이나 됐어요?”
“5분은 된 것 같아요.”
골든타임이 거의 다 지났다.
김지훈이 신현수를 불렀다.
“현수야, 손 바꾸자.”
아무리 능숙한 술기도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의사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잠시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힐끗 김지훈을 본 신현수가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환자의 아래턱을 들어 올려 임시로 기도를 확보한 김지훈이 마스크를 밀착시켰다.
“앰부.”
간호사가 앰부 배깅(bagging)을 하자 산소 포화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70프로가 넘어서자 모니터의 경고음이 낮아졌다.
‘이 정도면 일이 분은 버티겠지.’
김지훈이 인투베이션을 시도했다.
환자의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신현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유였다.
“설압자.”
단순한 도구였지만, 환자의 입을 벌리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한 번의 경험도 있었다.
벌려진 환자의 입 사이로 부러진 이빨이 보였다.
무리하게 스코프를 넣으려 한 탓이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스코프를 밀어 넣으며 턱을 들어 올렸다.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아직 환자를 살릴 기회가 있다는 의미였다.
“석션(suction:흡입).”
입안에 가득한 오물을 제거했다.
성대가 보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자발 호흡이 사라졌단 말이었다.
김지훈이 빠르게 튜브를 삽입하자 간호사가 재빨리 고정하고 앰부를 연결했다.
슈육! 그르륵! 슈욱! 그르륵!
배깅을 할 때마다 양측 폐에서 거친 호흡음이 들렸다.
“산소 풀로 줘요.”
그때 모니터에서 또 다른 경고음이 들렸다.
삐이이이이!
심장이 멈췄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 죽일 수는 없어. 반드시 살려야 해.’
전공의도 없이 인턴들만으로 환자를 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슴이 떨렸지만, 김지훈은 최대한 냉정을 유지했다.
우왕좌왕하다가는 환자는 이대로 사망하고 말 것이다.
“현수야, 시피알(CPR) 해. 간호사, 전기 충격 준비하고, 에피 하나, 아드레날린 하나, 비본 2개 섞어요. 비지에이 내보내고.”
심장 압박을 하는 사이 전기 충격기가 준비됐다.
“200줄.”
펑! 털썩!
심장 압박과 앰부 배깅이 이어졌다.
삐이이이이!
반응이 없었다.
“250줄.”
펑! 털썩!
환자의 상체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신현수가 땀을 뚝뚝 흘리며 가슴을 압박했다.
김지훈이 초조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돌아와, 제발 돌아와.”
간절한 목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300줄 충전.”
김지훈의 입이 바싹 말랐다.
응급실의 악몽이 떠올랐다.
마지막 시도다. 이번에도 반응이 없으면 더 이상 시도할 방법이 없었다. 김지훈이 환자의 가슴에 전기 충격기를 대며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가족을 잃는 게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제발 돌아와.’
펑! 털썩!
환자의 상체가 활처럼 휘었다.
모든 의료진의 시선이 모니터에 집중됐다.
그 순간 그토록 원했던 소리가 들렸다.
띠! 띠! 띠! 띠! 띠!
가슴을 압박하던 신현수가 털썩 주저앉았다.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숙이며 긴 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아, 수고했어. 지금부터는 내가 볼게.”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깜짝 놀란 김지훈이 급히 환자 앞에서 물러났다.
“조금 전에.”
“그런데 왜?”
“1초가 급한데, 내가 끼어들었으면 환자 못 살렸을 거야. 잘했어, 네가 환자를 살렸어.”
아직 치료는 끝나지 않았고, 마음을 놓을 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전진우와 신현수의 일이었다.
잠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조용히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환자의 심장이 아직은 잘 뛰고 있었다.
환자를 살렸다는 흥분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손에 든 복사물을 보고 나서야 악어가 떠올랐다.
의국에 들어서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악어가 벌떡 일어났다. 김지훈을 본 악어의 인상이 구겨졌다.
