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4화 (14/1,329)

제7화 원칙대로 하자 (2)

“시암, 들어오자.”

드디어 김지훈의 차례다.

가장 긴장된 순간이 다가왔다.

박종석이 주먹을 쥐며 소리 없이 파이팅을 외쳤다.

수술을 보조하던 간호사가 능숙하게 시암에 소독 비닐을 씌웠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수술대 밑으로 시암을 밀어 넣었다. 다들 차폐복을 입지 않아 시암에서 멀리 떨어졌고, 간호사는 아예 밖으로 나갔다.

“포커스 맞춰.”

시암 팔 윗부분의 등에 달린 레버를 조정해 십자 선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팔을 조종해 십자 선 정 중앙에 환부가 들어오도록 했다. 집도의가 수술실 끝에 서서 외쳤다.

“슛!”

위이이잉! 삑!

나직한 소리와 함께 방사선이 환부를 통과하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이 재빨리 On 스위치에서 손을 뗐다.

모니터에 수술 부위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뼈와 뼈 사이에 철사가 잘 들어가 있었지만 한쪽에서 본 영상이었다. 다시 수술대로 온 집도의가 다리를 돌려 환부 위치를 바꿨다.

“포커스 다시 맞춰라.”

시암 팔의 위치만 조종해서는 환부가 정확하게 찍힐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침을 꿀꺽 삼키며 시암 본체를 움직였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시암 팔이 집도의의 머리를 때렸다.

‘씨팔! X 됐다.’

스태프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이번 인턴은 왜 이 모양이야. 시암 연습도 안 하고 정형외과 오나? 잘 맞춰 봐.”

김지훈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시암을 조작했다.

다행히 두 번째는 실수 없이 십자 선을 환부에 정확히 맞췄다. 집도의가 수술대에서 떨어지며 외쳤다.

“슛!”

위이이잉! 삑!

집도의가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성 선생, 잘 들어갔지?”

“예, 아주 깨끗한데요.”

“음! 수고했어. 마무리하고 다음 환자 준비되면 연락해.”

집도의가 수술 가운을 벗고 나가자 김대성이 김지훈을 보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암은 무겁고 단단한 쇳덩어리다. 그걸로 머리를 쳤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당연히 불똥이 튈 것이다.

“김지훈 선생, 연습 좀 했네. 최성훈 선생, 안 그래?”

“처음인데 정말 잘하네요. 신현수보다 나은 것 같은데요.”

“그런가? 두고 봐야지. 다음 수술에서도 시암 쓰니까 잘해야 돼.”

“예, 선생님.”

김지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꼭꼭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일 정도로 후배들을 존중해 주는 김대성의 말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성훈 선생님은 혹시 나한테 미안해서 저러는 거 아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성훈을 보았지만 눈만 보이니 도통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수술 부위를 소독하는 동안 또 다리를 들어야 했고, 팔에 힘이 쫙 빠졌지만 무사히 첫 수술이 끝났다.

김진호가 들어와 환자를 깨웠다. 김지훈이 기관 내 튜브를 제거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사소한 것이라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의사였고, 김지훈은 이를 잊지 않았다.

‘튜브를 제거한 후에도 기도를 막을 만한 것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구나.’

김지훈이 박종석과 함께 환자를 회복실로 옮겼다.

“너, 연습 얼마나 했어?”

“한 시간 조금 넘게. 왜?”

“다음 텀에 정형외과 돌잖아. 걱정되네.”

“나도 이만큼 했는데, 너는 더 잘하겠지. 너, 운전면허 땄지? 그럼 확실히 잘할 수 있어. 아직 안 딴 애들이 걱정이지, 뭐.”

박종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 무면허다.”

공연히 민망해진 김지훈이 딴청을 피우며 회복실을 빠져나갔다.

양방(동시에 2개의 수술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김지훈이 급히 환자들을 옮기고, 수술실을 오가며 팔다리를 들었다. 무거운 다리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팔이나 들고 있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손아귀가 얼얼했다.

그래도 무사히 시암을 조작했고, 수술한 스태프들도 별말이 없었다.

오전이 금방 지나갔다.

점심 먹을 때가 됐지만 수술이 끝나지 않았다.

집도의와 전공의들이 끼니도 건너뛰고 수술을 했다.

상당히 배가 고팠지만,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거, 언제 밥을 먹냐. 아침에는 회진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추고, 점심에는 수술 때문에 못 먹으면 저녁 한 끼로 버텨야 하나?’

응급실에서도 끼니는 거의 거르지 않았다.

힘이 있어야 일도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김대성도, 최성훈도 밥을 못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수술이 이어졌다.

