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화 (10/1,329)

제5화 생과 사의 경계 (2)

“오늘도 꼬박 날 샜네. 솔직히 힘들다.”

메이저 과인만큼 내과 트레이닝도 외과 못지않았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전진우가 하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그 순간 모니터기가 요란한 소리를 질러 댔다.

띠띠띠띠띠띠띠!

박동 수를 셀 수도 없었다.

“간호사, 브이티(VT)다. 전기 충격 준비해.”

김지훈이 깜짝 놀라 모니터를 보았다.

심전도가 정상적인 형태를 잃고 마치 줄지어 서 있는 산처럼 삐죽삐죽하게 보였다.

심실세동(VT:Ventricular Tachycardia)!

심장이 바르르 떨기만 해 펌프 역할을 잃고 단순한 피 주머니로 변했다는 신호였다. 어레스트(심장 정지) 직전 단계다.

전기 충격을 가해 정상적인 전기 신호를 유지시키지 못하면 곧바로 사망하는 것이다.

두 번째 어레스트가 오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상황이 급박해졌다.

전진우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300주울. 슛!”

펑! 털썩!

환자의 몸이 튀어 오르며 스트레치 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곧바로 김지훈이 심장 압박을 가했고, 간호사가 앰부를 쥐어짰다. 모든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띠띠띠띠띠띠띠.

심전도 그래프는 변화가 없었다.

모니터기에 표시되는 박동 숫자가 치솟으며 200을 넘었다.

“300주울. 슛!”

펑! 펄썩!

전기 충격이 이어졌다.

심장에 필요한 약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투여됐다. 그러나 환자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지훈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제발 돌아와라.’

김지훈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섬뜩한 소리가 다시 울렸다.

삐이이이이.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심폐 소생술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30분이 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제 환자의 심장은 완전히 멈췄고, 압박을 가할 때만 심전도의 변화가 보였다.

결국 전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자.”

“선생님!”

“지훈아,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

“선생님, 이제 30분밖에 안 됐습니다.”

김지훈이 무척이나 절박했다.

살아서 내원한 사람이었다. 부인과 딸은 환자가 죽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김지훈도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도 이렇게 가셨겠지. 안 돼, 힘내요. 부인과 딸이 있잖아요. 제발 살아서 나가야 합니다.’

김지훈이 심장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전진우의 말에 앰부를 놓던 간호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앰부 안 하고 뭐 해! 계속해! 선생님, 30분만 더 주세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사망 선고는 어떤 의사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환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와 다름이 없었고, 전진우에게도 당연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했다.

전진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 보자.”

“고맙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앰부.”

“300주울. 슛!”

펑! 털썩!

모니터에 직선 하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전기 충격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심장이 조금이라도 스스로 움직여야 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김지훈이 깍지 낀 두 손에 온몸의 무게를 실었다.

우두둑! 우두둑!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환자의 늑골 몇 개가 부러졌다.

그깟 늑골이 문제인가!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30분이 더 흘렀다.

전진우가 조용히 빠져나가 보호자를 만났다.

부인과 딸의 절망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남자가 중환자실도 못 올라가 보고 응급실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안 돼!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합니까? 남아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제발 힘내요, 제발!’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이미 한 시간이 넘게 심장 마사지를 했다.

허리와 어깨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으로 인해 환자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환자가 살아서 내원했다는 사실만이 떠올랐다.

환자의 심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호흡도 박동도 사라졌고, 동공마저 완전히 열렸다.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김지훈이 환자의 가슴에 두 손을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이제 정리할까요?”

김지훈은 간호사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독한 무력감만이 감돌았다.

8시 50분이다.

근 3시간 동안 심폐 소생술을 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보자 벌떡 일어나는 보호자의 눈길을 피한 김지훈이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전진우가 보이지 않았다.

웬일인지 이혁민 교수가 아직도 응급실에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힘없는 목소리에 이혁민 교수가 잠시 김지훈을 보다 차트를 내밀었다.

“지금 몇 시고?”

“8시 50분입니다.”

“환자 사망 시간이다. 차팅하고 보호자에게 알려라.”

“예? 선생님, 그건 전진우 선생님이…….”

“환자를 끝까지 본 사람은 김지훈 선생 바로 니다.”

책임을 지라는 말이 아니었다. 왜 사망했는지 설명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하기에 더욱 힘든 말일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차트를 집었다.

Expire(사망) at AM 8:50.

가슴이 시려 왔다. 마치 자신의 손으로 환자를 죽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혁민 교수의 말대로 보호자에게 통보를 해야 할 의사는 김지훈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보호자를 찾았다.

“8시 50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인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딸이 울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원망이라도 했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지훈의 눈가가 벌게졌다.

수간호사가 이혁민 교수를 보며 물었다.

“부장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뭐가?”

“응급실 돈 지 3주도 안 됐는데, 보호자에게 사망 선고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더구나 첫 텀이고요. 김지훈 선생님 표정도 굉장히 안 좋아 보이네요.”

“그게 무슨 문제고?”

“최소한 이런 적은 없으셨잖아요.”

“김지훈 선생도 의사다. 그리고 수 선생은 시피알(CPR)을 3시간이나 하는 선생 봤나? 의사도 사람인 이상 몸이 힘들어서라도 못한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잘 이겨 낼 기다.”

수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김지훈이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보호자 앞에서 멍하니 선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김지훈 선생, 나 좀 보자.”

당직실에 있던 손일석과 정갑수가 눈치를 보다 자리를 비켰다.

“앉아라.”

