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화 (9/1,329)

제5화 생과 사의 경계 (1)

병동으로 옮겨지는 환자를 보며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악어라는 인간이 있지만, 정형외과도 나름 매력이 있었다.

‘대퇴골두로 들어가는 동맥이 하나뿐이라 탈구가 되면 뼈가 썩을 수도 있단 말이지. 그래서 한 시간 이내에 정복을 해야 안전하고. 개방성 골절 말고는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일도 있구나. 아는 게 너무 없어서 큰일이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창피가 아니었다.

김대성에게 묻지 않았다면 고관절 탈구가 어떤 질환인지 몰랐을 것이다. 한참 잠이 몰려올 새벽이었지만 김대성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오늘 또 하나를 배우고, 환자도 잘 치료됐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악어와의 일도 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신경 쓰면 나만 손해지. 악어는 악어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중얼거린 김지훈이 침대에 누웠다.

솔솔 졸음이 몰려왔다.

3시간 후면 오프다.

그때까지 정갑수가 환자를 봐주기만을 바랐다.

똑똑!

누군가 노크를 하며 방문을 열었다.

열서너 살쯤 되는 소녀였다.

얼굴 생김새가 다운 증후군을 암시했다.

김지훈의 숨이 턱 막혔다.

해부학 시간에 자신의 손으로 해부한 까다바(Cadavar:해부를 위해 기증된 시신)의 얼굴이었다.

해부학 실습 첫날 소녀가 찾아왔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다 말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똑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2명의 건장한 남자였다.

D.O.A.

그들도 말없이 김지훈만 바라보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미안했다.

김지훈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정말 보고 싶은 이들이 있었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똑똑똑!

설마 그렇게도 기다리던 사람들인가?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파리한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이었는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선생님, 환자예요. 급해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노크 소리는 현실이었다.

급히 찬물에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린 김지훈이 가운을 걸쳤다. 간호사가 뛰어왔을 정도면 매우 위중한 환자일 것이다.

중년의 남자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정갑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

“무슨 환자예요?”

“몰라, 가슴이 아프대.”

“가슴이요?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환자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가슴만 쳤다.

“여기, 여기가 아프다구.”

창백한 안색에 호흡마저 불규칙했다.

부인과 딸로 보이는 여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보호자분, 어떻게 된 거죠?”

“어제 명치끝이 아프다며, 체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배가 많이 아픈지 잠도 못 주무셨고요.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쉬네요.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급성 위경련?

아주 심하면 이런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김지훈이 차트를 보았다.

혈압이 낮았고, 맥박이 몹시 빨랐다.

단순하게 볼 증상이 아니었다.

“간호사, 여기 수액 달고, 심전도 빨리 찍어요. 갑수 형, 내과에 노티 좀 하세요. 급해 보입니다.”

“알았어.”

정갑수도 환자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급히 전화기로 달려갔다.

“여기 한 명 더 와요. 산소 풀(full)로 주고, 심전도 모니터링합시다. 루틴 랩 내보내고, 비지에이 준비해요. 포터블 부르고.”

“선생님, 우리 아빠 괜찮으신 거죠?”

병력 청취를 제외하고는 보호자들은 환지 치료에 절대 도움이 안 된다.

“보호자분들은 일단 나가 계세요.”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였고, 김지훈은 환자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환자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내 말 들려요?”

“으으응!”

대답을 하는 건지, 신음 소리를 내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김지훈이 심전도를 받아 들며 모니터를 보았다.

띠띠띠띠띠.

맥박 수는 분당 140회가 넘었고, 혈압은 올라가지 않았다. 호흡마저 불규칙해졌다.

‘설마 엠아이(Myocardiac Infarction:심근 경색)?’

임프레션(임시 진단)이 맞다면 초응급 상황이었다.

“갑수 형, 내과 노티 됐어요?”

“금방 내려온대.”

정갑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전도 모니터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삐이이이!

높낮이가 없는 섬뜩한 단일 음이었다.