여덟 번째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고 나서야 모든 수술이 끝났다. 양방을 벌인 덕에 그나마 빨리 끝났다.

그래도 이미 오후 5시 30분이었다. 처음으로 수술실 근무를 하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김지훈이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는 8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미 스태프들이 저녁 회진을 돌고 있었다.

오후에도 문을 열어 주어야 할 사람은 인턴이었다.

전공의들이 모두 병동에 딸린 의국으로 들어갔다.

PK들도 모두 가고 둘만 달랑 남자 김지훈이 스테이션 탁자에 팔베개를 하고 엎드렸다.

“일석아, 밥 먹었냐?”

거의 죽어 가는 목소리다.

“먹었지. 그보다 난 졸려 죽겠다. 당직은 너부터 서.”

“알았어. 아우! 속이 다 쓰리네.”

“배 속에 거지가 들었나 봐.”

“야, 수술실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너도 하루 종일 굶고 해 봐라. 나보다 더할 거다.”

“너 말고, 인마.”

김지훈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악어냐고 묻자, 손일석도 탁자에 엎드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도 라면 끓였구나.”

“회진 끝나고 아침 먹은 사람이 11시에 라면 끓이란다. 5개나 먹더라. 돼지도 아니고.”

“오전 오후를 안 가리고 먹어 대는구나.”

“솔직히 많이 먹는 게 죄는 아니지. 우리한테 라면을 끓이라는 것도 봐준다. 하지만 최소한 자기 돈이나 의국 돈으로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왜 인턴 거를 건드리냔 말이야. 저러다 우리 먹으라고 사 온 라면을 혼자 다 먹겠어. 미안하지도 않나?”

“그럴 사람이 아니지. 그럼 별명이 악어겠냐?”

“그치?”

손일석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새벽까지 응급실을 돌고 바로 근무를 했으니 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좀처럼 입이 쉬지 않는 손일석이 나직하게 코까지 골았다.

‘도대체 저녁은 언제 먹는 거야. 밤에는 특별히 할 일도 없다는데, 오프라도 먼저 보내 주든지. 이러다 라면으로 저녁을 때워야 하는 거 아냐?’

꼬르륵! 꼬르륵!

배 속에서 난리가 났다.

등가죽이 배에 붙을 판이었다.

답답해진 김지훈이 병동 간호사에게 물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선생님들 저녁 언제 먹어요?”

“왜요, 배고프세요?”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어요.”

“지금쯤 오더를 거의 다 냈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은데요. 배고프시면 빵이라도 하나 드릴까요?”

“우리가 먹을 빵이 있어요?”

“환자분이 준 거니까 드셔도 되죠. 단, 걸리면 안 되는 건 아시죠? 1년차 선생님들 100일 당직 중에는 인턴 선생님들도 허락 없이 먹으면 안 돼요.”

인수인계 때 분명히 들었건만, 배가 고파 정신까지 혼미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인턴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아이고! 이러다 죽겠네.”

김지훈이 쓰린 배를 잡고는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간호사가 웃었다.

‘악어한테만 걸리지 않으면 되는데.’

물론 100프로 확신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오후 8시.

오더를 다 낸 정형외과 전공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1년차들이 드레싱 카를 끌고 병동으로 향했다.

“인턴 선생들, 밥 먹자.”

김대성의 목소리에 깜빡 졸던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손일석을 급히 흔들었다.

“일석아, 일어나.”

“으응, 왜?”

손일석이 잠에 취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늦었다.

“인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악어였다.

김대성이 못 들은 척하고 김지훈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구내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다. 저녁은 병원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집이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배까지 고파 더 춥게 느껴졌다.

종종걸음을 치던 김지훈이 뒤를 돌아보았다. 가장 배가 고플 1년차들이 안 보였다.

“김대성 선생님, 1년차 선생님들은요?”

“100일 당직이잖아. 못 먹어.”

이게 무슨 말인가?

잠도 모자란데, 밥도 못 먹게 한단 말인가?

“정말이요?”

“사람이 어떻게 안 먹고 살겠냐. 우리 앞에서 먹지 말고, 몰래 먹으라는 소리지. 지금쯤 알아서 먹고 있을 거야.”

100일 당직이 뭐기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군대도 훈련병에게 밥은 먹이는데, 이게 뭐야? 일반 외과나 신경외과도 100일 당직을 이렇게 서나?’

학생 때 듣긴 했지만, 당시에는 관심을 둘 일도 아니었고, 사실 소문이거나 과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공연한 걱정에 한숨을 푹푹 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밥을 먹을 때도 서열은 확실했다.