“너, 뭐야? 이 개새끼, 그까짓 것 복사하는 데 2시간이나 걸려? 너,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응급실에 환자가 왔는데…….”
“이런 시팔 놈이 어디서 말대꾸야. 네가 응급실 인턴이야?”
흥분을 못 이긴 악어가 책상 위에 있던 책을 집어 던졌다.
김지훈이 피하자 악어가 발광을 했다.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
이유를 말할 틈도 없었다.
“이 새끼가 계속 피해?”
“선생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이런, 개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악어의 눈이 돌았다.
책상과 의자를 거칠게 걷어찬 악어가 급기야 김지훈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비껴갔다.
“피해? 지금 네가 피해?”
악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쥐었다.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
턱!
김지훈이 주먹을 날리려는 악어의 팔을 잡았다.
“이유는 듣고 혼을 내시든지, 마시든지 하시죠.”
너무 화가 나 도리어 냉정해진 김지훈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악어를 노려보는 눈빛에 더 이상은 넘지 말라는 경고가 실렸다.
“이… 이…….”
부들부들 떨며 입도 열지 못하던 악어가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 이 개새끼!”
악어가 의자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울리자 벌컥 의국 문이 열렸다.
다급히 들어온 최성훈이 악어를 붙잡았다.
“선생님, 참으세요.”
“놔, 저 새끼 오늘 내가 못 죽이면 사람이 아니다.”
겁에 질린 간호사들이 문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지훈아, 나가 있어. 뭐 해, 새끼야, 빨리 나가.”
김지훈이 악어를 노려보다 밖으로 나갔다.
분을 참지 못한 악어의 고함 소리가 들리다 결코 나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주먹으로 맞는 소리였다.
벌떡 일어난 김지훈이 의국 문을 열었다.
최성훈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김지훈을 본 악어가 의자를 집어 들고 있었다. 김지훈이 정면으로 악어를 노려보았다.
악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환자의 생명보다 복사가 더 중요하면 날 까.”
의자를 던지려던 악어가 멈칫했다.
몸을 일으킨 최성훈이 김지훈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훈아, 나가 있어.”
최성훈이 막무가내로 김지훈을 밀어냈다.
김지훈이 입술을 꽉 물고 의국을 나왔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악어가 입을 다물었다.
김지훈이 숙소로 올라갔다.
자칫하면 정말 대형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쳤다.
다음 날 아침, 4년차들의 눈초리가 싸늘했다.
악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부위기가 너무 안 좋아 누구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간밤에 그 난리를 쳤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김대성이 김지훈을 불렀다.
“김지훈 선생, 나 좀 보자.”
회진도 돌기 전이었지만 입을 열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벌을 받고 끝내자.’
의국으로 들어선 김대성이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앉아.”
“괜찮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김지훈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복사가 끝난 게 1시쯤이었고, 그때 응급실에 어레스트가 떴는데 인투베이션도 못 하고 있었단 말이지. 그 환자는 살았고. 확실해?”
“예.”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 않았을 김대성이 아니었다.
들은 말과 당사자의 말이 같은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었다. 김대성이 의자에 기댄 채 눈을 비볐다.
“악어한테는 얼마나 개긴 거야?”
“저 때문에 최성훈 선생님이 맞았습니다. 그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욕까지 했어?”
“욕은 안 했습니다.”
“안 했어? 악어는 했다고 하던데? 정말이지?”
“예, 정말 안 했습니다.”
김대성이 눈가를 찌푸렸다. 악어가 김지훈의 행동에 대해 부풀린 것이 틀림없었다.
“후우! 지훈아, 내가 참으라고 했잖아. 하필이면 악어하고 또 부딪치냐, 인마.”
“죄송합니다.”