“괜찮습니다.”

“힘드나?”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들었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힘들기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 아프겠지. 나도 처음에 그랬다. 하지만 의사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고, 당연히 이겨 내야 한다. 왜인 줄 아나?”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어떤 직업보다도 한계가 명확하지. 그 한계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니나 나나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 김지훈 선생은 훌륭하게 환자를 봤다. 누가 봤어도 그 환자는 살릴 수 없었다는 말이다. 수고했다.”

정말 그럴까?

실력이 모자랐던 탓은 아닐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김지훈의 어깨를 두드린 이혁민 교수가 당직실을 나섰다.

“오늘 오프제. 과제 하나 주마.”

“과제요?”

이런 상황에서도 과제를 준다는 말에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소주 한잔하고, 내일 아침에는 평상시와 똑같은 얼굴로 와야 한데이. 그게 내가 주는 과제다.”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고맙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리포트가 없으니까 좋은 모양이구나. 인투베이션은 어떻게 했노? 이빨 안 부러지게 잘했나.”

“다행히 안 부러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주신 리포트 덕분입니다. 그리고 운도 좋았습니다.”

“그게 리포트 덕이가. 운이겠지. 대개 한 번 성공하면 다음번은 우습게 여기는데, 니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그럴 때 사고가 난다.”

“명심하겠습니다.”

이혁민 교수를 본 수간호사가 쪼르르 달려왔다.

“부장님, 외래에 환자가 잔뜩 밀렸대요.”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인턴 선생 때문에 내도 바빠지네.”

쓰윽 김지훈을 보며 응급실 문을 여는 이혁민 교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도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의사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이어 줄 수 있다. 그렇기에 웃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응급실을 나온 김지훈이 공중전화 부스로 향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찾은 10원짜리 2개를 전화 위에 놓은 김지훈이 전화기를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저예요. 잘 지내셨죠? 오늘 무척 힘드네요. 사람을 한 명 죽였거든요.”

(…….)

“정말 살리고 싶었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거든요. 교수님 말씀대로 의사의 한계일까요? 이겨 내라고 하시지만 한동안 잊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야 의사가 됐다는 걸 실감했어요. 환자가 죽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다니, 이상하죠?”

(…….)

김지훈의 눈가가 또 벌게졌다.

“듣고 계시죠? 말씀 안 하셔도 듣고 계신 줄 다 알아요. 그냥 이 말만 하고 싶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저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게요.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합니다.”

(…….)

뚜뚜뚜뚜!

통화 대기 시간이 지났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운 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짧았다.

김지훈이 전화를 끊으며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나직한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돌아서다 말고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예쁜 여인이었다.

“죄송합니다.”

급히 고개를 숙이며 부스를 나온 김지훈이 병원으로 향했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돈 놓고 가셨어요.”

김지훈이 못 들은 척했다.

전화기를 붙들고 혼자 웅얼거렸으니 미친놈 취급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간만의 평화였다.

리포트도 없고, 으레 라면을 먹으러 인턴 숙소를 찾던 악어도 보이지 않았다. 잠자리가 뒤숭숭하긴 했지만, 제법 오래 눈을 붙였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술 한잔할 동기들을 찾았지만 이제 7시였다. 하필이면 주당들은 아직 퇴근 전이거나 일이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가고, 누군가는 데이트를 앞두고 한껏 기분이 고조돼 있었다.

침대에 누워 턱을 괸 채 하나둘 사라지는 동기들을 보던 김지훈이 잠바를 꺼내 입었다. 아직은 바깥 공기가 꽤나 쌀쌀했다.

‘소주나 한잔해야겠다.’

꿀꿀한 기분에 김지훈이 무작정 병원을 나섰다.

어디선가 고소한 골뱅이 냄새가 났다.

어느 틈엔가 학생 때 즐겨 찾았던 포장마차 앞에 서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지훈이구나. 오래간만이네. 그동안 왜 이렇게 안 보였어? 골뱅이 안 팔아 줘도 좋으니까 자주 놀러 와. 이러다 얼굴 잊어 먹겠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잔뜩 걸렸다.

“죄송해요, 이모. 그리고 나 이제 인턴이에요.”

“어머! 그렇구나. 미안, 미안. 호호호! 소주 한 병은 서비스! 골뱅이 한 접시?”

“골뱅이만 파시면서 맨날 물어보세요.”

한 접시에 5천 원이었다.

아직 월급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지갑 속에 든 만 원짜리 한 장을 확인한 김지훈이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목구멍서부터 식도까지 짜릿했다.

차가운 날씨에 시원한 소주를 걸치자 절로 몸이 떨렸지만 정말 술이 입에 달라붙었다. 속이 금방 후끈해졌다.

“캬! 좋다. 간만에 먹으니까 술이 확 올라오네요.”

“술 센 거 세상이 다 아는데, 별소리를 다 하네. 그런데 왜 오늘은 혼자야?”

“다들 일하죠.”

“지훈이 너는? 아이고! 이젠 의사 선생님인데 이름 불러도 되나?”

“그럼요. 우리 이모잖아요.”

“이제 막 인턴 시작했는데, 응급실이면 정말 힘들겠네. 조금만 마셔. 괴롭히는 선배는 없고?”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수많은 선배들을 본 포장마차 주인도 웬만한 과는 훤히 꿰차고 있었다.

“왜요, 이모가 혼내 주실래요?”

“말만 해. 우리 지훈이 괴롭히는 놈이 누구야?”

김지훈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는 속삭였다.

“악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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