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원칙대로 하자 (1)
간호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정형외과가 그렇긴 해요. 사실 저희들도 들어가기 싫거든요.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간호사가 시암에 전원을 넣으며 On 스위치를 가리켰다.
“스태프 선생님이 슛하면 온을 누르세요. 그러면 불빛이 비추는 곳의 영상이 바로 모니터에 1초 정도 떠요.”
“해 봐도 될까요?”
간호사가 수술용 침대에 달린 팔걸이 위에 가위 하나를 놓았다.
“여기가 수술 부위라고 생각하시고 해 보시면 돼요. 그리고 시암에서 나오는 방사선 양이 엄청나게 높으니까 슛하시기 전에 차폐복부터 입으세요.”
“어디 있죠?”
간호사가 수술실 한쪽에 놓인 차폐복을 가리켰다.
마치 긴 앞치마처럼 생겨 몸만 보호할 수 있지만, 속에 든 납판으로 인해 상당히 무겁고 묵직했다.
김지훈이 차폐복을 입자 간호사가 서둘러 나갔다.
방사선에 노출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 10분만이에요.”
‘이것도 일종의 방사능 노출이네. 몇 번만 해 보고 가자.’
김지훈이 전원을 켰다.
시암의 팔 위쪽에서 십자 선이 그려지는 불빛이 나왔다.
십자 선 중앙에 가위를 놓고 On 스위치를 누르자 가위가 까만 음영으로 영상에 나타났다.
이리저리 가위를 옮기며 연습한 김지훈이 차폐복을 벗었다. 능숙해지기에는 턱도 없었지만, 이미 10분이 지났고, 더 이상 방사선에 노출되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차폐복이 꽤 무거워 냉기가 도는 수술실에서도 땀이 났다.
“고마워요.”
김지훈이 지나가며 인사를 하자 수술실 입구까지 간호사가 따라 나왔다.
‘왜 따라오지?’
은근히 신경이 쓰인 김지훈이 곁눈질로 간호사를 보았다.
마스크 위로 눈만 보였지만, 무척이나 예뻤다.
그런데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이상하네. 지나가다 우연히 본 적이 있나?’
수술실 입구에서 간호사가 인사를 했다.
“가세요.”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김지훈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안녕히 계세요. 오늘 고마웠습니다.”
곧 자동문을 안에서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본관 3층에는 수술실만 있어 수술을 위해 출입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밤에는 간호사들만 당직을 서는 탓에 반드시 문단속을 해야 했다.
‘저 간호사, 눈 정말 예쁘네.’
김지훈이 슬며시 웃었다.
간호사들의 친절과 예쁜 눈빛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물론 그뿐이긴 했다.
눈빛 하나 예쁘다는 것으로 마음이 끌릴 리도 없지만, 지금은 여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정형외과부터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
월요일 오전 7시.
정형외과에서의 첫날이 시작됐다.
파트별로 차트를 따로따로 정리하고, 데일리(daily:입원 환자 목록표)를 각 파트 인원수에 맞춰 준비했다.
이제 막 입원 환자 드레싱(Dressing:상처 소독)을 끝낸 1년차들이 회진 준비를 하는 사이 이삼 년차들이 나타났다. 그제야 허겁지겁 손일석이 병동으로 뛰어왔다.
악어가 손짓을 했다.
“넌 왜 이제 와?”
“죄송합니다. 응급실 근무 때문에 늦었습니다.”
“오늘만 봐준다. 앞으론 조심해. 누가 병동이야?”
“제가 병동이고, 김지훈이 수술실입니다.”
김지훈을 보는 악어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네가 수술실이야? 알았어. 니들 근무는 원칙대로 할 거다. 오프는 저녁 식사 후에 가고, 당직은 12시까지 병동 킵(Keep)해. 잘 때도 확실하게 어디서 자는지 알리고.”
웬일인지 더 이상 별다른 말이 없었다.
가 보라는 손짓을 한 악어가 3년차와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손일석이 의아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왜 저러지?”
“그러게, 원칙대로 하자니까 더 불안하네. 넌 괜찮아? 꼴이 말이 아니다.”
“밤새 뺑이 쳤다. 졸려 죽겠어.”
김지훈이 할 말이 많다는 듯 인상을 구기는 손일석을 툭툭 쳤다. 정갑수와의 마지막 근무를 했으니 안 봐도 비디오였다.
4년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 연차들의 긴장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인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중요 환자와 신환들의 X-ray를 확인한 후 전공의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이때 인턴의 임무는 전공의들에 앞서 미리 병실 문을 열고 대기하는 것이었다.