“솔직히 악어가 잘못했지만, 네가 욕까지 했다고 우기면 혼 좀 날 거다. 일단 내가 4년차 선생님들에게는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할 테니 이번에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
김대성은 일이 확대돼 김지훈이 다칠까 봐 정말 걱정을 하고 있었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인턴이 2년차에게 덤빈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예.”
“바로 수술실로 가. 이 일 때문에 딴맘 먹지 말고.”
가끔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수련을 포기하는 인턴들이 있었다. 상대가 악어라면 누구나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악어가 어떤 인간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인턴의 일이 단순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실수를 연발했을 것이다. 저녁 회진을 돌자마자 김대성에게 허락을 구하고 숙소로 올라갔다.
의사가 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술 마실 일만 생기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을 느낀 김지훈이 터벅터벅 숙소로 들어섰다.
숙소 문을 열자 갑자기 난데없는 환호성이 터졌다.
“야아! 지훈이 왔다.”
손일석과 동기들이었다.
‘난 죽겠는데, 뭐가 좋다고 이 난리들이야?’
김지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석아, 너 당직이잖아.”
“지금 당직 설 때냐? 악어가 없으니까 괜찮아.”
동기들이 웃으며 김지훈의 어깨를 쳤다.
“응급실에서 사고 쳤다며.”
“무슨 사고?”
“환자 한 명 살렸다는 소리 들었어. 현수가 쩔쩔 매는 걸 네가 한 방에 해결했다며. 인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하기 힘든 인투베이션을 벌써 두 번이나 했네. 재주도 좋아.”
“운이지, 뭐. 그런데 현수는?”
신현수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현수? 걔가 숙소에서 자는 거 봤어? 아무튼 대단해. 역시 우리 동기를 대표하는 에이스 김지훈이야.”
공연히 쑥스러워진 김지훈의 얼굴이 빨개졌다.
“야야, 그뿐이냐. 천하의 악어한테 욕을 했다잖아. 악어는 말도 못 하고. 이 자식 깡도 보통이 아냐.”
손일석이 호들갑을 떨자 동기들이 ‘우우우!’ 소리를 내며 김지훈을 둘러쌌다.
“욕 안 했어, 인마.”
“괜찮아, 자식아. 잘못한 건 악어잖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도 않고 최성훈 선생님까지 때렸는데 무사하겠냐?”
“됐고, 맥주나 한잔하자.”
“좋지. 이런 날 술이 빠지면 안 되지. 오늘은 특별히 인턴장이 산다.”
인턴장을 맡은 동기 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왜?”
“야, 지훈이가 환자를 살렸고, 악어한테 욕까지 했어. 이건 인턴들의 경사야. 그러니까 당연히 인턴장인 네가 사야지.”
“그런가? 좋아.”
인턴장이 부랴부랴 맥주를 사 왔다.
악어가 졸지에 안주가 됐다.
“자세히 좀 얘기해 봐.”
술이 오른 김지훈이 손일석과 동기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입을 열고 말았다.
“대가리 모아. 지금부터 하는 말은 비밀이다.”
“그럼 당연하지.”
누구도 손일석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김지훈이 손발을 써 가며 당시의 일을 실감 나게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뭐라고 한 거야?”
약간 뜸을 들였다.
모두들 슬며시 다가오는 긴장에 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일어나 김지훈이 악어의 팔을 잡는 시늉을 하며 목소리를 깔았다.
“환자의 생명보다 복사가 더 중요하면 날 까.”
“까요가 아니라 까?”
“그 상황이 말을 올릴 상황이 아니잖아?”
일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김지훈의 말을 음미했다.
짝! 짝! 짝!
천천히 박수를 친 손일석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내 친구 김지훈이야.”
“지훈아, 멋있다. 잘했어.”
분위기가 완전히 달아올랐다.
학생 때부터 악어에게 당한 일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악어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 시간, 신현수가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김지훈이 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잔에 담긴 갈색 양주를 보던 신현수가 허탈하게 웃으며 단번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