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가혹한 한 주 (2)
엉덩이에서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온 힘을 다 실은 모양이었다.
‘씨발, 진짜 쇠파이프로 때리는 거야? 악어, 넌 선배도 아니다.’
이빨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 새끼야, 죽기 싫으면 이빨 꽉 물어. 소리 날 때마다 한 대씩 추가다.”
악어의 말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번 일이 독기를 품을 만한 일인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배는 선배의 분풀이 대상이 아니다. 매질은 더더욱 아니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김지훈이 일어났다.
“뭐야? 너, 지금 개기는 거야? 1년차 저 새끼도 개기더니 이 새끼도 그러네. 오늘 니들 잘 걸렸어.”
악어가 가운을 벗어 던졌다.
1년차가 눈짓을 했지만 김지훈이 도리어 악어를 노려보았다. 이런 상황을 참고 넘긴다면 도리어 꿈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몽둥이를 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새끼 봐라. 선배한테 덤비는 새끼에겐 말이 필요가 없어. 엎드려, 아니면 죽는다.”
김지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를 못 이긴 악어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김지훈도 주먹을 쥐었다.
그때 의국 문이 열리며 김대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재빨리 몽둥이를 뒤로 감춘 악어의 표정이 돌변했다.
싹싹한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제가 미리 1년차하고 인턴을 교육시키던 중이었습니다. 이 자식이 자꾸 거짓말을 하네요.”
“무슨 거짓말?”
“오더도 없이 수처를 했답니다. 제 딴에는 1년차를 도와준다고 하는 것 같은데, 잘못은 확실하게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자식이 정형외과를 우습게 보는데요.”
김대성이 김지훈과 1년차를 번갈아 보았다.
이미 김지훈이 맞았다는 것을 한눈에 파악했다.
“인턴 말이 맞아. 내가 다 확인했어. 그리고 인턴 교육은 내가 시킨다고 분명히 말했지.”
“예,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내 말에 토 다는 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후배들에게는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악어가 선배인 김대성 앞에서는 쩔쩔맸다. 어디나 그런 유의 인간들이 있었고, 의사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1년차 교육이나 잘 시켜. 1년차 너도 노티 받으면 잽싸게 내려가고.”
잠시 악어를 노려본 김대성이 김지훈을 불렀다.
“인턴 선생, 따라와.”
의국을 나온 김대성이 1층으로 내려가 매점으로 갔다.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없이 음료수 2병을 산 김대성이 하나를 내밀었다.
“마셔.”
“괜찮습니다.”
“너 주려고 하나 더 샀는데 안 먹으면 누가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악어가 본래 저런 놈은 아닌데, 가끔 미치는 때가 있더라. 네가 이해해. 솔직히 너도 잘못한 게 있잖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1년차 선생님은 괜찮으실까요?”
“좀 맞겠지.”
“선생님께서 막으시면 안 될까요? 아무리 잘못했어도 때리는 건 아니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 반드시 없애야 할 문제지만, 우리 과에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동기나 4년차들 중에는 아직도 이런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 그런데 너, 악어하고 붙으려고 한 거야?”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인마.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한바탕 난리가 날 분위기더만.”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일단 참아. 선배와 트러블 생겨서 좋을 일 하나도 없다. 악어가 후배들한테는 욕을 먹지만, 선배들에게는 칭찬받는 놈이야. 학생 때처럼 개기면 너만 손해다.”
갑자기 김대성이 웃었다.
“네가 형이라고 부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인턴이네. 세월 참 빠르다, 그치?”
“예.”
“너, 수처 잘하던데, 연습 좀 했어?”
“예.”
“무슨 과 하고 싶어?”
“외과 쪽을 하고 싶습니다.”
“외과? 그럼 우리 과 와라. 내년이면 내가 4년차잖아. 교수님들도 4년차의 의견은 듣거든. 오늘 일은 잊어. 4년차 후반기에는 손 놓으니까 2년만 버티면 악어도 안 볼 수 있잖아.”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에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음료수만 마셨다.
“농담 아니야, 인마. 응급실에 물어보니까 이혁민 교수님이 너 찍었다며. 간호사들도 일 잘한다고 하더라. 초턴이 이 정도면 정형외과 하고도 남아. 공부도 꽤 잘했잖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째 좋아하는 기색이 없냐. 잘 생각하고 빨리 선택해. 인턴 내내 고민하다 보면 나중에 전공을 선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정형외과 인기 많은 건 너도 알지?”