데일리를 보고, 회진을 도는 파트 환자의 병실을 확인한 후 그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업무였다. 대신 인턴은 둘인데, 파트가 넷이라 요령껏 움직여야 했다.
사실 요령이라 할 것도 없었다.
무조건 서열 순이었다.
과장과 바로 아래 교수가 동시에 회진을 도는 경우 인턴이 한 명이면 과장 파트를 돌면 됐다. 4년차 회진도 담당 파트 교수의 서열을 따르면 문제가 없었다.
회진이 끝나자 병동 스테이션 앞이 하얀 가운들로 가득했다. 4년차까지도 다소 긴장된 자세로 스태프들을 기다렸다.
오전 8시.
정형외과 과장의 회진이 시작됐다.
김지훈이 재빨리 첫 번째 환자의 병실 문으로 열었다.
4년차가 과장과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3년차, 2년차, 1년차에 PK 4명과 간호사까지 뒤를 따랐다. 도합 10명이다. 좁은 병실이 의사들로 꽉 찼다.
병실에 못 들어가는 의사는 단 한 명 인턴뿐이었다.
어깨너머로 회진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다음 병실을 향해 발소리를 죽이며 뛰었다. 재빨리 문을 열고 기다리자 잠시 후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똑같은 모습이 반복됐다.
정형외과 주병동인 7층의 회진이 끝났지만, 8층에 입원한 몇몇 환자들의 회진이 남았다. 과장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김지훈이 재빨리 계단을 뛰어올랐다.
스테이션에 환자 차트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한 후 병실 앞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과장이 복도에 설치된 뷰 박스 앞에 서자 1년차가 환자 X-ray를 찾아 걸었다.
환자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가는 데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인턴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문을 열다 보니 어느새 과장 파트 회진이 끝났다.
전공의들이 일제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과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과장을 피해 적당히 시간을 맞춰 올라온 다음 스태프의 회진이 이어졌다.
과장의 회진으로 시간이 늦어진 탓에 다들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스태프와 해당 파트 전공의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구둣발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덩달아 김지훈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뛰고,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모든 회진이 끝났다. 병동 복도에 냉기가 돌았지만, 김지훈의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슬며시 차오르는 숨에 김지훈이 나직하게 숨을 내뱉었다.
오전 8시 50분.
“선생님, 수술실 가 보겠습니다.”
정형외과 총치프(chief:과장 파트 4년차)에게 인사를 한 후 계단을 따라 3층으로 달렸다. 정형외과 인턴이 이 시간대에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였다.
걸리면 조인트 까질 각오는 해야 했다.
‘바쁘다, 바빠.’
가쁜 숨을 내쉰 김지훈이 후다닥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 환자 대기실로 향했다. 오피 스케줄(operation schedule)을 확인하고 해당 환자를 찾았다.
‘첫날부터 인상 구길 수는 없지. 이왕 하는 일, 항상 즐겁게 하자.’
그렇다고 수술을 앞둔 환자 앞에서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적당한 톤의 목소리로 환자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제 수술실로 들어갈게요.”
잔뜩 긴장한 환자가 고개만 끄덕거렸다.
“긴장하지 마세요. 금방 끝날 겁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환자가 불안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스트레치 카를 밀고 수술실로 들어가자 김대성과 최성훈이 있었다. 첫날 첫 수술의 시작이 좋았다.
“환자 왔습니다, 선생님.”
“왔어? 옮기자. 다리 수술할 환자니까 다리 쪽 조심하고. 하나, 둘, 셋.”
셋과 함께 다리에 스프린트(splint:깁스)를 댄 환자를 동시에 번쩍 들어 수술 테이블로 옮겼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부위는 원래 무게보다 훨씬 무거워진다. 술에 취해 축 늘어진 사람을 업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나오는 결론이다.
당연히 가장 무거워지는 부위인 다리 쪽은 인턴인 김지훈의 몫이었다. 게다가 다리가 하나인가? 두 손으로 각각 다른 다리를 잡고 옮겨 보면 절로 ‘끙’ 소리가 난다.
김지훈도 마찬가지였다.
“끙!”
환자가 수술대로 옮겨지자 본격적인 수술 준비가 시작됐다.
마취가 시작됐다.
“자! 환자분, 마취 시작합니다. 숨을 크게 쉬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그래야 마취가 잘됩니다.”
굵직한 목소리였다.