심전도 그래프가 직선으로 변했다.

김지훈이 소리를 질렀다.

“어레스트(arrest:심장 정지)! 인투베이션 준비해!”

“어레스트!”

간호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아래턱을 위로 추켜올려 기도를 유지하던 김지훈이 왼손으로 스코프(scope)를 받아 들었다. 무지막지해진 환자의 턱 힘에 오른손이 달달 떨렸다.

환자의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입을 벌리려 할수록 힘을 더 주었다.

마지막까지 보이는 본능적이 저항이었다.

입을 벌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K때 눈으로만 본 것이 다였지만, 반드시 해내야 했다.

김지훈이 환자의 양 볼을 강하게 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설압자!”

이빨 사이가 살짝 벌어졌다. 그 사이로 나무로 된 설압자 2개를 우겨 넣었다.

그러나 스코프가 들어갈 공간이 부족했다. 양 볼에 더욱 힘을 가하며 설압자 사이로 설압자를 밀어 넣었다.

환자의 입이 벌어졌다.

김지훈이 스코프를 입안으로 넣었다.

아래턱을 들어 올려야 성대를 볼 수 있다.

환자가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왼손으로는 턱을 들어 올린 스코프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

“갑수 형, 입이 더 벌어지게 양쪽 볼을 강하게 눌러요.”

정갑수의 힘이 더해지자 입안에 약간의 공간이 더 생겼다.

스코프 날에 혀가 말려 시야를 가렸다.

“조금만 버텨요.”

스코프를 움직여 혀를 한쪽으로 몰자 목구멍이 보였다.

숨을 쉴 때마다 거품이 생겨 성대가 보이지 않았다.

“석션(suction:흡입).”

찌이익! 찌이익! 출렁!

가느다란 튜브를 통해 침과 거품이 석션 통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제야 삼각형 모양의 성대가 보였다.

“튜브.”

튜브를 성대 사이로 넣었다. 김지훈이 물러나자 간호사들이 재빠르게 튜브를 고정하고, 앰부(ambu)를 끼웠다.

“앰부 해 봐요.”

슈우욱! 슈우욱!

양측 폐에서 공기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인투베이션을 한 것이다.

식은땀이 났다. 기도를 확보하고 호흡을 유지했지만, 가장 중요한 심장이 죽어 있다.

‘시피알(CPR:심폐 소생술)을 해야 하는데.’

환자의 가슴을 강하게 압박하려면 위에서 눌러야 한다. 어느새 간호사들이 침대 옆에 발판을 가져다 놓았다. 발판 위에 올라선 김지훈이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앰부.”

일곱 번의 압박 후 두 번의 강제 호흡이 가해졌다.

창백했던 환자의 혈색이 꺼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너무 늦은 걸까?

김지훈이 이를 악물고 다시 가슴을 압박했다.

환자의 몸이 격하게 흔들렸지만, 모니터기는 ‘삐이이’ 소리만 냈다. 피 같은 시간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흘렀다.

그때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내과 1년차 전진우였다.

“전기 충격 준비해요. 에피네프린 하나, 아드레날린 하나, 비본 2개 믹스해요. 김지훈 선생, 뭐 해? 계속해.”

김지훈이 마사지를 하는 동안 수액을 따라 온갖 주사제들이 환자의 혈관에 흘러들었다.

제세동기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얼마부터 시작해요?”

“200주울(joul).”

‘삐’ 소리가 울리며 충전이 되었음을 알렸다.

“모두 손 떼고 물러나. 모니터 줄 빼고. 슛!”

털컥! 쿵!

전기 충격이 가해지자 환자의 상체가 강하게 움직였다.

푹푹푹푹푹푹푹! 부욱! 부욱!

김지훈이 강하게 심장을 압박했다. 앰부로 공기를 불어넣자 저항을 못 이겨 새어 나오는 공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심장은 뛰지 않았다.

“250줄 준비.”

털컥! 쿵!