“예.”
김지훈의 말이 지나치게 짧았지만, 김대성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학교 다닐 때와는 달리 의사가 되는 순간 선배는 굉장히 어려운 존재가 된다. 후배의 말은 저절로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서 일해. 맞은 자리가 많이 아프면 아이스 팩 대고. 한결 편할 거다.”
꾸벅 인사를 한 김지훈이 응급실로 돌아왔다.
정형외과에 대한 느낌이 묘했다. 김대성과 악어의 극명한 차이 때문이었다.
‘대성이 형 정도는 돼야 후배에게 존경을 받지. 최소한 악어 같은 선배는 되지 말자.’
그나저나 응급실을 돌다가 매 맞은 인턴이 또 있을까?
기분이 꿀꿀해진 김지훈은 묵묵히 환자만 봤다.
가끔 정갑수가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주먹만 안 휘두르지, 악어와 비슷한 부류라는 생각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간호사들도 조금은 조심하는 눈치였다.
이유가 이유이니만큼 정형외과에서 고이 말로만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정형외과는 각 연차에 한둘 씩 있는 쟁쟁한(?) 전공의들로 인해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악어가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엉덩이가 아플 때마다 김지훈의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슬슬 기분이 나아질 무렵, 응급실 밖이 경광등 불빛으로 번쩍거렸다. 환자를 이송해 온 구급 대원들이 이상스럽게도 조용했다. 스트레치 카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뭐죠?”
“디오에이(D.O.A.:dead on arrival)네요.”
간호사의 목소리도 착 가라앉았다.
다른 환자도 없는데 정갑수가 딴청을 피웠다.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사망자를 봐야 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상스러울 정도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동안 묵묵히 사망자를 내려다보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의사의 일이다. 냉정해지자.’
호흡도 없고, 청진상 심장음도 들리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죽은 사람이었지만, 원칙은 원칙이었다.
“심전도부터 찍어요.”
직선 하나만 길게 찍혀 나왔다.
완전한 심정지 상태였다.
사망을 확실하게 판단하는 과정이 있다.
김지훈이 매뉴얼대로 사망자를 확인하며 차팅을 했다.
동공 반사:(-)
호흡:(-)
심장 박동:(-)
심전도:Flat
anal sphincter(항문 괄약근) tone:(-)
마지막으로 환자의 몸에 난 모든 외상을 꼼꼼하게 기록한 김지훈이 간호사를 불렀다.
“방사선과로 옮기고, X-ray 체크하라고 하세요.”
사고사인지 곳곳에 골절이 있었다.
부검이 필요하다고 해도 사망 진단을 위해 상처가 있는 부분은 모두 방사선 촬영을 한다.
시신이 옮겨지는 것을 확인한 후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사망 경위를 확인해야 했다.
구급 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교통사고예요. 한남 대교 교각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는데, 2명이 죽고 1명은 중상입니다.”
“2명이요?”
“조금 있으면 한 구 더 올 겁니다.”
“다쳤다는 사람은 어디 있죠? 중상이라면서요?”
사망자보다 살아 있는 사람을 더 빨리 이송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구급 대원이 헛기침을 했다.
“환자도 곧 이송될 겁니다.”
‘무슨 소리야? 죽은 사람이 왜 먼저 와?’
김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구급 대원을 보았다.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후, 앰뷸런스 한 대가 도착했다.
역시 D.O.A.였다.
같은 절차를 반복한 김지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뭡니까? 중상자는 다른 병원으로 간 겁니까?”
“곧 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니, 살아 있는 사람을 먼저 옮겨야지,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누가 책임자예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자칫하면 사망자가 둘이 아니라 셋이 될 수도 있었다.
구급 대원이 연신 시계만 보다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황급히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환자 이송 여부를 알려는 것인지, 김지훈을 피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10분 정도 지나 환자가 도착했다.
젊은 남자였다.
스트레치 카가 흔들릴 때마다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아픈지 식은땀을 흘리며 눈물까지 보였다.
“환자분, 어디가 아프세요?”
“여기, 여기. 아파 죽겠어요. 빨리 어떻게 좀 해 줘요.”
환자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엉덩이 옆을 가리켰다.
다리를 희한한 각도로 뻗고 있었다.
‘고관절 부위에 문제가 생겼나?’