적당한 체격에 얼굴이 다소 까만데도 불구하고 새까만 뿔테가 잘 어울렸다. 나이가 꽤 있어 보였지만,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간호사, 환자분 바이탈(vital)은 괜찮은가?”
“정상이에요.”
“그럼 시작하지. 마스크.”
환자의 얼굴에 마취용 마스크를 씌운 후 정맥 마취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환자분,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 보세요.”
“하나, 둘…….”
“젊은 사람이 빨리도 가시네. 석시닐(succinylcholine:근육 이완제)주고, 스코프.”
김지훈이 유심히 인투베이션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뭔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역시 고수다.’
인투베이션을 한 직후 호흡 마취가 이어졌다.
잠시 후, 수술 허락이 떨어졌다.
“김대성 선생, 수술 시작하지.”
“예, 감사합니다.”
둘이 죽이 잘 맞는지 오고 가는 목소리가 활달했다.
환자 우측 다리에 댄 스프린트를 제거한 김대성과 최성훈이 소독 액으로 손을 깨끗이 씻고 수술실로 돌아왔다.
환자 다리를 소독할 차례가 됐다.
김지훈이 목과 어깨를 돌리며 준비했다.
‘남자는 힘!’
우측 다리 위쪽에 베타딘(betadine:소독액)을 잔뜩 칠한 김대성이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선생, 들어.”
간호사에게 소독된 거즈를 받아 든 김지훈이 발가락에 거즈를 걸고 다리 전체를 들어 올렸다. 예상은 했지만, 축 늘어진 다리가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끙!”
“조금만 참아.”
다리 뒷면을 모두 소독하고 드랩(drap:소독된 천으로 환부 주변을 덮는 과정)을 하기까지 5분 이상이 걸렸다. 게다가 발가락 2개에 건 거즈로 다리 전체를 지탱하며 높이까지 유지해야 했다.
김지훈의 얼굴이 뻘게지며 ‘끙’ 소리가 또 터졌다.
불과 5분도 안 돼 손이 달달 떨렸다.
슬슬 다리가 내려가자 김대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선생, 낮아진다.”
“예.”
마지막 힘을 다해 다리를 10센티미터 정도 더 올렸다.
“됐어. 내려.”
김지훈의 입에서 훅 하고 숨이 터졌다.
어느 틈엔가 수술을 집도할 스태프가 준비를 마치고 들어와 있었다. 김지훈이 얼른 인사를 했다.
“새로 온 인턴인가?”
“예, 인턴 김지훈입니다.”
“이 환자 시암 써야 하는데, 연습은 했나?”
“예.”
“두고 보자.”
집도의인 스태프가 환자 우측에 앉자 맞은편에 김대성과 최성훈이 앉았다. PK(임상 실습생:전반기에는 본과 4학년)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집도의 옆에 자리했다.
“메스.”
수술 부위의 피부를 절개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이 김대성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수술을 지켜보았다.
곧 정형외과 수술 특유의 소리가 들렸다.
땅땅땅! 위이이잉! 탁탁탁탁!
망치가 날고, 드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았다.
‘정말 목공소가 따로 없네.’
정형외과 의사들도 가끔 스스로를 목수라고 부른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김지훈이 수술 도구를 보았다.
망치, 끌, 줄, 쇠톱, 다양한 크기와 굵기의 나사와 철사, 드릴, 십자 드라이버, 쇠로 된 뼈를 고정하는 도구들.
그대로 가져가 목공소를 차려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외과를 지망하지만 학생 때부터 이상스럽게도 정형외과 수술에는 흥미가 가질 않았다. 자연히 따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취과를 도는 동기가 들어왔다.
김지훈이 눈치를 보며 슬쩍 환자 머리 쪽으로 움직였다.
“종석아.”
“지훈이구나. 정형외과야?”
“응.”
“얘기 들었어. 힘들겠다. 악어한테 걸렸다며?”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악어와의 일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하긴 손일석이 아는 순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됐어. 그런데 여기 있던 선생님은 누구야?”
“김진호 선생님? 8년 선배님인데, 올해 2년차셔. 개업했다가 들어오셔서 늦었다고 그러더라. 왜?”
“그런데 왜 못 봤지? 마취를 거시는데 환자에게 숫자도 세라고 하시고, 되게 유쾌하시던데. PK 돌 때 그런 마취과 선생님은 못 봤잖아.”
“맞아, 정말 좋은 선생님이야. 유머도 많고.”
박종석 덕에 시간은 잘 갔다.
요란한 수술 소리에 목소리가 묻혀 더욱 안전했다.
갑자기 수술실이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