환자의 몸이 격렬하게 튀어 올랐다.

삐이이이!

섬뜩한 경고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300줄.”

마지막 단계까지 갔다.

가장 강한 충격에 환자의 상체가 꺾일 듯이 거칠게 요동쳤다. 전기 충격을 받은 부위가 화상으로 벌겋게 변했다.

김지훈이 심장 마사지를 하며 긴장된 눈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길게 이어지던 직선이 갑자기 굴곡을 보였다.

띠, 띠, 띠, 띠, 띠.

심장이 다시 뛰었다.

섬뜩한 소리가 사라지고, 규칙적이면서도 일관된 소리가 들렸다. 정상적인 모습을 잃었던 심전도가 정상적인 패턴을 보였다.

살았다!

김지훈이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최악의 상황을 막은 전진우가 곧바로 각종 검사와 필요한 처치를 내렸다.

“김지훈 선생,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 다시 해. 간호사, 여기 루틴 랩(routine Lab) 내보내고, 산소 포화도 측정해요. 정갑수 선생님, 앰부 좀 하세요.”

정갑수가 군말 없이 즉시 앰부를 잡았다.

환자의 호흡이 약간씩 돌아오자 앰부를 할 때마다 공기가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환자의 혈색까지 돌아오기 시작했다.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한 전진우가 돌아와 비지에이와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여기 비본 2개 더 주고, 중환자실 베드 준비되는 대로 환자 바로 옮깁시다.”

매서운 눈으로 모니터와 검사 결과를 살핀 전진우가 이제야 환자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어느새 정갑수는 사라지고 김지훈이 앰부를 잡고 있었다.

호흡에 맞춰 앰부를 하자 환자의 혈색이 한결 좋아졌다.

“그렇지, 앰부는 환자의 호흡에 최대한 맞춰 하는 게 원칙이야. 그런데 인투베이션은 누가 했어?”

“제가 했습니다.”

“해 본 적 있어?”

전진우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없습니다.”

“그래? 이런 환자 인투베이션 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제때 잘했네. 이빨도 안 부러지고 말이야. 수고했어.”

사실 이혁민 교수 덕분이었다. 비록 이론이지만 인튜베이션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단단히 숙지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뿌듯했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정신없이 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어요. 환자는 괜찮을까요?”

“두고 봐야지. 이대로 돌아오면 좋지만, 어레스트 한 번 더 오면 힘들다.”

아직은 긴장을 풀 때가 아니었다.

“선생님, 비본이 뭐예요?”

“바이카보네이트(Bicarbonate)야. 어레스트가 오면 몸이 빠르게 산성화돼. 이걸 방치하면 다른 장기들이 모조리 나갈 수가 있어. 그렇게 되면 심장을 살려도 결국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비지에이를 하는 이유는, 산소 포화도만 보려는 게 아냐. 페하(ph)도 봐야 해. 산성도가 심하면 알칼리인 비본을 3개까지 투여해도 돼.”

“그러면 에피하고 아드레날린은 심장 때문에 주고, 비본은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간호사가 소변 줄을 가져왔다. 앰부를 전진우에게 넘긴 김지훈이 소변 줄을 끼우고는 소변을 체크했다.

“잘 나와?”

“잘 떨어지기는 하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요?”

“시간당 30시시만 나오면 괜찮아. 떨어지는 속도를 보니 시간당 50은 넘게 나오겠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대충 감이지만, 수액 투여량 계산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어? 일단 뚝뚝 잘 떨어지면 괜찮은 거야.”

“25가트(Gatt:분당 수액 방울이 떨어지는 수)면 시간당 100시시니까 정말 대충 맞겠네요.”

전진우가 김지훈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안 졸려? 시피알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가서 자.”

“환자 올라가는 거 보고 잘게요. 어차피 오늘 오프라 실컷 잘 텐데요, 뭐. 선생님도 심심하시잖아요.”

“자식!”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전진우는 환자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어느덧 시계가 새벽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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