정형외과만이 아니라 모든 과가 그랬다. 4년차가 앉은 후에야 아래 연차들이 차례로 앉았고, 밥도 4년차부터였다. 인턴들의 자리는 당연히 문 쪽 구석이었다.

김치찌개 냄새에 침이 가득 고였지만, 구석에 앉아 밥이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오프인 전공의들이 소주 한잔할 때쯤에야 마지막 김치찌개가 나왔다.

시장기를 못 이긴 김지훈이 허겁지겁 밥 한 공기를 비웠을 때 악어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 당직이 너지?”

“예.”

“오프는 밥 먹고, 넌 가서 병동 킵(keep)해.”

아직 식사도 다 안 끝났다.

김지훈이 의아해하자 악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개기는 게 일이냐? 내 말 안 들려? 가서 병동 킵하라고. 김대성 선생님 모르게 조용히 나가라.”

“예.”

‘씨팔, 치사하게 먹는 걸로 괴롭히냐.’

김지훈이 인상을 쓰며 식당을 나왔다.

손일석이 갑갑한 눈으로 악어를 보았다.

‘씨발 새끼, 선배면 다냐.’

악어가 이를 지나칠 리가 없었다.

“넌 왜?”

손일석이 헤 웃었다.

“선생님, 오프는 밥 먹고 가면 됩니까?”

“그래, 갈 때 병동에 들러서 그 새끼한테 내일 아침 6시까지 회진 준비하라고 전해. 넌 그대로 오고.”

“예.”

손일석이 대답을 하며 젓가락을 찾는 것처럼 밥상 밑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악어를 향해 냅다 주먹 감자를 날렸다.

병동으로 향하던 김지훈도 갑자기 돌아서서 식당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렸다. 정말 치사하기 짝이 없었다.

“개새끼, 씨발 놈, X 같은 새끼.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아는 욕은 다 퍼부었다.

12시까지 멍하니 병동에 앉아 있던 김지훈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응급실보다는 편한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출근이 한 시간 당겨졌다.

1년차들이 드레싱 카를 끌고 병실을 돌아다닐 때 할 수 있는 회진 준비를 끝냈다. 간호사들의 업무 때문에 파트별 차트 정리만 하지 못했다.

김지훈이 악어 욕을 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오전 7시, 손일석이 출근했을 때는 이미 차트까지 파트별로 정리한 후였다. 악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며 실실 웃기만 했다.

‘개새, 씹새.’

있는 욕은 다 먹으니 아마 악어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 것이다.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정신없이 병실을 찾아 복도와 계단을 달린 김지훈이 수술실로 향했다. 예정된 수술에 응급 수술까지 겹쳐 하루 종일 눈코 뜰 사이조차 없었다.

오늘은 김대성이 속한 파트의 수술이 없었다.

수술은 대개 4명이 하는 것이 기본이다. 집도의 맞은편의 의사를 1st assistant라 부르고, 그 옆을 2nd, 집도의 옆이 3rd다. 당연히 1st가 집도의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서 수술 준비와 마무리를 모두 담당한다.

그런 1st 어시스턴트(assistant)가 모두 4년차들이었다.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더 고팠다.

연이어 이틀을 아침에 점심까지 건너뛰자 현기증까지 났다.

중간에 빵이라도 먹었으면 했지만, 매점에 갈 시간도 없었다. 간간이 물이라도 마셔 갈증을 면하는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어제보다 수술이 훨씬 늦게 끝났다.

인턴인데, 인턴인지 1년차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늦은 오후, 전공의 회진을 돌고 처음으로 밥 냄새를 맡았다. 손일석과 눈만 마주치고 밥에 코를 박았다.

김지훈이 게걸스럽게 세 공기를 해치웠다.

계란 프라이를 곁들인 김치찌개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꿀이 따로 없었다.

악어가 이죽거렸다.

“넌 뭘 그렇게 많이 먹어?”

사돈 남 말 하나?

앉은 자리에서 라면 5개에 밥까지 말아 먹는 악어가 할 말이 아니었다. 그것도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말이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 김지훈이 밥을 씹으면서 말했다.

“오늘 처음 밥 먹습니다.”

“말은 잘해요. 일은 너 혼자 하냐. 너보다 일 적게 하는 사람이 여기 어디 있어? 이 새끼야, 당직은 그만 먹고 가서 병동 킵(keep)해.”

딱 한 그릇을 비운 손일석이 악어를 째려보며 나갔다.

“넌 다 먹었으면 오프 가.”

악어가 웬일이지?

김지훈이 도리어 당황했다.

오프라도 한두 시간은 붙잡아 둘 줄 알았다.

부리나케 숙소로 향하는 김지훈을 보며 악어가 썩은 미소를 날렸다.

악어가 찍은 이상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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