이렇게 심한 통증을 수반한 경우에는 빠르게 노티부터 하는 것이 좋았다. 시간을 끌다 보면 환자의 고통만 가중되기 마련이었다.
정형외과에 노티를 했다.
악어 때문인지 1년차가 칼처럼 내려왔다. 심각한 기색으로 환자를 보던 1년차가 악어에게 노티를 했다.
도대체 어떤 상태이기에 2년차에게 노티를 할까?
그것도 하필이면 악어에게 말이다.
정형외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궁금함에 악어를 또 봐야 한다는 생각도 잊었다.
잠시 후, 악어가 눈을 부라리며 나타났다.
“무슨 환자길래 나까지 불러? 이번 1년차 새끼들은 왜 이런지 모르겠네.”
대뜸 1년차에게 소리부터 지른 악어가 김지훈을 째려보았다.
“야, 인턴, 환자 어디 있어?”
“이쪽에 있습니다.”
기세등등하게 환자 앞에 섰던 악어가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에이씨! 설마 힙 디스로케이션(hip dislocation:고관절 탈구)인가? 진통제 하나 주고, 빨리 사진부터 찍어.”
간호사가 재빨리 진통제를 주사하고는 방사선실로 환자를 옮겼다. 그사이에도 환자는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진통제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
X-ray 필름이 도착했다.
팔짱을 끼고 필름을 보던 악어가 신경질을 내며 전화기를 잡았다. 왜 짜증을 내는 걸까?
“선생님, 힙 디스로케이션입니다.”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김지훈의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동안 3년차까지 봐야 하는 정형외과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긴 가장 큰 관절인 고관절이 탈구됐으니 문제가 심각하긴 할 것이다.
김대성이 나타났다.
X-ray를 보자마자 급히 환자를 찾았다.
아직도 통증이 심한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진통제 줬어?”
악어가 재빨리 대답했다.
“예, 트리돌(진통제) 줬습니다.”
“트리돌로 돼? 간호사, 데메롤(마약성 진통제) 2개 줘.”
강력한 진통제가 들어가자 환자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김대성이 가운을 벗고는 소매까지 걷어붙였다.
“김지훈 선생, 환자의 오른팔 잡고 못 움직이게 해. 최성훈 선생은 왼팔을 잡아.”
정형외과 1년차의 이름이 최성훈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름도 모르고 지금까지 노티를 했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름보다 1년차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지도 몰랐다.
“환자분, 엉덩이 관절이 빠졌어요. 다시 넣을 건데, 많이 아플 겁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허벅지 뼈끝이 죽을 수도 있어요. 이 악물고 참으세요.”
김대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4명이 달라붙었다.
강한 완력이 필요한 싸움이 시작됐다.
김대성이 마치 씨름을 하는 것처럼 환자의 다리를 잡고 몸을 비틀었다. 악어가 바짝 붙어 도수 정복(관절을 원래 상태로 끼워 넣는 술기)을 도왔다.
“아아악!”
환자의 비명이 터졌다.
김대성이 아랑곳하지 않고 관절을 다시 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썼다. 환자의 고통은 더욱 극심해졌고, 데메롤도 통증을 줄여 주지 못했다.
고관절을 지탱하는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강한 근육들이다. 더욱이 관절이 빠지면서 유발된 근육 경직으로 엄청난 저항까지 이겨 내야 했다.
5분이 흘렀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모두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관절은 자리에서 이탈해 있었다.
악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신 마취하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게 근육이 좋아서 그런지, 정말 힘드네. 최성훈 선생, 일단 오피(Operation:수술) 스케줄 준비해. 병원에 너무 늦게 와 대퇴골두(頭) 괴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어. 한 번 더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바로 마취과에 연락하자. 김지훈 선생, 꽉 잡아.”
1년차가 빠진 탓에 김지훈 혼자 상체를 잡아야 했다.
김대성이 다리를 잡고 정복을 다시 시도했다. 마지막 시도인 탓인지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환자가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꽉 잡았다. 하필이면 김지훈의 팔이었다. 고통이 가중될수록 환자의 힘도 강해졌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았다.
‘어우! 이러다 팔 부러지겠다. 제발 들어가라.’
“조금만 더. 악어 이 새끼야, 힘 좀 써.”
김대성의 입에서도 욕이 터졌다.
그 순간 어디선가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대성과 악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환자의 팔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